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T-40

 

'''SVT'''
''Самозарядная Винтовка Токарева''
''토카레프 반자동소총''

[image]
프로토타입 / SVT-38
[image]
개량형 / SVT-40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종류'''
<colcolor=black>반자동소총
자동소총(AVT-40)
'''원산지'''
[image] 소련
【펼치기 · 접기】
'''이력'''
<colbgcolor=lightgray><colcolor=#000> '''역사'''
<colcolor=#000>1940년~불명
'''개발'''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토카레프
'''개발년도'''
1930년대
'''생산년도'''
1938년~1942년
'''생산수'''
1,600,000정
'''사용국'''
[image] 소련
[image] 핀란드
[image] 나치 독일
[image] 폴란드 인민 공화국
[image] 중화민국
[image] 북한
[image] 동독
[image] 베트남 민주 공화국
[image] 쿠바
'''사용된 전쟁'''
겨울전쟁
제2차 세계대전
국공내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기종'''
'''원형'''
SVT-38
'''파생형'''
SKT-40
AVT-40
'''제원'''
'''탄약'''
7.62×54mmR
'''급탄'''
10발들이 박스탄창
'''작동방식'''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
틸팅 볼트
'''총열길이'''
625mm
'''전장'''
1,226mm
'''중량'''
3.85kg
'''발사속도'''
800RPM(AVT-40)
'''탄속'''
830~840m/s
'''유효사거리'''
500m
'''최대사거리'''
1,000m

1. 개요
2. 상세
3. 파생형
4. 관련 기록
5. 대중매체
5.1. 게임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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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ickok45의 리뷰 영상
Самозарядная Винтовка Токарева(СВТ)
사모자랴드나야 빈토브카 토카례바(토카레프 자동소총)
TT 권총으로 유명한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토카레프가 개발한 반자동소총. 반자동소총에 관심이 많았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후원을 받아 개발되었다. 1940년에 채용된 후, 전쟁 중 160만정이 생산되어 미국M1 카빈M1 개런드에 이어 많이 생산되고 널리 쓰인 반자동소총의 하나다.[1]

2. 상세



Forgotten Weapons의 SVT-38 리뷰 영상
1930년대 즈음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이전부터 개발하고 있었던 반동 이용식 소총은 포기하고 가스 작동식으로 진행하였다. 1935년 개최된 육군의 자동소총 실험에 참여했으나 승자는 시모노프의 AVS-36가 되었다. 그러나 AVS의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토카레프와 시모노프는 각자 소총을 개량하면서 토카레프의 것이 채택되어 SVT-38이라는 제식명이 부여되었다.
다만 SVT-38은 너무 길고 복잡하고 어려운 구조여서 겨울전쟁 당시 사용하였던 부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쏘다가 탄창이 탈락하는 일도 있어서 150,000여 정을 생산하고 1940년 4월에 생산을 중단했다.
SVT-40은 탄창 문제를 해결하면서 중량을 줄이고 약실에 미세한 홈을 파는 등 개량을 거쳤으며, 꽂을대가 총열 밑쪽에 추가되었다.[2] SVT-40을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이미 SVT-38을 생산한 경험이 있었기에, 생산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1940년에 70,000정이 생산되었다.
[image]
PEM Scope를 장착하고 저격용으로 쓰인 SVT-40
당시의 반자동소총 중에서는 명중률도 상위권에 속해서 약 5만정 가량이 조준경을 달고 저격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저격소총의 주력인 '''볼트액션 소총과 비교하면 명중률이 상당히 떨어지며''', 망원조준경과 소총과의 결속에서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고, 작동 구조상 방아쇠 압력이 볼트액션에 비해 부드럽지 않고, 사격시 후퇴하는 노리쇠 때문에 조준이 흐트러지는 문제로 저격수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았다. 당장 현실적으로는 400m 이상에서는 저격이 힘들어지는데, 지급 받은 설명서에는 '800m까지 정밀한 저격이 가능합니다.'라고 쓰인 문구를 보고 어처구니 없어하는 저격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소련제 무기답지 않게 거친 환경에서 쉽게 고장나서 야전에서도 직접 쏘기 직전까지 방수천 등으로 둘둘 말아 구멍이란 구멍은 싸그리 틀어막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외면 받지는 않았는데, 소련의 여성 저격수들이 모신나강의 노리쇠 조작[3]을 번거롭게 여겼던 경향이 있어서 모신나강보다 노리쇠 조작이 쉬운 이 총이 애용되었다고 한다.
원래 소련은 SVT-40을 주력 소총으로 쓰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신나강의 생산량도 줄이려 했으나 그놈의 독소전이... 그래도 저격용이 아닌 적과 치고받는 일반 보병에게는 환영받았고 SVT는 당대의 반자동소총 중에서도 우수한 편이라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 결과 1940년에 등장하여 1942년 생산 중단될 때까지 160만 자루가 생산되고 널리 보급되었다. 해군 보병에도 제법 많은 수량이 지급됐다. 미국같이 전군이 반자동을 쓰는 게 아니면 볼트 액션보다는 좀 복잡한 정비나 관리 등의 이유로 어느 정도 정예 부대에 지급되는 편이라 소련도 일반 육군 보병에 비해 훈련 강도가 높고 정예로 여겨지는 수색대나 해군 육전대 같은 부대[4]에 우선 지급했다.
그리고 나중에 SKS 등 이후의 소총 개발에도 참고가 된다.

3. 파생형


  • SVT-38
SVT-40의 시제형.
  • SKT-40
SVT-40의 카빈형.
  • AVT-40
기관총 화력 부족을 메꾸기 위해 1942년에 연발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자동소총. 방아쇠와 조정간 부분만 개조한 정도에 불과했기에 명중률과 총기 수명, 장탄수가 낮아 차라리 기관단총을 쓰는게 나아서 좋은 인상을 얻지는 못했다. 독소전쟁 당시 FG42처럼 소련군 공수부대에서 소수 사용되었다.

4. 관련 기록


겨울전쟁계속전쟁 당시 핀란드군이 약 15,000여자루를 노획해서 사용한 기록이 있다. 다만 핀란드소련의 기후 차이가 상당히 심해서[5] 가스 시스템이 심심하면 오작동을 일으키는데다가, 핀란드군과 소련군의 무기 및 탄종 규격이 다른 상태에서 억지로 이 총에 핀란드 탄약을 사용하다 보니 고장이 잦았다고 한다.
한편 독일군도 당시 동맹이었던 핀란드군을 통해 입수하거나 소련과의 전쟁 도중 직접 노획한 SVT-40을 운영해보았는데 핀란드와는 달리 독일 쪽에서는 평가가 제법 좋은 축에 들었다. 그래서 독일군은 이 총을 자주 써먹었고, 이 총을 연구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게베어 43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6.25 전쟁 때에도 북한군PPSh-41모신나강과 함께 사용했던 총기로 심심치 않게 자료집에서 접할 수 있다. SVT-40은 1955년 소련군에서 정식으로 퇴역을 했으며, 남은 SVT들은 핀란드쿠바, 베트남에 공여되었고, 이 총은 나중에 같은 반자동소총을 개발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5. 대중매체


대부분 소련군이 등장하는 2차 대전을 다룬 영화, 드라마, 게임에서 등장한다.

5.1. 게임





6. 둘러보기











[1] 참고로 1위 M1 카빈 600만 정, M1 개런드 540만 정으로 SVT-40이 3위다.[2] 약실에 홈을 파면 발사할 때 홈으로 들어온 가스가 윤활 효과를 내 탄피가 쉽게 추출된다. 이러한 방식을 각인 약실이라고 하며, StG45의 작동 방식인 롤러 지연 블로우백으로 인한 탄피 추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인 약실을 적용한 것보다 5년 앞섰다. 이 각인 약실 방식은 StG45를 기반으로 한 H&K G3 뿐만 아니라, 레버 지연 블로우백 방식을 사용하는 FAMAS에도 적용되었다.[3] 그놈의 7.62×54mmR의 디자인 때문에 장전하는 탄 밑의 탄이 올라와서 노리쇠의 전진을 방해하는 걸 방지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었으나 가끔 제대로 작동을 안해서 노리쇠가 걸리는 경우도 있고 수동조작인 볼트액션 특성상 긴 시간을 교전(많은 탄환을 쏘며 계속 수동장전)하다보면 힘이 빠져서 연사속도가 대폭 줄어들었다. 여성이면 더하면 더했을테니 당연히 볼트액션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4] 함 승조원 등을 차출 편성한 이들이 아닌, 상시 육전 훈련을 받는 상설 보병부대 한정. 즉, 현대의 해병대와 유사한 부대.[5] 나름대로 극한 지방인 소련에서 온 소련군이 핀란드 땅에서 얼어죽을 정도였다! 반면 핀란드에서 살던 사람들인 핀란드인들은 이미 핀란드땅의 겨울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대비책을 잘 세워두어서 적어도 기후로 인한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