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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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7년 결성해 1986년까지 활동한 영국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록 밴드. 다섯 장의 정규 앨범으로 7,5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뉴웨이브의 황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 결성
'Curved Air'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있던 스튜어트 코플랜드가 무명 베이시스트 스팅을 만난 것이 밴드의 시작이었다. Curved Air의 해체 이후 스튜어트는 스팅과 함께 3인조 밴드 'The Police'[1] 를 결성하기로 합의하고 기타리스트 헨리 파도바니[2] 를 영입하여 3인 체제를 완성한다. 그렇게 활동하던 폴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프트 머신 등여러 밴드[3] 를 전전하며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스[4][5] 를 만나게 되는데, 밴드 가입을 권유한 스팅에게 앤디가 '3인 체제를 유지할 것'[6] 이라는 조건으로 밴드에 가입하면서 현재의 폴리스가 완성 된다.
3. 활동
3.1. 1집 Outlandos d'Amour
1978년 'Outlandos d'Amour'[7] 를 발매하며 메이저씬에 데뷔한 폴리스는 UK차트 6위, 프랑스 차트 2위라는 성과를 거둔다. 앞서 발매 된 Roxanne[8] 와 Can't Stand Losing You, So Lonely 같은 싱글들은 방송금지 등의 벽에 막혀 흥행에 실패했지만, 훗날 재발매 되어 각각 UK차트 12위와 2위, 6위를 기록하게 된다.
Roxanne
Can't Stand Losing You
So Lonely
3.2. 2집 Reggatta de Blanc
이듬해 곧장 'Reggatta de Blanc'[9] 를 발매한 폴리스는 1집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공을 맛 보게 된다. 영국 최초의 5주 연속 1위 앨범이라는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발매 싱글 Message in a Bottle[10] 과 Walking on the Moon 또한 UK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된 것. 오호.
Message in a Bottle
Walking on the Moon[11]
3.3. 3집 Zenyatta Mondatta
레코드사의 등쌀에 밀린 폴리스는 투어를 끝 마치자마자 쫓기듯 3주 만에 녹음한 3집 'Zenyatta Mondatta'[12][13] 를 발매하게 된다. 이 앨범 역시 UK차트 1위를 석권하며, 선생과 학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수록곡 'Don't Stand So Close to Me'는 싱글로 발매 되어 1980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Don't Stand So Close to Me
De Do Do Do, De Da Da Da
3.4. 4집 Ghost in the Machine
[14]
다소 두껍고 변화 된 사운드로 새롭게 등장한 4집 Ghost in the Machine을 통해 폴리스는 단순한 펑크 밴드가 아닌 다양한 색채를 입은 뉴웨이브 밴드로 변신한다. 역시나 1위를 석권한 싱글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을 비롯해 'Invisible Sun',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 등이 대표곡.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15]
Invisible Sun
Spirits in the Material World[16]
3.5. 5집 Synchronicity
항목 참조
4. 재결합
폴리스는 해체 이후 멤버가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갔는데, 스팅은 솔로 활동으로 나서면서 더 재지(Jazzy)한 음악을 시도했고 앤디 서머스는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과 함께 앨범을 내는 등 아트 록을 하게 되었고,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월드 뮤직을 연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셋은 다시 뭉칠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놀랍게도 '''2007년 일시적 재결합을 선언, 1년간의 월드투어를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07년의 공식적인 재결합 이전까지 세 멤버가 합친 적은 딱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한 번이 1992년 있었던 스팅의 결혼식[17] 이었고 나머지 한 번이 2003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면서였다. 2007년 전까지 공식적인 재결합은 이 때가 유일했다.
그러나 2007년, '팬들을 놀라게 해줄 무언가'를 고민하던 스팅이 '폴리스의 재결합은 없다'는 말을 번복하고 폴리스의 일시적 재결합을 선언한다. 그렇게 20년 만에 모인 폴리스는, 1년간의 월드투어에서 156회의 공연을 펼치며 3억 6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전세계 7위이자 당시로선 3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18] 스팅은 공공연히 '폴리스로서 음악을 새로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그의 말대로 폴리스는 월드투어를 마친 뒤 다시 해체하게 된다. 2016년, 데저트 트립 페스티벌에서 폴리스의 일회성 재결합에 100억원을 제시했지만, 스팅은 여전히 재결합에 부정적인 상황.
5. 멤버
5.1. 스팅
[image] 스팅 개인의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폴리스에서는 베이스 기타와 리드 보컬을 맡았다.
1970년대에는 주로 Ibanez의 MC-940 프렛리스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이외에는 Fender Precision Bass를 주로 사용하며, 현재는 1950년대식으로 복각된 프레시전 베이스를 주로 연주한다.
5.2. 앤디 서머스(Andy Summers)
[image]
개인 인스타그램
상기하였듯이, 폴리스의 나머지 멤버들보다 나이가 10살가량 많았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여러 밴드를 전전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다. 사이키델릭 록 음악도 한 적이 있고, 상기하였듯이 애니멀스에서도 활동하였다.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클래식 기타 연주까지 배우기도 하였다. 이후 록 밴드 공#s-11의 베이시스트 마이크 하울릿이 서머스를 자신의 밴드 스트론튬 90(Strontium 90)에 영입하는데, 마침 그 밴드에는 스팅과 스튜어트 코플랜드가 멤버로 있었다. 이후 스트론튬 90이 해체되면서 스팅과 앤디, 스튜어트는 자연스럽게 폴리스를 결성하게 된다.
폴리스 활동 이후에는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과 힘을 합쳐 1982년 <I Advance Masked>라는 아방가르드/앰비언트 록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폴리스 시절에는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앤디의 실험적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이 특징.
폴리스 시절에는 주로 코러스 이펙트를 많이 사용한, 울림이 큰 소리를 주로 구사하였다. 당시 주로 사용하던 기타는 Telecaster.[19] 또한 동시에 Hamer Standard 모델도 소유, 연주하였다.[20] <De Do Do Do, De Da Da Da>의 뮤직 비디오에는 Hamer의 Special Jr.로 추정되는 기타가 등장한다. 훗날 2007년 재결합 투어를 하였을 때는 빨간색 Stratocaster가 주 사용 악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Jaguar, Gibson Les Paul, ES-335, ES-175 등 수많은 기타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앰프는 주로 마샬 앰프를 썼으나, 롤랜드의 Jazz Chorus 앰프도 사용하였고, 2000년대에는 메사 부기의 앰프를 사용하였다.
기타 연주 이외에도 사진 촬영을 즐기는데,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종종 전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앤디는 라이카(Leica) 사의 카메라를 즐겨 썼는데, 이를 바탕으로 라이카에서 라이카 M 모노크롬 앤디 서머스 시그니춰 카메라를 제작하기도 하였고, 여기에 이 모노크롬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펜더 앤디 서머스 시그니춰 모노크롬 스트라토캐스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여타 스트랫 기타들과는 다르게 노브가 카메라 다이얼처럼 되어 있다.
5.3. 스튜어트 코플랜드(Stewart Copeland)
[image]
개인 인스타그램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1952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으나, 5살 때 가족이 레바논 베이루트로 이사를 갔다가 1960년대에 영국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 밀필드 보딩 스쿨을 다녔고,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과정을 마친 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1974년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Curved Air의 재결합 공연에서 로드 매니저로 일했다가 1975년부터 76년까지 해당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였다. 이후 재즈 밴드 Last Exit에서 베이시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스팅과 연이 닿게 되어 폴리스를 결성하기로 결심.
폴리스가 해산한 이후에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자신의 집이자 홈 스튜디오 인 'The Sacred Grove'에서의 영상을 주로 올리기도 하는데, 영상에 나오듯이 오래된 키보드부터 자신의 드럼 키트,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뿐만 아니라 트럼펫, 팀파니,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를 소장 중이다.
드러머로써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데, 종종 러시(밴드)의 드러머 닐 피어트와 비교될 때가 있다. 또한 스틱을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잡는 몇 안 되는 록 드러머들 중 한 명.
부친이 정부 요원이었던 걸로도 알려져 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미 중앙정보국에 들어갔으며, 코플랜드가 출생했을 때도 이집트에서 임무 수행 중이었다고. 정작 코플랜드 본인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6. 기타
항목만 보면 폴리스가 스팅의 원맨 밴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앤디 서머스 특유의 기타톤과 스튜어트 코플랜드의 통통 튀고 재지한 드러밍이 없었다면 지금의 폴리스는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중론이다. 폴리스의 절대적인 중심은 스팅이라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지만, 솔로로 나선 스팅의 폴리스 곡 라이브와 2007년 당시의 진짜 폴리스 라이브를 들어보면 기타나 드럼에서 상당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폴리스의 두 곡(Bring on the Night 및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을 아래 동영상으로 들어보자.
폴리스의 "Bring on the Night", 1979년 곡
폴리스의 "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1980년 곡
이번에는 이 두 곡의 스팅 버전을 들어보자.(두 곡이 메들리로 연속 연주된다.)
스팅의 "Bring on the Night/When the World is Running Down", 1996년 파리 공연.
이 곡들을 비교해보면 폴리스의 사운드에서 서머스와 코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팅 버전은 브랜포드 마살리스나 오마 하킴같은 대가들을 멤버에 넣어 일부러 재즈풍으로 어레인지한 것이지만, 두 버전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서머스의 기타와 코플랜드의 드럼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앤디 서머스는 폴리스 합류 전에도 애니멀스의 멤버로 앨범 작업을 했을 만큼 실력파였고,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롤링 스톤 선정 100대 드러머 중 10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엄청난 거물이다. 아티스트로서의 인지도나 밴드 내에서의 음악적 영향력은 스팅이 훨씬 높지만, 밴드의 구성원인 보컬리스트/베이시스트로서의 실력만 보면 오히려 스팅이 저 둘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1] 스튜어트의 아버지가 CIA에서 근무해서 지은 이름.[2] 프랑스 출신이다. 다만 활동은 주로 영국에서 했던 것으로 추정.[3]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주역 중 하나였던 밴드 애니멀스 소속이었던 적도 있다.[4] 실제로 스팅은 1951년생, 스튜어트는 1952년생인데 반해 앤디는 1942년생이다.[5] 꽤 동안이다. 위 사진만 봐도 나이가 근 10살이 위인데 동년배로 보인다.[6] 즉, 헨리 파도바니는 쫓아내라는 소리 (...)[7] Outlaws of Love를 대충 프랑스식으로 옮긴 것. 올바른 번역은 아니다[8] 프랑스에서 길거리를 거니는 매춘부를 본 스팅이 영감을 얻어 작곡한 노래. 여기서 Roxanne는 매춘부의 이름이다[9] 역시 White Reggae의 불어 표현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말은 아니다.[10] Every Breath You Take와 함께 이 곡을 대표곡으로 꼽는 사람들도 꽤 있다.[11] 참고로 스튜어트가 뒤에서 드럼스틱으로 두드리는 것은 다름 아닌 새턴 V 로켓.[12] 이 앨범은 대놓고 뜻이 없다. (...) 멤버들이 밝히기를 그냥 음운 맞춰 발음 잘 되게 지은 거라고...[13] 오버워치의 젠야타와 몬다타가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14] 왼쪽부터 앤디 서머스, 스팅, 스튜어트 코플랜드를 형상화 한 모습이다.[15] 공식 뮤직비디오인데 원곡보다 한 키가 높았지만 HD가 되고 원 키로 수정 되었다.[16] 역시 한 키 높았지만 HD가 되면서 원 키로 수정 되었다.[17] 하객들이 하도 연주 좀 해달라고 해서 멤버들이 마지못해 나갔다고. 오래간 합을 맞추지 않아 공연은 엉망이었지만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일이어서 아직까지도 멤버들이 간혹 회자하곤 한다.[18] 1위가 롤링 스톤즈, 2위가 U2임을 감안한다면...[19] 위 사진에 등장한 기타. 넥 픽업이 험버커 픽업이다. 참고로 가르치던 학생한테서 돈을 주고 구입했는데, 구입하던 당시에 이미 험버커 개조가 완료된 상태였다고 한다.[20] 헤이머 기타는 Can't Stand Losing You의 뮤직 비디오에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