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1937)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시작'''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
'''감독'''
데이비드 핸드
윌리엄 코트렐
'''제작'''
월트 디즈니
'''각본'''
테드 시어스
리처드 크리든
'''출연'''
애들리아나 캐셀롯티
루실 라 베른
'''음악'''
프랭크 처칠
폴 스미스
리 할라인
'''장르'''
애니메이션, 가족, 판타지
'''개봉일'''
[image] 1937년 12월 21일 '''(87주년)'''
[image] 1944년 2월 22일(재개봉)
[image] 1952년 2월 13일(재개봉)
[image] 1958년 2월 7일(재개봉)
[image] 1967년 6월 11일(재개봉)
[image] 1975년 12월 20일(재개봉)
[image] 1983년 7월 15일(재개봉)
[image] 1987년 7월 17일(재개봉)
[image] 1993년 7월 2일(재개봉)
[image] 2016년 2월 2일(재개봉)
[image] 1959년 1월 22일
'''상영 시간'''
83분
'''제작사'''
[image]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
'''수입사'''
[image] 세기상사[1]
'''배급사'''
[image] RKO 라디오 픽쳐스[2]
'''제작비'''
$1,499,000
'''북미 박스오피스'''
$184,925,486
1. 개요
2. 제작 과정
3. 흥행 및 평가
4. 영향
5. 등장인물
6. 기타 정보
7. 파생작
8. 외부 링크


1. 개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세계 최초의 풀 컬러 극장용 애니메이션'''[3]이다. 최초 개봉일은 1937년 12월 21일로, 한국에서는 1956년에 '백설희와 7인의 소인'[4]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하였다.
1부 2부

2. 제작 과정


  • 제작 발표
1934년 6월에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에서 처음으로 제작될 장편 영화에 대한 발표가 뉴욕 타임즈에 게재되었고, 월트 디즈니는 같은 해에 스튜디오의 직원들을 불러 이번에 제작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장편 영화로 발표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같은해에 월트 디즈니를 비롯해 여러 스태프들이 모여서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이 몇 차례 진행된 것 덕분에 스토리 개발 과정은 몇 개월이나 지속되었다.
  • 각색
디즈니판에서는 일곱 난쟁이들에게 좀 더 개성을 불어넣었으며, 잔혹한 내용을 최소화하였다. 디즈니판에서는 독사과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를 보고 좋다고 낄낄거리는 왕비를 보고 숲속 동물들이 난쟁이들에게 연락하고, 연락을 받고 귀환한 난쟁이들에게 쫓겨서 어머니/계모가 절벽에서 추락사한다.
  • 뛰어난 테크니컬러 기술 활용
월트 디즈니는 1932년 테크니 사에서 개발한 3색 테크니컬러 프로세스 활용에 대해 1935년까지 독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한 바가 있었다.[5] 이 기술을 이용하여 선명하고 질 좋은 컬러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미국 영화에 컬러 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한 연도는 1917년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컬러 기술이 도입된 이후로 2색 테크니컬러를 기법을 활용한 컬러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었지만 [6], 컬러 기술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극장에서조차 컬러 스크린으로 다양한 색상과 선명한 화질을 보기 힘들었었다. 컬러 염색하는게 기술적으로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7]
[image]
예시로, 1935년에 개봉한 영화 중 하나인 '베키 샤프'는 3색 테크니컬러로 제작된 영화이다. 그러나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색상과 화질의 수준은 사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한 평론가는 이 영화를 '마요네즈에 절여놓은 연어 같다'고 평했다. 때문에 실사 영화에서 컬러가 대세가 된 건 전후 1950년대부터였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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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영화들 속에서 1937년에 극장에 선명한 색상과 화질을 가진 캐릭터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마치 살아있는 듯이 돌아다닌 것이다. 이는 당시 영화계에 엄청난 문화충격을 주었다. 때문에 이후 테크니컬러를 사용한 영화들은 반드시 광고 포스터에 "테크니컬러 사용(in Technicolor)"이란 문구를 넣었으며, 한국에서도 이를 "총천연색"이라 번역하여 극장 광고에 사용하였다.
  • 화려한 특수기법 사용
역사상 최초로 제작된 풀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임에도 애니메이션 동작에도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서 캐릭터의 움직임이 지금 봐도 매우 부드럽다.[9]
컬러 영화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고, 특수효과라고 할만한 요소들이 들어간 오즈의 마법사 같은 영화가 나온 것도 1939년이었으니, 당대의 전세계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여기에 큰 충격을 받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끼친 영향은 2009년아바타 이상이었다고 봐도 된다.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역사를 살펴볼 때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 픽사드림웍스 같은 현대의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애니메이터들조차 이 작품을 연구용으로 보곤 한다.
  • 미칠듯한 제작비
한편, 워낙에 혁신적인 시도였던 까닭에 제작비를 많이 잡아먹어서 월트 디즈니는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몇 번이고 파산하는 바람에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였는데 디즈니가 설득하자 이 작품의 제작에 애착이 컸던 직원들도 자진해서 월급일을 미루어가며 완성했다는 눈물겨운 전설이 있기도 하다. 요즘의 제작 방법으로는 이렇게 끔찍하게 돈 많이 드는 방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애니가 오파츠인 것이다. 제작비는 당시 기준 149만 9천 달러로 엄청난 거액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600만 달러(하지만 위키백과에서는 385만 달러로 나옴)로 만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던 걸 생각하면... 어렵게 만든 보람이 있게 흥행도 대박이어서 800만 달러나 벌어들였고[10], 재개봉도 여러 번 해서 1억 8492만 달러라는 극장 수익 흥행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이 수익을 2010년대 물가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21억 달러 가까이 된다. 가장 흥행한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과 8억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 그래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역사상 가장 흥행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디즈니의 수완이 빛난 것이, 그는 그가 들인 막대한 제작기간과 비용, 그리고 노동력을 이슈화하여 오히려 홍보의 기회로 삼았다. 1937년 5월 초에 뉴욕 타임즈 지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도 훨씬 오래 전부터 느릿느릿 만들어 나가는 작품'이라고 비교까지 할 정도였으니...시사회 즈음에 이르러서는 신문은 물론이고 라디오[11], 백화점[12]을 통해 홍보에 총력을 다했다.

3. 흥행 및 평가


149만 9천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937년 당시 '''800만 달러'''가 넘는 대박을 거두었다. 당시까지 인기있던 애니메이션들은 짧은 시간안에 웃기는 내용으로 흥미를 끄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기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보러 간 평론가들은 영 기대를 하지 않고 극장에 들어갔다. 당시 언론에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공공연하게 '디즈니의 밑 빠진 독'이라 부르며 그가 파산하고 싶어 작정한 미친놈이라 비웃었고 월트 디즈니의 지인들도 아무도 만화를 90분동안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했다. 심지어 1시간 반 동안 웃으며 추태를 보이라는 거냐라고 뭐 씹은 얼굴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보러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1937년 12월 초연했을 당시 디즈니가 어리석다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관객들은 나중에 영화의 상영이 종료되었을 때 많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백설공주 메이킹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 평론가들은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의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꽃을 바치는 장면에서 대성통곡을 했고 온 극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몇몇 애니메이터들은 백설공주의 최고 매력과 성공 이유중 하나로 일곱 난쟁이를 꼽는다. 작중의 일곱 난쟁이에 사용된 애니메이션 기법은 영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애니메이션만의 화법 정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만약 실사 영화로 왜소증 배우들을 고용해 경쾌한 노래를 부르고, 바보 같은 슬랩스틱으로 일곱난쟁이를 재현한다면 관객들은 마치 프릭쇼를 보는 듯한 기괴함과 불쾌감을 느끼거나 '어떻게 왜소증 환자를 저렇게 희화화 할 수 있냐' 며 분노나 거부감을 나타내겠지만, 애니메이션에서의 난쟁이 캐릭터의 경우 실제 사람이 아닌 단지 그림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거부감이 조금 완화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화법이 백설공주를 통해 바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제작하던 디즈니의 단편 영상들을 통해 가능성을 간간히 드러내던 화법이 장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성공적으로 발휘된 최초의 케이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월트 디즈니는 11회 아카데미 공로상(Honorary Awards)을 수상했다.[13] 당시 찰리 채플린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무척 호평했으며, 메이저 애니메이터인 맥스 플라이셔는 이 영화에 자극을 받아 걸리버 여행기를 제작했고, 워너 브라더스의 애니메이터인 밥 크렘펫 또한 백설공주를 패러디해 1943년 메리 멜로디즈 단편 Coal Black and de Sebben Dwarfs[14]를 감독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디즈니의 인지도를 알리게 한 업적 덕분인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이후 여러 차례 재개봉된다. 각각 1944년, 1952년, 1958년, 1967년, 1975년, 1983년, 1987년, 1993년에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었다.

4. 영향


후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여러모로 영향을 주었다. 일단 이 애니메이션부터 뮤지컬적인 요소가 꽤 많이 들어가 있다. 주요 장면은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초창기에 나온 영화이기에 요즘 영화와 비교해 보면 여러모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때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이고 한국은 일제강점기 당시였던 1937년인것을 기억하자'''. 그때 당시는 영화 자체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도 10년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운드도 전혀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디즈니의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은 백설공주부터 시작된 셈이다. 음악에 신경쓴 애니답게 1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음악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뮤지컬 코믹 영화인 "One Hundred Men and a Girl"에 밀려서 수상하지는 못했다. 또한 왕비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최후를 맞는데 "악당은 추락해서 최후를 맞는다"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클리셰도 여기서 시작된 셈.

5. 등장인물


성우는 순서대로 영어/독일어/한국어.
  • 왕자
백설공주의 왕자로, 매우 전형적인 캐릭터라서 좀 심심한 느낌. 작중에서 왕자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나중에 설정상으로 플로리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설정상으로 나이는 17세. 초반부에 백설공주의 노랫소리를 듣고 천천히 다가가서 그 얼굴을 보며 그 미모에 반해 우물 앞으로 다가와 옆에 서는데, 백설공주는 당황해서 달아난다. 그러고는 백설공주가 있는 탑 앞에서 고백을 하고 가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후반부에는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죽었다는 사실과 숲속의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와 이별의 키스를 하며 그녀를 보내는 것이 아까운 듯이 고개를 떨군다. 키스를 받은 순간 백설공주는 깨어났고 일어나는 그녀를 안아주며 동물들과 일곱 난쟁이들의 작별인사를 받고 그녀와 같이 숲 밖의 성으로 향하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성우는 해리 스톡웰 / 이재용 (대사).[15], 김경주 (노래). 다른 국가들의 성우는 플로리안/성우 항목 참조.
  • 일곱 난쟁이
숲속에 살고 있는 일곱 명의 난쟁이들로, 키가 작으며, 멍청이를 제외하면 희끗한 수염을 기른 노인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심성은 순수해서 마치 어린 아이같다. 광산에서 각종 보석을 캐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서 광산에서 보석을 캐내거나, 집안에 여러가지 도구들을 만들어 두고 있지만[16] 청결과는 거리가 멀다. 왕비가 보낸 사냥꾼의 경고를 듣고 숲속으로 도망친 백설공주는 동물들의 길안내를 받고 난쟁이들의 집에 들어와 그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잠자리를 얻게 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했던 난쟁이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나중에는 장례까지 치러줄 정도로 가까워진다. 심지어는 백설공주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자 다같이 용기를 내어 처음에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왕비를 쫓아 달려갈 정도다.
그림 동화의 백설공주에서의 난쟁이들은 별다른 개성 없이 한 묶음의 클론 같았지만, 디즈니의 손에서 난쟁이들은 제각기 개성있는 성격을 가진 재미있는 캐릭터로 재창조되었으며, 각각의 성격과 특징에 따라서 이름도 부여받았다.
  • 박사(Doc)
안경을 끼고 있으며, 돋보기를 가지고 다닌다. 일곱 난쟁이 중 다른 난쟁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중재를 하는 리더 격인 인물로, 다른 난쟁이들을 대표하여 백설공주의 질문에 답할 때가 많다. 다른 난쟁이들과 이동시 가장 먼저 가는 만큼 손에 전조등불을 들고 다닌다. 이름처럼 난쟁이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것 같으나, 말을 종종 더듬으며, 단어를 잘못 말하기도 한다. 작중에서 광산에서 캐낸 보석을 감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손을 씻지 않으려는 심술이를 단체로 씻기려고 할 때, 다른 난쟁이들이 심술이를 끌고 가는 도중에도 옆에서 계속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취침시간에 멍청이의 베개를 뺏으려고 쟁탈전이 일어나자 베개를 나눠 가지라고 지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공주의 장례에서 공주를 눕힐 유리관을 만든 중심 인물도 박사라고 한다. 성우는 로이 앳웰 (대화 & 노래) / 오토 월버그 (1938년판 대화 & 노래, Otto Wallburg), 클라우스 W. 크라우스 (1966년판 대화 & 노래, Klaus W. Krause), 만프레드 리스틴펠드 (1994년판 대화 & 노래, Manfred Lichtenfeld) / 노민.
  • 심술이(Grumpy)
이름처럼 심술이 가득한 짙은 눈썹의 험상궂은 인상을 지니고 있다. 난쟁이들 중에서도 가장 심술궂고 완고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늘 불만에 가득찬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실속은 없는 편인지 작중에서 다른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의 말에 껌뻑 죽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태클을 걸었다가[17] 억지로 씻겨지고 꽃과 리본으로 치장까지 당하다가 마지막엔 난쟁이들이 심술이를 버리고 가서 욕조에 입수까지 한다(...). 이후 파티에서도 못마땅해하면서도 백설공주와 난쟁이들이 춤추는데 방해 안되도록 열심히 오르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왕비가 마법을 부려 사람을 해치는 것을 알고 있기에[18] 여자들은 모두 믿어서는 안될 요물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처음에는 백설공주를 몹시 못미더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공주의 따뜻한 성품에 감화되어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19] 나중에는 백설공주가 왕비에게 해코지당했다는 것을 알자 제일 먼저 "우리가 공주님을 구해야 해!"라고 외치며 달려갈 정도가 되고, 공주가 죽었을때 슬퍼하기도 했으며[20], 왕자의 키스로 인해 살아난 공주가 떠날때도 같이 배웅해주기도 했다. 성우는 핀토 콜비그 / 언스트 레갈 (1938년판 대화 & 노래, Ernst Legal), 칼 헬머 (1966년판 대화 & 노래, Karl Hellmer), 롤랜드 헴모 (1994년판 대화 & 노래, Roland Hemmo) / 조동희.
  • 행복이(Happy)
이름처럼 언제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다니는 난쟁이. 작중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기조차 하지 않는다.[21]다른 난쟁이들보다도 얼굴이나 몸매가 동글동글한 편이며, 늘 유쾌해 보이는 눈빛을 지니고 있다. 붙임성이 무척 좋고 긍정적인 성격인 것이, 파티에서도 가장 먼저 나서서 춤이나 요들송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처음으로 백설공주와 인사를 할때도 넉살 좋게 자기 소개를 한다. 또 박사가 씻기를 두려워하는 난쟁이들에게 공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자고 하자, 가장 먼저 나서서 찬성한다. 성우는 오티스 할란 / ? (1938년판), 에드워드 원드레이 (1966년판 대화 & 노래, Eduard Wandrey), 제리 울프 (1994년판 대화 & 노래, Gerry Wolff) / 이재용.[22]
  • 잠꾸러기(Sleepy)
이름처럼 언제나 나른하게 졸린 표정을 짓고 다니는 난쟁이. 작중에서의 일은 캐낸 보석을 박사에게 운반하는 일. 시도 때도 없이 졸기 일쑤이다. 파리가 언제나 따라다닌다는 점을 빼면 존재감이 제일 약하다. 대사도 거의 안치고 나서기 싫어하는 부끄럼보다도 분량이 적다(...). 그런데 일자리에서 동물들의 행동을 보며 왕비가 백설공주를 찾아낸 것을 난쟁이들중 처음으로 눈치챘다. 성우는 핀토 콜비그 / 아리벨트 베샤 (1938년판 대화 & 노래, Aribert Wäscher), 허버트 와이스바흐 (1966년판 대화 & 노래, Herbert Weißbach), 호르스트 켐페 (1994년판 대화 & 노래, Horst Kempe) / 황원.
  • 부끄럼쟁이(Bashful)
이름처럼 언제나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다니는 난쟁이. 쑥스러움을 매우 잘 타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말을 하기를 어려워하며, 툭하면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백설공주가 말 시킬때마다 부끄러워서 시뻘개지며 수염을 꼬곤 하는데 은근히 귀엽다(...). 파티에서 노래부를 때는 수줍어 하며 망설이다가 솔로파트를 소화하기도 한다. 성우는 스코티 매트로 / 아리벨트 베샤 (1938년판 대화 & 노래, Aribert Wäscher), 에리히 피들러 (1966년판 대화 & 노래, Erich Fiedler), 하인즈 파비안 (1994년판 대화 & 노래, Heinz Fabian) / 유동현.
  • 재채기(Sneezy)
이름처럼 항상 재치기를 하고 다니는 난쟁이. 다른 난쟁이들은 그가 재채기가 하는 것이 지겨운 모양인지, 그가 조금이라도 재채기를 할 것 같으면 옆에서 그 코를 막거나 얼굴을 가려서 이를 막으려 한다. 그런데 이 재채기라는게... 거의 바람 계열 초능력자 수준이다. 작중에서 처음으로 재채기 했을 때는 모든 난쟁이들이 무슨 태풍에 날려가듯이 다 날려갔다. 덕분에 파티에서 재채기가 재채기를 하려고 하자 다른 난쟁이들은, 심지어 심술이까지도 무조건 헐레벌떡 숨었다. 성우는 빌리 길버트 / 언스트 레갈 (1938년판 대화 & 노래, Ernst Legal), 월터 블루 (1966년판 대화 & 노래, Walter Bluhm), 프리츠 데코 (1994년판 대화 & 노래, Fritz Decho) / 이호인.
  • 멍청이(Dopey[23])
모든 난쟁이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수염이 나지 않은 난쟁이로, 가장 젊다. 작중에서의 일은 박사가 감별한 가짜와 깨진 것과 같은 불량 보석을 처리하는 일이다. 이동시 난쟁이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가는 만큼 곡괭이에 후미등불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다른 난쟁이들과는 달리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멍청이"라고 불리지만 매우 익살스러운 캐릭터. 항상 자신의 팔보다 훨씬 긴 소매의 옷을 입고 다니는데 때문에 종종 땅에 질질 끌리는 옷자락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성격은 순하며 백설공주를 매우 좋아한다. 백설공주가 배웅의 키스를 해주자 계속 돌아와서 또 키스를 받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고 공주가 죽었을 때도 가장 슬퍼했다. 바보 캐릭터라서 엉뚱한 짓을 자주 한다.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눈에 끼워서 안경을 만들고 논다던가, 욕실에서 비누를 삼키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딸꾹질을 하는데 계속 비누거품이 나온다던가,[24] 파티에서 재채기 위에 올라탄 후 코트를 입어 키가 큰 남자로 분장하여 공주와 춤을 춘다던가.. 참고로 이때 재채기가 재채기를 하려는데 미처 피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하다가 급한 김에 막겠답시고 자기 코를 막았다(...) 광산에서는 박사의 조수 역할을 맡고 있는 모양이지만 워낙에 멍청하다보니 다이아몬드 가지고 장난치거나 욕실에서 심술이한테 둘이 같이 내팽개쳐지자 박사에게 안겨서 애교섞인 눈빛을 보내다가 타박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공주가 죽었을 때 멍청이가 박사에게 안긴 채로 울고 있는 장면이 있는 걸 보면 맏형이 막내 챙겨주는 느낌으로 친한 사이인 모양이다. 말을 못하는 것으로 설정된 이유가 재미있는데, 원래 설정은 그냥 '천연 바보' 캐릭터로 그 설정에 따라 성우 오디션을 진행했으나 마땅한 성우를 찾지 못하자 열받은 디즈니가 "그냥 얘 말 못하는 걸로 설정 바꿔!"라고 했다고 한다.
백설공주의 새왕비. 성우는 루실 라 베른 (본모습 & 변장) / 도라 거슨 (?) (1938년판 본모습, Dora Gerson), ? (1938년판 변장), 지젤라 레이머만 (1966년판 본모습 & 변장, Gisela Reißmann), 지젤라 프릿치 (1994년판 본모습, Gisela Fritsch), 케르스틴 산더스-돈세이프 (1994년판 변장, Kerstin Sanders-Dornseif) / 이선영 (본모습), 김성희 (변장)
  • 마법 거울(Magic Mirror)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누가 예쁜지 결정을 내리는 거울. 그런데 이 거울은 상당히 매너가 없는데, CCTV 역할을 하는 것인지, 도망친 백설공주의 위치를 노출시킨다. 그리고 출연은 없어졌다. 캐안습. 성우는 모로니 올센 / 아리벨트 베샤 (1938년판, Aribert Wäscher), 클라우스 미델 (1966년판, Klaus Miedel), 헤르만 이블링 (1994년판, Hermann Ebeling) / 설영범.
  • 사냥꾼
왕비 신임을 얻은 충직한 행동대원이지만 그 또한 백설공주를 해하기 싫어하는 자이다. 왕비가 공주를 죽이라는 자신의 명을 거역하는 것에 패널티를 주겠다고 하자 그 앞에선 군말없이 바로 꼬리 내리지만 결국 백설공주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고 왕비가 질투에 눈멀었다며 공주를 숲 속에 풀어주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그 뒤 왕비가 백설공주의 심장을 담아오라는 상자에 멧돼지(혹은 사슴)의 심장을 대신 넣어 왕비를 속였지만 거울한테 들통났다. 그런데 패널티를 줄 생각도 못한 정도로 눈이 뒤집힌 그림하일드는 자신이 직접 백설공주를 죽이겠다고 행동을 옮기는데 생각해보면 왕비의 집착과 질투 때문에 오히려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성우는 스튜어트 뷰캐넌 / ? (1938년판), 아놀드 마키스 (1966년판, Arnold Marquis), 클라우스 소넨샤인 (1994년판, Klaus Sonnenschein) / 온영삼.
  • 숲속의 동물들
토끼, 다람쥐, 새끼사슴, 새, 거북이, 라쿤 등 숲에 사는 동물들로 백설공주를 난쟁이네 집까지 안내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준다.

6. 기타 정보


  • 백설공주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처럼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디즈니 단편 중 최초로 사람들이 등장한 애니메이션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걷거나 뛸 때 마치 달에서 뛰어다니는 듯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움직임을 보여줘서 어색한 면이 있다.
  • 화면비가 요즘 영화와는 달리 11:8(1.375:1)이다. 근래의 TV까지 전통적으로 쓰였던 4:3(1.33:1) 보다 가로가 약간 더 긴 정도. 영화 화면비가 가로가 월등히 길어진 와이드스크린으로 바뀐 것은 1950년대 들어서였고, 이 때는 아직 1.375:1이 표준이었다.
  • 난쟁이들이 자기집에 불에 켜져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수풀에 숨는데 그때 외치는 말이 "지미니 크리켓!!!"이다.
  • 난쟁이들이 부르는 노래인 하이 호는 레전설로 여겨져서 현재도 북미권에서 난장이관련 드립을 칠때 "하이호" 거리는 장면이 가끔 보인다. 일본 디즈니랜드의 '일렉트리컬 퍼레이드 드림라이츠'나 미 디즈니 랜드의 '메인 스트리트 일렉트리컬 퍼레이드'에서는 플로트카와 플로트카의 뮤직으로 나온다. 1990~2000년대까지 쓰이던 버전현재 MSEP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버전TDL&WDW&MK모두 같은뮤직을 쓰는듯 하다.
  • '삭제 장면'이 여러 군데 있다. 제작과정에서 시나리오상 씬이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경우야 흔하지만 백설공주의 경우 이 장면처럼 채색되지 않은 동화 러프에 선녹음까지 되어 있는 미공개 장면이 여러 곳 있는 편이다. 요즘 같으면 일단 완성해놓은 가편집본에서 마지막 종편(종합편집)에서 들어내든가 하는 식으로 편집하지만 이 삭제장면들은 원화뿐만 아니라 모든 동화들이 이미 러프 수준으로 지정되어 있고 심지어 사운드트랙 OST까지 전부 녹음을 따 놓은 상태인데 동화작업이 안 끝난 상태다. 초기 애니메이션 제작의 시행착오 를 엿볼 수 있는 부분.
    이 클립들은 현재까지 남아있어서 러프와 사운드트랙을 합쳐서 1993년 백설공주의 재개봉 이후 VHS본으로 출시되었을 때 쿠키 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본작 중에서 멍청이(Dopey)가 먹은 비누의 행방이 이 삭제장면에선 도로 뱉어내는 걸로 나오지만, 이게 본편에선 잘리면서 멍청이는 비누를 먹고 소화시킨 셈이 되어버렸다(...)
  • 배경은 라푼젤과 동일하게 독일지역으로 추정된다.
  • 디즈니 랜드에 'The Seven Dwarfs Mine train'이라는 어트렉션이 있다. 도쿄 디즈니랜드에도 있는데 영화의 내용을 잘 구현했다. 디즈니랜드 최초의 빔 프로젝터 송출식 얼굴이 달린 a-100시리즈 애니매트로닉스가 배치된 어트렉션이다.

7. 파생작


2014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영화에 등장하는 난쟁이 캐릭터를 재해석하여 만들었다.
  • 실사영화
디즈니가 백설공주의 동생 로즈 레드(Rose Red)의 실사영화를 제작한다. 그림 형제의 ‘흰 눈과 붉은 장미[25]’를 바탕으로 제작되며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지자, 동생 레드 로즈와 난장이들이 저주를 풀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각본은 저스틴 머즈가 맡았으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에번 도허티가 수정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백설공주의 여동생인 '로즈 레드'[26]브리 라슨이 맡는다는 루머가 나왔다.#
  • 애니메이션 기반 실사영화
애니메이션 기반의 다른 실사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각본은 에린 크레시, 제작은 마크 플랫이 맡는다. 뮤지컬 영화가 될 것이라 보고있다.# 연출은 마크 웹이 맡는다.#

8. 외부 링크



[1] 대한극장 운영사로, 호반건설과 사돈기업이다.[2] 지금은 사라진 이름이지만 당시만 해도 디즈니는 영세업체나 다를 거 없었고 RKO측이 더 메이저였던 시절이다. 아니, 1940년대만 해도 할리우드 8대 스튜디오 및 5대 메이저 스튜디오에 속할 정도로 대기업급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 재정문제로 무너지면서 사라졌고 이후 1980년대에 부활했지만(영화 햄버거 힐 제작사이다) 마이너 업체로 겨우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3] 이전에 먼저 나왔던 장편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흑백이었다. 컬러로 제작한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이보다 5년 앞선 단편 시리즈 silly symphony(실리 심포니)의 'flowers and trees'(꽃들과 나무들) 편.[4] 일본식 제목을 그대로 직역한 것으로 보인다.[5] 그 영향으로 인해 워너 브라더스와 유니버셜 픽쳐스 등의 타 영화사들은 몇년간 2색 테크니컬러나 시네컬러 기술을 애니메이션에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루니 툰의 메리 멜로디즈는 1934년 초에 컬러화되었지만 디즈니와의 독점 계약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3색 테크니컬러 기법을 제작진 측에서 사용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6] 밀랍 인형 박물관의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7] 지금도 초창기 컬러 영화는, 색감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염색 작업을 진행해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고 한다. 돈과 시간이 들어서 작정하고 복원하지 않으면 시간으로 노화된 컬러 프린트를 쓰는 경우가 잦다. 존 휴스턴의 모비딕이 대표적.[8] 전쟁이 끝난 1945년에 발표된 진 티어니 주연의 그녀를 천국에Leave Her to Heaven 같은 영화나 파웰과 프레스버거 감독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보면 색감 기술에서 확실히 발전했다는걸 알 수 있다.[9] 로토스코핑 기법과 비교되기도 한다. 정확한 기법은 다르더라도 로토스코핑 기법과 비교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인 것은 사실이다.[10] 개봉 당시 뉴욕 극장가에 무려 5주간이나 걸려 있었다고 한다.[11] 디즈니는 홍보 매체로써 라디오를 신문보다 더 선호했다고 한다.[12] 어린이 장난감 코너에서 백설공주를 소재로 한 인형극을 선보인다든가.[13] 실제 스태프 명단을 살펴보면 월트 디즈니는 제작자일 뿐이지 실질적인 감독은 아니다. 이런 배경은 월트 디즈니가 자신을 영상 매체에 자주 노출함으로써 대중에게 인지도를 쌓아갔던 것도 작용했다.[14] 이 단편은 1968년 이후 UA에서 '금지된 11편'으로 분류되어 텔레비전 방송이 금지되었다.[15] 행복이와 중복이다.[16] 심술이가 연주하는 특이한 오르간이나 물을 퍼올리는 기계 등.[17] 그 전에 백설공주에게 메롱을 하고 박차고 나갔다. [18] '왕비는 마녀야!'라고 할 정도였다.[19] 이마에 키스를 받고 멀어지면서 잠시 행복한 표정을 짓다가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일을 나가며, 나무에 코를 박히고 개울에 빠지는 것은 덤이다.[20] 평소 성질대로 화난 표정을 하다 슬픈 얼굴로 바뀌며 고개 돌리고 꺼이꺼이 운다.[21] 심술이 '마녀인 왕비라면 지금 이 자리에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말에 멍청이가 자신의 수염을 들쳐 보자 꿀밤을 먹일 때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때린다.(...) 후반에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고 쓰러졌을 때만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린다.[22] 플로리안 왕자와 중복.[23] '멍청이', 혹은 '8달 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24] 참고로 이 비누의 행방은 본작에서는 그냥 생략되었지만 삭제장면에서는 해프닝 끝에 도로 뱉어내는 것으로 나온다. 아래 '기타 정보' 항목 참조.[25] 영어로는 Snow White and Red Rose. 사실 이 동화의 '흰 눈'은 백설공주와는 동명이인이다.[26] 백설공주의 스핀오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