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역사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진한 시대에 근기국(勤耆國)이 있었으며, 신라시대 구 연일군 일대는 근오지현, 구 흥해군 일대는 퇴화현, 구 청하군 일대는 아혜현, 구 장기군 일대는 지답현이라는 고을이 있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대에 근오지현이 임정현으로, 퇴화현이 의창군으로, 지답현이 기립현으로, 아혜현이 해아현으로 개편되었다.
근기(勤耆)→근오지(斤烏支), 연일(延日), 영일(迎日 : 영일군, 영일만 등)이란 이름은 모두 ''''해돋이/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실제로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호미곶)이기도 하니 예로부터 포항 지역은 해돋이로 잘 알려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신라어로 근기→근오지는 '도기야(都祈野)'라고도 불렸으며, 이는 모두 '돕(돋)기/도기(도끼)/도지/돋이'를 음차 및 훈차한 표기들이다. 또한 오(烏)는 고대 한국에서 태양 안에 신성한 까마귀가 살고 있다는 사상(삼족오 신화)에 따라 태양을 뜻한다. 또한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에서도 연오랑(延烏郞)의 '연오(延烏)' 역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 '연오'가 훗날 '연일(延日)', '영일(迎日)'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2. 고려
고려 초에 임정현이 연일현으로, 의창군이 흥해군으로, 기립현이 장기현으로, 해아현이 청하현으로 개칭되었다. 신라~고려 대에 연일현의 치소는 오늘날의 오천읍에 있었다.[1] '오천'이란 이름에서도 태양을 뜻하는 '오(烏)' 자가 있어, 오천읍 일대가 연일현의 원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3. 조선
1895년 23부제 실시때 놀랍게도 지금의 부산광역시 영역인 '''동래부'''에 속해 있었다![2] 물론 1년만에 23부제가 폐지되긴 했지만...
1906년 경주군 기계면과 신광면이 흥해군으로, 경주군 죽장면이 청하군으로, 경주군 양북면과 양남면이 장기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때, 죽장면은 죽남면과 죽북면으로 분할되었다.
한편 조선시대에 '연일'과 '영일'이라는 이름은 자주 혼용되었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연일군,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을 연일의 이칭인 '영일'에서 따와 '''영일군'''으로 통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일군 북면과 흥해군 동상면이 포항면으로 통합되었고, 1906년 경주군에서 장기군으로 편입되었던 양북면(현 경주시 양북면과 감포읍)과 양남면이 경주군으로 환원되었다.
1917년 포항면 일부를 형산면으로 분리하였다. 1931년 포항면이 포항읍으로 승격되었고, 1938년 분리되었던 형산면을 다시 포항읍에 편입하였다. 1934년 죽북면과 죽남면이 죽장면으로, 장기면과 봉산면이 지행면으로 통합되었다.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승격되었다.
5. 대한민국
1949년 포항읍이 '''포항부'''(府)로 승격되어 영일군에서 분리되었고, 승격 직후 '''포항시'''(市)로 개칭되었다.
1956년 흥해면과 곡강면(현 흥해읍 곡강천 이북)이 의창면으로 통합되었다. 1957년 달전면이 의창면과 연일면에 분할 편입되었다. 1973년 의창면이 의창읍으로 승격되었다. 1970~80년대에 걸쳐 포항제철이 조성되면서 연일, 대송, 오천 지역이 지속적으로 포항시에 편입되었다. 1980년 연일면이 연일읍으로, 오천면이 오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개칭되었고, 1986년 기계면 기북출장소와 구룡포읍 대보출장소가 각각 기북면과 대보면으로 분리되었다. 1991년 지행면을 장기면으로 환원하였다.
1995년 포항시와 영일군이 다시 통합됨과 동시에 남구와 북구가 설치되었고, 1998년과 2009년 두 번에 걸쳐 소규모 동의 통폐합이 있었다. 2010년 대보면이 호미곶면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