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앵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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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포드 앵글리아 105E 경찰차 사양. 흔히 알려진 세대의 모델이다.
'''모델명'''
포드 앵글리아
'''제조사'''
포드 모터 컴퍼니
'''최초생산년도'''
1939년[1]
'''엔진형식'''
I4 overhead valve
'''미션형식'''
4단 수동
'''구동방식'''
FR
'''배기량'''
997cc
'''승차인원'''
4명
1. 개요
2. 역사
2.1. 1세대 (1939~1953)
2.1.1. 앵글리아 E04A (1939~1948)
2.1.2. 앵글리아 A54A (호주 시장용, 1946~1948)
2.1.3. 앵글리아 E494A (1949~1953)
2.1.4. 앵글리아 A494A (호주 시장용, 1949~1953)
2.2. 2세대 (100E, 1953~1959)
2.3. 3세대 (1959~1968)
2.3.1. 앵글리아 105E (1959~1968)
2.3.2. 앵글리아 토리노 (Torino, 1965~1967)
2.3.3. 앵글리아 슈퍼 123E (1962~1967)
3. 여담
4. 매체에서의 모습
5. 둘러보기
6. 관련 문서


1. 개요



1939년부터 1967년까지 생산된 차량. 영국지부에서 디자인 및 제조를 했다. 본래 포드는 미국회산데, 사실상 해외시장 전략 차종이기에 정작 판매국은 영국호주밖에 없다. 단종 될 때까지 3번 모델이 바뀌었고(해외사양 및 부분변경 포함시 8번 이상), 총 159만 4460대가 생산되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알려진 차종은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생산된 105E 모델이다.

2. 역사



2.1. 1세대 (1939~1953)



2.1.1. 앵글리아 E04A (1939~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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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46년식 포드 앵글리아 E04A.)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 9월에 영국에서 데뷔한 포드 앵글리아는 염가형 소형차인 포드 7Y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 차량은 포드 모델 T가 그랬듯이 검은색으로 도장되었으며 곧은 그릴과 유선형이 가미된 디자인이 사용되어 동시대적인 1930년대 말 스타일이 구현되었다. 기본형과 디럭스(Deluxe)[2]의 2개 트림이 제공되었으며, 가로배치된 앞뒤 리프 스프링과 기계식 브레이크가 적용되어 기술적으로는 단순했다. 한편 포드 7Y는 밴 모델이 같이 병행생산되어 1946년까지 생산되었다. 여담으로 이름인 Angila는 England의 라틴어 명칭이었다.
같은 시기, 비슷한 디자인의 포드 프리펙트(Prefect)와 달리 2도어 차체만 제공되었으며, 스폐어휠을 바닥에 평평하게 실은 덕분에 트렁크 공간이 넓어졌지만 트렁크 공간을 키우느라 뒷좌석 다리 공간이 좁아지기도 했다. 기본 엔진은 1933년부터 쓰던 933cc 직렬 4기통 사이드밸브 엔진이 쓰였으며, 1948년부터 제공된 북미 사양을 비롯한 수출 버전에는 포드 텐(Ten)에서 가져온 1172cc 직렬 4기통 엔진과 포드 텐 7W의 유선형 그릴도 장착되었다. 또한 빔 헤드램프와 주차등, 이중 후미등에도 커버를 씌웠다. 1947년 12월에는 디자인 변경을 통해 "Angila" 엠블럼이 측면 그릴 안에 삽입되었다.
또한 앵글리아에는 2단과 3단 사이에 싱크로메시가 적용되는 3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했고, 64km/h 이하로 속력이 내려가면 속도가 낮아지거나 동작을 멈추는 진공 와이퍼가 쓰였으며, 와이퍼에 진공 리저버(vacuum reservoir)가 적용되어 차량이 가속할 때 와이퍼가 완전히 멈추는 경향을 일부 보이기도 했다. 당시 시승기에 의하면 변속기의 최종 단수에서 8~10km/h 부근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점을 좋게 평가했으며, 의무적인 운전면허 시험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었던 당시의 영국에서 고객들은 정규적인 운전 강의 없이도 탈 수가 있었다. 첫 판매는 1940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1942년 초에 2차 세계대전 발발을 이유로 단종되었다. 1945년 중반에 생산이 제개되어 1948년까지 55807대의 앵글리아 E04A가 생산되었으며, 호주에서도 1940~1945년 동안 2~4인승 로드스터 버전이 생산되었다.

2.1.2. 앵글리아 A54A (호주 시장용, 1946~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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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48년식 포드 앵글리아 A54A 4도어 세단. 영국 버전과 다른 그릴이 적용되었다.)
호주에서 생산된 A54A는 영국산 E04A 버전의 차대와 앞부분이 장착되었고, 4도어 세단과 4인승 로드스터, 쿠페 유틸리티(승용트럭), 패널 밴 등의 다양한 차체 라인업이 제공되었다. 8HP 933cc 엔진이 기본 엔진이였으며 모든 라인업에 발판이 제공되었다. E04A 버전의 그릴을 변형한 그릴과 1948년부터 제공된 A54A 전용의 그릴 디자인, 초기형 앵글리아에서 쓰던 그릴의 3가지 그릴이 시기별로 달리 적용되었으며, 전용 그릴은 수직 형상의 크롬 장식이 적용되었다.

2.1.3. 앵글리아 E494A (1949~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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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3년식 포드 앵글리아 E494A.)
1949년에 출시된 앵글리아 E494A는 앞모습이 좀 더 유선형으로 다듬어져 눕혀진 형태로 내려오는 둘로 나뉜 그릴이 적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가장 저렴한 차였다. 이번에는 배달차 사양이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10HP 1172cc 엔진은 수출사양인 E493OA 전용으로 제공되었다. 1948년에 "모터{The Motor)" 지가 시승한 내용에 의하면 최고시속 약 92km/h에 0~80km/h까지 가족하는 데 38.3초가 걸렸고, 연료 효율은 리터당 약 12.8km/l을 기록했으며 가격은 세금 포함 309파운드였다고 한다. 1953년 10월에 완전신형이 제공됨에 따라 총 108878번째 차량을 마지막으로 단종되었으며, 다만 "포드 포퓰러(Popular)"의 이름으로 염가 사양이 1959년까지 판매되었다.

2.1.4. 앵글리아 A494A (호주 시장용, 1949~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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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1년식 포드 앵글리아 A494A 투어러(Tourer). 4인승 로드스터는 "투어러"라는 서브네임이 추가되었다.)
호주시장용 사양인 앵글리아 A494A 버전도 갱신되어, 영국 사양과 같은 디자인과 차대가 적용되는 한편 4도어 세단과 쿠페 유틸리티, 4인승 로드스터 및 로드스터 유틸리티 등의 다양한 차체 디자인이 제공되었다. 모든 라인업에 발판이 제공되었고, 세단 버전의 트렁크가 영국 사양 대비 좁은 편이었다. 933cc 엔진이 계속 쓰였으나 1950년부터 1172cc 엔진이 추가되었다. 여담으로 로드스터 버전은 당시 호주에서 가장 저렴한 신차였다.

2.2. 2세대 (100E, 1953~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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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4년식 포드 앵글리아 100E.)
1953년 후반, 포드에서는 "라쿠스타 오토모티브(Lacuesta Automotive)"가 디자인한 완전신형 앵글리아를 선보였다. 100E라는 코드명이 붙은 이 차는 2년 전에 출시된 포드 콘술(Consul)[3]독일 시장용 차량과 유사한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였고, 지난번처럼 2도어 세단에서만 앵글리아 이름이, 4도어 세단에서는 프리펙트 이름이 사용되었다. 기존의 1세대 모델은 포퓰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인테리어에는 PVC로 마감된 독립식 앞좌석과 앞으로 젖혀지는 등받이가 제공되었고, 속도계와 연료계, 전류계는 스티어링 칼럼 주변에 배치되었으며 플로어시프트 방식의 변속기가 적용되어 바닥에 설치되었다. 히터와 라디오는 선택사양이었으며, 1956년과 1959년에 각각 대시보드가 변경되어 처음에는 3개 다이얼로 구성된 계기판이 2개로 줄어들어 양쪽에 설치되었고, 나중에는 계기판과 라디오 등이 하나의 제어판 안에 통합되었으며 글로브박스(수납장)이 추가되었다.
한편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구식인 면이 있었고, 기존의 사이드밸브 엔진을 개량해 출력을 36마력으로 늘리고 크기를 키운 베어링, 흡입 밸브, 폄프식 냉각장치가 적용되었다. 변속기는 기존의 3단 변속기가 쓰였으며 일부 차량에는 "매뉴매틱(Manumatic)" 반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2개짜리 앞창문 와이퍼는 무료 옵션이었으나 기존의 진공식 와이퍼가 그대로 쓰여 가파른 고개를 넘을 때 와이퍼가 느려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대신에 차체와 차대가 분리된 바디 온 프레임 구성 대신 모노코크 차체 구조가 쓰이고, 앞바퀴 서스펜션도 당시에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이 적용되었으며, 뒷바퀴에는 안티롤바와 반타원형 리프 스프링이 적용되었다. 휠베이스는 초대 앵글리아보다 짧아진 대신 앞뒤 부분에서 길이를 늘리면서 스티어링의 록투록[4]이 2바퀴밖에 되지 않아 반응이 빠르고 운전하기가 쉬워진 대신, 건조한 도로에서 언더스티어가 발생하기도 했다. 1957년부터 1958년 사이에는 변속 중에 클러치가 필요없는 뉴톤드라이브(Newtondrive) 선택 사양이 제공되었다. 참고로 전압 시스템은 12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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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8년식 포드 앵글리아 100E.)
1957년 10월에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져 메쉬(Mesh)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새로운 헤드램프 마감, 넓어진 뒷창문, 크기를 키운 후미등과 크롬범퍼가 제공되었다. 1955년부터는 기본형인 "포드 에스코트(Escort)"와 우드그레인이 들어간 고급형인 "스콰이어(Squire)"라는 이름 하에 웨건 버전이 추가되었는데, 이들은 접히는 뒷좌석과 위아래로 열리는 해치게이트가 제공되었다. 밴 버전은 "탬즈(Thames)" 브랜드 하에 판매가 이루어졌다. 2세대 앵글리아는 영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1959년까지 총 345841대가 생산되었다.
여담으로 "브리티시 모터(British Motor)" 지가 1954년에 앵글리아 세단을 시승한 내용에 의하면 최고시속 113km/h에 97km/h까지 가속이 29.4초, 연료효율은 리터당 약 10.8km/l이었으며, 당시 시승차 가격은 세금 포함 511파운드였다고 한다.

2.3. 3세대 (1959~1968)



2.3.1. 앵글리아 105E (1959~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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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67년식 포드 앵글리아 디럭스 105E 세단.)
1959년에 출시된 3세대 앵글리아는 미국식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 낮게 내려오는 후드 디자인, 디럭스 트림 전용의 넓은 크롬 그릴[5], 테일핀, 1950년대 스튜드베이커[6] 차량이나 포드 썬더버드 등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차체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뒤로 눕힌 뒷창문 디자인[7]이 적용된 것으로도 유명하며, 어떻게 보면 사실상 1958년식 링컨 컨티넨탈의 디자인을 영국 현지에 맞게 옯겨놓은 디자인이기도 했다. 1961년 9월에 웨건 버전이 추가되었으며, 계기판에는 발전기 상태를 표시하는 빨간 등과 오일 상태를 표시하는 녹색 등이 설치되었다.
이번에는 엔진도 새로 바꿔 997cc OHV(오버헤드 밸브) 구조의 "켄트(Kent)" 직렬 4기통 엔진이 적용되었다. 여전히 가속력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으며, 상위 3단에 싱크로메시가 적용되는 4단 수동변속기도 장착되었다가 1962년 9월에 싱크로메시가 모든 단수에 들어가는 변속기가 1198cc 엔진 사양에 장착되었다. 진공식 와이퍼도 전동 모터로 작동하는 평범한 와이퍼로 대체되었고,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이 지난 세대에 이어 그대로 적용되었다. "브리티시 모터" 지에서 1959년에 앵글리아 세단을 시승한 내용에 의하면 최고시속 약 118.8km/h에 97km/h까지 가속이 26.9초 걸렸고, 연비는 약 14.6km/L를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 시승차는 세금 180파운드를 포함한 610파운드였다.
1962년 10월에는 당시 24세였던 토니와 마이클 브루크(Tony and Michael Brookes) 쌍둥이와 친구들이 앵글리아 105E를 구입한 뒤 포드 퍼포먼스 패키지(Ford Performance Kit)를 적용한 레이싱카를 타고 프랑스 파리 근처의 몽레리 경기장(Montlhéry Autodrome)에서 6개의 국제 클래스 G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4~7일차 경기에서 낮밤으로 각각 15000km과 20000km을 주행하는 동안 평균 주행속도는 약 134.33km/h였으며, 타이어 등의 소모품 교환 정도만 이루어지면서 앵글리아의 강한 내구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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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포드 앵글리아 105E 웨건 버전. 사진 속 차량은 기본형 사양이다.)
이번 앵글리아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포드 코티나의 상업적 성공이 더 크게 벌어지면서 다소 퇴색하기도 했다. 1960년 한 해동안 191752대가 생산되어 포드 자동차 회사 전반의 생산대수 기록을 새로 갱신할 정도였고, 1963년에는 포드 코르세어(Corsair)의 도입과 함께 생산 라인을 옮기기도 했다. 1962년 9월에는 다른 색상으로 스트라이프를 칠하고 코티나로부터 1198cc 켄트 엔진을 가져와 장착한 "앵글리아 슈퍼(Super)"를 1963년형 모델로서 판매했다.
한편, 기존의 앵글리아 100E는 포퓰러 이름을 달고 판매되었으며, 4도어 프리펙트는 기존의 차체를 고수한 체로 107E로 개량되어 신형 앵글리아의 변속기, 엔진, 브레이크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에스코트와 스콰이어 웨건도 1961년에 신형 웨건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대로 생산되었다. 한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앵글리아 슈퍼가 도입된 1966년 포반까지는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다가 1967년에 최고 정점을 찍어 남아공 차량 전체 판매량 9위를 기록했다. 남아공에서는 후속차인 포드 에스코트가 나온 이후에도 제고처리 차원에서 계속 생산되어 1968년 말까지 판매되었다. 부품 교체가 수월하고 다양하게 튜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핫로드 차량으로서도 나름 인기가 있다.
한편, 밴 모델은 "탬스 307E 5cwt/7cwt"라는 이름으로 1961년부터 판매가 이루어졌고, 997cc 엔진이 적용되었다. 디자인이 비슷하나 문 디자인과 앞창문이 다르며, 좌핸들 버전의 수출 사양은 탬즈 308E라는 이름 하에 판매되었고 일부 시장에서는 앵글리아 이름을 쓰기도 했다. 1962년 10월부터 1198cc 엔진이 사용되었으며 모델명도 탬즈 309E로, 수출 사양은 310E로 개명되었다. 1965년 3월에는 탬즈 브랜드를 폐기하고 포드 앵글리아의 이름으로 통합되었으며, 1967년 11월까지 205001대의 밴 모델이 생산되었다.

2.3.2. 앵글리아 토리노 (Torino, 1965~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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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66년식 포드 앵글리아 토리노 105E.)
포드 앵글리아 토리노 105E는 포드의 이탈리아 지사에서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기존의 105E 버전의 설계를 그대로 사용하되 지오반니 미켈로티(Giovanni Michelotti)가 디자인한 새 차체를 적용했다. 생산은 Officine Stampaggi Industriali가 맡아서 총 10007대를 이탈리아 내에서 판매했고, 일부 차량은 룩셈부르크벨기에, 네덜란드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2.3.3. 앵글리아 슈퍼 123E (1962~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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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66년식 포드 앵글리아 슈퍼 123E 세단.)
1962년에 출시된 123E 앵글리아 슈퍼는 프리펙트 107E의 후속차종으로 데뷔했으며, 1198cc 엔진이 적용되었다. 당시 세단 버전의 경우 크롬장식 자체가 없이 좁은 그릴과 제한된 인테리어 마감, 페인트 마감된 후미등 마감 부품이 적용되는 기본형 "스탠다드(Standard)"와 크롬 측면 몰딩과 후미등, 글로브박스 뚜껑, 선바이져, 크롬 그릴이 적용되는 디럭스가 있었는데 슈퍼는 이중 크롬 측면 몰딩과 다른 색상의 지붕, 훨씬 풍성한 인테리어 마감, 1단 변속기에 싱크로메시가 들어간 변속기가 적용되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선택 사양으로는 이름을 그대로 두고 디럭스 사양의 기술적인 부분을 슈퍼 사양으로 바꾼다거나, 디자인적인 부분만 슈퍼로 바꾼다거나 하는 경우도 일부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도 판매된 이 차는 유럽 전용으로 "앵글리아 스포츠맨(Sportsman)"이라는 사양이 제공되었으며, 당시 미국차들처럼 뒷부분에 스폐어타이어가 설치되었다. 도한 크롬 도금된 범퍼 오버라이더와 넓은 화이트월 타이어, 측면 스트라이프 옵션이 적용되었다. 1966년에는 남아공에 상륙하면서 남아공에서 앵글리아의 위치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생산 끝자락에는 "블루 밍크"와 "베네치안 골드"라는 2가지 메탈릭 페인트 도장을 시험 적용했으며, 파란색 250대와 금색 500대가 생산되었다. 단종 때까지 총 1,063,960대에 이르는 차가 앵글리아의 이름을 달고 생산되었다.

3. 여담


단종된 지 꽤 됐기 때문에 영국이나 호주에선 희귀템으로 분류된다. 영국에서는 2015년 12월 기준으로 총 3475대가 등록되어 있으며, 찾아보면 방치된 차량들도 많은듯. 참고로 국내에도 헐리우드 모터쇼(2004) 당시 경품으로 추정되는 105E 1대가 들어와 있다.
제레미 클락슨의 아버지가 이 차를 몰고 가다가 무릎 캡이 빠져서 비상제동대에 들어가야 했다고 깠다.
영국이나 호주에서는 한국의 현대 포니처럼 추억의 아이템으로 회자되는듯.

4. 매체에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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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아서 위즐리가 마법을 걸어 놓은 차로 포드 앵글리아 105E가 등장한다. 위즐리 쌍둥이 형제가 론과 함께 해리를 구출하러 올 때 타고 와서 해리의 방 창문에 쳐진 쇠창살을 뜯어내고 해리를 구출해 간다. 그 이후에 위즐리 가족이 해리와 함께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킹스 크로스 역에 갔을 때 해리와 론이 도비의 마법 때문에 승강장을 통과하지 못하자 그 차를 타고 열차를 따라 호그와트로 가지만 되받아치는 버드나무에 충돌해 반파된다. 이후 해리와 론이 애크로맨투라 떼에 둘러싸였을 때 해리와 론 앞에 운좋게 나타나 금지된 숲 밖으로 데리고 간다.
미니언즈에서도 나온다. 영국 여왕의 왕관을 훔쳐서 달아나는 장면 중간중간에 나오며, 클래식 미니모리스 마이너, 오스틴 FX4와 같이 당시 영국에 흔했던 차들도 같이 등장했다.
명탐정 코난에서 원작 에피소드인 시카고에 온 남자(원작 32권) 후편에서 팬더카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코난의 얘기에서 배경으로 나온다.
포르자 호라이즌 4에도 등장. 한때 쇼케이스 리믹스로 기차와 경주하는 4와 1/2 이벤트가 있었다.

5. 둘러보기




6. 관련 문서


[1] 최초 세대 기준.[2] 장비가 훨씬 다양했고, 발판이 기본 사양이었다.[3] 포드의 중형차. 여기서 포드 코티나가 파생되었다.[4] 스티어링을 끝에서 끝까지 돌리는 바퀴 수.[5] 기본형 앵글리아는 페인트 도장이 된 좁은 그릴이 적용되었다.[6] 미국의 자동차 업체. 당시에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 업체 중 하나였으나 경영난으로 1960년대에 사라졌다.[7] 당시 포드 산하의 링컨머큐리 차량에서도 쓰던 디자인이였고, 이후에는 시트로엥 아미에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