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8강 이후
1. 8강
1.1. 1경기 잉글랜드 1 vs 0 아르헨티나
잉글랜드는 후반 33분 허스트의 결승골로 승리했다. 1962년에 이어 아르헨티나에 2전 2승을 거두었고 4경기 연속 무실점과 함께 사상 첫 월드컵 준결승에 올라갔다. '''그러나 이 경기는 히혼의 수치에 버금가는 더러운 경기였다.''' 아르헨티나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을 전반전 35분만에 퇴장시키는 희대의 막장짓 속에 이뤄진 승리라 빛이 바랬다. 주심은 라틴이 '언어 폭력'을 사용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서독 국적의 주심은 스페인어를 할 줄도 몰랐다.
격분한 라틴은 스페인어를 통역할 사람을 불러달라면서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농성했다. 영국 여왕의 이동경로인 레드카펫 위에 드러누우면서 영국인들의 국민정서를 자극했다. 이에 잉글랜드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항의하는 라틴을 경기장 밖으로 강제로 끌고 나갔다. 아르헨티나는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개최국의 더러운 승리를 맹비난했다. 잉글랜드-아르헨티나의 악연은 포클랜드 전쟁 이전인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만 해도 미흡하고 자의적이었던 경고, 퇴장 관련 룰이 정비되어서 다음 대회인 1970 월드컵부터는 옐로우 카드와 레드 카드 제도가 최초로 도입되었다.[1]
1.2. 2경기 서독 4 vs 0 우루과이
'''8강전 잉글랜드vs아르헨티나와 결승전 잉글랜드vs서독에 가려진 최악의 오심경기 중 하나였다.''' 전반 초반 우루과이는 서독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헤더를 서독의 수비수 카를하인츠 슈넬링어가 손으로 쳐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심판은 페널티 킥 선언과 함께 슈넬링어를 퇴장시켰을테지만 PK도 주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슈넬링어에게는 퇴장은 커녕 아무런 제재도 주어지지 않았다. 후반 초반에 서독 선수 에머리히가 심판이 한 눈 판 사이를 틈 타 우루과이의 주장 오라시오 트로체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반칙을 저질렀다. 이에 빡친 트로체는 즉시 에머리히의 배를 걷어찼다. 에머리히는 오버스럽게 뒹굴었고 주심은 오로지 트로체에게만 퇴장을 주었다.
5분 후엔 엑토르 실바가 할러의 급소를 잡고 늘어지는 반칙을 저질러 또 퇴장 당했다. 2명의 퇴장으로 인해 기세가 꺾인 우루과이는 결국 0:4 완패를 당한다. 서독에서는 결승전 결과 때문에 이 월드컵을 많이 아쉬워하고 억울해하곤 하지만 오히려 진짜 억울해야 할 팀은 우루과이였던 셈. 결국 우루과이는 앞으로 1970년, 1986년, 2010년까지 3번이나 계속되는 독일전 징크스를 오심과 함께 시작했다.
이 경기 또한 굉장히 거칠었는데 할러같은 경우 우루과이 선수 엑토르 실바에게 급소를 잡혀 기절했다고 한다. 근데 끝까지 뛰었다고.[2]
1.3. 3경기 소련 2 vs 1 헝가리
소련이 헝가리에 2:1 승리를 거두며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보이며 월드컵 첫 준결승에 올랐다. 헝가리는 1954년 준우승 이후 1라운드-8강-8강에 머무르며 매직 마자르의 명성을 회복하는데 실패했다.
1.4. 4경기 포르투갈 5 vs 3 북한
자신의 손에 의해 짐을 싼 이탈리아가 쓰기로 예약된 호텔을 대신 쓰며 푹 쉰 북한은 초반부터 포르투갈을 강력히 몰아붙였고, 전반 1분만에 터진 박승진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전반 22분 리동운의 추가골, 25분 양성국의 사실상의 쐐기골로 전 세계 축구계를 경악시키며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다들 생각했으나… 한 선수가 포르투갈을 승리로 이끌었다.
조별리그 3골로 부진(?)했던 에우제비우는 전반 27분 첫 골을 시작으로 전반 43분 페널티 추격골, 후반 11분의 동점골, 후반 14분의 페널티 역전골로 북한을 멘붕시켰다. 북한은 에우제비우를 제대로 막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페널티킥을 두 차례나 헌납했고 끝내 역전을 허용, 후반 35분 쐐기골까지 터지며 경기는 포르투갈의 5:3 대역전승으로 북한의 깜짝 돌풍도 여기서 끝났다. 이스탄불 그 이상의 역전극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후 포르투갈은 2010년에 44년 만에 본선에 올라온 북한을 다시 만나 이번에는 아예 실점 없이 7골을 퍼부으며 무자비하게 학살해버린다.
이로써 1934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4강 진출팀 전부 유럽 국가들로 채워졌다.
2. 4강
2.1. 1경기 서독 2 vs 1 소련
서독은 소련의 야신에게 대회 첫 멀티실점을 안겼다. 야신은 예선 3경기 1실점, 8강 1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0.5실점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서독의 막강한 공격력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야신이라서 2골로 막은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막판 분전으로 후반 43분 추격골이 터졌으나 너무 늦었다.[4] 서독은 1954년 우승 이후 12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2.2. 2경기 잉글랜드 2 vs 1 포르투갈
승리팀은 사상 첫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한다. 안방에서 우승하려는 잉글랜드와 첫 본선 무대지만 유일한 전승팀 포르투갈의 준결승은 바비 찰튼이 전반 30분과 후반 35분 결승골과 쐐기골을 터트리며 홈팀인 잉글랜드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전에 올라갔다. 북한전 4골의 주인공 에우제비우는 잉글랜드 수비수들의 육탄방어에 내내 고전하다 후반 37분 겨우 페널티킥 골로 한골을 만회하여[5] 뒤늦게 시동을 걸었으나 이후 잉글랜드는 우주방어 모드로 돌입했고 결국 골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3. 3위 결정전 포르투갈 2 vs 1 소련
에우제비우는 페널티 킥으로 대회 9호골을 성공시키며 득점왕에 올랐고 포르투갈은 정규시간 종료 직전 토레스의 결승골로 사상 첫 본선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포르투갈의 3위와 소련의 4위 모두 자국 월드컵 역사에서 최고성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다음 월드컵에 오르기까지 20년이 걸렸고 그 다음 대회에 나가기까지 16년이 걸리며 1990년대 골든 제너레이션이 등장하기 전까지 길고 긴 암흑기를 시작했다. 에우제비우 원맨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으니 예상되었던 결과였다.
4. 결승전 잉글랜드 4 vs 2 서독
대망의 결승전. 웸블리 스타디움에 98,000여 명의 관중이 결집하여 잉글랜드를 응원하는 가운데 잉글랜드 vs 서독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2~30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전쟁까지 벌여온 전통의 앙숙인데다, 서독은 대망의 월드컵 2회 우승을, 잉글랜드는 그동안 구겨져온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위해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먼저 전반 12분, 헬무트 할러가 수비진이 떨궈놓은 공을 가로채 고든 뱅크스를 뚫어냈다. 그리고 6분이 지나서, 바비 무어가 멋진 간접 프리킥으로 제프 허스트의 머리를 겨냥했고 그것이 곧바로 골로 연결되며 동점이 되었다. 경기 78분에는 서독 수비수 회트게스의 클리어링 실수를 놓치지 않고 마틴 피터스가 골망을 갈랐다. 그리고 경기 89분에 찾아온 마지막 찬스를 볼프강 베버가 골로 연결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제프 허스트가 논란 많은 골을 터뜨렸고, 연장전이 다 끝나가던 120분, 관중들이 난입하는 와중에 또다시 허스트가 무어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 최종 결과는 4-2. 잉글랜드의 승리였다.
이 경기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제프 허스트의 두 번째 골, 그러니까 잉글랜드가 3-2로 앞서가게 만든 골에 대한 내용이다. 여러 책이나 언론에서도 이 골을 다루며 ''''잉글랜드는 얼마나 더럽게 우승했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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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반전. 전반 16분경 볼프강 오베라트가 앨런 볼에게 '정신나간 백태클'을 시전했다. 그러나 주심은 별 제제를 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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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베라트의 파울로부터 2분 후, 슈넬링어는 교묘한 눈속임 반칙을 시전했다. 앨런 볼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걸어 넘어뜨렸다. 그러나 슈넬링어가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고, 공에 시선에 고정되어 있던 주심과 부심은 이 파울을 보지 못해 슈넬링어가 파울을 범한 사실을 몰랐다. VAR이 있었더라면, 아니 그냥 심판이 작정하고 잉글랜드에 편파판정을 할 생각이었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백이면 백 퇴장이 선언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심판진은 그냥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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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각한 것은 후반전에서 나온 서독의 동점골 장면이다. 피터스의 역전골 이후 패색이 짙어진 서독은 경기 89분에 찾아온 프리킥 찬스를 꼭 살려야 했던 상황이었다. 로타어 에머리히가 날린 슈팅이 조지 코헨을 맞고 튀어 나왔고,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이 상황에서, 지그프리트 헬트의 왼발 슈팅이 카를하인츠 슈넬링어의 '''왼팔에 확실하게 맞은 뒤 등에 튕겨 굴절'''되어 방향이 바뀌었다. 잉글랜드 주장 바비 무어는 이것을 정면에서 목격했고 바로 팔을 들어 핸들링 파울에 대해 항의했다. 그리고 튀어나온 볼은 베버의 차지였다. 베버는 잉글랜드 수비수 몇 명이 항의하고 있는 상태에서 말 그대로 공을 주워먹었다. 이 실점 전까지 대회 내내 2실점만을 기록했던 고든 뱅크스도 핸들링이 선언되지 않은 것에 대해 무척 화가 났다. 이런 상황은 무조건 핸들링 파울이 선언되어야 했을 장면이다. 그런데 서독의 골은 그렇지 않았고, 잉글랜드는 그냥 이길 수 있던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연장전 승부까지 가야 했다. 정규시간 종료 휘슬이 불린 후 카메라에 비친 잉글랜드 선수들의 허탈한 표정은 이 골이 얼마나 어이없었는지를 말해준다.
이후 심판은 또 어처구니없는 판정을 보여준다. 이번 피해자는 서독이었다. 연장 전반 6분, 제프 허스트의 슛이 서독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지면에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심판은 이를 득점으로 인정했고, 서독은 격분하여 맹렬하게 항의를 했으나 심판은 항의를 묵살했다. 경기는 3:2 잉글랜드의 리드로 흘러갔다. 잉글랜드의 축구팬들과 서독의 축구팬들은, 당시 결승전의 득점이 "골이냐? 아니냐?"로 현재까지 싸우고 있다고 한다. 서독에서는, "그 위치에서는 어떻게 슛을 시도해도 튀어나온 공이 골라인을 넘어가지 않는다."라는 논문까지 나왔다. 또한 1995년 영국의 옥스포드대 정밀측정학과의 앤드루 지셔만, 이언 레이드 박사도 29년전의 잉글랜드와 서독의 결승전에서 터진 제프 허스트의 연장전 첫 골을 첨단계측 방식으로 정밀측정했다. 그 결과 공이 골라인을 완벽하게 넘어서지 않은 것으로 나와 "득점으로 인정 될 수 없는 오심이 분명"하다고 한다.
컬러 복원판인 화질 좋은 영상을 보면 확실히 알 수있다. 5분 51초 참고. 위 영상은 장면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전개가 갑작스럽게 진행되어 하이라이트로 보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하니, 경기의 흐름을 보고 싶은 사람은 하이라이트를 따로 찾아보거나 풀 경기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서독은 이후 열심히 동점골을 넣으려 했으나 바비 무어를 비롯한 잉글랜드 수비진의 완고한 수비에 번번이 가로막혔고, 119분 바비 무어의 마지막 인터셉트로 인해 사실상 경기가 끝난 상태였다. 아직 119분이었기 때문에 주심은 경기를 진행시켰고, 서독 선수들은 바비 무어가 공을 멀리 걷어낼 것으로 생각하고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무어는 서독 선수들의 예상대로 전방에 대기 중이던 제프 허스트를 향해 롱패스를 전달했고, 허스트는 40m가량 빈 공간을 질주해 골을 넣었다. 골키퍼 틸코프스키는 막을 생각도 안 했다. 허스트가 마지막 골을 득점하기 전 서독 진영 왼쪽 코너에서 관중들이 난입했다. 당시 BBC의 케네스 월스턴홀름 해설가의 해설도 압권인데 다음과 같다: " 그리고 허스트가 접근합니다.... 사람이 경기장에 난입하는데, 그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And here comes Hurst. He's got... some people are on the pitch, 'they think it's all over.') 라고 해설하다가 골이 터지자 '정말 끝났습니다! (It is now! ) 4번째 골입니다!" (It's four!) 허스트의 득점과 동시에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제프 허스트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한 유일한 선수'''라는 타이틀을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다. 마지막 쐐기골에 대해 제프 허스트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관중석에다 슛을 한 것이 골이 되었다고 밝혔다. 덤으로 이 월드컵 결승전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에게 있어서 정말 영원한 자랑거리로 남을 만한 경기인데, 왜냐하면 잉글랜드의 4개 득점 상황이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소속의 선수들은 이 경기에서 무려 6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8분 골
* 득점: 제프 허스트(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 도움: 바비 무어(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 78분 골
* 득점: 마틴 피터스(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 도움: X(서독 수비수 회트게스의 클리어링 실수)
* 102분 골
* 득점: 제프 허스트(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 119분 골
* 득점: 제프 허스트(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 도움: 바비 무어(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정상적인 판정이 있었다면 애초에 잉글랜드는 논란의 결승골이 터진 '''연장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경기로부터 54년이 지난 현재, '슈넬링어의 핸드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허스트의 골라인'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분명한 오심이었음에도 슈넬링어의 명백한 핸드볼 파울이 조명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잉글랜드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겼기 때문에, 잉글랜드 선수들이 판정에 불만을 품었더라도 경기 종료 후 판정에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나중에 기사화되지도 않았고 인구에 회자될 일도 없었다. 그래서 패배한 팀인 서독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제프 허스트의 유령골'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이렇게 많은 논란이 존재하는 것이다.'''"적어도 그것은 승리였고, 우리는 이겼다."'''
(At least it was victory and at least we won.)
'''바비 무어'''
시작부터 끝까지 논란이 많은 월드컵이지만 잉글랜드는 우승할 만했다. 특히 이전 서술에 잉글랜드가 치졸하게 우승했다고 되어 있었는데, 서독이 저지른 여러 차례의 비매너 플레이어와 그 정점에 서 있는 치졸한 동점골을 생각하면, 애초에 잉글랜드에만 유리하게 치졸한 판정들이 이루어진 경기도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상대한 모든 팀에 그럴만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당시 서독의 핵심 선수였던 프란츠 베켄바워 또한 이 월드컵의 결과에 대해 전혀 미련을 두고 있지 않다.
'''결국 수준 이하의 주심이 경기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 대표적인 사례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허스트의 두 번째 골은 문제가 있었지만, 잉글랜드의 우승은 정당했다. 그들은 120분 동안 경기를 지배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신기하게도 44년 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독일과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프랭크 램파드의 '''명백한 골'''이 주심의 오심으로 무효 처리됐다.
[1]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경기 도중 큰 부상을 입은 펠레가 일시 은퇴하면서 선수 보호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를 한 것도 카드 제도를 도입하는데 한몫했다.[2] 경기 종료 후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서 긴급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뛰다가 덧이 난게 당연하기도 하고.[3] 공식 기록은 '''23초'''이다.[4] 이 득점마저도 프리킥 상황에서 골키퍼를 뭉개버리고 넣은 거라 키퍼 차징 논란이 있다.[5] 이로 인해 고든 뱅크스의 442분 무실점 기록이 깨졌다. 1990년 이탈리아의 발테르 쳉가가 517분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골키퍼 월드컵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