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왕국

 




'''핀란드 왕국'''
'''Suomen kuningaskunta'''
'''Konungariket 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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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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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 1919년
위치
핀란드, 러시아 일부
수도
헬싱키
인구
1920년 3,000,000명
정치 체제
군주제
국가 원수

언어
핀란드어, 스웨덴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핀란드 정교회
민족
핀란드인, 스웨덴인, 러시아인, 카렐리아인
주요 사건
1918년 성립
1919년 멸망
통화
핀란드 마르카
성립 이전
핀란드 대공국
멸망 이후
핀란드 공화국
1. 개요
2. 역사
3. 국왕
4. 섭정
5. 총리


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도중에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단기간 동안 핀란드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2. 역사


러시아 혁명에 의해서 러시아 제국이 폐지되는 것을 본 핀란드 대공국의 의회는 1917년에 니콜라이 2세의 핀란드 대공위 퇴위와 핀란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당시 의회 권력은 핀란드 사회민주당 등의 사회주의 세력이 가지고 있었기에 공산화를 두려워한 보수주의 세력이 집단 반발하였고, 러시아처럼 백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핀란드 내전을 일으켰다.
당시 의회 권력을 사회주의 세력이 잡기도 했고 이들의 지지세는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군대는 없었다. 반대로 보수주의 세력은 수는 적어도 비교적 잘 훈련된 군사들과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같은 유능한 군인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백군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독일 제국의 힘을 빌려 적군들을 토벌했다.
그 대가로 핀란드는 1918년에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매제인 프리드리히 카를 폰 헤센카셀을 핀란드 국왕으로 추대했고 프리드리히 카를은 임시로 '카를레 1세'로 불렸다. 카를이 핀란드에 와 정식으로 즉위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일단은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Pehr Evind Svinhufvud)가 섭정이 되었으며, 카를은 10월에 정식으로 핀란드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과 동맹국이 항복한 11월에, 협상국은 핀란드에 독일 황가 인물을 왕위에 앉히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고, 당시 핀란드 왕국의 총리 라우리 잉만(Lauri Ingman)이 프리드리히 카를에게 왕위 포기를 권유했다. 카를은 왕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왕위를 포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스빈후부드가 섭정에서 물러나고, 뒤이어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이 섭정이 되었다. 왕당파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만네르헤임은 거부했다.
한편 내전으로 많은 사회주의 인사들이 학살당하거나 소련으로 망명하고 남은 적군 가담자들은 총선 참가를 금지당했지만 1919년 총선에서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38%의 득표율을 보이는 등[1] 사회주의 세력은 여전히 적지 않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세력이었으며, 사회민주당과 같은 사회주의 세력은 물론이고 다양한 정치 집단 중에서 다수 세력(의회 의석의 75% 정도)이 공화국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핀란드 의회는 1919년에 공화국 체제와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채택했고 오늘날의 핀란드가 형성되었다.

3. 국왕


핀란드 왕으로 내정된 프리드리히 카를의 칭호는 핀란드 왕 및 카렐리야 왕, 올란드 공, 라플란드 대공, 칼레발라포흐욜라의 주인 '''카를레 1세'''(Kaarle I, Suomen ja Karjalan kuningas, Ahvenanmaan herttua, Lapinmaan suuriruhtinas, Kalevan ja Pohjolan isäntä)였다고 한다. 다만 카를레 1세라는 칭호는 비공식적인 표현이었고, 당시 핀란드 의회에서는 '카를레 1세'라는 칭호를 공식화하자는 주장 이외에도 프리드리히 카를에게 '배이뇌 1세(Väinö I)'[2] 라는 새로운 칭호를 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카를이 핀란드 왕에 즉위하지도 못한 채 왕위를 포기하여 공식적인 국왕의 칭호는 정해지지 못했다.
  • 프리드리히 카를 폰 헤센카셀(1918)

4. 섭정



5. 총리


  •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Juho Kusti Paasikivi) (1918)
  • 라우리 잉만(Lauri Ingman) (1918-1919)
  • 카를로 카스트렌(Kaarlo Castrén) (1919)
[1]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은 내전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여전히 사회민주당에 당적을 두고 총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2] 핀란드 신화의 영웅인 '배이내뫼이넨(Väinämöinen)'에서 유래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