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하

 



합하(閤下)라는 존칭은 왕세손[1]이나 대원군을 호칭할 때 붙이는 존칭이다. 원칙적으로는 앞의 두 사람에게밖에 붙이지 못하지만, 정1품 관리들에게 붙이기도 했다.[2] 그리고 품계는 낮지만 지방 수령중 으뜸인 관찰사에게 지방 현령이나 현감이 편지나 서신, 보고를 올릴 때 으레 합하라는 경칭을 쓰기도 했다. 합하보다 격이 높은 표현으로 폐하(陛下), 전하(殿下), 저하(邸下) 등이 있고, 합하보다 격이 낮은 표현으로 각하(閣下), 당하(堂下), 곡하(穀下), 막하(幕下) 등이 있다.
기본적으로 백작(각하)~공작(저하)는 모두 무품이며, 대감으로도 불릴 수 있다. 왕자와 공주들이 무품으로, 왕의 적자녀는 무품 상계, 서자녀는 무품 하계다. 참고로 청나라에서 남작이 정2품, 자작이 정1품, 백작 이상이 초품이었는데, 이렇게 맞춰보면 사실상 남작~공작은 모두 대감(大監)이다. 덧붙여 왕은 상감(上監)이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왕세자 혹은 세자공작과 동급으로 저하이며, 대원군 혹은 대군후작과 동급으로 합하이며, 부원군 혹은 왕세손백작과 동급으로 각하에 해당하나, 세자 저하와 세손 각하를 제외한 일반 왕자들인 대군이나 군에게는 합하와 각하 등이 허용되지 않고 대감이라고만 경칭했으며, 공주나 옹주의 경칭으로는 자가를 사용했다. 합하와 각하 등은 실제 관료로서 직무를 맡은 사람에게만 쓰는 용어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의 경우엔 원래 후작급인 대원군 합하였으나, 말년에 공작으로 격상돼 국태공 저하라고 불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가는 공문서에 선조를 합하라고 불렀다. '''보통 조선국의 국왕전하라고 부르는 것이 예의이다.''' 실제로도 당시 일본과의 외교시에 오간 문서를 보면 반드시 조선 국왕 전하라고 호칭하고 있다.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른 관직인 관백(關白)은 일본 내에서 황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전하라고 불릴 수 있는 직책이었다. 즉 천황은 물론 자신보다도 조선 국왕의 격을 낮게 잡은 것. 이제부터 침략전쟁의 대상으로 삼을 상대에게 예의를 갖출 리 없으니 이는 노골적인 도발의 의미가 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층 농민 출신으로 천하를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끝끝내 자신의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히데요시가 관백 자리를 조카 히데쓰구에게 물려준 후에는 합 자를 써서 스스로를 태합(太閤)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문서 참조.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폐하나 전하, 저하는 전대사극, 각하는 현대 사극에서 자주 노출되기라도 하지만, 합하라는 용어는 존재감 자체가 희미하다.
MBC무신에서는 최충헌, 최우, 김준무신정권의 수장들이 합하라고 불려서 당시 합하의 검색빈도수가 올라가기도 했었다.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이인임에게 -합하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마찬가지로 검색빈도수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들이 히트하기 전에는 대조영에 등장하는 연개소문이 이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대조영 방영 당시에 드라마 팬덤에서 연개소문을 합하나 이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하파(…)'라고 지칭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국 사극에서 합하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인물은 다름 아닌 흥선대원군. '대원위 합하(大院位閤下)'[3]라고 많이 불린다. 이렇듯 한국 사극에서는 '왕의 권력을 뛰어넘는 권신'이 듣는 호칭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1] 각하라는 경칭으로도 불렸다.[2] 주로 고위 정승급 신하들을 호칭할 때는 성과 경칭을 합해서 불렀다고 한다. 이씨 성의 정승이면 '이합(李閤)' 이런 식으로... 철종 때 안동 김씨 수장 김좌근의 나주 기생 출신 첩인 양씨가 베갯머리 송사를 통해 권세를 휘둘렀는데 사람들이 나주의 나 자를 따서 나합(羅閤)이라 부르며 욕했다고 한다.[3] 또는 '국태공 저하(國太公邸下)'로도 많이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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