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헌황후 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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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헌제의 첫번째 황후. 본명은 복수(伏壽), 통칭은 복황후(伏皇后). 낭야군 동무현 사람. 아버지는 복완, 어머니는 영.[1]
폐위를 당했으므로 시호가 없으며, 효헌황후는 시호가 아니라 존호이다.[2]
2. 정사
190년에 낙양에서 서쪽으로 장안으로 옮길 때 귀인이 되었다가 195년에 황후가 되었으며,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이각, 곽사 등이 쫓아와 조양에서 황제의 군대를 패배시켜 헌제가 밤에 몰래 황하를 건너 도망칠 때 생사로 짠 명주를 들고 있었는데, 동승이 손휘에게 시켜 빼앗으면서 곁에 모시던 이를 살해하자 그 피가 복황후의 옷에 튀었다고 한다. 안읍현에 이르렀을 때 옷이 구멍이 나 해졌으며, 오직 밤과 대추만으로 양식을 삼았다.
이후 조조가 조정을 장악하였고, 200년에 동승은 조조의 암살을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동승 일가는 물론 동귀인까지 예외없이 처형되었다.[3] 이 일로 복황후는 두려움을 품어 아버지 복완과 편지를 주고받아 이를 알렸으며, 몰래 조조를 도모해달라고 했지만 복완은 함부로 시도하지 못했다.
조만전에 따르면 214년에 결국 일이 발각되어[4] 조조가 황후를 폐위하라고 황제를 핍박한 끝에 거짓으로 조서를 내려 어사대부 치려에게 황후의 옥새와 인수를 빼앗도록 했다. 그리고 상서령 화흠에게 치려를 부관으로 삼아 병사들을 거느려 궁궐로 들어가 복황후를 잡아들이게 했는데, 복황후는 문을 닫아 걸고 벽 사이에 숨어있다가 화흠이 잡아 끌고 나가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헌제가 전각 바깥에 있었지만 치려가 잡아당겨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산발한 머리에 맨발로 끌려가 흐느끼면서 이제 살아서 볼 수 없겠다고 헌제에게 말한 후에 폭실에 가둬졌다가 유폐되어 죽었다.[5] 복황후가 낳은 황자 둘이 짐독으로 살해되고[6] 형제 및 종족들 중 백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어머니 영 등 19명은 탁군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거의 비슷하나 정사와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정사에서는 200년에 복황후가 복완과 편지를 주고받고, 209년에 복완이 죽고, 214년에 그 200년 때의 편지가 발각되어 복황후가 조조에게 죽지만 연의에서는 이것들이 다 214년 일로 합쳐졌다.
- 복완이 214년까지 생존한 채로 등장해 딸 복황후와 같이 죽는다.
- 복황후와 복완 사이의 편지 전달자 역할을 하는 가공인물 목순이 등장한다.
- 목순이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돌려쓰자 이를 눈치챈 조조가 머리카락 속에 숨긴 편지를 발견한다. 정사에서는 편지를 들킨 계기가 확실하지 않다.
- 정사에서는 복황후가 죽은 방식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연의에서는 조조가 부하를 시켜 때려 죽이게 했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에서 등장했는데 본명이 밝혀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본명 대신 복황후라는 통칭으로 나온다. 오른쪽의 일러스트는 삼국지 14에서 조헌의 일러스트로 쓰인다.
4.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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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암살 작전이 실패로 끝나고 잡혀가게 되자 헌제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다음에는 조조의 병사들한테 채찍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 죽는다.
4.3. 조조: 황제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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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에게 겁탈당하나 이후 자신을 탐하는 조비를 꼬드기게 된다. 자신을 가지고 황후로 만들어주기 위해선 황제가 되어야 하며 황제가 되기 위해선 조조가 없어야 한다고 말이다.[7] 그리하여 조조를 죽이기 위한 계획으로 조비에게 조조를 죽일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조조가 암살을 시도하는 자들의 공격을 받아 군사들이 이를 진압하면서 밀서를 발견해 헌제가 주모자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조조가 잔치를 빙자해 암살에 대한 추궁을 하면서도 일부러 누가 강요했냐고 묻자 복완이 주모자라고 자청한 것을 보고 아버지 복완과는 무관한 일로 자신이 주동했다고 얘기했으며, 죽기 직전에 조비가 자신을 죽이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결국 조비의 칼에 죽는다. 이때 조비가 헌제에게 황제가 말한다면(죽이지 말라) 황후를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나 복황후가 조비와 관계하는 것을 본 바 있는 헌제는 속으론 분노를 느끼면서도 겉으론 조비에게 죽이라고 웃으며 명한다.
4.4. 이문열 평역 삼국지
이문열은 평역 삼국지에서 조조가 복황후를 죽이는 부분이 나올 때 조조빠답게 조조를 감싸주기 위해서 후한이 썩고 몰락하기 시작한 건 외척 때문인데 그 외척이 권력을 잡겠다고 조조를 죽이려 든다면서 복씨 일족을 헐뜯으며 악인에게 죽는다고 다 선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고인드립에 가까운 내용을 넣는다. 정작 조조가 다음 외척이 되는 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4.5. 와이파이 삼국지
성우는 허예은. 삼보의 난 시점에서 헌제와 함께 짧게 등장하고[8] ,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9] 의 옥대와 용포를 주는 장면에서 두번째로 등장한다. 그후 흰 비단을 준 다음 헌제가 혈서를 쓰는 것을 보고 많이 당황한다. 의대조 사건 이후 등장이 없다가 아버지 복완에게 목순을 통해 서신을 보내지만 결국 발각되어 조조에게 살해당한다. 이때 조조에게 살려달라고 하는 장면이 처량해 헌제의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이 역할은 와이파이 삼국지 시점에서 담당 성우의 흔치 않는 성인 여성 연기이다.[10]
5. 둘러보기
[1] 복완은 원래 환제의 딸인 양안공주 유화의 남편이다. 복 황후의 생모인 영은 신분이 낮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정황이 있어, 복완의 천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영의 성씨는 기록이 실전되어 알려지지 않았는데, 복완의 처남 중에 번진이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영의 형제라면 영의 성씨는 번씨가 된다.[2] 존호는 소헌황후 하씨, 효인황후 동씨, 경황후 주씨의 사례처럼 부군의 시호를 중복해서 쓴다.[3] 동귀인 처형은 임산부 처형, 거기다 그 아이가 황제의 아이이니 문제가 크다.[4] 정사에서는 어떻게 발각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순욱전 주석 헌제춘추에 따르면 복완의 처남 번진이 이 사실을 조조에게 알렸다고 하지만 배송지가 이 기록을 부정했다.[5] 복황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언급이 없으나 폭실이 황실의 여인들을 모살하는 공간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그 방법이 죽을 때까지 장형을 가하는 방식이라 복황후도 이런 식으로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훗날 가남풍의 여동생 가오도 이런 방식으로 살해당했다.[6] 이 황자들의 무덤들이 헌제의 무덤인 선릉 인근에 현존했지만 문화대혁명 와중에 심각하게 훼손되었다.[7] 조조가 제위를 거부하고 있던 차였다.[8] 언급만 되는 수준으로, 대사가 없다. 대사는 없지만 첫 출연은 이때이므로 기재.[9] 성우는 동기인 최정윤.[10] 그 외 인물로는 삼국지연의 가공인물인 이춘향과 잠깐 나오는 문소황후가 다이고, 중간중간 단역으로는 많이 했다. 성인 여자 역할은 후속작에서 대량으로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