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셔 스튜디오
1. 개요
지금은 라이벌 관계가 아니지만 70년 전에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그것도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영화로! 파라마운트 픽처스 소속의 플라이셔 스튜디오(Fleischer Studios)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디즈니 스튜디오와 라이벌이었다.
맥스 플라이셔(Max Fleischer,1883~1972)와 데이브 플라이셔(Dave Fleischer.1894~1979)가 세운 스튜디오로 심지어 맥스 플라이셔는 로토스코핑을 개발한 업적이 있다. 어찌 보면 월트 디즈니보다 대단한 셈. 그밖에 입체 카메라 기법도 개발했다. 배경을 사진으로 처리해서 배경만은 마치 3D 애니메이션이나 실사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예시
이들이 만들었던 작품들 또한 대단한데 광대 코코(Koko the Clown), 베티 붑(Betty Boop), 뽀빠이, 슈퍼맨(1940년 작품) 등...2014년에도 여러 사람들이 아는 캐릭터들이다.[1]
사실 미국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곳도 여기(song car-tunes 시리즈)인데, 플라이셔가 디즈니에 비해 인지도가 극히 낮은 데다 파산의 영향으로 대중한테 잊혀진 것도 작용하여 수십 년간 알려지지 못했다.
2. 상세
이 가운데 1940년판 슈퍼맨은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고퀄리티에 그야말로 컬러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거대 로봇이 등장한다!
이 슈퍼맨 애니를 보고 감명받은 인물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70년대에 TV판 루팡 3세를 연출할때, 이 애니를 고대로 베끼다 싶이 로봇이 강도질을 하고 경찰들이 총을 쏘는 것을 그대로 그리며 오마쥬한 바 있다.참고로 80년대에 금성비디오에서 이 시리즈도 더빙으로 낸 바 있다.
디즈니와는 라이벌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월트 디즈니와 플라이셔 형제와는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오죽하면 맥스 플라이셔의 아들인 리처드 플라이셔(Richard Fleischer) [2] 가 회고하길 "내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디즈니를 만나면 인상 쓰고 다녔다." 고...아이러니하게도 플라이셔 스튜디오가 망하고 맥스를 받아준 사람은 월트 디즈니. 또한 맥스의 아들인 리처드는 디즈니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디즈니와는 차이점이 꽤 있던 회사였다. 회사 위치가 달랐고[3] 디즈니 작품의 음악이 동요나 클래식한 느낌이었다면 플레이셔는 당시 기준으로 현대적이고 팝같은 음악을 사용하였다. 또한 플라이셔의 작품은 은근히 성적인 요소나[4] 마약 언급을 하기도 했다. 물론 대놓고 한건 아니지만.
어쨌든 승승장구하던 회사지만 위기가 닥치는데...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1937년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역사상 전무한 대히트를 치면서 열받은 플라이셔 스튜디오와 파라마운트 픽처스도 <걸리버 여행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1939년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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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자체는 괜찮은 평과 흥행(15만 달러로 제작하여 72만 달러를 벌어들임)을 했지만 문제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급은 아니었다는 것.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당장 이 글을 보는 위키러와 위키러의 지인들중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와 <걸리버 여행기> 애니메이션중 어느 쪽에 대해서 더 잘 아는가? (...)
쉽게 말해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개봉 80년 이후인 2021년에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작이 되었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개봉 당시에는 대박이었으나 수십년 후에는 잊혀진 작품이 된 것이다.[5]
그 뒤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피노키오(애니메이션)>에 자극을 받았는지 1941년 12월 5일 <미스터 버그가 도시로 가다(Mr. Bug Goes to Town)>라는 신작을 만들었지만 '''망했어요.''' 제작비가 71만 달러 이상이었는데 번 돈이 24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이유는 당시 진주만 공습 때문에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여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멀어진 상태였으며 2차대전의 주무대였던 유럽 시장 역시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라이벌이었던 디즈니는 총통각하의 낯짝이나 그밖에 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ing line(1942년), Education for Death(1943년)에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돈을 벌었지만 플라이셔는 그런것도 없었다.
그 뒤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좀 더 하긴 했지만 한때나마 디즈니의 라이벌 소릴 듣던 수준은 아니었고 결국 맥스와 데이브 형제가 갈라서면서 제작은 거의 그만두게 되었다. 그후 위에서 설명한대로 맥스는 디즈니 휘하로 들어가기도 했다. 2014년 현재 플라이셔 스튜디오는 판권 관리만 하는듯.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디즈니가 대박을 친 뒤 디즈니를 흉내낸 작품(걸리버 여행기, 미스터 버그)을 만들었다가 망한 것...
3. 기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파라마운트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제작 영화를 배급하였고 (한국 제외), 제프리 카첸버그가 타도 디즈니를 외치면서 디즈니와 다시 한번 라이벌 관계가 되나 싶었지만...디즈니는 이미 오래전에 픽사를 인수하였고 픽사 작품의 대다수가 드림웍스보단 평가, 흥행에서 훨씬 뛰어났다.[6] 애초에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첸버그나 크리스 샌더스는 디즈니 출신 인물들이니...파라마운트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수중에 있었을때도 디즈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 심지어 디즈니는 겨울왕국으로 대박으로 칠 때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천재강아지 미스터 피바디, 터보, 가디언즈 등을 말아먹고 안습이었단 상황이었으니 만약 파라마운트가 드림웍스를 소유하고 있었더라도 디즈니의 라이벌 소린 못들었을 것이다.
잭 커비가 여기서 잠시 애니메이터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1] 다만 뽀빠이와 슈퍼맨은 원작이 따로 있고 슈퍼맨의 경우 2014년 기준으로 판권이 워너 브라더스에게 있기 때문에 파라마운트가 다시 슈퍼맨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건 불가능.[2] 1940년대 이후 고전기 할리우드 감독으로 유명하다. 대중적으로는 마이크로 결사대가 유명하며, 구로사와 기요시나 봉준호가 열렬한 지지자로 꼽힌다.[3] 디즈니는 캔자스, 플라이셔는 뉴욕 시.[4] 베티 붑만 봐도...[5] 사실 작품 자체도 백설공주보다는 좀 떨어진다는 평. 두 작품 다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백설공주는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캐릭터(백설공주, 왕비 등)와 그냥 만화 캐릭터(난쟁이들)이 조화를 이룬 반면 걸리버 여행기에서 나온 걸리버는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이질적이었다. 쉽게 말해서 걸리버는 같은 작품인데 캐릭터간의 그림체가 달랐다.[6] 다만 두 스튜디오가 직접 맞붙은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