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 H-4 허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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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관련 문서


1. 개요


Hughes H-4 Hercules, 휴즈 H-4 허큘리스. 미국 휴즈 항공기(Hughes Aircraft)사에서 제작한 8발 초대형 수송기비행정이다.
1942년 개발에 착수하여 1947년 11월 2일 초도비행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초도비행 단 한번 이후 바로 박물관으로 갔다.......
본 용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유보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고있던 연합군 대서양 수송'''선'''단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연합군 수뇌부는 항상 유보트에게 탈탈 털리는 수송선단의 돌파구를 찾고있었는데 지나가던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 성님 曰 : " 간단하구만. 물 속의 잠수함이 무서우면 물 위로 날아가면 될거 아녀?" 하지만 1940년대 초반, 쓸만한 수송기라곤 더글러스(Douglas)사의 스카이트레인 뿐이였고 이 기체는 수송선단을 대체하기에는 적재용적 면이나 항속거리 둘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1]
이렇게 하여 초대형 비행정의 개발은 시작되었고 코드명 'HK-1'으로 지칭된 모델의 컨셉은 6~8발의 엔진을 장착한, 당시로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덩치를 가진 '하늘을 나는 화물선'으로 진행되었다. 완성되면 750명의 군인이나 2대의 M4 셔먼을 수용할 수 있을 것 [2]이라 생각했고 특이하게 금속 프레임 대신 목재와 캔버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했었다.[3]
그러나 중량과 엔진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조종계통에서 문제가 빈발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유압의 보조를 받는 금속 와이어로 연결된 조종간을 사용하는게 당연한데, 기체 길이가 66m[4]를 넘는 무지막지한 사이즈인지라 기체 조종면의 반응이 터무니없이 느렸고, 조종간 조작과 실제 조종면이 움직이기까지 딜레이가 '''분 단위'''가 걸렸다고 하니 사실상 비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렇게 터무니없이 거대한 비행정(지금 수준으로 봐도 엄청 크다.)을 만드는 휴즈를 쓸데없는 곳에 예산 낭비하는 바보 취급 하였고[5] 제작중인 비행정에는 '멋진 거위'라는 뜻[6]의 '스프루스 구스(Spruce Goose)'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45년 8월 아직 개발이 진행중인 시기에 원 목적이였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버렸다. 이에 편승하여 비평가들은 가루가 되도록 휴즈를 까댔고 미 의회 역시 더 이상 쓸모없는 비행정을 제작하기 위해 나랏돈을 퍼가는 휴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1947년 8월에는 아직까지 비행정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유로 청문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청문회가 휴정중인 1947년 11월 드디어 비행정이 완성되었고 휴즈는 직접 초도비행을 조종하기로 한다. 1947년 11월 2일, 휴즈와 부조종사 '데이브 그랜트(Dave Grant)' 외 2명의 항공기관사, 엔지니어, 초대손님, 산업대표 등 총 32명이 탑승한 'H-4 허큘리스'는 롱비치 해변 근해에서 초도비행에 성공하였고 초도비행의 기록은 최대고도 70피트(21m), 최대 비행속도 시속 135마일(217km/h), 비행거리 약 1마일(1.6km)을 기록하였고 '''세계최대 날개폭을 가진 항공기'''라는 타이틀을 획득한다.('''세계최대 항공기'''인 An-225보다 넓다.) 그러나 이제는 이 타이틀마저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조종면 반응성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 비행은 사실 조종간은 중립에 놓고 엔진출력 조절만으로 이수했다가 착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륙은 했기에 비행기록으로 인정되었으며 청문회의 칼바람도 비켜나갈 수 있었다.
훗날 영화 '에비에이터(The Aviator, 2004)'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영화 인간 로켓티어(1991)에서는 주인공이 FBI들을 따돌릴 때 허큘리스의 모형을 글라이더처럼 사용한다. 하워드 휴즈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건 덤.
Spruce Moose라는 이름으로 패러디되어 테일 스핀심슨 가족에 별도로 등장한다. 테일 스핀에 나오는 디자인은 정말로 말코손바닥사슴(moose) 모양으로 만들었고(링크), 심슨에서는 이름만 같은 훨씬 정상적인 비행기 형상으로 나온다(링크).

2. 관련 문서



[1] 다만 이 부분은 당시 무지막지한 수량의 리버티선을 찍어냈던 조선업계의 큰손 헨리 카이저에게 낚여서 시작했다는 썰도 있다. 즉 헨리 카이저가 하워드 휴즈를 꼬셔서 대형 수상비행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물론 중간에 헨리 카이저는 쏙 빠져나가고 하워드 휴즈 혼자 프로젝트를 밀고가게 된다.[2] 2대면 별것 아닌 거 같지만 당시 C-47의 최대 적재하중이 2~3톤 수준에 불과한 시절이였다. 참고로 M4 셔먼 1대의 중량은 약 30톤(...).[3] 전쟁 중이라 금속이 귀했기 때문에 전금속제로 제작하는 것은 무리였다.[4] A380-800이 73m, B747-8i가 76.4m이다. 터보팬 시대에서도 초대형기로 평가받는 이들 기체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사이즈다.[5] 국가 지원금으로 제작이 보충되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휴즈가 전쟁중이라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을 거덜낸다고 비난하였다.[6] 어감으로 보면 'ㅋㅋㅋ 그래 너 참 멋지다. ㅋㅋㅋ' 정도의 비꼬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