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로프 자동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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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Автомат Фёдорова
Avtomat Fyodorova
표도로프 자동소총
러시아 제국에서 개발한 자동소총. 개발자는 블라디미르 그리고레비치 표도로프(1874~1966)로 '자동화기 독본'[1] 이라는 서적을 집필하기도 했다. 회고록에선 1915년 프랑스에서 관전 장교로 근무할 때, 특유의 생산성으로 흔했던 쇼샤 기관총이 보여주는 화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무게에 대해선 영 탐탁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경기관총과 제식 소총의 중간 정도의 화력과, 제식 소총과 비슷한 기동력을 가진 화기를 생각해 낸 것이 개발 계기.[2]
표도로프는 처음엔 Ручное ружьё-пулемёт(Handheld light-machine-gun), 즉 휴대형 경기관총으로 분류하려 했지만, 상관인 필라토프가 훨씬 더 간단한 단어인 автомат(automatic) 을 제시해 주자 그걸 받아들였다.
사용 탄으로 6.5×50mmSR 아리사카를 사용하는데, 이는 초기 계획상으로는 림드 탄약이라 자동화기에 부적합하고 위력이 지나치게 강한 7.62×54mmR을 대신하여 6.5×51mm 규격의 신형탄을 새로 개발해 사용할 예정었으나 1차대전기 러시아 제국의 공업능력이 좋지 못해 총포류 및 탄약을 외국에서 대거 수입하던 상황이었던지라,[3] 예산 절감을 위해 본래 설계에 상정되어 있던 신형탄과 규격이 비슷한, 썩어 넘쳐나던 일본의 아리사카 소총에 사용되던 탄을 재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반동이 살짝 줄었다고.
당시 러시아의 사정으로는 비싼 탄창을 대량생산하여 보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탈착식 25발 탄창임에도 사실상 내부탄창처럼 운용해야 했다. 총 하나당 하나의 탄창만 지급되었으며, 재장전을 할 때는 새 탄창을 끼우는 것이 아니라 38식 소총용 5발 클립 5개를 이용해 탄창에 탄약을 장전해야 했다.
6.5mm를 자동으로 쏴댔기에 화력도 쓸만한, 꽤 괜찮은 물건이었으나, 대전 말기에다 제정 러시아의 열악한 공업력과 늦은 생산, 악화된 전황으로 인해 100정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했다.[4] 기존 생산분은 붉은 군대에게 접수되어 러시아 내전에서 활용되었고 실전에서 얻은 좋은 평가를 바탕으로 소련 성립 후 양산을 결정,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추가로 3000정 가량이 생산되었으나... 여타 소총과 탄약 호환이 안 되는 문제로 양산 및 운용을 포기하였고[5] 이미 생산된 재고들은 일괄 회수되어 예비물자로 창고에 보관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겨울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당시 소량이 창고에서 꺼내져 사용되었다. 참고로 겨울전쟁 당시 '''3분의 1이 핀란드군에게 노획당하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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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시절에 본격적인 경기관총으로의 활용을 염두에 두고 루이스 경기관총의 냉각 키트와 양각대를 붙이는 등의 개조를 한 시험 모델을 제작한 예도 있다. 아예 수랭식 경기관총으로 개조한 시험 모델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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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전차에 앉아 있는 소련군이 들고 있는 사진 등을 보면 제2차 세계 대전 초중반기에도 많이 사용한 듯 하다. 모스크바 전투 당시 모스크바 인민의용대 관련 문서에 따르면, 정규군에게 지급될 총기가 전부 소진될 경우를 대비해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구식 무기들에 대한 조사 기록이 나오는데 이 총기도 등장한다.
2. 구조
Forgotten Weapons의 분해 영상. 상당히 오래된 영상이라 해상도가 떨어지는데, 맨 위의 영상도 13분경부터 분해해서 내부구조를 잘 보여주니 참고하면 좋다.
오늘날 자동화기라 하면 거의 대부분이 사용하는 오픈볼트나 롤러로킹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전후 왕복운동을 하는 노리쇠 양쪽에 달린 캠 조각 두 개가 상하로 움직이며 노리쇠를 폐쇄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방식은 당시 다른 자동화기들에 비해 부품 수를 상당히 줄이는 데에 기여했고, 신뢰성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1910년대 물건임을 생각하면 상당한 성과. 그러나 당시 가장 흔했던 볼트액션식 소총에 비하면 역시 제조가 까다롭고 복잡했으며, 프레스 기술 또한 대량 적용되지 못해 거의 모든 부품이 기계와 손으로 절삭되어야 했고, 수공으로 조립되었기 때문에 다른 총의 부품을 가져다 쓰면 신뢰도가 급락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1950년 초 미군의 분석에선 대량생산에 어려운 구조를 가진데다 급속한 과열 문제를 일으켰을 거라 생각했고, 러시아 측 시험 결과에서도 300발 정도를 지속사격하면 과열로 인해 작동불능이 되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100발쯤 쏘면 그을음이 일어나는 모신나강보단 발전한 물건이라고 평했다. 시대를 고려하면 실전에서도 쓰였고 그렇게 완성도가 부족한 물건은 아니었다.
3.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3.1. 게임
- 배틀필드 1 - 의무병 1순위 무장, 'In The Name of Tsar' 러시아 제국 DLC에서 의무병의 주무기로 등장하며 25+1(약실)발들이 탄창과 자동사격 기능에 연사력이 빠르고 명중률도 준수한 전작들의 돌격소총 같은 느낌의 무장이다. 대부분 반자동 소총이 주무장이었던 의무병 병과 중에서도 자동사격을 지원해주는 몇 안되는 총인데다, 해금 조건도 어렵지 않은 편. 수랭식 총열이 달린 모델인 Fedorov-Degtyarev도 출시됐으며, 배틀필드 V 예약구매 시 얻을 수 있다.
- 콜 오브 듀티: WWII - 업데이트로 추가되었다.
-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 - 돌격소총 사용 가능 실험체의 시작 무기가 '페도로프 자동소총'이다.
3.2. 드라마
미국 드라마 Covert Affairs 시즌 5에 등장했다. SVT-40을 기반으로 제작한 레플리카.
4. 둘러보기
[1] 여담으로 이 책은 후에 AK-47 개발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2] 이는 현대의 돌격소총의 개념과 유사한 면이 있고,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총을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위력이 좀 약하다고는 해도 기존의 소총탄을 쓴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돌격소총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무기이고, 운용상으로도 돌격소총과 같은 개인화기의 개념이 아니라 지원화기인 기관총의 개념에 가깝게 운용되어 사수와 부사수가 한 조가 되어 2인 1조로 운용하였다. 부사수는 다량의 탄약을 휴대하면서 동시에 재장전 시에 사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3] 자국산 소총인 모신나강의 보급이 이미 1891년부터 시작되기는 했지만 외국 업체에 외주까지 맡겼는데도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지 못해서 후방에는 그 이전 세대 소총인 버든 소총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차대전 중 제정 러시아는 탄약 호환 문제마저 무릅쓰고 외국 소총을 대거 원조받았다.[4] 그나마 초도 생산분 중 일부가 시험적으로 배치되어 운용 평가를 치른 후 케렌스키 공세에 투입되었지만 이 총을 지급받았던 부대가 공세 과정에서 궤멸되어 실전 운용에 관련된 보고서를 남길 수 없게 되었고, 본래 2만 5천 정이었던 발주 수량도 5000정으로 축소된 뒤 혁명으로 인해 생산이 중지되고 말았다.[5] 1차대전 및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러시아에는 다량의 외국제 총기가 유입되었는데, 소련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소련 정부는 이들 총기로 인해 혼란이 심했던 탄약 보급을 통일할 목적으로 자국 탄약을 사용할 수 없는 외국제 총기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표도로프 자동소총 역시 정리 대상이 되었다.[6]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동화기=기관총이라는 개념이었고 또 정비 교육도 제대로 안 시켜서 징집병들이 총알과 함께 버린 것을 핀란드군이 주워다가 잘 썼다고 한다.[7] 이 부분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1925년 이후 이 총은 완전히 예비물자로 돌려졌고, 뒷날 겨울전쟁 때 재도입되기 전까지는 예비물자로만 비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