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대공국
1. 개요
9세기 말에 성립하여 서기 1000년 크리스마스 혹은 1001년 1월 1일까지 존재 하였던 국가로 헝가리 왕국의 전신이다.
마자르 대공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바르 칸국이 샤를마뉴의 공격으로 9세기 초 몰락한 이후 푸스타를 중심으로 정착한 마자르족이 세운 국가로 초창기에는 계절에 따라 중심지를 이동하는 유목민 공동체 성격이 강했으나, 이후 서유럽 원정이 실패하면서 방어 차원에서 요새가 건설되고 슬라브인 원주민들을 대거 흡수,동화시키며 농업 중심 국가로 거듭났다.
인구는 10세기 기준으로 250,000여 명에서 1,500,000여 명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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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판노니아 분지 정착
머저르족은 원래 우랄산맥 남동쪽에 거주하고 있었다가 차츰차츰 서쪽으로 이동하여 750년 이후에는 돈(Дон) 강 유역에 거주하며 하자르 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그들이 지금의 헝가리 지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페체네그족 때문이었다. 머저르족은 830년경에 페체네그족이 하자르 칸국으로 쳐들어오면서 드네프르 강과 드녜스트르 강 사이의 지역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그런데 894년에 페체네그족들이 다시 서쪽으로 진출[1] 해오자, 마자르족의 군사지도자인 줄러(Gyula, 부군주)[2] 아르파드(Árpád, 845-907, 재위 895-907)의 계획하에 판노니아 분지[3] 로 이동하였다. 이는 오늘날 헝가리의 모태가 되었다.
3. 서유럽 원정 시도와 실패
10세기 초부터 머저르족은 서유럽 지역에 대한 원정을 시작하였다. 원정의 목적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침공하여 전리품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변국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자국을 침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머저르족의 원정은 독자적으로 행해지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서 행해지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원정 범위는 북으로는 발트 해, 서로는 도버 해협, 서남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중부, 남으로는 이탈리아 남단, 동남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까지 이르러 유럽 거주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955년 오토 1세(Otto I, 912-973, 재위 936-973)에게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레히펠트 전투에서 패한 후 헝가리는 더이상 서유럽으로의 원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헝가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비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주변의 기독교 국가들이 그것을 명분삼아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4. 955 ~ 997, 가톨릭으로 귀의
아르파드의 손자 턱쇼니(Taksony, 재위 955-972)와 그의 아들 게저(Géza, 940-997, 재위 972-997)는 주변국들에게 침략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로마 교회(가톨릭)로 귀의했다. 948년에 동로마에서 주교가 파견되고 제3의 통치자(허르커)였던 불추(Bulcsú, ?-955)가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여 세례를 받기도 했을 정도로 동로마와 관계가 밀접했던 헝가리가 콘스탄티노플 교회(정교회) 대신에 로마 교회로 귀의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955년 아우크스부르크 전투 이후 독일에게 위축되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 서방교회로 귀의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군주의 권위를 부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지 진정한 기독교 개종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5. 헝가리 왕국 으로 계승
게저의 뒤를 이은 이슈트반 1세(István I, 975~1038, 재위 997-1038)는 1000년에 로마 교회와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아 최초의 헝가리 왕이 되었다.(헝가리 왕국) 이슈트반 1세는 헝가리에 기독교를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정책을 폈는데, 즉위 이전에 이미 건립된 베스프렘(Veszprém) 대주교좌 외에 10개의 주교좌를 건립하였으며, 행정단위인 주 조직에 맞춰서 수석 사제들을 파견해 각 주 내에서 교회조직을 통괄하게 했다. 또 지금의 펀논헐머(Pannonhalma)에 수도원이 건설되어, 처음으로 헝가리인 수도자가 양성되기도 했다. 또 각 지역의 촌락 10곳당 교회 1채씩을 건설했으며, 그 교회의 유지를 위해 공물과 노역을 제공하도록 했고, 또 십일조와 주일 미사 참여를 의무화하는 조치들을 법적으로 규정하였다.
6. 출처
- 이정희, 『동유럽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5)
- 존 J. 노리치, 남경태ㆍ이동진 역, 『종횡무진 동로마사』 (그린비, 2000)
- 이상협, 『헝가리史』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6)
[1]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동로마에서 머저르족과 동맹을 맺고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후방을 공격하자 당시 불가리아의 군주였던 시메온 1세(Симеон I, 재위 893–927)가 페체네그족과 동맹을 맺고 그들로 하여금 머저르족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2] 머저르족은 하자르족의 체제를 받아들여 이중군주체제를 갖추고 있었는데, 종교지도자에서 유래한 제1의 군주인 켄데(Kende), 군사지도자인 제2의 군주 줄러(Gyula)가 함께 다스리는 체제였다. 그 밑에 행정을 담당하는 허르커(Harka)까지 포함하여 삼중군주체제로 보기도 한다.[3] 지금의 헝가리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중유럽의 평원. 우랄계통의 머저르족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전에는 '판노니아족'과 '일리리아인'(판노니아족과 일리리아인 모두 아드리아 해에서부터 동유럽, 중부유럽 평원에 걸쳐 산 인도유럽어계통의 민족. 남슬라브족들에게 동화됨), '슬라브족'과 '판노니아로 이주해온 소수의 라틴인', '게르만계 부족'들이 거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