평강공주

 

'''平岡公主'''
(? ~ ?)
1. 개요
2. 일생
3. 의문점
4. 그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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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공주. 평원왕의 딸이자 영양왕, 영류왕, 고대양의 누이.
'평강공주'에서 '평강'은 이름 혹은 봉호가 아니다. 단지 평원왕(평강상호왕)의 딸이라 하여 평강공주라 불린 것이다. 그 유명한 온달 설화의 주인공으로, 평양성에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살았던 온달과 결혼, 고구려의 이름 높은 장수로 만들었던 일화로 유명하다.

2. 일생


평강공주는 어릴 때부터 자주 울었는데, 아버지인 평원왕은 평강공주가 울 때마다 '''"넌 너무 울어서 탈이니 귀한 사람의 아내는 못되겠다. 아무래도 바보 온달[1]한테 시집 보내야겠는걸?"''' 하며 놀리곤 했다고 한다.
후에 평강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평원왕은 공주를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평강공주는 예전에 평원왕에게 들었던 농담을 들먹이며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왕은 기가 막혀서 공주를 말렸지만 오히려 공주는 '''"보통 사람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왕께서 거짓말을 하신다면 누가 왕명을 따르오리까."'''라며 되려 왕을 나무랐다.
공주가 고집을 꺾지 않자 화가 난 평원왕은 공주를 궁 밖으로 내쫓았는데, 이때 공주는 금팔찌 등의 패물을 잔뜩 가지고 나와 온달에게 시집가게 된다.[2] 평강공주는 궁에서 나올 때 가져온 패물을 팔아서 가난에 시달리던 온달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온달에게 무술과 병법을 가르쳐 일자무식했던 가난뱅이 온달을 훌륭한 장수로 성장시킨다.
한편 평강공주는 비루먹은 말을 한 마리 사와서는 잘 보살펴 훌륭한 말로 키웠다. 온달은 이 말을 타고 사냥대회[3]에 나가 많은 산짐승을 잡아 우승을 하였다. 평원왕평강공주가 시집 갔다던 온달이 엄청나게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이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이후 온달은 중국 후주[4]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에 이산(肄山)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대형(大兄) 벼슬을 받았으며, 비로소 평원왕으로부터 사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평원왕의 뒤를 이은 영양왕 때에 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 이서(以西) 땅[5]을 찾아오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신라군과 격전을 벌이던 중에 아단성(阿旦城)[6]에서 화살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다.
영양왕과 고구려인들은 온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려고 하였는데 시신을 담은 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평강공주가 와서는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며 '''"삶과 죽음은 이미 정해졌으니, 이제 편안히 가시옵소서."'''라고 애원하자 그제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이후 평강공주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알 수 없다.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북한 학계에서는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동명왕릉 둘레 진파리무덤떼(고분군) 제4호무덤을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무덤으로 비정하고 있다.

3. 의문점


삼국사기의 온달 열전에 기록된 온달 설화에 따르면 평강공주는 쟁쟁한 귀족 신랑감은 버려두고(...) 대신 한미하고 가난한 온달을 택했는데, 상식적으로 볼 때 일국의 왕이 공주가 우는 것을 달랜답시고 바보한테 시집 보낸다고 장난 삼아 말한 것을 공주가 그 말을 진심으로 듣고 시집 간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학자들의 의견으로는 평원왕이 귀족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서[7] 한미한 집안 출신들을 등용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딸을 유력한 신흥 세력 인물에게 시집 보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만 이 신흥세력이 말 그대로 하급 귀족 출신인지, 아니면 지위 자체는 높지만 기존 세력과 대립하던 마이너 세력인지는 역시 해석이 분분하다. 자세한 내용은 온달 문서 참조.
이후에 온달이 가난하고 한미한 인물로 기록된 것은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었던 온달을 견제하기 위해 당대의 고구려의 고위 귀족들이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과 기록들이 후대에 그대로 전해진 것 때문으로 여겨진다.
온달이 실제로 설화처럼 가난하고 한미한 출신의 배운 거 없는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청년이었으면 나중에 전장에서 이름을 떨치게 해준 무예와 전술은 전부 평강공주가 가르쳐준 것이 된다(...). 이렇게 치면 실력이 있음에도 여성의 몸인지라 군권을 쥘 수 없는 평강공주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줄 남편감으로 온달을 고른 것일 가능성도 있는 셈. 이는 앞서 말한 온달과 왕권과의 관계와도 연관이 있게 된다.

4. 그 외에


  • 최인훈의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는 왕위 쟁탈전에 휘말려서 출궁했다가 온달과 만나며, 온달 사후 온달이 실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왕(=오빠)에게 고하려 하지만 온달이라는 바람막이를 잃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비운의 여인.
  • 신암행어사의 평강 영애[8] 역시 온달 설화를 비튼 스토리라인.
  • KBS 미니시리즈 천하무적 이평강에서 주인공 이평강(남상미)은 평강공주가 현대에 환생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큰 의미는 없다.
  • EBS 어린이 역사 드라마 점프에서는 아이가 역사 속으로 들어간 인물로 등장. 보통의 평강공주와 달리 온달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싫어하나 그의 진심을 알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 평강공주이지만 평강 채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한자도 다르다.
  • 한때 평강공주의 학습법이라고 해서 모 학습지 광고가 있기도 했었다(…).
  • 최사규의 소설 《평강공주》를 원작으로 하는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역시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 제대로 먹지 못하여 헐값에 구입한 말을 우수한 준마로 키워내 온달이 타고 활약할 수 있게 해준 안목을 보면 기마민족인 고구려의 왕족은 말의 능력치를 파악하는 교육을 기본적으로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1] 온달은 당시 평양성에 살던 인물로, 집안이 가난하여 늘 남루한 옷차림으로 사람들에게 구걸하러 다녔기에 바보 온달이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2] 흔히 자식이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리면 '이럴 거면 그냥 나가서 살아.'라고 엄포를 놓는 부모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강공주도 독이 올라서 진짜로 나가버렸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그냥 나간 것이 아니라 재산으로 쓸 패물을 챙기는 등 미래까지 대비했다.[3]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매년 3월 3일마다 왕이 주관하는 사냥 대회를 열었으며, 이때 잡은 짐승의 고기로 하늘에 제사지냈다고 한다.[4] '북주'라고도 한다.[5] 오늘날의 한강 유역을 이르는 말이다.[6] 오늘날의 아차산성으로 여겨진다.[7] 고구려안원왕 이후 귀족들의 세력이 강해졌다. 특히 안원왕 말엽의 왕위 계승 분쟁 이후 귀족 연립 정권이 세워진 이후로는 왕권까지 위협할 정도였다.[8] 영주인 평원의 딸이다. 평원 역시 평원왕에서 왕명만 따온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