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
1. 개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을 가리킨다.
2. 특징
- 러닝타임이 서구나 일본에 비해 (현재 기준으로) 짧은 편이다. 서구나 일본의 경우 4~5분대가 많은 반면, 한국은 3분대가 많다.
- 부제목의 경우 한글 맞춤법에서는 줄표(—)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한국 음악계는 대부분 소괄호를 애용한다. 일본의 경우 물결줄표(〜)를 많이 사용하며, 소괄호를 사용한 제목도 가끔 보이는 편이다.
- 대부분 보컬리스트나 래퍼가 중심이며 악기는 반주에만 필요한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솔로 가수나 댄싱 팀이 주류이고, 밴드 음악은 입지가 좁다.
3. 역사
한국은 1970년대 초반까지 상당한 수준을 지닌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는 '훌륭한 곳'이었다. 비록 폐쇄적인 당시 사회구조의 특성상[1] 신속하게 해외의 트렌드가 수입되기는 힘들었지만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던 국가였다. 신중현 사단의 아티스트들을 비롯해서 산울림과 같은 좋은 록밴드들이 존재했고 조영남, 송창식, 이장희, 김민기 등 동아시아 포크 음악 중 높은 수준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뮤지션들이 많았다. '''게다가 장르도 다양했다.''' 당시 일본은 일관적으로 백인 음악인 록 음악, 메탈 음악이 발전을 했던 반면, 한국은 흑인 음악, 다시 말해 솔, 펑크 같은 음악이 강세였다. 심지어 당시 클럽[2] 에서 브라스 세션을 갖춘 대형(열 명 내외의 대규모) 밴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1967년 음반법 제정 후 사전심의제가 도입되고 1970년대 중반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시대가 등장하면서 망했다. 모든 음반에 대한 검열이 '''미풍양속 보존, 퇴폐문화 추방'''의 명목으로 강화되었고 한국 대중음악은 그야말로 '''학살'''당했다. 이 시점부터 한국의 대중음악은 돌이킬 수 없는 데미지를 입게 된다. 철저히 탈색되고 철저히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고 '듣기 좋은' 음악으로 구분되는 것만 음반 발매가 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철저히 수입이 금지된 것이 바로 펑크 록이었다. 이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듣고 있던 음악인데 유일하게 한국인들만 못 들었다. 신문 지상에 해외토픽 수준으로 잠시 다뤄진 적은 있지만 말이다. 몇년 뒤 일본 양키문화가 펑크문화라는 이름을 뒤집어 쓰고 한국에 상륙하는 희한한 사건도 발생한다. 이러한 검열은 90년대 후반에 가서야 풀린다. 이 시기에 과거에 금지됐던 음반이 드디어 발매되거나, 금지곡이 삭제된체 부분 발매됐던 음반이 완전한 형태로 재발매되었다.
한때 대중음악계는 작곡가나 팬들이나 표절에 대한 문제인식이 무뎠던 시절인데, 사실 1970~1980년대 당시야 사회 전반적으로 저작권 의식이 미비한데다 문화규제도 심했던 시절이라 외국소설을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그대로 연극으로 만든다거나 외국 만화책(주로 일본)을 복사해서 해적판으로 푼다거나 하는 식의 일이 그때는 위낙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고 짝퉁제품도 꽤나 많이 나돌기도 했다. 사실 듣는 음악이 그런 것들 뿐이니 일부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게 표절인지도 잘 모른다.[3] 긴 말 할 필요 없이 김도훈이나 박진영 항목을 한 번 보고 오는 게 빠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작권 개념이 자리를 잡고 인터넷 때문에 해외 음악에도 대중들이 많이 노출되면서 설령 그럴싸하게 표절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대중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슬슬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한국 음악계에 생겨났다. 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 가수라고 칭하는 미디어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돌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가수이지만, 현재는 음악뿐만 아니라 예능, 연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는, 종합 엔터테이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연습생이라는 훈련 문화, 철저히 상업화/전문화된 제작과 프로듀싱, 거대 팬덤과 막대한 제작/활동비용 등이 특징이다.
1990년대 음반시장 황금기에는 음반 100만 장을 파는 밀리언셀러 가수도 여럿 있었지만 MP3 음원으로 시장의 주 플랫폼이 바뀌고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한 불법 복제가 일어나면서 2000년을 기점으로 음반시장이 미칠듯이 축소되어서 음반시장의 큰 축소를 불렀다. 이게 단순히 축소된 수준을 넘어서 '''오프라인 시장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수준'''이라고 봐도 할 말이 없는데 2000년에 4000억원 가량이었던 오프라인 음반시장이 2005년에는 '''1000억원에도 못 미칠 수준으로 추락했고''' 그 틈을 온라인 음반시장이 메꾸는 식으로 음악시장이 재편되었다.
역으로 이 때문에 2000년대 이후로 J-POP이 세계시장에서 죽을 쑤고 K-POP이 세계적으로 흥하게 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한국은 음반시장 재편이 매우 발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음원을 제공하는것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펼친데 반해 일본은 기존 오프라인 음반시장에 의존하는 식으로 시장을 유지하려고 보니까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를 통한 음원제공에 대해 소극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죽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음악 시장이 기존의 음반에서 음원 기반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고 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리는 음악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음원 제작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수익 분배 문제가 심각하며, 기타리스트 신대철도 이 문제에 관해 비판한 바 있다. # 하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들 상당수가 본업인 음악 외에도 광고나 방송활동 등으로 벌어들이는 비중이 상당하고, 심지어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아예 수익 비중이 역전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2010년대부터는 인디 음악도 주목받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20~30대를 중심으로 브로콜리 너마저나 장기하, 쏜애플 등의 인디 뮤지션에 대한 인지도나 호감도가 늘어났고 케이블 방송사들도 이를 신선한 컨텐츠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양한 록 장르, 하드 록이나 메탈 장르는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클래식은 조성진이라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늘리며 클래식 산업도 동반하여 인지도가 '''미묘하게''' 상승하고 있다. 또, 힙합이 매우 대중적인 음악의 장르가 되었다. 특히 10대 ~ 30대에게 매우 인기 있는 장르이다.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럽던 2020년 중반에 낸 신곡 Dynamite를 통해 '''21세기 최초로 빌보드 차트 HOT 100에서 1위를 한 아시아 아티스트이자, 비영어권 가수 최초 & 전세계 5번째로 Hot 100, Artist 100, Billboard 200차트 모두 1위를 석권한 아티스트'''가 되는등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10월 중순에는 빌보드 차트 핫100 1위, 2위를 동시 석권[4] 하였는데, 이 기록을 세운건 역대 그룹중 비틀즈, 비지스, 아웃캐스트, 블랙 아이드 피스의 4개밖에 없었다고 한다.
4. 한국의 음악 장르
4.1. 국악
4.2. K-POP
5. 노래방 수록 목록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사실상 한국에 수입되는 모든 음악은 검열을 거쳤고, 조금이라도 정치적, 문화적으로 불순하다 싶으면 방송금지를 당했다. 게다가 경제력이 낮았기 때문에 해외 음반이 제때 수입되는 경우도 드물었다.[2] 그 때는 클럽과 나이트클럽의 구분이 없었다. 뮤지션들은 대부분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했다. 공연하는 클럽을 나이트와 다르게 구분하는 것은 1990년대 중반 인디 음악이 발전하고 본인들만의 무대를 작은 술집에서 꾸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생긴 새로운 개념이다. 여담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클럽과 나이트클럽이 다른 성격의 장소다"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면 놀란다.[3] 사실 대중음악 작곡가는 인디 쪽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높으신 분들이 레퍼런스 뽑아주면 그것과 비슷한 거 작곡하는 게 일인지라 어쩔 수 없다. 한국 대중가요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4] 1위는 BTS가 피처링한 Savage love, 2위는 다이너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