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라인파르트

 



이름
'''Heinrich Friedrich "Heinz" Reinefarth)'''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하인츠 라인파르트
출생
1903년 12월 26일, 서프로이센 그네젠
사망
1979년 5월 7일, 서독 질트
복무
슈츠슈타펠 (1932년 ~ 1945년)
최종계급
무장친위대 슈츠슈타펠 중장
주요 참전
폴란드 침공
바르샤바 봉기
주요 서훈
기사철십자 백엽훈장
1. 개요
2. 초기 행적
4. 전후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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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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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슈츠슈타펠 지휘관이자 전후에는 의원변호사로 일했다. 볼라학살의 책임자이며 친위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활동을 하며 살았다.

2. 초기 행적


당시 독일제국령이던 서프로이센의 그네젠(현재는 폴란드령 그녜즈노)에서 태어난 라인파르트는 예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다. 의용군에 참가한 후 1932년 8월 1일나치당에 입당한 후 돌격대에 참가했지만 1932년 12월부터 친위대로 이적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 전부터 육군에서 훈련을 받은 후 대전중이던 1939년부터 1942년에 걸쳐 육군 제 337 보병연대에 속한 소대장이 되어 실전에 참가한 라인파르트는 1940년 6월 25일에 하사관으로서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942년 4월 20일에는 경찰소장으로 임명되어 육군을 떠나 친위대와 경찰업무에 임했다. 1942년 6월부터 체코 보호령의 민정장관으로 일한 라인파르트는 질서경찰 본부로 이적한 후 1944년 1월 29일부터 사망한 테오도어 베르켈만 친위대 대장의 후임으로서 <바르테>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44년 12월 30일까지 재직한 라인파르트는 그 사이 친위대 중장으로 승진했다. 바르샤바 봉기당시 진압군 부대의 지휘를 맡아 바르샤바의 민간인 살해에도 관여한 라인파르트는 반란진압의 공적으로 기사철십자 백엽훈장을 받았다. 1944년 12월부터 1945년 2월초까지 <XVIII SS Armeekorps>의 지휘관, 1945년 1월부터 3월까지 쿠르스틴 요새 방어전 부대의 지휘관으로 일했다.

4. 전후 행적


그는 독일의 패전 후 폴란드 정부로부터 바르샤바 봉기진압 책임자로 신병인도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미국영국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라인파르트를 증인으로 이용하기 위해 신병인도를 거부했다. 뉘른베르크 재판 후,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함부르크 지방재판소에서 무혐의로 석방된 라인파르트는 1951년에 베스텔란트의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1962년에는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주의 의원으로도 당선되었다. 1967년에 임기를 마친 후 변호사로 일한 라인파르트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재차 신병인도 요구를 받았지만 당시 공산진영과의 냉전으로 인해 서독정부의 비협조로 끝내 인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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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라인파르트
라인파르트는 1979년에 질트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