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브로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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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o Broch (1922~)
'''제 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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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139위'''
'''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비고'''
'''142위'''
하인리히 프린츠 추 자인 비트겐슈타인
독일
83대

오토 베슬링
독일

'''144위'''
한스 그륀베르크
독일
82대

에밀 다르예스
독일

한스 괴츠
독일

헬무트 미스너
독일

'''148위'''
프란츠 바이어
독일
81대

후고 브로흐[3]
독일

빌리 네미츠
독일

빌헬름 필리프
독일

'''152위'''
이와모토 테츠조
일본
80대
'''비독일계 2위, 일본 1위'''
중일전쟁에서 14대 격추

헤르베르트 바흐니크
독일

'''154위'''
오토 뷔르펠
독일
79대

'''155위'''
게오르크-페터 에더
독일
78대

볼프강 에발트
독일

하인리히 크라프트
독일

막스-헤르만 뤼케
독일

요한-헤르만 마이어
독일

카를-고트프리트 노르트만
독일

알렉산더 프라인팔크
독일

'''162위'''
후베르투스 폰 보닌
독일
77대
스페인 내전에서 4대 격추
요제프 하이뵈크
독일

발터 올로게
독일

'''165위'''
한스-요아힘 크로신스키
독일
76대

막시밀리안 마이얼
독일

알프레트 토이머
독일

에트빈 틸
독일

'''169위'''
한스 빈트
핀란드
75대
핀란드 2위
요하네스 분체크
독일

구스타프 프릴링하우스
독일

헬무트 그롤무스
독일

요한 피힐러
독일

한스 뢰링
독일

발데마르 제멜카
독일

요아힘 반델
독일

'''177위'''
오토 가이저
독일
74대

프리드리히 하스
독일

카를 하인츠 멜처
독일

'''▼ 180~228위'''
[3] 2024-11-14 01:02:58 현재 생존 에이스 중 가장 격추수가 많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 활약한 루프트바페에이스.

1. 공군 입대와 배치
2. 윙맨 역할과 첫 사냥
3. 짧았던 교관 생활
4. 최후까지 살아남은 에이스


1. 공군 입대와 배치


'''후고 브로흐'''는 1922년 1월 6일에 쾰른의 위성도시인 베르기슈글라트바흐(Bergisch-gladbach)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에 공군에 입대하여 제3제국 여러 곳의 비행학교를 전전하며 조종 훈련을 받았고, 1943년 1월 6일에야 첫 자대인 JG.54 그륀헤르츠(Grünherz : 녹색 하트)가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영토 깊숙히 일멘 호수(И́льмень) 부근의 전선기지[1]에 배치되었을 때 그의 계급은 상병이었다.
이 신참이 자대에 도착했을 때는 Bf 109F를 쓰고 있던 비행단이 Fw 190A로 기종 변경을 하느라 매우 정신없이 바쁜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비행단장도 바뀌어 버렸다. 그런 탓에 부대원들 모두 제 앞길 가리느라 바빠서 신참을 살뜰하게 보살펴 줄 멘토나 고참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21살의 후고 브로흐는 모든 것을 자기가 알아서 배워나가야만 했다.
새내기에다 말단 비행병인 브로흐에게는 6중대(6./JG 54)의 편대원 보직이 할당되었다. 후고 브로흐 상병은 편대에서 막내였기 때문에 '''호르스트 아데마이트'''(Horst Ademeit : 1912~1944 / 166대 격추) 대위[2]의 윙맨 역할을 하며 그가 소련 공군기를 상대로 연이어 승리를 거두는 것을 지켜 보았다.

2. 윙맨 역할과 첫 사냥


그는 자신이 엄호해 주었던 또 다른 전문가 에이스로 하인리히 슈테어(Heinrich "Bazi" Sterr : 1919~1944 / 130대 격추) 소위도 꼽고 있다. 이처럼 비행병 후고 브로흐는 독소전에서 명성을 떨치던 수퍼 에이스들이 모는 전투기를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그들의 뛰어난 조종술과 전술을 마치 스펀지가 잉크를 흡수하는 것처럼 빠르게 습득했다.
후고 브로흐 옹은 발트해 연안도시인 하일리겐바일(Heiligenbeil)에서 작전하던 1943년 3월 7일을 자신의 첫 격추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편대원으로부터 첫 격추를 증명받은 것은 기지가 일멘 호수 남부의 스타라야루사(Старая Русса)로 옮겨간 3월 13일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윙맨을 맡으면서도 틈틈이 자신의 몫를 사냥한 후고 브로흐 상병은 7월 말까지 합계 7기를 격추시켰다. 그때부터 기량을 인정받아 자유 요격 허가를 받게 된 그는 겨우 한달 보름 남짓만에 13대를 더해 8월 28일에는 2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신참 티를 벗어 던진 후고 상병은 이런 두드러진 전공으로 인하여 10월 27일에 사병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공군 명예컵을 수상했고, 11월 6일에는 44번째 격추를 기록했다.
동부전선에서 공중전은 계속되었고 11월 26일에 부사관으로 진급한 그는 독일 황금십자장도 추가로 수여받았다. 이듬해인 1944년 6월이 되자 전선은 점차 밀려나고 있었지만 전과만큼은 꾸준히 늘려가던 그는 사령부의 명을 받고 후방으로 물러나 동부전선 보충 전투비행단(Ergänzungs-Jagdgruppe Ost)에서 전투기 훈련 교관이 되었다. 후고 브로흐는 이곳에서 신참 조종사들을 가르치면서 잠시 교장을 맡고 있던 헤르만 그라프도 만날 수 있었다.

3. 짧았던 교관 생활


2개월 남짓 비행술 교관으로 생활했던 그였으나,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1944년 8월에 그의 요청이 받아져 다시 전투 임무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그륀헤르츠는 현재 라트비아의 예캅필스(Jēkabpils)에서 바그라티온 작전에 참가한 소련 공군과 대적하고 있었다. 후고 브로흐 옹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이 편대원으로 몸담고 있던 6중대로 돌아오자 마치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1944년 말까지 편대원들과 함께 실전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격추 기록을 71대까지 높여놓았지만, 이미 전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1944년 11월에 부대가 쿠를란트 전선으로 물러날 때에 그는 8중대(8./JG 54)로 소속을 옮겼고, 편대장이 되었다. 이 시기, 탑승기 또한 Fw 190A형에서 D형으로 갈아타게 된다. 1945년 3월 12일, 79번째 승리를 기록한 그는 기사십자장을 받으며 동시에 상사로 진급했지만, 독일군은 비스와-오데르 대공세에 밀려나 본토인 동프로이센이 소련군의 군홧발에 짓밟히기 시작했다.

4. 최후까지 살아남은 에이스


후고 브로흐 옹은 전쟁 동안 324회의 실전 출격을 채웠고, 18기의 슈투르모빅을 포함하여 동부 전선에서만 활동하며 81기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최종계급은 소위. 독일 공군의 수퍼 에이스들 중에서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는 격추 전과 중에서 상당수가 한 번의 출격에 여러 대를 격추시킨 경우가 많은 것이 놀랍다. 후고 브로흐의 긴 격추 명단을 살펴보면 1회 출격에 12대 격추와 단 하루만에 트리플 에이스가 되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전과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통산 격추수는 100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복무 기간과 적은 출격 횟수로 이 정도 무공을 쌓아올린 것을 미루어 보면, 만일 그가 전쟁 초기부터 활약했다면 그 역시 100대 이상, 어쩌면 200대를 넘기는 격추왕이 되기에 충분한 실력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97세인 후고 브로흐 옹은 루프트바페의 전문가 에이스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베테랑 파일럿인데, 최근에는 영국 공군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과거 2차 대전의 유물인 복좌형 스핏파이어의 후방석에 타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2017년 6월 27일에 런던 비긴 힐 공항에서 치뤄진 이 행사를 마치고 콕핏에서 내린 그는 연신 "Wunderbar(멋져)!"를 외치며 정말 아름다운 전투기라고 감탄한 바 있다. 2021년 현재 무려 99세이다.

[1] 정확히는 현재 벨라루스에 속해있는 오르샤(Орша)라는 소도시.[2] 아데마이트는 1944년에 행방불명되었을 당시 소령까지 진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