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밴드)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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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러시
RUSH
'''
'''멤버'''
'''게디 리, 알렉스 라이프슨, 닐 피어트'''
'''입성 연도'''
'''2013년'''
'''후보자격 연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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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알렉스 라이프슨 - 닐 피어트 - 게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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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진. 라이프슨 - 리 - 피어트
1. 개요
2. 역사
3. 팬들이 러시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
4. 구성원
4.1. 게디 리(Geddy Lee)
4.2.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
4.3. 닐 피어트(Neil Peart)
5. 디스코그래피
5.1. 밴드 결성
5.2. 프로그레시브 실험 시기[2]
5.3. 프로그레시브 중흥 시기
5.4. 실험 완성 시기
5.5. 신디사이저 실험 시기
5.6. 기타 강조 시기
5.7. 공백 이후 부활 시기
6. 기타


1. 개요


캐나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록 밴드.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이자 프로그레시브 록하드록/헤비메탈을 이어준 중요한 밴드'''이다. 또한 훗날 등장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한 줄기를 차지하는, 공적으로 추앙받는 밴드이기도 하다.
멤버는 OC[3] 게디 리 (Geddy Lee, 보컬, 베이스, 키보드), OC 알렉스 라이프슨 (Alex Lifeson[4], 기타), OC 닐 피어트 (Neil Peart, 드럼)[5]다. 70-80년대가 전성기였지만, 2018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6]
라이프슨과 피어트의 건강 문제로 2015년을 마지막으로 라이브 투어에서 은퇴했으며,[7] 결성 50주년인 2018년에 모든 활동을 중지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3년 반의 투병 끝에 현지 시간으로 2020년 1월 7일 피어트가 교모세포종으로 67세에 사망했다.#

2. 역사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이 친해지면서 서로 스쿨밴드를 만들어 게디 리의 집 지하실에서 연습을 하면서 결성을 하게된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단순한 하드 록 밴드로 레드 제플린의 카피 밴드 정도로 폄하당했지만, 1974년 밴드 결성 멤버 중 드러머였던 존 룻세이(John Rutsey)가 당뇨병 증세를 보여[8] 도중에 탈퇴하고 현재의 드러머인 닐 피어트가 합류하면서 자신만의 색채를 찾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커버밴드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는 16살때부터였고 매주 주말마다 시내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마침 이 때 매니지먼트사의 눈에 들어 소속사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음주연령이 높았던 시기라 미성년자였던 이들이 몰래 공연을 하고 다니는 것을 학교가 알면 안됐다고 한다.
결국 12학년(고등학교 3학년)때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중퇴를 하게된다. 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피해 고향을 떠나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던 부모님들 입장에선 당연히 반대가 심할 수 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 자식들을 키우면서 번듯하게 공부하고 직장을 가질거라 예상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앞날이 불확실한 음악인의 길을 걷겠다고 하니 반대가 심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들이 데뷔 후 TV에 나오자 부모님들인 그제서야 왜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뒀는지 이해했다고 한다. 다만 알렉스 라이프슨은 나이가 들면서 그래도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에 대해 좀 후회하는 듯 하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다시 학구열에 생긴 듯.
2차례 앨범에 걸쳐 프로그레시브적 요소를 섞던 실험을 하던 러쉬는 이 두 앨범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9][10] 당시 주변인들의 극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밴드를 접을 각오로 20분짜리 대곡 타이틀을 건 2112 앨범을 냈는데, 이 앨범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락의 세계에서 새로운 별로 부상하였다.
하지만 라디오로 한 번에 틀기에 부적합하면서 공상 과학 요소가 짙게 깔린 20분짜리 곡 2112는 당시 음악계 기득권 층의 눈에 "고등학교 중퇴들이 같잖게 건방지고 똑똑한 척"하는 것으로 보였고, 덕분에 러쉬는 70년대 당시 평론가들에게 줄기차게 까이는 동시에 대중 미디어에서 거의 무시당하다시피 하였다. 캐나다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아나운서인 존 로버츠( John J.D Robert) 역시 같은 의견을 내세웠는데 당시 음악 평론계가 제일 싫어했던 음악이 헤비메탈/하드 록이었고 그 중에서도 프로그레시브 장르를 제일 싫어했다고 한다. 왜냐면 이들 눈에는 헤비메탈/하드록은 기품이 없는 장르인데다가 특히 프로그레시브는 제대로된 음악 교육도 받지않은 락 스타들이 예술가 흉내를 내려고 하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속사 쪽에서도 러시는 실력도 여타 밴드처럼 꿀리지않고 공연표도 늘 매진인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러쉬 본인들 이야기론 다른 락밴드 처럼 확실한 밴드 이미지나 컨셉이 없어서 늘 이것 저것 있어보이는 옷들을 주워 입고 사진찍은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입소문을 듣고 라이브로 직접 본 팬들은 그런 평론가들 얘기엔 귀조차 기울이지 않았지만. 팬 이외에도 KISS나 다른 프로 밴드들 역시 러시의 실력과 음악성에 대해선 높게 평가했는데 당시 메이져스트림과 어울리지않았던 그들의 음악성 때문에 평론가들이 줄기차게 까댄 부분이 안타깝다고 한다.[11]
이후 하드록에 다채로운 구성과 실험적인 연주, 지적인 가사를 가미하는 노력을 계속한 덕분에 1980년대에는 "킹 크림슨예스레드 제플린을 만났으니 그게 바로 러쉬다", 현재는 '''러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기존에 만들어진 장르의 틀에 함부로 담을 수 없다'''는 식으로 숭배되다시피 한다.
러쉬의 곡은 처음 들어보면 세 사람이 내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깊은 느낌을 준다.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인 커크 해밋도 2112 앨범을 처음 듣고 대규모 슈퍼밴드라고 생각하고 앨범 표지를 봤는데 삼인조 밴드라는 것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실제로 밴드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신의 분야에서 거의 기인의 경지에까지 다다랐기 때문. 알렉스와 게디는 라이브에서 각각 기타와 베이스를 치는 동시에 발로 이펙터와 건반을 조작하는 묘기를 부리는데, 이는 배경 트랙을 사용하지 않고 앨범에서 보였던 음색과 효과를 그대로 재연하려는 러쉬의 고집이라 할 수 있겠다.
곡의 가사와 주제는 주로 닐 피어트가 작성하는데, 철학적인 고찰에서부터 장대한 서사 구조, 현대인의 생활상과 사회 구조 등 깊이 있는 주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본디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피어트 본인이 드러머이기 이전에 '''독서광'''이었다는 점은 서구에서 흔히 생각하는 "드러머는 때리고 부순다"는 고정 관념과 정면으로 대비되기도 한다.[12] 한가지 예를 들자면, 제2차 세계대전 말미에 미국이 계획한 원자폭탄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와 그 결과였던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주제로 한 곡 '''Manhattan Project'''의 가사를 쓰기 위해 이와 관련된 책을 무려 10권이나 읽었다.[13][14]
1970년대에 공상 과학과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 대곡을 위주로 냈던 러쉬는 1980년대에는 음악적인 실험의 일환으로 신디사이저 음이 짙게 깔린 뉴웨이브 록을 연주하였고, 1990년대 이후 다시 기타의 비중을 높이면서 초창기 때의 모습과 1980년대 당시 실험의 결과를 버무린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사실상 프로그레시브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완성시킨 밴드로, 이후 드림 씨어터[15][16]를 비롯한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들에게 엄청난 추앙을 받고 있다.[17] 또한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아니더라도 웬간히 메탈한다는 사람들은 거의다 러쉬를 존경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스터 빅의 리더 빌리 시언과 보컬 에릭 마틴, 밴드 그레이트 화이트, 기타리스트 조지 린치, 제이크 E. 리 등등으로 이들은 러쉬 트리뷰트 앨범에도 참여하였다.
메탈 쪽이 아니더라도 러쉬 이후의 세대 중 프로그레시브적인 실험성을 추구하는 록밴드들은 다 러쉬에게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스매싱 펌킨스, 프라이머스, TOOL 등등이 그렇다.
2018년 알렉스 라이프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앨범과 투어 등 더 이상의 러쉬로서의 활동 계획이 없다고 한다. 사실 마지막 투어인 2015년 투어 때도 라이프슨의 건선성 관절염과 피어트의 만성 건염 등 건강문제로 더 이상 투어는 못돌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도 당시에는 앨범 작업 정도는 기대해봐도 좋다고 했었는데.. 결국 2012년 Clockwork Angels가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3. 팬들이 러시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


사실 위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들이 주로 인용할만한 정보이고, 팬들이 러쉬에 보이는 가히 절대적인 충성심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실제로 러쉬가 신출내기 시절이었던 70년대, 모든 주류 매체(라디오, TV, 리뷰 잡지)로부터 동네북으로 줄기차게 까이던 러쉬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팬들이 매체의 악평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공연에 찾아오고 음반을 사주었기 때문이었으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식과 후손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러쉬를 전수해주는 등 단순히 팬의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따라서 이런 충성심이 나타날 수 있는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 공감이 가는 곡의 주제: 청자들이 곡을 듣고 "아... 이 건 내 얘기구나"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러쉬의 첫번째 히트 곡인 Working Man은 처음 클리블랜드 라디오 송출 당시 수많은 노동 계층 청자들이 전화를 걸어 "내 사정을 이렇게 잘 이해해주는 노래가 지금까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밴드냐, 레드 제플린 신보냐"고 문의할 정도였고[18], 2112는 정부에 의한 통제를 비판하는 내용, The Trees는 마치 인간의 정치상을 고발하는 듯한 내용, Subdivisions는 도시인의 애환을 부름과 더불어 당시 고등학교 왕따/Geek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노래로, Spirit of Radio는 라디오를 듣는 청자에게, Red Barchetta는 일단 들어본 모든 자동차 광들에게 어필하는 등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러쉬의 팬이 되는 첫 단계가 바로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찾아내는 것이라 회자되며, 실제로 많은 장년층(40~60대) 러쉬 팬들은 자신이 "처음 들은 러쉬 노래"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러쉬의 모습을 비유하여 "러쉬는 만인의 친구"라 이야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Subdivisions는 수준급으로 재창조되기도 하였다.
  • 곡이 전달하는 이야기: 러쉬의 또다른 별명 중 하나가 "이야기꾼"인 이유. 러쉬의 대곡은 전부 단편집처럼 문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며, 실제로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곡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개싸움 이야기인 By-Tor and the Snowdog, 아인 랜드의 소설 움츠린 아틀라스에서 소재를 따온 2112, 새뮤얼 쿨리지의 서사시 Kubla Khan[19]에서 영감을 얻은 Xanadu,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바라본 Cygnus X-1 Book 1: The Voyage, 전 앨범에서 내용이 이어지면서 두뇌의 좌/우뇌끼리의 싸움을 이야기하는 Cygnus X-1 Book 2: Hemispheres 등이 대표적.[20] 이러한 면을 좋아하는 팬들은 러쉬 팬들 중에서도 대곡과 1980년대 이전 작품을 가장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
  • 작곡 및 연주 실력: 밴드원 개개인의 연주 실력과 작곡 능력을 같은 음악가로써 높이 평가하는 부류이다. 록밴드의 구성은 사정상 다양하지만 3명이라는 인원은 사실 단독 라이브가 가능한 최소 인원으로 기타,베이스,드럼과 보컬을 셋이서 커버해야하는 빡빡한 작업이지만, 그 3명만으로도 전혀 빈틈이 없는 음악을 보여주는데다 개인의 기량까지도 뮤지션들이 인정하는 일류 뮤지션일만큼 뛰어나다. 실제로 러쉬의 라이브곡은 스튜디오곡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연주 능력이 뛰어나다. 밴드 구성원이나 악기(기타/드럼/베이스/키보드, 심지어 우쿨렐레까지.)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속한다. 닐과 게디는 각기 드럼과 베이스 분야에서 신처럼 추앙받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가려wu 보이는 알렉스 역시 수많은 잡지 커버 모델을 차지하고 웬만한 프로기타리스트들조차 정말 각잡고 연습하지 않으면 커버하는게 불가능한 난이도 높은 연주를 하기에 역시 존경받는다. 굳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러쉬의 공연에서 에어 드럼을 치는 이유가 바로 그 것.
이 점을 특히 강조하는 팬들은 연주곡이나 연주 난이도가 높은 곡을 찾아서 듣고 따라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La Villa Strangiato처럼[21] 러쉬 스스로도 처음에 한번에 연주하기 어려워했던 고난이도 곡들에 더욱 악착같이 달라붙기도 한다. 단순히 러쉬의 곡을 듣는 차원을 넘어서 직접 커버를 하거나, 아예 커버 밴드를 설립하여 본업으로 공연을 하는 경우까지 자주 볼 수 있다. 러쉬 커버 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참조.
이들은 데뷔 시절 때부터 캐나다의 레드 제플린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파였지만, 밴드의 성공으로인해 천문학전인 돈을 벌자 이들은 자신의 수입 대부분을 새 악기와 장비에 투자를 하였다고 한다. 이 때부터 닐 피어트의 드럼 세트는 점점 늘면서 어마무시해졌고 이에 질세라 게디 리는 베이스를 치면서 키보드까지 연주를 하게되었고 라이프슨은 다양한 기타를 구입하면서 그에 맞는 이펙터와 앰프를 구입하면서 다양한 톤과 리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날이 갈수록 러시란 밴드는 실력이 계속 느는 밴드가 되었다. 여담으로 이들이 실력이 늘면 늘수록 담당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들도 덩달아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전혀 해보지않은 빡센 곡의 믹싱과 앨범 작업을 하다보니 자연스러운 현상.
  • 밴드원의 성격: 오직, 같은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초심, 즉 음악성과 관객의 즐거움을 먼저 추구하는 자세를 50년간 지킨 덕분에 많은 존경을 받는다. 데뷔초 KISS의 오프닝밴드로 경험치를 쌓을때 러시 멤버들을 데리고 다녔던 KISS의 리더 진 시몬스는 "나 같이 못생긴 새끼도 공연하면 여자가 줄줄 붙었는데 러쉬는 그걸 일부러 피하고 다녔다. 그저 방 안에 있는 모습이 그리 신기할 수 없었다. 분명 게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지"라 회자하였고, 대대적으로 뜬 후에도 자만심이나 거만함을 보이는 일, 많은 음악가의 발목을 잡았던 약물이나 알콜중독등의 자기관리 실패가 전혀 없었다. 사실 이 이전의 공연에서 대기실에서 원하는 것잇으면 맘껏 주문하라는 에이전시 직원의 말에 따라 평상시에 궁금했던 독한 술들을 주문해서 공연전에 들이켰는데 제정신이 아닌 상태서 엄청나게 공연을 한 후 숙취에 쩔었다고 한다. 이후 평상시에 음주나 주색잡기는 철저하게 멀리했다고 하였다고 한다.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은 옛날부터 밴드 공연 이외에 어떻게 놀줄도 몰랐고 닐 피어트 역시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 자라서 흔한 락스타들의 놀이문화와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닐 피어트의 경우 투어를 가는 곳들은 대부분 대도시라 대형 서점들이 많아서 매우 좋았다고 한다.
가족 관계도 닐 피어트가 딸과 아내를 각각 사고와 병으로 떠나보냈던 사건을 제외하면 문제 없이 원만했던 편. 동료들간의 관계도 굉장히 원만한 편인데, 상기한데로 구성원들이 초심을 잘 지키고 있어서 물의를 일으킬만한 사고를 치지 않았기 때문에 팀 외적으로 인한 갈등요소가 굉장히 적었고,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사이가 굉장히 좋다. 구성원끼리 서로 갈등이 생겨 해체하거나 갈라지는 밴드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나름 대단하다. 장난끼 많은 게디와 알렉스에 비해 닐 피어트는 수줍고 진지한 성격이나 이는 팬들과 밴드원들 사이에서 서로 이해되고 있는 부분이며, 공연에서는 이를 빌미로 닐 피어트를 실실 쪼개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22]
러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남들이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목소리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그 외 위 네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편이다.
밴드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 높다보니 러시가 20대일때부터 러시 팬이엇던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록음악을 러시로 입문시키고 그 아이들도 친구들을 러시로 입문 시키다보니 팬들의 연령층은 세대를 가리지않게 되었다. Subsdivision 처럼 어릴 때 소외받고 자랏던 팬들이 보란듯이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되면서 더 많은 친구들과 가족들을 공연장에 같이 가면서 이는 날이 갈수록 밴드의 성공과 어마무시한 수입으로 연결이 되었다.

4. 구성원



4.1. 게디 리(Gedd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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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Gary Lee Weinrib(1953~)
이 밴드의 리더인 게디 리는 마귀할멈처럼 생긴 외모와는 달리 생각지도 않은 초고성을 들려주며 베이스를 연주하고 키보드/신디사이저를 다루는 등 현재도 락 음악계에서 멀티태스킹 하면 떠오르는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게디 리의 톡특한, "카운터테너"팔세토의 울림있다고 묘사되는 3옥타브 대 보컬은 밴드의 상징이었으며 [23]이는 밴드 커리어 초기에 잘 드러난다. 이후 나이가 들어가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지자 "wail"[24] 로 묘사되기도 했다. 베이스 연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파로, 빌리 시언이 가장 존경하는 베이시스트라는 말로 설명이 되겠다. 빌리시언 외에도 스티브 헤리스, 존 명, 레스 클레이플 등등의 베이시스트들 또한 게디 리의 영향을 받았다. 연주자로서의 특징은 높은 음역대의 강조와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연주, 그리고 베이스를 알렉스 라이프슨의 기타와 함께 사운드를 리드하는 악기로도 자주 사용했다는 점이다.[25]
어릴 때는 상당히 내성적이며 모든것에 의욕이 없는 무료한 시절을 보냈다고하는데 이는 본인이 살던 동네 자체가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설상가상 어릴때 일찍 아버지를 잃은 것도 한몫해서 인생이 덧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게리 리의 인생의 전환점이 온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누나가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였는데, 어느 한 구간을 어떻게 매꿔야할지 몰라서 끙끙대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누나가 없는 사이에 건반을 이것 저것 눌러보면서 멜로디를 완성을 시켰고 그것을 구경하던 어머니는 피아노 레슨 선생으로 부터 아들한테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때 만해도 단순한 립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애 처음으로 음악 LP를 샀는데 로이 오비슨의 Oh, Pretty Woman이었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한번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얼마 뒤 이웃집에서 통기타를 벼룩시장에 내놨는데 처음으로 게디 리는 어머니에게 통기타를 사달라고 하였고 한번도 뭔가를 조른적이 없던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감격해서 기타를 사주셧고 그 후에 음악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 후 친구들과 같이 밴드를 결성하고 그것이 러시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은 베이스지만 원래 기타였다. 베이스를 치기로 했던 친구가 부모님으로 부터 음악활동을 금지 먹으면서 결국 본인이 베이스를 하기로 하였는데, 그 이유는 베이스 연주자가 그리 별로 없었던지라 남들이 안하는 걸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도전하였다고 한다. 그의 현란한 베이스 연주는 원래 그가 기타리스트였던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즉 기타에서 하던 테크닉을 베이스에서 소화를 한 것. 처음엔 그 조용하던 아들이 밴드하면서 허구한 날 친구들과 집 지하실에서 하드록을 연주하다보니 어머니는 아들이 마약하는 줄 알아서 엄청 걱정하셨다고 한다(...)
베이스는 60년대는 펜더 프레시전 베이스를, 70년대는 리켄배커4001을 썼고 이후에는 1998년에 팬더사에서 시그니처 모델로 나온 재즈베이스를 애용하고 있다.
그외 키보드/신디사이저로는 70년대후반~80년대초에 Minimoog[26], Moog Taurus[27], 오버하임 OB1[28]/8 Voice[29]/OB-8[30]/OB-X[31]를 사용했고, 80년대 신디사이저 실험시기에는 이외에 오버하임 OB-Xa[32]Roland Jupiter-8[33], PPG Wave 2.2[34]/2.3[35], 야마하 DX-7, Roland D-50[36], SCI Prophet VS[37], 야마하 KX76[38], 롤랜드 TR808[39], 오버하임 DSX 시퀀서[40], 야마하 QX1 시퀀서[41], 아카이 S900 샘플러[42]등을 사용했다. 90년대에는 이중에 Taurus, KX76, D50만 사용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엔 Taurus, DX7,롤랜드 XV-5080, D50 이렇게 잠시 사용하다가, R30땐 DX7에서 다시 KX76으로 바꿨다. 이후부턴 Taurus와 Moog Little Phatty, 그리고 롤랜드 Fantom X7를 계속 사용했었다.
이 이외에 개인적으로 수집한 베이스가 회사별로 여러개인데 넉넉잡아도 120개 정도된다고 한다. 그래서 러시 활동 중단 후 50년 가까이 본인이 수집하고 사용한 베이스들을 정리해서 그 베이스들의 성능과 특징에 대해 정리한 책을 집필하였다. 제목은 "Geddy Lee's Big Beautiful Book of Bass"이다.
일단 검소해보이지만 슈퍼 락밴드이다보니 벌어들인 돈도 어마무시한데, 대부분이 개인적 예술활동, 와인 취미, 그리고 악기 수집을 한다고 한다. 특히 와인이 만들어진 지역의 역사를 배우고 마신다거나, 아니면 새로 산 베이스의 모델 개발 목적과 애용한 뮤지션들의 이유 등 이런것을 알아가는걸 좋아한다고 한다. 새 악기 뿐만 아니라 중고를 구입하였을 때 중고의 상태를 보면서 옛 주인이 어떤식으로 이 악기를 사용했는지 상상해본다고 한다.

4.2.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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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Alexandar Živojinović(1953~)
알렉스 라이프슨은 남들이 생각하지도 않을 코드를 곡에 실제로 활용하는 실험적이면서 장난기 있는 면을 보여준다. 연주 스타일이 극히 현학적이라, 기타의 문외한들이 보기엔 뭐가 잘 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경우도 있다.[43]
현재까지 사용한 기타의 수가 꽤나 많다. Les PaulES-335, 그리고 더블넥 SG(EDS-1275) 등의 깁슨 기타는 물론이요, PRS 사의 기타도 몇 대 소유 및 연주 하였으며, 작곡할 때 많이 쓰는 Telecaster와 <Limelight>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Stratocaster까지 꽤나 많은 기타로 탁월한 연주를 선보였다.
음악 외적인 면에서는 러시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멤버이기도 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연설에서는 "블라(Blah)!" 한 마디로 2분 30초동안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은퇴후에는 사진가로 예술 활동을 한다고 한다. 게디 리의 아내가 개인 갤러리를 소유중이라 거기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고한다.

4.3. 닐 피어트(Neil P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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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Neil Ellwood Peart(1952~2020)
닐 피어트는 보통 드러머의 3배 규모의 드럼키트를 자유자재로 다루고,[44] 통상적인 드럼키트에 다양한 악기들을 추가해서 다채로운 소리를 만들어 갔다.[45]
초기에 키스 문에게 영향을 받은 닐 피어트는 이후 60~70년대의 드러머 진저 베이커, 카마인 어피스, 존 본햄에게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스타일을 흡수했다. 드러머로서는 존 본햄, 코지 파웰등에 가려지는 감도 있지만, 연주자 출산들은 닐 피어트가 저들을 능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디테일한 테크닉 면에서는 확실히 저들을 능가하는 듯. 디지털 드림 도어에서 선정한 위대한 록 드러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닐 피어트는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항상 겸손을 잃치 않은 드러머로 손꼽힌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테크닉을 배가하기 위해 기존에 잡았던 매치드 그립에서 재즈 드러머들이 잡는 레귤러 그립으로 잡을 때 처음부터 다시 드럼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기본 스트로크부터 연습했다고 한다.
개인 인터뷰에선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활발해보이지만 많은 앞에선 상당히 낮을 가린다. 어릴적 하체 관절이 안좋아서 다른 캐나다인 아이처럼 하키같은것도 못하고 자라서 어느 그룹에도 잘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어울릴 목적으로 드럼을 시작한 것이었는데, 문제는 본인의 독서 취미 때문에 계속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낮을 가린다. 이런 성격 때문에 닐 피어트가 미국에 먼저가있던 러시의 새 드러머 오디션을 보러갈 때 많이 걱정을 하였다고한다. 그래서 앨범 사진 같은데선 많이 웃고잇지만 공연장에선 늘 무표정이다. 밴드 멤버들과는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지만 그렇게 같이 어울려다니진 않은 듯하다. 러시 인터뷰때도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은 참여햇지만 늘 혼자만 빠져있을 때가 많고, 제일 극단적일 땐 다른 멤버들은 전용기를 타고 이동할 때 본인만 바이크를 타고 이동을 한다.
가정사도 매우 안타까운데, 1996년 외동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아내마져도 병사하였다. 이 때 엄청난 충격을 받은 닐 피어트는 이를 극복하는데만 거의 6-7년이 걸렸고, 나머지 멤버들은 개인 활동은 하였지만 닐 피어트가 돌아 올 때까지 러시로서 그 어느 활동도 하지않았다.
장비의 측면에서는 초기에는 Slingerland 사의 드럼과 Zildjian 심벌을 썼고, 1979년부터 1985년 즈음까지는 Tama 사의 드럼을 썼으며, 1987년부터 1995년 즈음까지는 Ludwig 드럼을 썼다. 이후 1996년부터는 DW 사의 드럼을 썼으며, 2004년부터는 Zildjian 심벌이 아닌, Sabian의 심벌을 사용하였다.
현지시각 2020년 1월 7일, 안타깝게도 피어트가 교모세포종으로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5. 디스코그래피



5.1. 밴드 결성


1집: '''Rush''' (1974) - 대표곡: In The Mood, '''Working Man'''
1집 뮤직 비디오: In The Mood

5.2. 프로그레시브 실험 시기[46]


2집: '''Fly By Night''' (1975) - 대표곡: Anthem, Fly By Night, By-Tor and the Snowdog[47]
2집 뮤직 비디오: Anthem, Fly By Night
3집: '''Carass of Steel''' (1975) - 대표곡: Bastille Day, The Necromancer, The Fountain of Lameneth

5.3. 프로그레시브 중흥 시기


4집: '''2112''' (1976) - 대표곡: '''2112''', A Passage to Bangkok, The Twilight Zone
4집 라이브: All the World's a Stage (1976)

5집: '''Farewell To Kings''' (1977) - 대표곡: A Farewell To Kings, '''Xanadu''', '''Closer to the Heart''', '''Cygnus X-1 Book I: The Voyage'''.
5집 뮤직 비디오: A Farewell To Kings, Xanadu, Closer To The Heart
6집: '''Hemispheres''' (1978) - 대표곡: '''Cygnus X-1 Book II: Hemispheres''', Circumstances, '''The Trees''', '''La Villa Strangiato'''. 앨범 전체.
6집 뮤직 비디오: Circumstances, The Trees

5.4. 실험 완성 시기


7집: '''Permanent Waves''' (1980) - 대표곡: '''The Spirit of Radio''', '''Freewill''', Jacob's Ladder, Entre Nous, Natural Science
8집: '''Moving Pictures''' (1981) - 대표곡: '''Tom Sawyer'''[48], Red Barchetta, '''YYZ'''[49](연주곡), '''Limelight''', The Camera Eye, Witch Hunt, Vital Signs.
8집 뮤직 비디오: Tom Sawyer, Limelight, Vital Signs
8집 라이브: Exit...Stage Left (1981) (유튜브 채널 참고)

5.5. 신디사이저 실험 시기


멤버들과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던 시기였다. 심지어 알렉스 라이프슨 조차 신디사이저의 도입에 반대를 했엇는데 이 당시만해도 기타 중심의 록 팬들은 신디사이저나 이를 자동으로 재생하는 시퀀서는 가짜 악기라는 인식이 상당히 강했다. 적어도 딥 퍼플의 존 로드처럼 해몬드 오르간이라면 모를까 희한한 전자소리를 내는 신디사이저 사운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 이외에 신디사이저 때문에 기타의 역할을 가져갔다는 생각 때문에 더 반발이 심했다한다.
9집: '''Signals''' (1982) - 대표곡: '''Subdivisions'''[50], The Analog Kid, Chemistry, Digital Man, The Weapon, New World Man, Losing It, Countdown.
9집 뮤직 비디오: Subdivisions, Countdown
10집: '''Grace Under Pressure''' (1984) - 대표곡: Distant Early Warning, Afterimage, Red Sector A, The Enemy Within, Behind the Wheels
10집 뮤직 비디오: Distant Early Morning, Afterimage, The Enemy Within, The Body Electric
10집 라이브: Grace Under Pressure Tour (1984) (유튜브 채널 참고)
11집: '''Power Windows''' (1985) - 대표곡: The Big Money, '''Manhattan Project''', Marathon, Territories, Middletown Dreams, Mystic Rhythms
11집 뮤직 비디오: The Big Money, Mystic Rhythms
12집: '''Hold Your Fire''' (1987) - 대표곡: '''Force Ten'''[51], '''Time Stand Still''', Prime Mover, Lock and Key, '''Mission'''.
12집 뮤직 비디오: Time Stand Still, Lock and Key
12집 라이브: A Show of Hands (유튜브 채널 참고)

5.6. 기타 강조 시기


신디사이저 실험 시기 때 자신의 역할이 뒤로 물려났다고 계속 느낀 닐 피어트가 자신이 다시 사운드의 메인이 되고 싶다해서 다시 기타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본인의 바램과 달리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하는데, 러시의 실력과 인기 때문에 많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을 라이프슨에게 자꾸 요구를 하였기 때문에 앨범 작업시 많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라이프슨 역시 게디 리 처럼 다양한 페달이나 이펙터를 사용해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프로듀서들은 그가 그런 부가적인 도구를 쓰지않고 단순한 이펙트만 사용한 연주를 요구했다고 한다.
13집: '''Presto''' (1989) - 대표곡: Show Don't Tell, Chain Lightning, The Pass, Scars, Superconductor, Hand Over Fist
13집 뮤직 비디오: Show Don't Tell, The Pass, Superconductor
14집: '''Roll The Bones''' (1991) - 대표곡: '''Dreamline''', Roll the Bones, Where's My Thing?, Ghost of a Chance
14집 뮤직 비디오: Roll The Bones
15집: '''Counterparts''' (1993) - 대표곡: Animate, Stick It Out, Nobody's Hero, Leave that Thing Alone(연주곡), Cold Fire
15집 뮤직 비디오: Stick It Out, Nobody's Hero
16집: '''Test For Echo''' (1996) - 대표곡: '''Test For Echo''', Driven, Half the World, Virtuality, Resist[52], Limbo(연주곡)
16집 뮤직 비디오: Driven, Half The World

5.7. 공백 이후 부활 시기


1996년 말, 닐 피어트가 딸을 차 사고로 잃엇고 아내 역시 병으로 사망하여서 안그래도 감수성이 예민한 닐 피어트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왔었다. 모든 관계자들은 밴드가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17집: '''Vapor Trails''' (2002) - 대표곡: One Little Victory, Ghost Rider[53], Secret Touch, '''Earthshine''', Freeze
17집 라이브: '''Rush In Rio''' (2002).[54]
18집: '''Snakes And Arrows''' (2007) - 대표곡: Far Cry, The Larger Bowl(A Pathoum), Spindrift, The Main Monkey Business, '''Hope'''(연주곡), '''Malignant Narcissism'''(연주곡).
18집 뮤직 비디오: Far Cry, Malignant Narcissism
19집: '''Clockwork Angels''' (2012)[55] - 대표곡: Clockwork Angels, Headlong Flight

6. 기타


[image]
  • 러쉬 멤버들은 소문난 야빠들이다. 게디와 알렉스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홈인 애너하임 스타디움에서 배팅볼을 쳐보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야구계에서 자주 초대 받기도 했다.[56] 특히 게디 리는 야구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서, 자신의 재산을 털어 야구단 구단주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실제로도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저스 센터 홈 경기 때 가끔 백넷 뒤 관중석(야구 중계시 투수-타자의 대결 때문에 노출빈도가 가장 높은 자리)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게디는 자신이 수집한 니그로 리그(Negro League) 선수들의 사인볼 200여 개를 니그로 리그 박물관에 기증하기까지 했다고.MLB 공홈 출처
  • 너바나의 드러머이자, 푸 파이터스의 리더인 데이브 그롤이 상당히 존경하는 밴드인데,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서 사회를 담당하면서 어릴적 러쉬를 입문했던 썰을 풀었엇다. 처음에 2112 앨범을 친구의 추천으로 듣게되면서 이 말도 안되는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 이들 LP앨범 뒷면을 보는데 다큰 어른 3명이 흰색 기모노 같은 복장을 입고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고한다(...)
  • 뭔가 이미지가 안맞을 것 같지만 록 밴드 KISS와는 매우 깊은 인연이 있다. 밴드 초창기 때는 당연히 신인 밴드가 단독 콘서트를 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 각종 락 페스티벌이나 다른 밴드들의 공연의 오프닝 밴드 섭외를 기다리면서 몇 달 동안 여러 주를 돌아다니면서 힘든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KISS의 리더인 진 시몬스가 러시의 앨범을 듣게되엇고 "얘들 무슨 캐나다의 레드 제플린이냐?"라면서 요 근래에 본 신인들 중에 정말 최고라고 평했다. 러시가 제대로 된 스케쥴 없이 생계형 밴드로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듣자 당장 섭외해서 자신네들 투어에 한동안 대리고 다녔다고 최소 50-60번의 공연의 오프닝을 담당햇다고 한다. 이당시의 KISS의 위세는 대단하였고 공연하는 즉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정도의 슈퍼 락스타였다. 이로서 러시는 이런 대선배들의 후원하에 고급 호텔에 지내면서 숙식을 하게되었고, 오프닝 밴드에 대한 개런티와 대형 무대에서의 공연 경험을 쌓게 된다.[57]
  • 2016년 토론토 출신인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을 기념하는 리-라이프슨 아트 파크가 개장됐다.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닐 피어트가 합류하여 밴드의 성향이 본격적으로 바뀐 시기다.[3] Officer of the Order of Canada. 캐나다의 국익을 신장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훈장. 음악가로서 최초로 받은 명예이다[4] 본명은 알렉산다르 지보이노비치(Aleksandar Živojinović). 성을 직역하면 삶의 아들(Son of Life), 즉 Lifeson이 된다.[5] '''닐 퍼트'''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닐 피어트'''로 발음한다.[6] 21세기 들어서의 대표곡은 에디 코크런의 로큰롤 고전을 리메이크한 Summertime Blues(러시의 버전의 경우 더 후와 블루치어의 리메이크 곡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이 곡은 2004년 WWE 썸머슬램 주제곡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리고 유튜브에 이들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 노래 등이 올라오면서 젊은 세대에게 재발견되어 음반 매장에 재고로 있던 쌍팔년도 러쉬 음반이 다시 팔리기도 하였다.[7] 라피프슨은 피킹이 힘들 정도였다고 하고, 피어트는 그전부터 서너시간의 공연에서 드럼을 꾸준하게 치는 것이 힘들정도로 금방 지쳐버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라이브 때 최고의 컨디션으로 공연을 못보여준다는 죄책감에 차라리 탈퇴를 할테니 새 멤버를 기용하라고도 하였지만, 게디 리는 새 멤버들보단 형제 같은 오랜 친구들과 같이 하고싶었기 때문에 힘든 결정이지만 러시의 활동을 끝내자고 하였다.[8] 실력이 좋은 드러머였으나 원래 몸이 안좋았던데다가 음주에 대한 절제가 없어서 당시 소속사에선 존 룻세이 때문에 밴드가 망할지도 모르고, 개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밴드를 그만두게끔 설득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존 룻세이는 본인 건강에 대한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바디빌더가 되었고 그 후 토론토에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살다가 2008년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9] 처음엔 멤버들 전원 다 엄청난 실력파였기 때문에 소위 BADASS 타입의 밴드에 퀄리티 높은 하드록 앨범을 만들길 원했지만, 닐 피어트의 문학적 지식과 음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취향 덕분에 이런 실험적 앨범을 냈었다. 밴드에서 게디와 알렉스는 원래 친구였지만 닐 피어트는 자신이 원년 멤버를 쫓아내고 밴드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계속 스스로 소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게디와 알렉스는 이런 닐 피어트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작사나 작곡 등 앨범작업에 대한 참여도를 높였다.[10] 게디의 인터뷰에선 닐 피어트 처럼 그렇게 시적인 사람은 처음봤고 처음에 닐 피어트가 쓴 가사를 봤을 때 처음 보는 단어들을 보고 상당히 감탄을 하였으며 이것으로 차별성을 두어야겠다고 한다.[11] 비슷한 예시로 퀸도 프레디 머큐리 생전까지 줄기차게 평론가들한테 까이고 까였다. 러시가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똑똑한척한다고 까였지만, 퀸은 대학물 먹은 애들이 똑똑한거 보여주려고한다고 까였다...[12] 메슈가의 드러머 토마스 하케는 이런 점에서 닐 피어트의 판박이.[13] 이런 점에서 아이언 메이든(밴드)의 팬들과 공유층을 서로 이루고 있는데, 두 밴드 모두 서사적이고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강한 점이나 베이스의 테크니컬한 요소가 상당히 튄다는 점이 비슷해 러쉬팬들이 아이언 메이든(밴드)의 팬을 겸임하는 경우도 많다[14] 메탈리카나 드림 씨어터처럼 드러머가 밴드 리더가 혹은 중심멤버가 아닌 이상은 작곡은 커녕 작사쪽엔 손도 못댄다. 이런 상황에 드러머인 닐 피어트가 작사를 담당하는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 이 때문에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인 테일러 호킨스인 명예의 전당에서 대체 어떤 미친 밴드가 드러머한테 가사를 쓰게하냐고 드립을 쳤다. 밴드라는 그룹에서 드러머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15] 드림씨어터의 1, 2집 홍보문구가 'Rush가 Metallica를 만났다'이다. Rush의 홍보문구였던 '킹 크림슨+예스+레드 제플린'의 오마쥬.[16] 사실 자신들도 밝히듯 멤버 대부분이 러시의 광팬이며, 애초에 드림 시어터의 전신인 머제스티(Majesty)는 러시의 곡들을 커버하는 밴드였다.[17] 특히, 드림 씨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는 2집 Images and Words까지 닐 피어트의 시그니처 드럼셋을 그대로 사용했을 정도로 러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18] 게디의 부모님이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피해자로 종전 후 캐나다로 온 유대인-폴란드계 이민자, 알렉스의 부모님은 세르비아계 이민자로, 노동 계층으로서 힘겹게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19]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이 수도로 지은 도시 상도(上都)에 대한 환상을 노래함.[20] 아예 두 편을 합쳐서 Cygnus X-1 Duology(2연작)이라 하여 28분짜리 대곡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21] 주로 닐 피어트의 드럼. 각종 매체나 유튜브에서 가장 드럼이 어려운 곡을 꼽으라면 이 곡이 항상 top 3에 들어간다.[22] 닐 앞에서 기타/베이스를 치는데 방방 뛰어다닌다거나, 닐 피어트의 액션 피겨를 세운 후에 "얘가 진짜보다 좋은 이유는... 스위치가 있어서 끌 수 있기 때문이죠"라 한다거나, 베이스 앰프 자리에 세탁기와 자판기, 닭고기를 굽는 진짜 요리사를 둔다거나, 미디 페달에 바비 인형을 꽂는다거나. 닐도 이걸 보고 안쓰러웠던 나머지 이렇게 대꾸해주기도 한다.[23] 때로는 비판의 초첨이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 초창기 때 락 페스티벌이나 오프닝 밴드에서 공연할 당시 공연장에 있던 에이전시 직원들이나 다른 밴드들은 게디 리가 특정 포인트에서 고음을 내는것이 아닌 노래하는 내내 하이톤을 유지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점을 엄청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 목소리 낼려면 공연전에 약을 거하게 빨거나 아니면 술을 좀 마신 상태여야했다고(...)[24] 울부짖다, 흐느끼다, (길고 높은) 소리를 내다 [25] 러시의 음악들을 쭉 들어보면 베이스음이 단순히 기타 코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기타와 차별된 멜로디로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26] 전성기 시절 러쉬음악의 키보드 솔로에 중심역할을 했던 신디사이저. A Farewell to Kings Tour때부터 Grace Under Pressure Tour때까지 사용됐다.[27] 페달 신디사이저로 러쉬음악에서 주로 베이스연주중 신디사이저가 필요할때 많이 쓰였다. A Farewell to Kings Tour부터 투어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28] Permanent Waves, Moving Pictures Tour때 사용.[29] 특히 80년대 초반에는 이 오버하임 Voice와 Minimoog를 엘렉톤처럼 개조(?)한 악기를 사용했었다. Tom Sawyer/Limelight 뮤비에서 확인할수 있다. Hemispheres Tour때부터 사용됐다. [30] Moving Pictures, Signals Tour까지 사용됐다.[31] Subdivisions에서 사용된 그 악기다. Moving Pictures, Signals Tour에서 사용됐다.[32] Signals, Grace Under Pressure Tour때 사용.[33] Red Sector A에서 사용. Signals Tour부터 Power Windows Tour때 까지 사용.[34] Distant Early Warning에서 사용됨. Grace Under Pressure Tour때 사용.[35] The Big Money, Marathon등에서 사용. Power Windows, Hold Your Fire Tour때 사용됐다.[36] Lock And Key, Mission등에서 사용. Hold Your Fire Tour부터 사용.[37] Hold Your Fire Tour에서 Minimoog대신 사용됨.[38] 마스터건반. Power Windows Tour부터 사용했다. 초기에는 E-MU 에뮬레이터2나 DX-7에 연결해서 사용했고, Hold Your Fire Tour때는 D50의 모듈러인 D-550을 연결해서 사용했다고 한다.[39] Signals, Grace Under Pressure Tour때 사용[40] Signals, Grace Under Pressure Tour때 사용[41] Power Windows, Hold Your Fire Tour때 사용됐다.[42] Hold Your Fire Tour때 사용됐다.[43] 프로듀서들이 꼭 같이 일해보고 싶은 기타리스트 중 한명인데, 그 이유는 그 특유의 실험적인 면과 실력 때문에 자기네들이 생각했던 음색을 알렉스를 통해서 구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알렉스는 역정을내면서 그 의견을 씹엇다고 한다.[44] 전면에 어쿠스틱 드럼이 있고, 후방에 전자드럼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규모가 무서울 정도로 크다...[45] 처음부터 규모가 컷던 것은 아니고, 밴드가 2112 앨범이후 흥행가도를 계속하면서 에이전시나 밴드 멤버들 역시 큰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이것 저것 추가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닐 피어트가 장비를 추가하는 동시에 게디 리도 신디사이저를 도입하면서 사운드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 덩달아 알렉스로 기타를 더 변태급으로 어렵게 연주하기 시작.[46] 닐 피어트가 합류하여 밴드의 성향이 본격적으로 바뀐 시기다.[47] 러쉬가 최초로 지은 7분 이상의 대곡. 이후 러쉬의 모든 대곡과 이어지는 최초의 실험이다. 당시 레코드 관계자들을 굉장히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48] 별명은 "캐나다의 진짜 국가".[49]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의 공항 코드다. 곡의 처음 시작 부분이 바로 YYZ를 모르스 부호로 옮긴 - . - - - . - - - - . .를 표현한 것이다. 오오 애향심! 오오[50] 위에서도 설명이 되었지만, 도시 구조와 사회에서 그룹 모임에 끼지 못하는 외톨이들에 대한 노래로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공감이 가는 노래. 허약한 체질 때문에 외톨이로 자랐던 닐 피어트의 경험에서 작사되었다[51] 신디사이저 실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인정해주는 명곡. 아예 베이스가 곡의 주역이기 때문이다.[52] 오랫만에 어쿠스틱 기타를 넣었다.[53] 닐 피어트가 딸을 사고로, 그리고 10달 후 아내를 병으로 잃은 후, 죽음을 각오하고 북미 대륙의 도로 8만km를 오토바이로 질주한 경험을 담은 노래. 96년 이후 새 정규 앨범이 발매되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린 이유가 바로 피어트가 가족을 잃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피어트는 이 경험을 토대로 같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하였다. 리오 라이브에서 피어트의 연주 장면을 보면 평소 진지했던 모습이 더욱 진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54] 북미/유럽 러쉬 팬들이 "우린 지금까지 너무 썰렁했나" 하고 반성하게 만들 정도로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밴드 창설 28년만에 처음으로 브라질에 왔고, 음악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국민성이 합쳐졌다. 아이언 메이든의 Rock In Rio 라이브와 더불어 강력히 추천받는 라이브 DVD이다.[55] 앨범 커버의 시계가 9시 12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4집 앨범/타이틀 곡의 제목인 2112를 21시 12분으로 표현했다.[56] 대표적으로 게디는 1993년 올스타전에 캐나다 국가 독창자로 초청됐었다.[57]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상당수의 소규모 관객의 무대에서 오는 압박과 수백 수천명의 관객이 있는 무대에서 오는 압박감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KISS의 단독 라이브 공연만 봐도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잇다. 러시는 이런 귀중한 경험을 신인 때부터 다져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