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면
1. 개요
海綿 / Sponge
식물 같지만 사실 동물 중 가장 간단한 형태로서 많은 개체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 살고 있는 개체의 집단이며, 각각의 개체들은 하나의 덩어리 내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수류를 일으켜 물속에 있는 식물 플랑크톤 등을 걸러먹으며, 놀랍게도 육식성 해면도 있다.[1][2] 간단한 형태이니만큼 자르는 건 물론이고 아예 체로 걸러버려도 회복해 포유류 같은 복잡한 몸구조를 가진 동물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다.[3]
2. 구조
해면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조직이나 기관이 없어 감각, 신경, 운동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로서 분류되기 위해 필요한 기능들은 갖추고 있다. 해면 세포의 구조나 구성 성분, 유전자를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 비교하였을 때 동물에 더 가깝다는 점, 그리고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라는 점에서 동물로 분류된다.
해면의 몸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다. 이를 소공이라 하며 체내로 물이 들어오게 한다. 반면 몸체 가운데에 커다란 대공이 나 있으며, 이는 여러 개의 소공으로 빨아들인 물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출구 역할을 한다. 또한 소공은 서로 연결되어 수관계를 연결하는데, 일부 수관계 내부에는 독특한 편모 세포인 금세포가 줄 지어 나 있다. 이 세포의 편모가 외부의 물을 관 내부로 들여오는 수류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금세포는 이러한 역할 말고도 물 속의 먹이를 여과하고 식세포 작용도 한다.
2.1. 수관계 구조에 따른 구분
골편이라고 불리는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해면질의 섬유를 잘 발달시켜서 골편을 가지지 않는 종류도 있다. 유성생식을 하기도 하지만 무성생식을 하는 종류도 있으며, 몸의 구조도 아콘형, 시콘형, 류콘형의 3가지 기본형을 가지는 등 나름 크고 복잡한 분류군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은 체계의 복잡성과 효율성에 따라 후자로 갈수록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허나 이것이 진화적 또는 발생의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류콘형의 경우 해면 내에서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한 모습을 보였다.
- 아콘형
아콘형은 세 가지 유형 중 가장 간단하고 작은 관 모양이다. 물은 표면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안쪽의 금세포가 있는 위강이라는 공간으로 들어온다. 금세포의 편모는 구멍을 통해 물을 내부로 끌어당기고, 1개의 대공으로 내보낸다. 아콘형 해면은 모두 석회해면강에 속한다.
- 시콘형
시콘형은 아콘형에서 분화된 것으로서 대형화된 버전이라 볼 수가 있다. 단순한 형태의 아콘형과 달리 시콘형은 금세포층이 안팎으로 접혀 형성된 방사관 내부에 금세포가 늘어서 있다. 소공을 통해 들어온 물이 입수관으로 갔다가, , 전문이라는 측면의 소공을 통해 외부로 배출된다. 시콘형의 위강 내부에는 아스콘형의 금세포가 아닌 상피세포가 들어있다. 시콘형 또한 석회해면강에 속한다.
- 류콘형
세 가지 유형 중 가장 복잡하고 크기가 크다. 대부분의 류콘형은 다수의 대공을 가진 커다란 덩어리를 형성한다. 류콘형의 수많은 편모실은 입수관에서 흘러들어온 물로 가득 차게 되는데, 이 물은 출수관을 거쳐 대공을 통해 배출된다. 시콘 및 아콘형과 달리 위강은 없다. 대부분의 해면은 류콘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석회해면강에 속하고 다른 강에도 속한다.
3. 생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둘 다 한다. 유성생식을 하는 해면은 대부분 자웅동체이다. 정자는 금세포가 변형되어 생긴다. 일부 해면 종들의 경우 난자가 금세포나 원시세포에서 발생한다. 정자는 물로 방출되어 다른 개체의 수관계로 들어간다. 금세포가 정자들을 식포작용으로 포획한 후 운반세포로 변신해 중교를 거쳐 난자로 전달한다. 어떤 해면은 난생을 하기도 한다. 정자와 난자가 전부 바깥으로 배출되며 난자는 중교에 있는 정자에게 수정된다.
대부분의 해면에게서 접합자는 편모를 가진 유생으로 발생해 방출 후 수류를 따라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이후 유생은 자유유영을 하며 지낸다. 단단한 몸을 가졌으며 중실유생이라고 불린다. 편모를 가진 세포는 유생의 표면에서 바깥으로 향해 있다. 이 편모들은 유생이 해저에 착생하게 되면 안으로 이동해 편모실에서 금세포가 된다. 성체가 되면 단단한 곳에 고착해서 살아가는 것이 산호, 따개비, 굴 종류와 비슷한 양상이다.
무성생식의 경우 느슨한 조직의 특성 때문에 분절하거나 출아 후 떨어져 나가 새로운 해면이 되거나 군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일부 민물 해면과 바다 해면은 정기적으로 '아구'라는 내부의 싹을 형성하여 무성생식한다. 특히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을 경우 원시세포를 캡슐로 싼 휴면체인 아구가 생성되기도 하는데, 주변 상황이 좋아지면 아구의 난문이 열려 내부의 원시세포가 탈출하여 새 해면으로 발생한다.
4. 쓰임
수분을 잘 빨아들이기 때문에, 과거 서양권에는 이걸로 그릇이나 몸을 닦을 때 쓰는 경우가 많았었다. 우리가 흔히 스펀지하면 떠올리는 주방용품 '스펀지'의 유래가 이것이다. 지금은 합성수지로 만든 인조 스펀지를 쓰기 때문에 이 녀석과는 관계가 없지만 명칭만은 관습적으로 남아있다.[4]
미국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주인공인 스폰지밥의 모티브가 바로 해면이다. 때문에 작중에서는 실제로 스폰지밥으로 사람의 몸이나 자동차의 보닛, 그릇 등을 닦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단, 물 밖으로 나왔을 땐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인형이 나오는 게 아니라 네모난 주방용 인조 스펀지가 등장한다[5] .
고대 로마에서는 발전된 기술력으로 수세식 화장실과 하수도 시스템을 이용했고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에서도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는데, 이때 뒷처리를 할 때 휴지 대신 이 해면으로 만든 테르조늄을 사용했다. 문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소금물에 담가서 헹궜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쓴다는 것. 두 번째 사람이 닦은 후에는 역시 소금물에 헹궈두고 다음 사람이 뒷처리하는 게 무한반복이였다. 이는 공동화장실과 하수도가 마련되어 있는 발달된 고대 로마에서조차 전염병이 퍼질 위험성을 줄 수 있는 방식이였다.
지중해의 경우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해면을 워낙 많이 따버린 탓에 그 수가 크게 줄었으나, 인조 스펀지의 개발로 인해 다시 수가 늘고 있다. 지금은 피부 미용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탐폰으로 쓰이기도 한다. 일반 탐폰과는 달리 사용 후 헹궈서 재사용이 가능하며 수명은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이다. 인공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폐기 후 자연적으로 분해가 잘 되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나, 끈이 없고 특유의 비주얼과 크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는 편이다. 또한 살정자제와 함께 피임 용도로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검증된 방법은 아니므로 임신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고 확실한 피임을 원한다면 다른 방법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양식업에 있어선 해로운 동물이다. 먹이 피라미드 중 최하단계인 식물 플랑크톤을 마구 걸러먹는 나름대로의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양식하는 생물들이 특별히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기의자를 이용한 사형집행 때도 쓰인다. 머리에 전극을 붙일 때 적신 스펀지를 전극과 두피사이에 배치하는데 목적은 피부의 전기 저항을 낮춰서 빨리 뇌사를 일으키기 위한 용도다. 영화 그린 마일에서는 사형수에게 앙심을 품은 교도관이 일부러 스펀지를 적시지 않고 얹어서 사형수가 빨리 죽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타죽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5. 로마사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에게 한 로마 병사가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서 주었는데, 이것이 예수를 모욕하기 위해서라는 연구가 있는 반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장 구글에 jesus sponge라고만 쳐봐도 꽤 많은 글이 있고, 저명한 신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욕이었다는 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화장실에서 적신 해면으로 뒤를 닦았으니 모욕을 위한 행위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 요한복음의 저자가 시편 69장 21절[6] 을 예수에 대한 예언이라보고 유사한 장면을 삽입한 것.[7]
-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신 포도주를 먹이는 사람이 '어디 엘리야가 그를 구해주러 오나 보자'며 빈정거리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모욕하는 것이 맞는다.
모욕은 아니었다는 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해면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이지 오로지 화장실 휴지 대용만은 아니다. 로마 군병들은 해면을 평소 두 개를 갖고 다녔는데 하나는 휴대에 불편한 컵 대신 물을 빨아들여서 마시는 용도로 썼고 나머지 하나를 가지고 용변 후 뒤처리를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에게 준 포도주 탄 해면이 꼭 화장실 뒤처리용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단순히 화장실 뒤처리용으로 해면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해서 해면에 적신 물을 마시게 하는 것=모욕이라고 해석한다면 컵 대신 해면을 사용했던 당시 로마군인들은 모두 늘상 자신을 모욕하고 다니는 것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화장실 뒤처리용으로도 쓰는 두루말이 휴지를 식탁에 올려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한국 사회 내에서 '상대를 모욕할 의도' 로 받아들여지는지 생각 해보자.
- 3세기의 그리스 작가 안티고누스(Antigonus Carystus)는 막대기 끝에 해면을 단 도구가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들에게 마실 것을 주는 용도로 종종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예수에게 해면으로 음료를 준 것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님을 보여준다. 애초에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는 십자가 위에 높이 매달려 있으니 장대를 이용해서 뭔가 전해줘야 하는데 장대 끝에 일반적인 그릇을 담아서 전해주려면 상당히 고도의 컨트롤이 필요하고, 컨트롤에 실패하면 쏟게 될 것이다. 죄수에게 작은 호의를 전하려는 로마군인이 있다면 자기들이 늘상 휴대하고 사용하는 데다 적시면 쏟을 염려도 없는 해면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적인 셈.
- 마르코 복음서와는 달리 마태 복음에서는 포도주를 먹인 사람과 빈정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 "그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즉 어느 한쪽 복음서만으로 당시의 상황을 속단하기는 곤란하다.
- 시편 69장 21절에서 말하는 독이라는 것과 예수에게 제공된 포도주에 섞여있던 것이 영어성서에서는 'gall'인데 이것은 일단 담즙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아편' 같은 일종의 마약성 진통제를 잘못 번역한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마가복음의 경우는 '몰약'섞은 포도주라고 기록하고 있고. 즉 시편에서 말하는 gall과 예수의 포도주에 든 gall이 같은 것인가는 애매하다.
- gall이 같은 의미라고 쳐도 또 곤란한 것이... 애당초 포도주는 두 번 제공되었다. 처음엔 gall을 탄 포도주를 받았으나 거부했고, 두 번째는 문제의 해면에 적신 보통의 신 포도주는 그냥 마셨다. 즉 시편의 구절은 첫 번째 포도주에 해당될 수는 있어도 두 번째의 해면포도주하고는 다르다.
- 사실 신학자들의 관심은 오히려 '처음에는 포도주 마시는 것을 거부하셨는데 왜 두 번째에는 마시셨는가'에 집중되어있지 그 해면이 모욕이었나 아니었나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일반적인 다수설은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고통을 덜어주는 담즙섞인 포도주는 안 마셨지만 두 번째 제공된 보통의 신포도주는 그냥 마셨다' 이다. 즉 대체로 모욕보다는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눈꼽만한 작은 호의' 정도로 받아들이는 케이스도 많다는 것.[8][9]
이런 문제는 성서가 원어에서 몇 차례나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서 원래의 의미가 불분명해진 경우가 많으니 함부로 속단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6. 분류
해면동물문 생물 목록 참고.
7. 대중 매체에서
- 네모바지 스폰지밥 - 스폰지밥
- 인조인간 키카이다 - 해면 그린
- SCP 재단 - SCP-1459-J(해설)
- Battle for Dream Island - Spongy
[1] Cladorhizidae과, Guitarridae과와 Esperiopsidae과 중 일부 종. 먹이가 부족한 심해 또는 해저동굴 같은 곳에 사며, 작은 갑각류나 동물을 잡아 먹는다.[2] 육식성 해면의 예: 엘타닌 안테나의 정체인 해면과 같은 종류의 해면, 탁구공나무해면[3] 해면의 핵심이 되는 세포인 깃세포가 단세포동물인 깃편모충과 매우 유사하다.[4] 동양에서도 열매인 수세미를 쓰다가 현재는 합성수지로 만든 인조 수세미를 사용 중이며, 스펀지처럼 명칭 또한 관습적으로 남아있다.[5] 사실 뚱이도 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불가사리 인형이 아니라, 별 모양의 분홍색 수세미로 묘사되었다. 스폰지밥이 거품병때문에 앓아누웠다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원래의 용도로 사용되어 병을 완치한 뒤에 막대사탕까지 받자, 이를 부러워한 뚱이가 꾀병을 부리는 장면에서 나온 묘사다. 참고로 스폰지밥이 병 치료 과정에서 설거지용이나 목욕 시에 비누거품을 칠하는 용으로 쓰였던 것과는 달리, 뚱이는 선인장 닦이나 변기 청소용으로 쓰였다(...).[6] '그들은 저에게 음식으로 독을 주고 목말라할 때 식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이다. 앞의 맥락을 봐도 시편의 해당 구절은 다윗이 수난을 받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에 모욕을 위한 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7] 여기서 포도주는 당시 로마군에서 식용수로 잘 쓰던 식초화한 저질 포도주를 탄 물인 Posca를 의미하며 당시 로마 군병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던 음료이다.[8] 다시 말해 앞서 언급됐듯이 신 포도주는 고통을 주기 위한 식초가 아니라 식기대용 스폰지와 마찬가지로 로마군병이 소지할 만한 음료였다는 점에서, 몰약섞은 포도주는 작정하고 예수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사람들의 시도고, 신 포도주는 형장을 지키던 로마군 개인의 인간적인 동정이었을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가정하면 예수가 첫 번째 포도주를 거절하고 두 번째 포도주를 받아들인 것도 납득이 된다.[9] 단순히 '자신들이 쓰던 그릇' 에 '자신들이 마시던 음료'를 담아 준 행위를 굳이 모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억지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는 어쩌다 '고대 로마에서는 해면을 화장실 뒤처리 용도로'''도''' 사용했다는 것만 본 사람이 전후의 맥락을 모른 채 덮어놓고 '모욕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라고 넘겨짚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