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베슬링

 



'''오토 베슬링(Otto Weßling : 1913년 9월 23일~1944년 4월 19일)'''
1. 소개
2. 출생과 입대
3. 서부전선
4. 물이 오른 솜씨
5. 뜻밖의 부상
6. 복수의 희생양
7. 서훈


1. 소개


2차 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독일군 중에서 530번째로 곡엽기사 철십자훈장을 받은 수퍼 에이스가 곧 '''오토 베슬링'''이었다. 그는 전쟁 동안 통산 500회 이상 출격하며 83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으나 1944년 4월 19일 카셀 부근에서 P-51에게 격추되어 전사했다.

2. 출생과 입대


1913년 9월 23일에 독일 제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하르쯔 산 기슭에 포함된 지방인 바트 하르츠부르크(Bad Harzburg)에서 태어난 오토 베슬링의 유년 생활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자료가 없다. 그가 제국 항공성의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이 1940년인 것을 보면, 아마도 25세 무렵인1938년 쯤에 루프트바페에 입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공군 입대 연령이 이토록 늦었다는건 기초 비행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을 확률이 높으므로 오토 베슬링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조종사를 지망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가 비행병으로 제3전투항공단(JG 3)의 제9비행중대(9./JG 3)에 합류했을 때 계급은 상병이었고 부대는 프랑스 침공 작전에 투입되어 있었다.

3. 서부전선


오토 상병이 처음 거둔 전과는 생토메르(St. Omer) 상공에서 영국 공군슈퍼마린 스핏파이어 1기였다. 그는 우데트항공단이 독소전에 참가하기 전까지 서부전선에서 4대의 격추 전과를 세우고 있었다. 무기력한 소련 공군과 싸우면서 오토 베슬링의 전과는 1942년 3월까지 18대로 불어나게 된다.

4. 물이 오른 솜씨


4월 1일부로 상사까지 승진한 오토 베슬링은 제3비행중대로 가서 슈밤 리더(4기 편대장)가 되었다. 독일 공군기들은 고공에서는 거의 소련 전투기를 만나는 일이 없었지만, 6월 22일에는 MiG-1 전투기 4기 편대를 만나게 된 베슬링 상사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고, 혼자서 4대를 모두 격추시켜버리는 엄청난 솜씨를 보였다. 일주일 후인 29일에 베슬링 상사는 자신의 40번째 제물이 되는 슈톨모빅 한 대를 잡았지만, 그 직후에 타고 있던 Bf 109F-4(W.Nr. 10 222)가 소련군의 대공 사격에 피탄되어 불시착해야만 했다. 하필이면 그가 불시착한 벨라예프(Belayev) 지역은 아직 독일군이 소련군을 몰아내지 못한 지역이었던 탓에, 그는 다친 몸을 끌며 적병들의 눈을 피해 다니면서 며칠을 헤메다가 간신히 아군 점령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간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한 그는 다시 출격에 나섰고, 7월 17일에 3대를 떨구고 21일에도 3대를 한 번의 교전에 잡아냈다. 9월 4일에 기사철십자훈장을 목에 걸 때 베슬링의 격추 기록은 62대까지 불어나 있었다. 잠시 후방에 있는 동부전선 보충 비행단(Ergänzungs-Jagdgruppe Ost)에서 교관 보직이 맡겨진 그는 신참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그동안 그에게는 현지 진급으로 소위 계급장이 주어지기도 했다.
1943년 6월 1일에 이탈리아로 이동한 그는 제10비행중대(10./JG 3)의 부중대장이 되어 처음으로 미군기들과 싸울 기회가 생긴다. 다음날에 미 육군항공대의 B-24 중폭격기를 2대나 한꺼번에 추락시켜 이 전선에 자신이 나타났음을 알렸다. 7월 1일에 시실리 섬 상공으로 초계비행에 나선 그는 마주친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 편대를 맞아 싸워 3대를 격추시키는 기염을 토했다.이제 그가 비행중대장이 된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었고, 7월 17일자로 제10비행중대장으로 임명된다.


5. 뜻밖의 부상


호사다마랄까, 7월 21일에는 중대가 주둔하고 있던 레베라노(Leverano) 비행장으로 불시에 들이닥친 RAF의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전폭기가 공습을 퍼붓고 달아났는데, 이때 미처 방공호에 뛰어들지 못한 베슬링은 폭탄 파편에 꽤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야전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몇 달 동안이나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9월 말에 부대로 돌아오자 그간 본토에서 연합군 폭격기들과 요격 전투를 치루던 항공단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숱한 전투에서 살아돌아오며 불사신처럼 여겨지던 여러 베테랑들이 보이지 않았고, 편대원들은 거의 전부 처음보는 신참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초급 지휘관과 장교들이 많이 전사해버린 탓에 겨우 중위가 된 그에게 제4비행단(IV./JG 3)이 맡겨졌다. 당시 그의 격추수는 70대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1944년 4월 초에 중폭격기 요격에 다시 발동을 건 그는 11일에 3대의 B-17을 격추시켜 변함없는 솜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보다 앞서 쓰러져간 엑스페아텐 에이스들과 마찬가지로 오토 베슬링에게도 사신의 손길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고, 이 운명은 베슬링 개인의 전투력이나 비행 실력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44년 4월 19일, 헤센주의 에쉬베게(Eschwege) 상공에서 연합군 엄호 전투기들과 쫓고 쫓기는 개싸움을 벌이던 Bf 109G-6(W.Nr. 412 052)가 1대의 P-51에 불을 붙였지만, 꼬리에 달라붙은 또다른 미군 전투기에게 피격되어 검은 연기를 끌며 고도를 낮추었는데, 바로 이 기체에 역전의 용사 오토 베슬링 중위가 타고 있었다.

6. 복수의 희생양


오토 중위는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불타는 전투기를 잘 달래 지상에 동체 착륙을 시도했고 무사히 멈춰 살아나는가 했다. 그렇지만 동료를 잃은 P-51은 자신의 원래 임무인 폭격기 엄호를 내버리고 전우를 죽인 원수를 쫓아 저공까지 따라왔다. 조종석에서 내릴 채비를 하던 오토 베슬링의 탑승기에는 중기관총 6정의 집중사격이 퍼부어졌고, 기체는 그 자리에서 폭발을 일으켰으며 탑승자는 즉사하고 말았다.
그는 전사할 때까지 동부전선에서 56대, 서부전선에서는 27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그중에는 8대의 IL-2와 무려 15대의 4발 중폭격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공대공 격추 외에도 지상 격파 6대도 있었다. 이런 혁혁한 무공을 세운 오토 베슬링에게는 곡엽기사 철십자훈장과 대위 계급이 추서되었다.

7. 서훈


전선 비행장
철십자 훈장 2급 (1940. 6. 22)
철십자 훈장 1급 (1940. 7. 1)
전상장 흑장
독일 금십자훈장 (1942. 3. 11)
기사철십자훈장 (1942. 9. 3)
제530호 곡엽기사 철십자훈장 (1944.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