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왕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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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제11대 군주. 제5대 왕. 한환혜왕의 아들. 이때 결국 한희왕과 한환혜왕 대의 계속 된 패배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즉, 뭘 해도 멸망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2. 생애
한왕 안 5년(기원전 234년), 진나라의 장수인 번오기(樊於期)[1] 가 조(趙)나라의 평양(平陽), 무성(武城)을 차지하고 10만 명을 죽였다. 조나라의 장수 호첩(扈輒)은 그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한왕 안은 한비자(韓非子)를 사신으로 보냈는데, 진시황(秦始皇)은 그를 중용하려고 했으나 이사(李斯)가 그를 모함해 죽였다.
한왕 안 9년(기원전 230년), 진나라에서 내사 등(騰)을 보내 한나라를 쳐서 멸하니 한왕 안은 투항했다. 진나라는 멸망한 한나라 땅에 영천군(穎川郡)을 두었다. 치소는 양택현이었다.[2]
진시황[3] 21년(기원전 226년), 신정(新鄭)에서 한나라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시황은 그것을 진압하고 본보기로 한왕 안을 제거한다.
훗날 진시황이 죽고 그 아들인 영호해가 즉위했을 때 장량(張良)이 항량(項梁)의 허락을 구해 한나라의 왕손인 한왕 성(韓王成)을 세워 한나라를 다시 세웠다. 그 뒤 한왕 성이 항우에게 죽임을 당해 한나라가 또다시 망했으나, 유방과 장량의 협조로 조카인 한왕 신(韓王信)이 뒤를 잇는다. 한왕 신은 유방을 배신하지만 후손이 용서받아 전후한, 위나라, 서진까지 종가가 쭉 출세하면서 이어진다. 대가 끊김이 기본인 다른 전국칠웅 직계 후손과 비교하면 가장 해피엔딩.
[1] 사람 이름으로 쓸 때는 於의 발음이 '어'가 아닌 '오'다.[2] 참고로 그곳은 삼국지에서 조조(曹操)의 모사 곽가(郭嘉)의 고향이다.[3] 원래는 진왕 정이라고 해야 맞으나, 진시황으로 흔히 알려져 있으니 그리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