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루이지 콜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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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재의 모습.
1. 개요
축구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역대 최고의 심판이자 전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판. 우리나라에서는 '''외계인 심판''' 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IFFHS에서 공식적으로 지난 25년동안 최고의 심판으로 발표한 바 있다.#
2017년 1월 22일, FIFA 심판위원장에 선임되었다고 한다.#
2. 약력
1960년 볼로냐 출신으로 어린시절에는 동네축구팀에서 중앙수비수로 뛰었으나 1977년부터 정식으로 심판 코스를 밟아 심판이 된다. 명문 볼로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1] 한 걸로 미루어보아 공부도 꽤 잘한 듯. 은퇴하고 나서 재정고문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동네 축구대회 심판만 보다가 1988년에 세리에 C1과 C2심판으로 승격했고, 1991년에는 세리에 B와 세리에 A심판으로 다시 승격했다. 당시 이탈리아 심판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올라간 편.
1995년부터는 국제대회 심판인 자격이 주어졌으며, 1996년에는 올림픽 결승전 심판을, 1999년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심판을 맡았다. 그리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심판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 결승전 심판을 직접 맡았으며[2] , 이후 UEFA컵 결승전 등 중요한 경기를 자주 맡았다.
이탈리아 심판의 정년은 45세로, 콜리나는 2006년 2월에 정년을 채웠다. 이 때 심판정년이 50세인 EPL등 다른 국가에서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었으나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배려로 특별히 정년이 1년 연장됐다. 그러나 AC 밀란의 협찬사인 OPEL 광고에 출연해 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란이 일자 결국 옷을 벗었다. "규칙 준수는 심판에게 절대적이며 나도 그랬어야 했다."는 게 그의 소감이었다. 참고로 그냥 광고에 나온 것뿐 딱히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니어서 이탈리아 심판 협회에서는 사퇴를 만류했는데도 그냥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J리그등에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냥 개인사업과 해설자로 활동을 하다가 아래 항목의 불미스런 사건을 계기로 다시 축구계로 복귀를 하게 된다.
3. 칼치오폴리와 그 이후
한편, 이탈리아의 칼치오폴리 스캔들 당시 유벤투스의 전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가 UEFA 심판배정 부위원장 파올로 베르가모와의 통화에서 콜리나와 로베르토 로세티 두 심판에 대해 '''"너무 객관적이다. 방해되니까 손 좀 봐라"'''는 불만을 표출하는 내용이 있었다. 덕분에 세리에 A의 심판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는 와중에도 이 둘에 대해서는 결백이 증명되었다.
이렇게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탈리아 축구계에서는 심판고문역으로 직접 콜리나를 선임했다. 요컨대, 심판들을 직접 관리를 하는 심판이 된 것이다. 이후에도 이탈리아 심판고문역과 더불어 UEFA 심판위원장을 역임했고, 2017년 1월 22일부터 FIFA 심판위원장에 선임되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직접 심판활동은 하지 않지만, 자선경기 심판으로는 계속 활동을 했다. 아이티 지진돕기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자선경기 및 2010 유니세프 자선경기의 심판으로도 참가한 바 있다.
4. 판정 및 스타일
반칙은 칼같이 잡아내지만 옐로우 카드, 특히 레드 카드를 주는데 신중한 편이어서 심판이 경기를 지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다.
경기장에서의 카리스마도 대단한 편이라 레드 카드를 주거나 페널티 킥을 줄 때, 항의하면서 대드는 선수들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아래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 오심을 한 경우조차 선수들이 따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실제로, 잡지 인터뷰등에 선수들이 존경하는 심판에 콜리나가 가장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명성은 공짜가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결과인데, 사전에 미리 경기에 관한 모든 것을 파악을 하고 판정을 내리는데 참고했다고 한다. 선수들,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 선수들간의 관계, 두 팀간에 얽힌 역사, 팀의 전술, 코칭스타일, 선수들이 잘 쓰는 발이 어느 발인지 등을 반드시 미리 파악하고 나서야 경기장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선수들이 잘 쓰는 발과 플레이 스타일과 팀의 전술등을 참고하여, 공을 지닌 선수가 크로스를 올릴지, 패스를 할지, 골을 노릴지 미리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반칙을 잘 볼 수 있게끔 선수가 크로스를 노릴 것 같으면 미리 미드필드로 위치하고, 공을 가진 선수가 직접 골을 노릴 것 같으면 미리 골라인 근처에 위치해서 선수들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렇게 꼼꼼한 성격덕에 다른 심판들보다 반칙을 더욱 쉽게 잡아낼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에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훈련은 물론이고 먹는 음식과 경기장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스스로 정한 규칙대로 움직이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3]
다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잉글랜드 전에서 마이클 오언의 다이빙을 잘못보고 페널티 킥을 인정한 실수가 있었다.
(2분 53초가 반칙 장면) 리플레이와 슬로모션으로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오심이었지만 이건 오언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던 거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발을 들어올리는 수위까지 계산해서 걸려 넘어지는 각도를 기가 막히게 연출하였다. 오언의 연기력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경기 다음날(2002년 6월 8일) 오전 신문에서조차 이 페널티킥에 대해 오심소리가 안 나왔다.#,## 오심 아니냐는 말이 나온건 6월 8일 오후에 프란츠 베켄바워가 저 판정 오심같다는 말이 나온 뒤였고#, 이후 오언이 이를 인정하면서 오심으로 확정된 것.
사실 오언의 페널티 킥이 잘못 되었다면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따지려다가 말았고, 다른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 오언의 연기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콜리나 심판이라면 제대로 봤겠지?"'''라고 믿은 선수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콜리나는 비디오 판독 도입 여론이 처음 거론된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심판이었다. 2009년 기사. 당시만 해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심판의 위상이 격하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고 특히 제프 블래터 FIFA 회장과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이 모두 비디오 판독 도입에 반대 입장[4] 이라 심판입장에서 말하기 쉬운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비디오 판독이 올바른 판정에 도움이 된다며 도입에 찬성을 표했다. VAR이 도입된 2016년 이후에도 항상 지지해 왔다.# 다만, 심판없이 비디오 판독만으로 판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는 편이며 비디오 판독을 심판이 활용해 올바른 판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5]
5. 기타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주제 무리뉴 감독이 칭찬한 유일한 심판.''' 2005년 당시 첼시와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서 일어난 일로, 드록바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옐로 카드 2장을 받고 퇴장(후반 9분)당하면서 첼시의 1-2 역전패로 끝났는데, 당시 심판이던 스웨덴인 안데르스 프리스크(Anders Frisk)가 오심을 저질렀다는 것으로[6][7] 이에 분노한 무리뉴 감독이 2차전 심판은 콜리나가 맡아야 한다고 하면서 나왔다.
참고로 UEFA는 무리뉴의 심판을 교체해 달라는 요청에 헛소리 말라고 했고, 2차전에서 첼시는 바르셀로나를 4-2로 이기고 8강에 올라간다.런던에서의 심판은 세계 최고의 심판인 콜리나가 맡아야 한다. 인성으로나 실력으로나 완벽한 심판이다.#
모든 선수들과 감독들은 콜리나가 최고의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잘못된 판정으로)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2차전에서 콜리나가 주심을 맡게 되었는데, 76분 데이미언 더프의 코너킥을 존 테리가 머리로 받아 넣으면서 합산스코어 5-4가 되어 첼시가 8강에 진출하였으나 사실 이는 콜리나 주심의 명백한 오심이었다. 더프의 발을 떠난 공이 테리에게 날아올 때 첼시의 카르발류가 바르셀로나의 수문장이었던 빅토르 발데스를 뒤에서 껴안으며 붙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 발데스는 제대로 점프도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골을 헌납하였기 때문이다. 콜리나 본인도 경기 후 영상을 보고서는 "내가 완전히 잘못 본 것이다. 그 장면을 제대로 보았더라면 골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양심고백을 하기도 했다.#
(4-4로 끝났으면 원정골을 2골 넣은 바르셀로나가 8강에 진출했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기가 끝난 후 호나우지뉴가 격분하며 콜리나에게 항의를 해 보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명세에 힘입어 피규어가 발매된 적도 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인 Pro Evolution Soccer 3[8] 의 표지모델로 나온 적도 있다.
스포츠계에 헌신한 공로로 헐 대학(Hull University-잉글랜드)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분데스리가 최고의 심판으로 불린 마르쿠스 메르크(Markus Merk)와 콜리나 중 누가 최고의 심판이냐는 설문조사에서 이긴 바 있다.#
6. 수상 내역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우수 심판.
세리에 A 올해의 심판상 7회 수상. - 역대 최다 수상.
IFFHS 올해의 세계 베스트 심판상 6회 수상 - 역대 최다 수상.
이탈리아 공화국 명예 공로 훈장(3등급).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9] 심판으로 첫번째 입성.
[1] 볼로냐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이탈리아의 명문대학이다.[2] 그 밖에 8강전 한국 VS 스페인의 경기에서 경기 감독관으로서 참관한 적이 있다고 한다.[3] 이상의 내용은 그의 자서전인 'The Rules of the Game'에 나와있다.[4] 결국 축구에서 VAR을 도입한 건 블래터와 플라티니가 회장에서 물러난 2016년 클럽 월드컵 이후부터였다. 단, 블래터는 2012년 이후에 골 라인 판독까지는 찬성한 바 있다.[5] 특히 2011년쯤 골라인 판독 기술 도입으로 부심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명백한 반대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 발언으로 콜리나 심판이 비디오 판독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온적이 있는데 실제 발언은 부심이 골라인만 보는게 아니라, 프리킥, 코너킥 기타 다양한 분야에서 심판에게 도움을 주는 반면에 비디오 판독은 이걸 못하니 부심을 없애면 안된다는 식으로 발언이었다. 비디오 판독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골라인 판정 도입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6] 이 때문에 프리스크는 첼시팬에게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살해해 버리겠다' 라는 협박을 들었고,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심판직을 사퇴하고 만다.[7] 여기서 재밌는 점은, 웬만한 심판들은 싸그리 다 욕먹는 이 바닥에서 프리스크 주심은 '최고의 No.2 심판'(No.1은 당연히 이 문서 주인공)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명심판이었다는 것.[8] 정발명 월드사커 위닝일레븐 7. 국내 표지엔 없다.[9] Hall of fame del calcio italiano. 2011년부터 만들어진 이탈리아 명예의 전당. 이탈리아축구협회(FIGC)가 정식으로 후원하는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