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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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북일고 감독 시절
前 KBO 리그 빙그레 이글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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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시절.
북일고와 한양대를 졸업하였으며, 1986년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였다. 포지션은 포수로, 당시 주전 포수였던 유승안보다 공격력이 약한 대신 수비력이 좋은 편이었다. 공격력 또한 당시 포수들이 거의 멘도사 라인 수준의 타격이었던 것에 비해 타율이 2할 초중반대로 나쁘지 않았고, 유승안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한 방이 있는 타자였다. 때문에 공수겸장이라는[3] 이미지가 있던 선수.
유승안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주전 포수로 출전하였으며, 특히 북일고 선후배 사이였던 에이스 이상군과 자주 배터리를 이루었다. 주간야구가 1992년 중반에 최고의 포수를 꼽을 때[4] 김동기 다음의 2위를 차지했다.[5]
그러나 어린 선수들을 선호하는 강병철 감독이 1994년 부임하면서 밀려나기 시작해, 다음해 입단한 강인권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빼앗기고 그 해 말 현대 유니콘스 박은진과 맞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1996년부터 주전포수 자리를 꿰찬 장광호의 벽을 넘기 힘들었으며, 1997년 말 은퇴하고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나무위키에는 항목이 굉장히 늦게 생겼는데, 이는 한화 선수가 아닌 현대 선수로 은퇴했고 한화로 바뀌기 전인 빙그레 이글스 시절 활약한 선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은퇴 후에는 모교인 북일고의 감독을 역임하며 팀을 수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고, 많은 제자들을 프로에 입단시켰다.[6]
천안북일고 감독 시절
1. 소개
前 KBO 리그 빙그레 이글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포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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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시절.
북일고와 한양대를 졸업하였으며, 1986년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였다. 포지션은 포수로, 당시 주전 포수였던 유승안보다 공격력이 약한 대신 수비력이 좋은 편이었다. 공격력 또한 당시 포수들이 거의 멘도사 라인 수준의 타격이었던 것에 비해 타율이 2할 초중반대로 나쁘지 않았고, 유승안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한 방이 있는 타자였다. 때문에 공수겸장이라는[3] 이미지가 있던 선수.
유승안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주전 포수로 출전하였으며, 특히 북일고 선후배 사이였던 에이스 이상군과 자주 배터리를 이루었다. 주간야구가 1992년 중반에 최고의 포수를 꼽을 때[4] 김동기 다음의 2위를 차지했다.[5]
그러나 어린 선수들을 선호하는 강병철 감독이 1994년 부임하면서 밀려나기 시작해, 다음해 입단한 강인권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빼앗기고 그 해 말 현대 유니콘스 박은진과 맞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1996년부터 주전포수 자리를 꿰찬 장광호의 벽을 넘기 힘들었으며, 1997년 말 은퇴하고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나무위키에는 항목이 굉장히 늦게 생겼는데, 이는 한화 선수가 아닌 현대 선수로 은퇴했고 한화로 바뀌기 전인 빙그레 이글스 시절 활약한 선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은퇴 후에는 모교인 북일고의 감독을 역임하며 팀을 수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고, 많은 제자들을 프로에 입단시켰다.[6]
3. 기타
- 아들은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시카고 컵스를 거쳐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외야수 김동엽이다. 기술적, 정신적 조언을 많이 해준다고. 김동엽이 KBO 해외파 트라이아웃 참가 전까지 같이 개인훈련을 했다고 한다. 예의범절을 강조했는데 아들에게 "운동을 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라고 말씀하신다"며 "인사를 잘하고, 힘들어도 공 하나라도 더 주워야 저한테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자주 하신다"고 김동엽은 밝힌바 있다.
- 북일고 감독을 그만 둔 이유가 이상군의 한화 감독 취임을 확신해서였다는 설이 있었으나 실은 사생활과 관련한 문제 때문이었다.
- 박재홍이 해설 중 밝히길 신인 때 조언을 해주는 등 자신을 굉장히 잘 챙겨줬다고 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1] KLPGA 프로 골프 선수[2] 1981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3] 1990년 기록한 0.287의 타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역대 이글스 포수 중 최고 타율이었으나 2019년에 최재훈이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0.290을 기록했다.[4] 전 해의 한일 슈퍼게임에서 후루타에게 당했던 여파인지 포수의 수비능력 평가도 비중이 높아졌다.[5] 3위는 장채근[6] 조규수, 김태균, 안영명, 나주환, 김창훈, 유원상, 김회권, 홍성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