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다르 알리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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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0일 ~ 2003년 12월 12일)
1. 개요
아제르바이잔의 정치인이자 독재자이며, 현 아제르바이잔의 독재자인 일함 알리예프의 아버지이다.
2. 생애
알리예프는 소련 나히체반[1] 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아제르바이잔 국가보안위원회에 들어가, 1967년 아제르바이잔 국가보안위원장에 취임하였다.1969년 그는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되었다. 그는 13년간 그 자리에 있은 뒤, 1982년 12월 소비에트 연방의 중앙 정계에 진출해, 정치국원이 되었다. 그는 온건개혁파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 대립해 1987년 10월에 정치국을 떠났다. 1990년 그는 소련 공산당을 탈당하고 나히체반으로 돌아와 그곳의 의회 의원이 되었다. 다음해에 그는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되었고 동시에 아제르바이잔 본국의 최고회의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아제르바이잔 독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으로 전 서기장이었던 공산당의 아야즈 뮈탤리보프(Ayaz Mütəllibov)가 단독 출마해 당선되었으나 신생 아제르바이잔은 독립과 함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 휩싸이게 되었고, 아제르바이잔이 계속 아르메니아에게 패배를 거듭한 끝에 호잘르 학살이라는 참사가 일어나자 민족주의자들의 반대로 사임하게 된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으로 민족주의자인 애뷜패즈 엘치배이(Əbülfəz Elçibəy)가 당선되었으나 전황은 계속 아제르바이잔에 불리하게 흘러갔고, 패전과 경제 붕괴 속에 1993년 수라트 휘새이노프(Surət Hüseynov)가 쿠데타를 일으켜 엘치배이를 축출하게 된다.
휘세이노프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엘치배이는 바쿠를 탈출해 나흐츠반 자치공화국의 수반이었던 알리예프를 국회의장으로 임명했고,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알리예프가 99% 득표율로 대통령으로 당선됨과 동시에 휘세이노프는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1994년 휘세이노프는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해임되어 러시아로 망명했고, 알리예프는 93년 말 남부 탈리시인의 독립 시도와 1995년의 쿠데타 시도# 등을 모두 진압하고 94년 아르메니아와 정전협정을 맺은 이래 철권통치를 하게 되었다.
알리예프는 외교적으로는 터키-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펴는 동시에 러시아를 지나는 기존의 바쿠-노보로시스크 파이프라인 외에 바쿠-숩사 파이프라인처럼 조지아 및 터키 등을 지나는 파이프라인을 개통해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로를 다변화하였으며, 초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면서 아제르바이잔은 안정되었다. 그러나 알리예프 시기 아제르바이잔은 다시 독재국가로 돌아갔으며, 권력의 족벌화 및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점도 발생하였다.
2003년 말 병을 앓은 그는 장남이었던 일함 알리예프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이때 바쿠 시민들은 항의 데모를 펼치기도 했다.
매년 그의 생일과 사망일에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그의 무덤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