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사카

 

'''아리사카'''
''Arisaka''
有坂
[image]
아리사카 계열의 파생형 모음. 맨 위에서부터 30년식 소총, 38식 소총, 38식 기병총, 44식 기병총, 이식 소총, 99식 단소총 중기형, 후기형.
제원
'''종류'''
볼트액션 소총
'''국가'''
일본 제국
'''사용 역사'''
'''사용 년도'''
1897년~1945년
'''사용 국가'''
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
핀란드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만주국
소비에트 연방
에스토니아
영국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 북한
베트남 민주 공화국
이스라엘
아랍연맹
'''사용된 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에스토니아 독립전쟁
적백내전 / 핀란드 내전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
-겨울전쟁
- 중일전쟁 / 태평양 전쟁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국공내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제1차 중동전쟁
'''생산 및 제조 역사'''
'''개발'''
아리사카 나리아키라
남부 키지로[26]
'''개발 년도'''
1897년
'''생산 년도'''
1897년~1945년
'''생산 수'''
'''30식'''
554,000정
'''30식 기병총'''
45,000정
'''38식'''
3,400,000정
'''44식'''
90,000여정
'''99식'''
2,500,000정
'''파생형'''
38식 소총
30식 기병총 / 44식 기병총
97식 저격총
99식 장소총 / 99식 단소총[27]
99식 저격총
'''제원'''
'''구경'''
'''30/38/44식'''
6.5mm
'''99식'''
7.7mm
'''탄약'''
'''30/38/44식'''
6.5x50mmSR
'''99식'''
7.7x58mm
'''급탄'''
5발 내부탄창
'''작동 방식'''
볼트액션
'''중량'''
'''30식'''
3.95kg
'''38식'''
4.19kg
'''44식'''
3.3kg
'''99식 장소총'''
4.1kg
'''99식 단소총'''
3.8kg
'''전장'''
'''30식'''
1,280mm
'''30식 기병총'''
980mm
'''38식'''
1,275mm
'''44식'''
966mm
'''99식 장소총'''
1,258mm
'''99식 단소총'''
1,118mm
'''총열 길이'''
'''30식'''
790mm
'''30식 기병총'''
480mm
'''38식'''
800mm
'''44식'''
487mm
'''99식 장소총'''
797mm
'''99식 단소총'''
657mm
'''탄속'''
'''30식'''
765m/s
'''38식'''
762m/s
'''44식'''
761m/s
'''99식 장소총'''
740m/s
'''99식 단소총'''
730m/s
'''유효사거리'''
'''38식'''
366~457m
'''44식'''
366m
'''99식'''
500m
'''최대사거리'''
'''38식'''
2,377m
'''44식'''
2,011m
}}}#4682B4 '''99식'''}}}
3,400m

1. 개요
2. 상세
3. 문제점
4. 오해와 왜곡
5. 파생형
6. 기타
7. 매체에서의 등장
8. 에어소프트건


1. 개요



러일전쟁 무렵 도입되어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줄기차게 써먹은 일본군의 주력 볼트액션 소총 시리즈.
당시 육군 포병 공창에 소속된 아리사카 나리아키라(有坂成章)가 개발해서 아리사카 총으로 불린다.

2. 상세


사용 탄약은 30식, 38식 소총이 6.5×50mmSR, 99식 소총이 7.7×58mm. 처음 개발 당시에는 6mm, 6.5mm, 7mm를 만들어 시험한 결과 6mm는 총열 만들기가 힘들고 7mm는 일본인에게는 너무 강한 총알이라 반동이 세다고 판단해서 6.5mm를 골랐으나, 중일전쟁에서 88식 소총(한만식)24식 소총(장중정)7.92mm탄과 할힌골 전투모신나강의 7.62×54mmR의 강력한 위력에 데이면서 아리사카의 위력부족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38식의 위력부족을 느낀 일본은 99식 소총을 만들게 된다.
30식, 38식, 99식은 각각 메이지 30년(1897년), 메이지 38년(1905년), 쇼와 14년(1939년)에 만들어졌다. 99식이 14식이 아니라 뜬금없이 99식인 이유는 1939년이 초대 덴노 진무를 기준으로 한 황기 2599년이기 때문이다.
[image]
38식 소총은 처음 사용된 시기인 러일전쟁 당시, 이전까지 사용하던 무라타 소총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다른 볼트액션 소총들에 비해 명중률이 좋고, 특히 조작감이 좋다는 평가를 얻었으며 부품 수도 대폭 감소하여 양산에도 유리하였다. 긴 총열 내에서 장약이 충분히 연소할 수 있어서 총구화염이 적다는 장점도 있었다.
일본군이 만주사변중일전쟁으로 전쟁의 규모를 엄청나게 키워버리면서 필요한 소총 숫자가 급증하자, 1939년 사용탄을 바꾸어 위력을 강화시키고, 기존의 절삭 가공 대신 프레스 가공 공법을 사용하여 생산력을 높인 99식을 개발해 추가 보급했다.
다른 사용탄에 의한 군수 소요 증가라는 문제를 일으키기는 했으나, 보급 자체는 엄격하게 구분시켜 혼란을 최대한 방지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이탈리아군은 사용탄도 다른 제식 소총을 마구잡이로 보급해버려 큰 혼선을 빚었던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 설령 섞인다 해도 6.5×50mmSR과 7.7×58mm 탄약의 크기 차이는 꽤 컸기 때문에 애초에 약실에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탈리아의 6.5×52mm탄과 7.35×51mm탄은 서로간의 차이가 매우 적어 구분이 힘들었고(가운데가 6.5mm, 오른쪽이 7.35mm) 차이가 너무 미미해 다른 약실에 장전하는 것도 가능해서 총기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컸다.[1] 이런 점에선 일본군이 관리를 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급 편의상 본토와 그에 가까운 병력, 귀환 병력 등에 먼저 99식 소총을 지급했고, 이것이 오히려 모자란 위력 때문에 2선으로 돌려져야 했던 38식이 최전방에서 굴려지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오히려 38식이 반동이 더 적어 다루기가 쉬웠고 명중률도 좋았다든가, 전시가 아니었던 때에 생산되었던 물건의 품질과 신뢰성이 전시의 혼란한 와중에 생산된 물건보다 더 좋아서 등의 이유로 38식을 선호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대부분이 38식에 대한 불만이 만만찮아서 개발한 게 99식 소총임을 생각해보면 이건 크나큰 전략적 실수다. 이런 최전방 병력의 화력부족이 일본군의 패착을 더 앞당겼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최전방 화력부족에는 기관단총기관총 개발/보급을 소홀히 했던 점이 더 크게 작용했지만.
놀랍게도 본격적으로 총열에 크롬 도금을 도입한 최초의 총기다. 하지만 총기수입에 집착한 탓에 크롬 도금의 소모도가 꽤 높았다는 풍문이 있으며 대전말의 급조품에는 이마저도 생략하게 된다.

3. 문제점


38식의 경우 다루기 쉽고 명중률이 높았으나 동시기 타국의 소총에 비하면 위력이 약했다. 38식의 사용탄인 6.5×50mmSR 아리사카의 운동 에너지는 2666J이었다. 그 덕에 반동이 적어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곤 하나, 일본군 내에서조차 많은 이들이 위력 부족을 토로하며 불만을 표시했고, 그에 따라 강화형인 99식이 나왔다. 그러나 그 99식의 탄약인 7.7×58mm도 여전히 다소 떨어지는 3150J에 불과하다.
아리사카의 탄약도 충분히 살상력이 보장된 위력을 갖췄다. 200J 급의 운동에너지를 갖춘 권총탄도 사람을 죽이기는 충분하고 아리사카의 경우 사람은 말할것도 없고 양, 사슴, 흑곰을 잡는데도 충분히 효과적이다.[2] 그러나 그럼에도 위력의 부족이 단점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전장의 환경'''이다. 당시에 일본군이 활동하던 중국 등지는 미개척 지역도 매우 많았기에 건물 밀도도 매우 낮고 넓은 개활지도 상당히 많기에 탄약의 위력이 줄어드는 장거리에서도 안정된 살상력이 보장된 고위력 탄약이 중요했다. 그런데 동시기에 사용되었던 타국의 소총들의 위력은 3,400J ~ 4,000J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장거리에서 사격을 주고받을 경우 아리사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30-06 스프링필드 탄의 위력을 가급적 깎기 싫어 시대 착오적인 M14 소총을 만들었을 만큼 볼트액션/반자동 소총 시대에는 운동 에너지와 사거리가 높은 것이 탄약의 미덕이었다. 따라서 운동 에너지가 다소 낮은 편이었던 아리사카 탄약의 위력은 당대에 충분했다고 하기 어렵다.[3] 당장 운동 에너지가 차이가 거의 없었던 수준의 6.5x52mm 카르카노 탄약을 비롯해 다른 6.5mm 탄약들 조차도 중장거리에서의 위력 부족으로 다른 탄약으로 대체된 것을 보면 이미 아리사카의 위력 부족은 확실했다. 단순히 타국의 탄약들의 에너지가 강하니 아리사카가 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4]
이는 중화기가 대량으로 보급된 현대와 달리(게릴라들도 AK, RPG, 기괸총 쯤은 기본으로 들고다닌다), 2차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열강군조차 기관총은 소대당 하나인 게 보통이었고(분대당 1기관총을 보급한 독일이나 천조국 미국 정도나 예외) 대부분의 경우엔 딱콩딱콩 쏘는 소총이 주력이었다. 현대에서야 1km거리에 적이 있다 하면 항공폭격이나 야포 포격으로 갈아버리지만, 이당시엔 그자리에서 딱콩 딱콩. 그런 상황에서 한쪽은 400m밖에서 쏜 탄이 헬멧도 부수고 중간에 낀 나무나 울타리 같은 것도 박살내버리는데, 이쪽은 나무에 막히고 울타리에 막히고 하면 혈압 오를수밖에.
게다가 다소 결과론적인 소리지만, 애초부터 위력이 충분했다면 내부에서도 위력에 대한 불평과 탄약의 개량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일본군에게도 아리사카 탄약의 위력 부족은 확실했다고 볼 수 있다. 단, 오해는 하지 말 것이 맞추면 죽일 정도로 확실히 살상력이 있었다. 이러한 부분은 당시 모든 6.5mm 탄약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인체는 권총탄만 맞아도 무력화된다.
위력이 약했던 38식이 발목 지뢰와 같은 효과를 발휘해서 특유의 저위력으로 인해 사살이 아닌 부상을 일으켜 해당 인원을 후방으로 인도하는데 필요한 인원 수만큼 전투 병력을 깎아먹는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기록도 있으나, 저위력 총탄과 발목지뢰의 전투력 감소 효과엔 큰 차이가 있다. 둘 다 전장에서 부상자+후송인력을 후퇴시켜 전투력을 깎아먹는 건 동일하나, 발목 지뢰는 여기에 더불어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영구적으로 전투병력에서 퇴출시키고, 트랩이라는 점에서 전투 인원에게 불안감과 경계심을 일으켜 정신적인 피로를 유발하며, 여기에 더불어 사기 저하까지 일으킨다. 여기서 총상을 입은 인원들은 손이나 발목을 맞고 잘려나간 게 아니라면 치료 후 전장에 다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력 감소는 일시적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이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방어 측의 일본군의 이야기이고 미군의 경우 총상을 같은 부상을 당한 경우 중대마다 배치된 의무병의 응급처치를 받은 다음 수집 중대의 지프, 상륙 장갑차 등에 실려 전선에서 몇백미터 떨어져 있던 대대 구호소로 후송되어 치료 받은 부상병은 연대 수집소로 가고 다음에는 사단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마지막으로 부상자들은 전방에서 몇 킬로 정도 떨어진 야전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2주 내에 치료로 회복이 가능한 병사를 일선에 투입했다. 맞추어 부상을 입힌다면 대부분 미군의 전력이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총상은 '전장'하면 필수로 떠올리는 부상이라 병사들이 어느 정도 각오를 하기에 정신적 충격이 덜하며, 총상에 당했다는 것은 곧 복수할 적도 그곳에 있다는 뜻이라, 부비트랩보다 사기 저하가 훨씬 덜하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본군은 이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총 없으면 칼로, 칼 없으면 주먹으로 싸우라던 누구의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카미카제반자이 어택 같은 전술 같지도 않은 일본군의 대표 전술들은, 실제 효용은 접어두더라도 적을 철저히 죽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더 퍼시픽에서 묘사된 것처럼, 의도적으로 의무병을 노리는 사기 저하성 전술도 명령하고 이행했으나 이도 결국 사살 전술이다. 애초에 군용 총탄의 목적이 사살이지 부상만 일으키는 게 아니란 것을 감안하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총 성능 문제보다 일본군을 항복 때까지 괴롭힌 최악의 문제는 아리사카 소총끼리 총알이 호환되지 않는 문제였다.[5] 아리사카 38식과 99식 소총은 사용하는 탄환이 서로 달랐고, 덤으로 해군 전용탄[6]이 또 하나 있었다. 거기에 7.7mm의 경우 일반 소총 탄약과 92식 중기관총 전용 탄약[7]이 서로 호환되지 않았다.[8] 당연히 소총 탄약만 2+1+1=4종류로 쓸데없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보급 장교와 병사들을 박터지게 만들었다.
덤으로 전용탄을 만들기 위해 생산 공장과 설비를 각각 쪼개서 따로 지어야 했고, 이로 인해 공장 갯수에 비해 생산되는 전용탄 물량이 매우 적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탄약이 부족한 일본군에게 각 총기들의 전용탄은 전쟁 수행에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나마 평시라면 천천히 교체해서 언젠간 제식탄을 한두개만 사용할 수 있겠지만,[9]99식 소총이 개발되는 39년은 중일전쟁을, 2년 후인 41년은 태평양 전쟁을 벌여서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서 보급체계를 최소한 간편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대로 냅둬서 생산 효율을 떨어뜨리는 짓을 하고 있었다.[10]
비슷한 사정이었던 이탈리아는 평시에 7.35mm를 쓰는 카르카노 M38을 개발했다가, 2차 대전에 참전하자 바로 생산을 중단하고 6.5mm로 회귀했던 상황이었다. 다만 여기까진 좋았는데 7.7mm 사용부대와 6.5mm 사용부대가 엄격히 구분됐던 일본과 달리 두 탄약이 한 부대 안에서도 마구잡이로 섞이면서 그야말로 개판이 되어 버렸고, 6.5mm의 위력 부족 때문에 7.35mm 개발을 시작한 것임에도 두 탄약 간 공통성에 집착[11]하다 신형탄의 성능을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는 게 문제.[12]

4. 오해와 왜곡


처참한 일본군의 모습과 전후 해군선옥육군악옥론의 대세로 인한 과거 일본 밀덕계의 일본 육군에 대한 폄하가 1990년대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아리사카는 실제와 다른 오해들이 굉장히 많은 소총이 되었다.
그리고 무라타 소총과 아리사카의 혼동으로 인해 무라타의 단점들이 아리사카의 단점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 역시 있다.
다음은 널리 퍼진 오해들이다.
  • 국화무늬를 수공예로 새겼다?: 아리사카는 국화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유명한데, 이게 수작업이라는 소문이 한국 웹상에 널리널리 퍼진 관계로 나무위키는 물론이고, 심지어 네이버 캐스트 서술과 국방TV 마저도 수작업을 통한 국화무늬 각인을 사실로 서술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과장으로, 진짜 수작업으로 새기는 경우에는 고위 관료 내지는 부자들이 개인이 따로 장인들에게 돈 주고 주문한 장식용이나 그런 것이고, 양산형의 경우애는 실제로는 국화 문양을 찍어내는 도구가 있었다. 각국에서 총기에 각인을 찍어내듯이 찍어넣은 문양이라는 것.[13] 숙련공이라도 여러 명이 같은 문양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새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숙련공을 징집하고 그 자리를 비숙련 노동자로 때운 일본군에서 수공예로 똑같이 무늬를 새기는 게 가능할리가. 또한 국화무늬를 지우는 것은 무기를 버리는 상황이 되었을 때 노획 방지를 위함이 아니다. 대전 이후 미군이 수거한 아리사카 상당수가 국화무늬가 지워진 것은 미 군정 기간 동안 천황의 상징이라고 해서 국화무늬를 지웠기 때문이지, 노획당할 것 같아 일본군이 지운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 수집가들 사이에서 국화무늬가 있는 아리사카는 없는 아리사카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다. 그리고 국화무늬를 수공예로 새기고, 수공예로 아리사카를 만든 경우가 있기는 있었는데, 이는 실전용은 당연히 아니고 높으신 분들을 위한 모형이거나 전후 수집가들을 위한 레플리카들이라고 한다.
  • 기본 설계가 나쁘다?: 99식은 특히 약실이 튼튼하여 정량의 3배의 화약이 들어가도 버텨내는 수준이었다. 정량 3배의 화약을 넣는 실험을 한 사람은 줄리안 해처(Julian Hatcher, 1888~1963)라는 사람으로, 전직 미 육군 소장이자, 총기 전문가인데, 해처는 아리사카를 2차대전 당시 사용된 소총 중 가장 튼튼한 소총으로 평가했다. 특히 99식은 약실이 두꺼워 압력을 견디는 부분에 있어서는 스프링필드 소총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또한 99식 소총의 약실에 권장 약실압력의 3배를 가했고, 99식 소총은 멀쩡했다. 99식 소총의 튼튼함은 유투브 영상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영상을 참고하자.[14] 참고로 총구가 꽉 막혔을 때 사격하면 화약의 압력이 빠져나가지 못해서 총 전체로 확산된다. 이러면 대개 총이 폭발하는데, 이런 와중에 총열만 손상되고 끝이라면 내구성이 엄청 좋은 것이다. 즉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면 부서진다느니 하는 내구성이 약한 총이 절대로 아니며, 오히려 당시 볼트액션 소총 중 내구도만큼은 최상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38식이 좋지 않냐 하면, 38식은 대전 기간 중 생산된 볼트액션 소총 중 노리쇠가 가장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99식 소총 생산 어쩌구에 걸린 링크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전후 미군과 NRA가 준 평가다.
  • 노리쇠가 카르카노보다 뻑뻑하다? : 유투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아리사카 사격 영상에서 뻑뻑한 노리쇠로 고생하는 영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에 그 카르카노도 후기형에선 개선되었다. 관리가 엉망이면 최신 총기도 조작이 뻑뻑해진다. 전쟁 후반기에 조잡하게 만들어진 총기에서 이 현상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은 총력전에서 패전이 임박한 국가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아리사카만 까일 이유는 없는 것.
  • 날씨가 추워지면 고장나기 일쑤였다? : 그렇지 않다. 차라리 99식이 그랬다면 모를까, 만주 지역에 최적화된 설계를 했던 38식이 추위에 고장나기 일쑤였다는 주장은 그냥 허구다. 진짜로 그랬다면 일본군은 적백내전의 러시아에 개입도 못 했다.[15] 가장 결정적인 반박 증거는 그 러시아에서 이 아리사카를 대량 수입했다는 것. 더 나아가 러시아 마저도 강추위에 치를 떨었던 핀란드에서도 저격용으로 사용할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1차대전 당시 스키 부대까지 운용했을 정도로 추운 곳에서 싸웠던 군대가 추위에 약한 총기를 살 이유는 없다. 추위에 약한 총기는 그 이전 제식 소총이었던 무라타 소총으로, 무라타 소총이 만주 지역에서 빠르게 아리사카로 교체된 이유 중 하나가 아리사카가 무라타보다 추위에 강하기 때문이었다.
  • 표준생산 규격이 없어 총이 중구난방으로 생산되었다? : 부분적으로 맞다. 38식은 그러하나 99식은 아니다. 99식 소총은 표준화된 측정기구와 생산방식, 품질관리하에 양산되었다. 때문에 완전 수제품인 38식과는 달리 99식은 규격화 안 하는 게 불가능했다.
  • 총신이 개런드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면 부러졌다? : 애초에 사람이 개머리판으로 내려쳤는데 부러지는 수준의 강도면 제식 소총으로 사용할 수 없다. 개머리판이 약해서 내리치면 부러졌니 어쩌니 하는 것도 대전 말기 나무 조달이 되지 않아서 건조처리도 안한 삼나무로 만들었던 아리사카 소총의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아리사카는 졸참나무떡갈나무를 사용했다. 이들은 전부 참나무에 속하는데, 참나무는 목재 중에서도 단단한 하드우드에 속하며 그 중에서도 3등급에 속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아리사카의 목재 부분은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
  • 강선이 제대로 안 파였다? : 강선도 제대로 안 파였다고 까이기도 하는데, 너무 써서 강선이 닳았다면 모를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정품 아리사카 소총의 총열은 생산될 때 8000발을 사격할 수 있는 내구도를 갖도록 요구받았다. 여기에 총열 내구도를 더 늘리기 위해 메트포트형 강선을 파고 오스트리아에서 총열 제조법을 교육시켜 왔다. 물론 전쟁 말기에 급하게 생산한 저질품들 중에서 총열 강선이 제대로 안 파인 총이 있었을 수는 있다.
  • 탄이 자주 걸린다? : 유튜브 구경하다보면 탄이 종종 걸려서 애 먹어서 '제식 소총 주제에 탄이 왜 이리 걸리나.' 싶겠는데 이 문제는 총알 문제라고 봐야 한다. 급하면 1분 47초부터 보자. 사실 이런 걸림 현상은 어느 총기든 발생할 수 있다. 애초에 총기 자체가 매우 민감한 물건이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 안하거나, 탄약이 불량이거나, 노후화가 심하게 되었거나, 미세 부품이라도 조금 부서지면 쉽게 고장날 수 있다.
  • 대전 말기 품질이 떨어지는 상황 부각 : 다른 일본 무기와 마찬가지로, 타 국가 무기와는 달리 묘하게 대전 말기 품질이 떨어지는 상황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분명 일본이 대전 말기 똥줄타기 시작하면서 저품질의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똑같이 패전 직전에 몰렸을 때 품질이 저하된 Kar98k의 서술에 비하면 유달리 질이 저하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대전 말기 생산된 제품끼리 비교하면 아리사카가 오히려 마우저 사의 소총보다 뛰어남을 말해 주고 있지만 어느 형식인지는 구체적으로 지목이 안되어있다. 만약 비교대상이 VK 계열이라면 당연히 아리사카 만세를 외쳐야 한다(...). 물론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국민돌격대용 총기가 나올 시점이면 일본은 총 대신 죽창을 쥐어주었으니 비교 불가겠지만...
종합하자면 아리사카, 특히 웹상에서 아리사카라고 하면 주로 칭해지는 38식 소총과 99식 소총은 2차대전 당시의 볼트액션 총기 중 '''일방적인 불량품이 아닌, 꽤 좋은 수준의 품질을 갖춘[16][17] 총기라고 할 수 있다.''' 아리사카의 성능이 안 좋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은 대부분 여타 다른 일본군 병기의 열악한 현실 덕분 내지 반일 감정에 의한 까내리기거나, 불량품의 사례를 전체로 확대 적용시켜 판단한 게 원인인 것이다. 게다가, 아리사카란 명칭 자체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38식과 99식 외에 다양한 일본 제국의 볼트액션 소총을 전부 포괄하는 단어라, 한 종류의 문제점이 곧 아리사카라 이름 붙여진 소총 전체의 문제점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총의 성능과는 무관한 이야기이나 국화 문양을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구타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건 사실이다.''' 출처 똥군기라는게 별의별 괴상한 이유로 생기는 것이니만큼, 이 사례가 딱히 특이한 것도 아니다.

5. 파생형


30년식 소총, 38식 소총, 38식 기병총, 44식 기병총, 97식 저격총, 99식 소총, 2식 소총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를 참조.

6. 기타


한국과 얽힌 일이 좀 있는데, 일단 남대문 전투에서 일본군이 대한제국군을 상대로 30년식을 사용했다.[18] 독립군들도 노획하거나 중국 군벌들을 통해 구입한 아리사카를[19]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범석, 홍범도 등 지휘관급 인물들이 38식 기병총을 사용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군은 물론 북측 조선인민군도 초기에는 일본군이 놓고간 38식, 44식, 99식을 많이 썼으며 6.25 전쟁경찰공무원, 학도병, 빨치산, 보도연맹, 2선급 부대들에게 다수 사용되었다. 심지어 중공군에서 북한군으로 편입된 일부 사단의 경우 모신나강 보급이 늦어서 서울 점령 때까지 99식을 주력으로 사용했다는 증언도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1981년 총기단속법이 대통령령으로 개정되기 전까지는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도 아리사카 소총 등을 허가증 받고 수렵용 엽총으로 사용했다는 경험담이 나돌고 있다. #
일본이 점령했던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도 독립 전쟁을 할때 많이 썼다. 또한 제1차 중동전쟁때 아랍 측과 이스라엘 측이 38식을 일부 사용했다. 영국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에 38식을 뿌린 것이 그때까지 남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핀란드군에서 38식을 저격용으로 도입할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1차대전 당시 소총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가 현물 차관식으로 조달받은 소총 일부가 핀란드에도 흘러들어간 것. 하지만 최종적으론 더 강력한 탄을 쓰는 모신나강을 채택한다.
총 값도 모신나강보다 비싼 놈이 성능도 그닥 탁월하지는 않은데다 탄약 구하기는 더 어려워서, 일본군 무기를 일부러 소장하려는 사람들 말고는 별로 사가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라 상당수의 C급에는 강선도 제대로 안 파져 있다는 오해가 있으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평균적으로 모신나강이 더 저렴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히는 총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모신나강은 대체로 270달러에서 320달러 사이에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아리사카는 100달러 대의 물건도 있지만 높은 가격은 600달러대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모신나강도 희귀한 버전이거나 상태가 최상급이거나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경우 500달러 이상까지 가격대가 올라가며, 아리사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650달러 등 고가를 받는 38식 소총의 상태를 보면 초기생산품에 사격을 하지 않은 신품에 국화문양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등 최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저가를 받는 아리사카의 상태가 안 좋다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255달러 정도를 받는 아리사카 중에도 국화문양이 그대로 남은 것들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 Kar98k 역시 250달러에서 800달러대까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세계대전 당시의 볼트액션 소총들은 가격대가 다 비슷하다고 보는게 더 맞다.
그런데 그 모신나강의 본국인 러시아가 이 무기를 대량으로 도입했었다.[20] 원인은 소총 부족과 열악한 공업능력. 제때에 필요한 양의 모신나강을 생산할 수 없어서 그 자리를 타국의 무기들을 수입해 해결했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이 자국의 윈체스터 M1895를 대량으로 판매해 짭짤한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21] 38식 아리사카를 수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22] 이 밖에도 에스토니아 독립전쟁[23], 영국[24]에서도 사용하였다.[25]
최근엔 스포츠용으로도 판매 중이다.http://www.chuckhawks.com/arisaka_sporter.htm

7. 매체에서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일본군들의 제식 소총으로 등장한다.
1941, 태양의 제국, 진링의 13소녀(2011),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 윈드토커, 마이웨이, 씬 레드 라인,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의 기적, 폭스라고 불리운 사나이, 난징! 난징!에서 나왔다.
카르마(FPS)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겸해서 같이 업데이트된 총기로 본 게임의 야마모토 이소로쿠라는 일본병 캐릭터와 극한의 싱크로률을 보인다.
라이징 스톰에서도 등장한다. 38식 아리사카와 99식 아리사카가 등장하며 이들의 저격 버전인 97식 아리사카와 99식 아리사카도 등장한다. 둘을 구분하기가 살짝 힘든 감은 있지만 특징과 한계가 명확해 골라쓰는 맛도 있다. 38식 아리사카는 기계식 조준기가 시야를 가리지 않아 편하다. 그러나 가늠쇠가 너무 작아 요상하게 다루기 애매하다. 저지력도 마찬가지로 애매해서 볼트액션임에도 한 발에 안 죽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잘못 맞추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정말 운이 나쁘면 두 발 맞고도 버티니 급소를 노려서 쏘자. 그리고 38식 아리사카의 저격총 버전인 97식 아리사카 저격소총은 그냥 스코프만 달려 있을 뿐, 차별되는 점은 없다. 부족한 저지력 문제도 그대로. 99식 아리사카 저격소총도 마찬가지. 게다가 둘다 언락 중에 착검 언락이 존재하기에 저격소총 들고 반자이 돌격을 시전하면 일반 보병처럼 반자이를 외치면서 돌진한다.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서는 99식 소총이 등장하며 총 3가지 형태가 나온다. 일반형, 착검형, 저격형이 등장하며 100식 기관단총만큼이나 일반형과 착검형은 자주 보인다. 착검형을 장비한 상태에서 근접공격키를 눌러 근접공격을 가하면 단검으로 목을 그어 죽이는게 아닌 착검된 총검으로 적을 찔러 죽인다. 근접 공격 리치가 매우 길어서 이게 총인지 총알 나가는 창인지 헷갈릴 지경. 저격형은 나무 위에 올라가있다가 죽은 저격수에게서 획득하거나 오키나와 미션과 한계점 미션에서 획득 가능. 조준점이 좀 괴상하긴 하지만 그냥 1이 적힌 조준선의 가운데 맞추고 쏘면 맞는다(...)
그리자이아의 미궁 TVA에서도 등장.세계대전 시절 독일군 제식 소총인 kar98b와 유사하게 생겼지만 약실을 자세히 보면 아리사카에 더 가깝다. #
더티 해리에서 스콜피오가 쓰는 저격 소총이 아리사카 소총 중 하나인 2식 소총이다. 근데 같은 총 맞나 싶을 수준으로 마개조를 해놨다(...)
코만도스 시리즈중 유일하게 일본군이 등장하는 코만도스 2의 일본군 미션에서도 나온다. 명칭은 type38이라고 적혀있으며 이것은 아리사카 38식 소총을 뜻하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에서 집총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민간인 아무나가 떨어진거 집어들고 쏴도 백발백중, 원샷원킬, 그야말로 스나이퍼 엘리트를 찍을 수 있는 갓총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반자동 기능이 있는지 2연사도 한다.
배틀필드 1의 세번째 DLC Turning Tides에서 아리사카 38식 소총이 신규 정찰병용 장비로 등장. Infantry 버전만 등장한다.물론 2018년 10월 현재 Patrol버젼이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있으면 짧은 Sweet Spot거리로 마티니 헨리와 비슷하게 운용된다.
배틀필드 V 타이드 오브 워 챕터 5 태평양 전쟁에서 99식 소총이 정찰병의 주무기로 등장. 다른 저격병 총과는 다르게 고배율 조준경을 장착한 상태에서 스트리퍼클립으로 장전이 가능하기때문에 1티어 무기가 되었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등장 케론인 오노노 소위의 총도 아리사카을 모티브로 하였다.
봉오동 전투(영화)에서 일본군의 무기로 등장한다.
한국전쟁에서는 양측 모두에 의해 사용되었음에도 매체에서 묘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실제로 국군의 상당수가 이 총을 사용했던 전쟁 초기나 심지어 개전 당일에조차 국군은 전부 M1 개런드M1 카빈으로 무장한 것으로 나온다.

8. 에어소프트건


타나카에서 가스 라이플로 발매하였으며, 38식, 99식, 38식 기병총, 44식, 97식 저격총 버전이 발매되었다. 국화문양과 한자 38이 새겨져있고 고쿠라 조병창의 각인이 제대로 찍혀있다. 하지만 타나카 제품 특성상 금속 도장이 잘 까진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그 외 KTW와 S&T에서 에어콕킹식 아리사카를 발매한 적이 있다.

[1] 이는 우연이 아니라 원할한 교체를 위해 기존 총기의 약실, 노리쇠, 탄창과 호환되도록(즉, 총열 교체만으로 신형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 탄을 단순히 넥업해서 신형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바람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탄약을 혼동하여 총을 고장내는 사태가 벌어졌을 뿐 아니라, 구경만 늘고 탄 운동에너지는 그대로라서 기존 탄과 비교해서 대인저지력만 늘어났을 뿐 관통력과 탄도 안정성은 오히려 하락하여 교체를 안하니만 못한 상황이 되었다. 반면 일본은 신형탄을 새로 설계해서 성능이 분명히 더 높았기 때문에 교체를 할 가치가 충분했다.[2] Cartridges of the World: A Complete and Illustrated Reference for Over 1500 Cartridges[3] 꼭 그런 건 아니라 영국이 리-엔필드 Mk.I에 사용한 .303 브리티시 탄은 초기에 위력 부족으로 악평을 들었다. 영국은 이걸 덤덤탄을 만들어서 저지력을 끌어 올려서 우선 해결했다. 물론 지금처럼 체계적인 연구를 통한 것은 아니고 사냥꾼들이 '탄두에 흠집을 내니까 더 잘 잡히던데?' 라고 해서 시작된 것. 궁극적으론 장약의 성능을 개선하여 운동 에너지를 높이고, 스핏처 탄두와 탄두 전방에 알루미늄을 넣어 인체 내에서 무게 중심 문제로 인한 텀블링과 탄두 파열이 일어나도록 설계한 Mk.7 탄약을 개발하여 해결하였다.[4] 현대에는 5.56mm급 소구경 고속탄을 선호하는데, 이는 운동 에너지가 적어 반동이 적은 탄으로만 자동 사격시에 쓸만한 명중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전 등의 정글이나, 시가전처럼 교전 거리가 짧은 전장에서는 자동 사격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며, 5.56mm의 짧은 사거리의 한계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이 전장이 탁 트이고 긴 사거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7.62mm 급의 탄약들이 쓰이고 있다.[5] 물론 이 문제는 전간기에 제식 탄약을 교체한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국가들도 어느 정도는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이긴 하다. 그 중 이도저도 아닌 최악이었던 이탈리아에 비하면 일본의 탄종 교체는 성공적인 편이긴 했다.[6] 영국의 .303 브리티시를 복제 생산해서 썼다. 7.7mm 아리사카와 비슷하거나 아주 약간 나은 위력의 탄약인데 림드탄이라 자동 화기 설계에 불리하고 보급이 꼬인다는 단점이 더 컸지만 육군과 다른 탄을 쓰겠다고 자존심 세워서 굳이 가져다가 썼다.[7] 같은 7.7×58탄이라 해도, 92식 중기관총의 전용 탄약은 SR(Semi Rimmed)이고 99식 소총이나 99식 경기관총에 쓰이는 탄은 림리스(Rimless)탄약이다. 이 중 92식 중기관총탄이 먼저 개발됐고, 나중에 99식 소총탄은 92식 중기관총탄을 참고해 개발했는데, 왜 세미 림드와 림리스로 다르게 만들어 서로 호환되지 않게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8] 6.5mm 아리사카의 경우, 소총에 비해 총열이 짧은 경기관총에서 쏴도 총구 화염이 심하지 않도록 소총탄에서 장약의 조성을 약간 바꾼 것 뿐이라 호환성과 위력에는 문제가 없었고, 총구 화염이 적다는 점 때문에 저격수들이 얻어다 쓰기도 했다고 한다. 비슷한 경우로 미군도 같은 30-06 탄약이고 호환에 문제는 없지만 기관총 탄띠 용도로 보급하는 탄은 보다 장거리 제압 사격에 유리하고 기관총에서의 작동성을 고려해 약간 더 무거운 탄두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기관총탄이 멀리서도 잘 맞는다고 매치탄을 보급받지 못한 저격수들은 중기관총 사수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곤 했다는 것까지 비슷하다.[9] 참고로 평시에도 탄약 보급을 이따구로 절대 하지 않는다. 같은 계열의 탄약이라 해도! 왜 한국군에서 KM193 탄을 사용하는 K1A를 K100 탄을 사용하게 개량하는지 생각해보자. 그나마 KM193과 K100은 같은 계열의 탄약이라 호환이 되기라도 하지, 일본군은...[10] 이런 중구난방적 탄약 보급의 단점을 이유로 나가리 될 뻔한 총이 하나 있었다. 바로 StG44. 히틀러가 탄약 보급에 어려움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반대를 해서 도입이 무산됐다가 StG44의 성능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어서 나중에 도입됐다.[11] 약실과 노리쇠, 탄창/탄클립은 6.5mm의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을 요구했다. 즉 탄피 규격(용적, 압력 등)이 6.5mm와 같다는 것인데 결국 총탄의 위력은 탄피에 들어가는 장약이 결정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마나한 삽질을 한 것이다.[12] 이 쪽도 중기관총으로는 6.5mm나 7.35mm의 위력에 부족함을 느껴 8*59mm RB(Rebated rim, 탄피 추출기가 물리는 탄피 밑바닥의 직경이 탄피 몸통보다 작다.) 전용탄을 사용했는데, 무슨 생각인지 항공용 기관총 등으로는 또 .303 브리티시를 써서 보급을 더 꼬아버렸다.[13] 독일을 예로 들면 독수리 문양.[14] 영상을 보면 99식 소총이 기존 탄환보다 20% 높은 압력의 탄환을 사용해도 멀쩡하고, 훨씬 높은 압력의 탄환을 사용하자 탄피가 부풀어 껴버렸지만 그걸 빼낸 후 소총은 여전히 멀쩡히 작동한다. 이어 총구에 6인치 정도의 흙을 끼워 넣어 총구가 막혔을 때 총이 어떻게 되는지를 실험하자 총열 손상으로 기능을 상실했으나 사수가 부상을 당할 만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영상에는 은근히 비추와 악플이 많다. 한마디로 저런 쓰레기총을 왜 옹호하는 거냐는 비아냥과 함께 게시자를 욕하고 있다.[15] 실제로 몇몇 백군들은 시베리아 설원에서 아리사카를 잘만 사용했다. 그리고 운게른 역시 아리사카를 칭찬했다는 얘기가 있다.[16] https://books.google.co.kr/books?id=tuVUMLRE47UC&pg=PA81&lpg=PA81&dq=arisaka+chamber+gas+vent&source=bl&ots=tJHyCXjcHC&sig=Vf-efVIcI-4LDZyhNOyzc9rX3lo&hl=ko&sa=X&ved=0ahUKEwiV5-G04fbNAhUBmZQKHfQTBEcQ6AEIKDAB#v=onepage&q&f=false[17] Type 38 Arisaka rifles were good, and so was the 6.5mm cartridge[18] 재미있는 건, 당시 마쓰이 물산을 통해서 대한제국군도 시위대를 중심으로 상당수의 30년식 소총이 제식화되었거니와, 탄약/소총 제조용 공작기기까지 도입했었다. 도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러일전쟁으로 조선주차군이 꿀꺽했지만 말이다(...)[19] 중일전쟁 전까지는 다 6.5mm였고 중일전쟁 후로는 99식을 노획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애초 99식이 개발된 이유가 만주 등 중국의 넓은 평원에서 7.92mm 마우저나 7.62mm 러시안 탄약을 쏘는 중국군에게 사거리와 위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라 보급 여력이 되는 한 태평양 전쟁 개전 전까지는 중국 전선에 99식이 우선 보급되었다.[20] С. Кляцкин. Строительство Красной Армии в 1918 году // журнал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 2, февраль 1948. стр.49-69, Винтовка // Гражданская война и военная интервенция в СССР. Энциклопедия / редколл., гл. ред. С. С. Хромов. — 2-е изд. — М., «Советская энциклопедия», 1987. стр.94-95 참조[21] "Во время перв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 царская Россия испытывала недостаток в стрелковом вооружении, поэтому в армии кроме винтовок русского образца были также и иностранные - японские Арисака обр.1897 и 1905 гг., австро-венгерские Манлихера 1889 и 1895 гг., германские "88" и "98". Кроме этих винтовок использовались также и устаревшие образцы, стрелявшие патронами, снаряженными дымным порохом - Бердана № 2 образца 1870 г., Гра 1874 г., Гра-Кропачека 1874/85 г., Веттерли 1870/87 г." А. Б. Жук. Энциклопедия стрелкового оружия: револьверы, пистолеты, винтовки, пистолеты-пулеметы, автоматы. М., АСТ — Воениздат, 2002. стр.587[22] 이 때문에 6.5mm 아리사카 탄의 풍부한 물량을 이용해 이 탄을 사용하는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개발하기도 했다.[23] 에스토니아 방위대에서 영국 .303 카트리지로 개조해서 사용했다.[24] 1921년에 훈련대대에 30년식과 38식을 지급했으며 영국 해군 육상 부대도 엔필드와 아리사카를 혼용해서 썼다.[2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