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

 


'''한영애
韓榮愛 | Han Young-Ae
'''
<colbgcolor=#c06ae9><colcolor=#fff> '''출생'''
1956년 7월[1] (68세)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 학사)
'''별명'''
딸기님[2], 나무님[3]
'''종교'''
불교
'''데뷔'''
1976년 해바라기 1집 앨범
'''SNS'''

1. 개요
2. 생애 및 가수 활동
2.1.1. 나는 가수다 2에서 불렀던 곡들
2.2. 음악성
3. 음반 목록
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여자 가수이며 연극 배우이다.

2. 생애 및 가수 활동


신촌 일대에서 그냥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를 부르던 중에 1976년 해바라기의 리더 김의철의 발탁으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한영애 자신은 1986년 데뷔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솔로 앨범 1집을 발매한 게 이때이기 때문. 여하튼 한영애는 해바라기 1, 2집에서 보컬로 활동했다.
[image]
이와 비슷한 시기에 솔로 앨범을 준비해 내놓으려고 했지만 발매 직전에 음반사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엎어버렸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다른 음반사가 그녀에게 말 한마디 없이 '''무단으로 그녀의 음반을 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나마 이 음반도 대중들의 외면을 받으며 실패했다.
그녀는 일련의 사태로 가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친구의 대학 졸업 작품을 보러 갔고 그 뒷풀이 현장에서 연극 배우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한영애는 주저없이 배우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이기도 하니.
6년에 걸쳐 연극 배우로 활동한 후 3년 정도 공백기를 가진 한영애는 자신의 길은 가수라고 생각해 다시 가수로 돌아오게 된다.[4] 1986년 1집 "여울목"을 냈으며 이 음반은 큰 호응을 얻었다.
동시에 1986년부터 신촌블루스 활동을 하는데 신촌블루스 1집 "신촌Blues"에서 소울풀한 창법을 보여줘 큰 반향을 얻었다. 이어서 1988년 자신의 2집 앨범인 "바라본다" 를 냈는데 이 음반은 한영애의 대표곡들이 수록된 명반이 되었다.
1992년 3집 "한영애 1992"에는 한영애의 또 다른 명곡인 "조율"이 수록되어있는 걸로 유명하다. 이듬해인 1993년 63빌딩에서 "아.우.성" 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고 이 콘서트 실황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개인 콘서트나 연극 배우 활동을 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2년 5월에는 보이스코리아 시즌1에 출연하여 Super Voice4와 본인의 노래 누구없소, 조율을 부르기도 하였다.#
2014년 11월 26일, 오랜만에 새 앨범 <샤키포>가 발매되었는데 그에 앞서 절판되었던 "아우성" 음반과 4집 "불어오라 바람아"가 8월에 재발매되었다.
2016년 12월 3일 박근혜 퇴진 국민 비상 행동 6차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갈증', '내 나라 내 겨레', '홀로 아리랑', '조율'을 열창하며 "여러분 지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에는 서초동 검찰 개혁 집회, 노무현 대통령 추모 공연 등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7년간 EBS 라디오 프로그램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를 진행했다.
2017년 10월 23일부터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한영애의 문화시대"를 진행한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
2019년 10월 26일, 제11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여 공연했다.

2.1. 나는 가수다 2 출연


한동안 대중들과 약간 거리가 있던 그녀는 2012년 나는 가수다 2에 전격 출연했다. 그녀의 출연은 예상한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제주도에 살고 있던 그녀를 김영희 PD가 직접 찾아가서 설득해 출연했다고 한다.
첫 무대에서 손시향의 "이별의 종착역"을 선곡했으며 편곡이 조금 어지러웠다는 지적이 있긴 했으나 그녀의 블루스를 잘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고별가수전에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선곡했는데 불과 이틀만에 이 곡을 알고서 불렀다고 한다. 개성이 워낙 뚜렷해서 다들 어려워하는 이소라의 노래를 한영애는 더욱 깊은 절망과 초탈이라는 느낌으로 승화시켰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녀만이 가능한 무대라는 찬사를 받았다.
7월에는 B팀 예선전에서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 를 불렀는데 원곡이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살풀이'''로 원곡을 재해석해 한영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처음으로 상위권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소향 때문에 조금 묻힌 바가 없진 않지만.
이후 7월의 가수전에서는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를 선곡했는데 편곡이 썩 좋지 않아서 회식비에 당첨되었다.
8월 A팀 경연에선 '''이문세의 "옛 사랑"을 불렀으며 비록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독특한 편곡과 한영애의 음색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있었으며 인터넷상에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원성이 터져나왔다. "만약 상위권이었다면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나 2NE1 <Lonely>를 부르려고 했는데..."하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5]
'''8월 고별가수전에서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를 불러서 1위'''를 했다. 전인권과 음색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편인 한영애에게는 '''딱 맞는 선곡인 데다가 바람이 분다와 마찬가지로 원곡의 쓸쓸한 정서를 한영애식으로 더욱 극대화해서 어둡고 음울한 정서'''를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고별가수전에서 이런 무대가 나왔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매우 훌륭한 무대였고, 많은 이들이 나가수에서 한영애의 무대 중에 사랑한 후에가 최고라고 꼽을 정도다.
9월 B팀 경연에서는 보니엠의 써니의 주제곡인 "Sunny-Boney M"을 불렀으며 파격적인 금발을 하고 무대 위에 올라왔지만 이번에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빠르고 느린 템포의 곡을 다 집어넣는 바람에 편곡이 어지러웠다는 평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블루스로 내공을 다진 한영애가 리듬을 요리하는 솜씨를 인증한 무대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왜 한영애가 하위권이냐는 원성이 다시 보였다.
9월 고별가수전에서 강산에의 "라구요" 를 불렀다. 경연 녹화 전날에 남한산성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열창을 하는 바람에 성대결절이 와서 의사는 경연을 포기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한영애는 탈락하고 오겠다고 할 정도. 많은 이들이 그녀의 하차를 예상했으나 오히려 정엽이 하차했다. 목 상태를 감안한다면 최선의 무대였다는 평가가 많다.
10월 A팀 경연에서 충격스럽게도 녹화일 기준으로 나온지 10일 밖에 안 되는 나얼의 "바람기억" 을 불렀다. 가사를 중시하는 한영애의 가수 철학의 입장에서 훌륭한 가사의 이 노래가 선곡된 건 당연한 결과인 듯. 최신곡이라 나얼의 원곡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거의 편곡을 가하지 않았고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으나 하필 그 경연에서 국카스텐과 시나위가 빅매치를 펼쳤고, 게다가 이영현, 김연우, 조장혁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라 결국 낙킹온 때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별전행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당시에는 최신곡인 바람기억을 선곡한 죄로 나얼의 원곡을 망쳤다는 거센 비난까지 들었다.
'''10월 고별 가수전에서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부르면서 2위를 했다. 고별가수전에서 보여준 또한번의 역대급 무대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11월 예선전에서 부활의 "회상 I"'''을 불렀다. 이 곡은 "옛 사랑", "사랑한 후에",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함께 한영애 나가수2 최대의 명곡으로 꼽힌다.
묘하게 그녀의 무대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호불호가 엇갈린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이소라나 조관우도 겪었던 바이지만 한영애만큼 무대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가수도 없는 듯. 이는 한영애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에 대한 호불호가 큰 탓으로 보인다. 대체적인 나가수 팬덤의 분석으로는 10-20대들은 한영애에게 거의 표를 주지 않는걸로 보이며 중장년층에게 한영애의 무대가 더 어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깔끔한 보컬을 선호하는 젊은 층의 입장에서는 한영애가 어필을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나가수에서만 보여지는 것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가수다.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고 한영애 자신도 이런 호불호에는 거의 초탈한 면모를 보이지만 '''한영애가 음악적으로 이룬 성취는 나가수 무대만으로 평가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게다가 '''나가수 2에서 가장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가수가 바로 한영애'''다. 블루스로 쌓은 내공에 연극 배우 경험으로 드라마틱한 무대까지 선보이는 한영애를 단지 순위와 허스키 보이스의 호불호만으로 평가하기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2.1.1. 나는 가수다 2에서 불렀던 곡들


경연
노래
순위
6월 B조
이별의 종착역 - 손시향
하위권
고별가수전
바람이 분다 - 이소라

7월 B조
Knockin on heaven's door - 밥 딜런
상위권
7월의 가수전
미지의 세계 - 조용필
6위
8월 A조
'''옛 사랑''' - 이문세
하위권
고별가수전
'''사랑한 후에''' - 들국화
'''1위'''
9월 B조
Sunny - Bobby Hebb/Boney M.
하위권
고별가수전
라구요 - 강산에

10월 A조
바람기억 - 나얼
하위권
고별가수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2위
11월의 가수전 예선전
'''회상''' I - 부활
탈락

2.2. 음악성


7080부터 화려했던 여자 레전드. 음색이나 발성 감성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여가수 중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는 인물. 흉내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서 그녀가 부른 노래라는 걸 누가 들어도 금방 알아낼 정도로 유니크한 음색의 소유자다.
한영애가 데뷔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여가수가 허스키하고 거칠게 노래를 부른다는 건 상상하기가 힘들었던 일이었지만 윤시내와 더불어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가 한국 가요계에 여성 보컬의 다양성을 가져온 것은 부정하기 힘들 듯. 물론 인기는 윤시내가 더 많긴 했으나. 또한 블루스 장르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6]
따라서 음악적 스펙트럼에 있어서도 한영애는 R&B, 포크록, 트로트, 블루스 등 매우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그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은 대가이다. 1999년 발매한 5집에서는 트립합을 선보이기도 했고,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한국 가요들을 리메이크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고, 가장 최근에 낸 6집에서도 R&B, 레게 음악을 시도한 바 있다.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해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만을 보고 음악적 스펙트럼을 평가하기엔 앨범 디스코그래피가 너무도 아쉬울 정도.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 탓에 저음 위주의 가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웬만한 여자 가수들도 소화하기 힘든 초고음을 난사하는 것도 매우 쉽게 하는 보컬. 어반자카파조현아(가수)는 봄여름가을겨울 방송에서 한영애 2집 타이틀 곡인 바라본다[7]를 듣고 '이 노래 엄청 높네요ㄷㄷ'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그야말로 음역대가 엄청 넓다. [8]
많은 무대 경험과 오랜 연극 배우 생활 덕에 이미 젊을 때부터 탄탄한 발성을 보유하고 있었고 목관리도 훌륭하게 되어 있어서[9] 지금도 30년전 발표된 누구 없소를 음원이랑 똑같이 소화해낸다.

3. 음반 목록


  • 1집 여울목: 1986년 발매. 한영애의 첫 앨범으로 한돌이 작사·작곡한 "여울목" 이 타이틀곡. 그 외에 엄인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도시의 밤", 이정선의 "건널 수 없는 강"도 수작으로 꼽히는 수록곡들.
  • 2집 바라본다: 1988년 발매. 한영애의 최고 걸작 앨범으로 꼽히는 앨범으로 한영애하면 떠오르는 대표곡 대부분이 이 앨범에서 나왔다. 한영애가 자신의 보컬 정체성을 획득한 앨범이기도. 윤명운이 작사·작곡한 "누구 없소" 나 엄인호가 작곡한 "루씰", 이승희가 작사작곡한 "코뿔소" 등은 한영애의 대표곡 넘버에 손꼽히는 곡들이다. 유재하가 만든 "비애" 도 수록. 타이틀 곡이자 김수철이 작곡한 "바라본다"는 후덜덜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코러스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름아닌 우순실, 전인권, 김현식, 정윤정, 박주연, 김련, 윤명운, 홍찬숙, 정정은의 올 스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거물들. 한영애에 의하면 이들에게 코러스를 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들었는지 녹음시간에 맟춰서 스튜디오에 들어왔다고. 앨범 속 표지를 보면 이들 모두가 모여 사진을 찍은 것을 볼 수 있다.[10]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9위에 선정되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3집: 1992년 발매. 한돌이 작사·작곡한 "조율" 은 한영애의 또다른 대표곡으로 꼽힌다. 모던 포크와 락을 시도한 앨범.
  • 라이브 앨범 아.우.성: 1993년 발매. 63빌딩에서 열린 한영애의 단독 콘서트 실황을 수록한 앨범이다. 신대철, 신윤철 형제, 송홍섭, 김효국 그리고 전설적인 드러머 배수연 등의 후덜덜한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최고의 연주기량을 보여주었다. 원곡을 뛰어넘게 재현된 "조율", 그리고 라이브로 재현되는 대곡 "바라본다" 에서 브리티시 록 을 연상시키는 신대철, 윤철 형제의 트윈 리드 기타 그리고 11월의 키보디스트 김효국의 해몬드 올겐 사운드와 어우러진 한영애의 마성적인 보이스는 그녀 음악인생의 최고의 정점을 보여준다.
현장의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몇 안되는 한국록의 라이브 앨범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작으로 뽑힌다. 2014년 8월 6일에 재발매되었다.
  • 4집 불어오라 바람아: 1995년 발매. 이 시점에서 한영애는 대중들과 약간 거리가 생겼지만 오히려 더욱 깊어진 음악을 선보였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앨범. 2014년 8월 6일에 재발매되었다.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77위에 랭크되었다.
  • 5집 난.다: 1999년 발매. 한영애가 가진 포크와 블루스의 정서에 현대적인 테크노 음악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앨범. "봄날은 간다"의 리메이크가 유명하다.
  • Behind Time 1925-1955 a memory left at an alley: 2003년 발매. "봄날은 간다"의 리메이크가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옛 가요 300곡 중에서 14곡을 골라 리메이크 했다.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2000년대 100대 명반에서 59위에 랭크되었다.
  • 6집 샤키포: 2014년 11월 26일 발매. 총 10곡이 실려있으며 타이틀곡은 "샤키포"와 "너의 편" 두 곡이다. 그 외에도 "바람"이 드라마 OST로 실려 인기가 있는 편. 기존의 한영애 스타일과는 좀 다른 음악을 선보였는데, 이에 대해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은 자신이 판을 깔고 그 판 위에서 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노는 자리이며, 다음 앨범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하겠다고 밝혔다.

4. 여담


  • 영화배우로서 활동한적이 있다.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 카메오로 출연했는데 비록 비중은 적었으나 극중 꽤 중요한 역할이었다.
  • 독특하고 파격적인 의상으로 주목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의상 규제가 심했던 과거에는 드레스를 검사받은 적이 많았다고...
  • 나는 가수다 2이후로 젊은 층의 팬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 유재하와 깊은 친분이 있었다. 유재하가 처음으로 방송 출연을 한다고 한영애에게 자랑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조용필, 김현식, 이문세 등과 함께 유재하에게 곡을 받기도 했다.

[1] 1959년생이라는 말도 있으며 이는 그녀가 나이 밝히기를 꺼리기 때문.. 다만 1981년 2월 12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26세로 나와 있다,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을 때, 김종진과 만남을 가졌는데 1962년생인 김종진보다 6살 많은 누나라고 나왔다.[2] 한영애 팬클럽 코뿔소에서 팬들이 한영애를 부르는 애칭. 한영애가 본인 나이 소개를 할 때 항상 "28살 딸기띠입니다." 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유는 28살이 한영애가 생각하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황금같은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까 봐 나이 이야기는 잘 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딸기는 한영애가 좋아하는 과일.[3] 우혜미를 비롯한 후배들이 한영애를 부르는 애칭이다. 나무를 좋아해서라고..[4] 다만 이후 한영애는 여러 방송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노래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여러 번 밝혔다. '노래는 말하듯 하고, 대사는 노래하듯 하라'는 가르침을 얻기도 하고, 음악의 공간성을 체득하게 되었다고.[5]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진짜로 불렀을 수도 있다. 윤도현의 MUST에서 2NE1의 <Ugly>를 부른 것을 보면..[6] 아무래도 허스키하고 중량감있는 음색과 블루스의 궁합이 좋다보니 유독 인기가 많은 편이다. 다만 한영애 본인은 여러 차례 밝히기를 자신의 음악이 블루스 음악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블루스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며, '블루스의 여제'란 별명에 대해서도 특정 음악 장르에 구속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7] 3옥타브를 가뿐히 넘어가는 고음들이 후렴에서 난사되는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곡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샤우팅도 해야한다; 게다가 전인권이 이 곡에서 코러스로 참여해서 코러스마저 높다.[8] 위에 언급한 나가수에서 부른 사랑한 후에가 3옥타브 솔로 추정될 정도다.[9] 술을 마시지 않아서 김현식과 동료들이 스튜디오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조금만 마시라고 하고 혼자 나오는 일이 많았다고.[10] 2013년 5월 22일 엠넷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에서 밝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