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에

 


[image]
'''본명'''
강영걸
'''출생'''
1963년 11월 3일 (61세)
일운면 지세포리
(現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1][2]
'''국적'''
[image] 대한민국
'''가족'''
2남 1녀 중 셋째
배우자 다카하시 미에코
'''신체'''
176cm, 56kg, A형
'''학력'''
부곡중학교 (졸업)
동래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명예학사) [3]
'''레이블'''
레코드맛
'''소속사'''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SNS'''

1. 개요
2. 상세
3. 앨범 목록
4.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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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중

강산에 작사, 강산에 작곡. 1998년 <강산에 4집>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넌 할 수 있어''', '''...라구요''' 등 많은 명곡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포크록 싱어송라이터이다.
강영걸 레코드,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소속.

2. 상세


1963년 11월 3일 경상남도 거제군 일운면 지세포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한의사이고, 어머니가 함경도에서 시집살이를 했다가(친정은 충청북도 제천) 6.25 전쟁 때 남편과 헤어져서 월남한 후 같은 실향민 출신이었던 아버지(아버지도 북에서 가정을 꾸려 홀로 월남했다)와 재혼하여 강산에의 누나와 강산에를 낳았다고 한다. # 형제는 친누나에 어머니가 함경도의 첫남편 사이에서 낳은 이부형까지 합쳐서 2남 1녀이다. 그 외 한 번도 안만났지만 북에 남겨진 여러 이복형제들이 있다고도 한다.
사족으로, 아버지께서는 1966년,[4] 그의 나이 만 3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 뒤로 어머니께서는 앞에 상술하듯이 전 남편 사이의 아들 1명과 두번째 남편 사이에 얻은 1남 1녀, 총 3남매를 홀로 키웠다고.
본명은 강영걸로, 할아버지와 수박에서 애틋한 추억을 밝히기도 했던 할아버지가 사내답게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이라는데, 이를 한자로 풀어서 영걸 로 호적에 올린 듯하다. 당사자는 음악을 시작하고 우리말 사내를 본명처럼 쓰고 다녔고 이 사내를 산에로 착각하고 팬이 보낸 편지 때문에 산에로 바꿨다고 했는데, 1997년 교통사고를 낸 후 음주 측정을 거부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이 본명이 알려지게 되었다. 본명을 갖고 온 6집 제목 'Vol. 6 강영걸'은 이런 내막을 어느정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희대학교 한의예과에 82학번으로 진학했으나 경제적인 문제, 학문에 대한 흥미 저하, 문화적 충격##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한학기씩 두 번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에 투신한 듯.
음악 스타일로는 일상의 소재들이나 세상 이야기를 걸쭉하게 늘어놓는 가사의 전달력이 일품이다. 강산에의 7집이자 셀프타이틀 앨범인 'Vol. 6 강영걸'의 수록곡 '와그라노'나 '명태#s-3'는 이런 강산에의 강점이 잘 나타난다. 가벼운 듯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철학적인 내용들은 덤.
윤도현과 음색이 비슷한데, 강산에가 좀 더 굵은 편이다. 그래서 늦게 데뷔한 윤도현이 아주 잠깐 '제 2의 강산에' 소리를 듣기도 했다.[5] 음색은 그렇다 치고 성량 또한 어마어마해서, 각 잡고 소리를 지르면 콘서트장 전체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다만 음역의 폭이 넓지 못하고 고음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라구요' 는 라이브를 할 때마다 팬들을 긴장시킨다. 성공하면 '오늘 강산에 컨디션 좋네' 라고 생각할 정도다.
하우스 콘서트라는 비상업적인 공연[6]에 그야말로 거저로 나와 공연을 한 유명 가수라고 한다. 물론 콘서트를 연 집주인이 성의껏 돈을 주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 대학 공연에서 받던 돈이 몇십 배가 넘었다고.
대중에게 유명한 곡으로는 <넌 할 수 있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있고, 그 외 잘 알려진 주요곡들을 살펴보면 <...라구요>는 북한 실향민들의 아픔을 그린 곡이며, 더 이상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와 수박>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으며, <더 이상 더는>은 <...라구요>와 마찬가지로 전쟁이 더 이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만 <...라구요>가 가사 전반에 함경도 출신이신 실향민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았고 반전의 메시지는 깊게 생각해야 알수 있다면, <더이상 더는>은 가사 전반에 걸쳐 강력하게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담으로 <...라구요>는 2가지 버전이 있다. 1집 버전과 골든 베스트 앨범 The Essence 버전이 있는데, 1집은 락발라드 느낌이고 골든 베스트 버전은 락의 느낌이 난다. 플레이 타임도 골든 베스트 버전은 5분 25초이고 1집 버전은 3분 36초로 차이가 난다.

3. 앨범 목록


  • ...라구요 - 1993
  • 나는 사춘기 - 1994
  • 삐따기 - 1996
  • The Essence (베스트 앨범) - 1997
  • 연어 - 1998
원 제목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다. 슬램덩크의 정대만 테마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 하루아침 (4.5집) - 1999
  • 소풍가자 Best Live - 2001
  • Vol.6 강영걸 - 2002
  • 물수건 - 2008
  • KISS - 2011

4. 이야깃거리


  • 1997년 음주운전, 2000년 대마초 흡입으로 방송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시대상 때문인지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 음반이 느릿느릿 나오는 편이다.
  • 공연 초기에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반말을 했다가 언젠가부터 존댓말을 하는 듯하다.
  • 배우자는 일본인 여성인 다카하시 미에코다. 아내는 드럼을 전공하고 한국에 사물놀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유학와서 강산에를 만났다고 한다. 부인이 해준 반찬들에 불평 한 번도 안 해 본 애처가라고. #
  • 강산에 앨범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몇년 사이에 인터넷 상점에 팔던 CD가 완판되었는지 어쨌는지 보기 힘들어졌다. 1, 2, 3집은 그나마 뒤늦게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4집 연어는 2014년을 전후로 완판인지 뭔지 보이질 않는다.
  • 2016년 내내 방송 활동을 한 번도 하지 않다가 12월 27일 SBS 파워FM 김창렬의 올드스쿨에 출연해 근황을 밝혔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길냥이를 식구로 들이는 등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2017년 봄 발매를 목표로 앨범 작업 중이라고 한다.
  • 2018년 4월 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 공연에서 <...라구요> 를 부르다가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실향민인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못 가 보신 곳을 전후 세대인 제가 가수가 돼 그 역사 속으로 가니 뭉클하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 2018년 8월 26일, 9월 2일 SBS 집사부일체 16대 사부로 출연했다.
  • 2016년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공연했다. 영상



[1] 백종원의 골목식당 거제도 편에서 언급했다.[2]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이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은 흥남에서 태운 함경도 출신 실향민 10만여명 중에 상당수를 거제도에 내려줬는데, 그 중에 하나로 보인다. 실제 이런 사례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 때문인지 강산에는 문재인 북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평양 공연에도 갔다. 함경남도 출신 부모님+거제도로 피난와서 출생+부산에서 중고등학교+경희대 동문...[3] 본래 자퇴했으나, 2015년 2월 학교에서 명예학사를 받았다.[4] 아버지 나이 환갑이 다 돼서 얻은 늦둥이다.[5] 실제로 윤도현이 강산에의 목소리를 본받았다고 밝혔다. 윤도현이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던 당시 같은 방송국에서 아침 방송을 진행하던 이문세가 음악이 나오는 동안 나가서 쉬고 있는 윤도현에게 강산에 노래가 나오는 것을 듣고 "너는 왜 네 방송에서 네 노래를 틀고 그러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돌아와서 직접 말하기도 했다.[6] 즉 가정집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열면서 그 나름대로 유명인도 공연을 한다고 하찌와 TJ를 비롯하여 일본이나 미국 클래식 연주자, 재즈 연주자까지도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