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image]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종합팀'''
'''정식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종합팀
'''FIFA 코드'''
PRK
'''협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축구협회 (DPRKFA)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
[image] 윤정수
'''주장'''
[image] 정일관
'''최다출전자'''
리명국 (120경기)
'''최다득점자'''
정일관 (26골)
'''홈 구장'''
김일성경기장, 양각도축구경기장
'''첫 국제경기 출전'''
VS 중국 (1:0 승), 중국 베이징
(1956년 10월 7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21:0 승), 대만 타이베이
(2005년 3월 11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포르투갈 (0:7 패),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2010년 6월 21일)
'''별칭'''
천리마 축구단
'''월드컵'''
출전 2회, 8강 1회 (1966)
'''아시안컵'''
출전 4회, 4위 1회 (1980)
'''동아시안컵'''
출전 4회, 3위 2회 (2005, 2015)
'''올림픽'''
출전 1회[1], 8강 1회 (1976)
'''아시안 게임'''
출전 5회, 금메달 1회 (1978)
'''유니폼 컬러'''
'''홈'''
'''어웨이'''
'''상의'''
'''하의'''
'''양말'''


1. 개요
2. 역사
3. 역대 감독
4. 역대 전적
5. 이야깃거리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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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蹴球 國家代表팀, 북한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문서이다.
대한민국과의 상대전적은 17전 1승 9무 7패로 절대 열세. 심지어 1승도 1990년 평양에서 벌어진 홈 경기이고, 이마저도 1-1로 끝날 경기를 북한인 주심이 일부러 시간을 끌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북한에게 페널티킥을 줘서 북한이 간신히 승리한 경기이고 나머지도 한국을 상대로 심판이 북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행동을 하거나 더러운 수법까지 쓰며 필사적으로 했는데도 졌거나 겨우 억지로 비겼다. 실제 한국 국가대표팀들의 인터뷰를 보면 욕설이나 싸움을 거는 것 말고는 볼 것 없고 부상이나 당하지 말자는 반응이다. 반대로, 여자 축구의 경우 한국과의 전적에서 15승 3무 1패로 절대 우세를 보이고 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H조에서 같은 조에 속해 평양에서 1차 남북대결을 펼쳐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후 2021년 서울에서의 2차 남북대결을 앞두고 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그런 거 없지만, 김씨 왕조의 초상화(...)나 프로파간다 문구 없이 인공기 하나뿐이다.[2] 그리고 아주 유니폼 스폰서가 없는건 아니라서 가끔씩 휠라, 레게아[3], 자코#s-4 등과 계약을 한 적도 있다. 현재는 대북 제재 영향으로 외국 용품 제조사의 후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내에서 자체 생산한 유니폼을 입기 때문에 브랜드는 따로 없는듯 하다. 2019년 10월 15일에 있었던 대한민국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경기 당시에도 해외에서 생산된 그 어떤 물품도 북한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미국 제조사 나이키의 유니폼을 입는 대한민국의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 또한 금지시켰다.
주요 선수로는 한광성, 박광룡, 정일관 등이 있다.

2. 역사


해방 이전부터 평양 지역에서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고, 실제 50~60년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도 실향민 출신의 선수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최정민. 북한은 한국이 1954년 월드컵에서 헝가리와 맞붙기 전에 이미 헝가리와 경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스코어가 10 대 1이었다고 한다. 실제 이 경기를 뛰었던 선수가 훗날 월남해서 한국 대표팀에 들어가 헝가리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제공해 주기도 했다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깨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 첫 승과 함께 8강에 진출한 전적이 있다. 이 경기의 결과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당대 축구 종주국으로 명성을 떨친 잉글랜드미국에게 0-1로 진 것과 더불어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당시 북한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합쳐 1장이 부여된 본선 티켓을 잡은 것이었다고 하며 이것을 엄청나게 포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에는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다 합쳐도 월드컵 예선에 두 팀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거기다 이 당시 FIFA의 본선 티켓 배분에 불만을 품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보이콧을 하기도 했고, 아시아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월드컵 예선에 참여하지 않는 나라들도 꽤 있었다.
아무튼 당시 북한이 본선에서 만난 상대가 소련, 이탈리아, 칠레였다. 소련은 유로 우승국에 당시에는 전설의 골키퍼 레프 야신이 있던 우승후보국으로 지금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당대 최강팀 중 하나였고(실제로 이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 칠레 또한 전 대회에서 개최국 어드벤티지에 힘업어 4강에 오른 남미의 강팀.
다만 이탈리아는 이 당시 좀 달랐다. 당시 이탈리아는 1950 월드컵부터 1962년까지 우승은커녕 1라운드에서 줄줄이 탈락하던 팀이었다. 1958 월드컵은 아예 본선조차 못 오르고 유럽 예선에서 탈락했으며 전 대회인 1962 월드컵에서도 당시 약체라고 평가받던 칠레에게 패싸움을 벌이듯 난장판 경기를 벌여 0-2로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했었다. 도저히 우승후보라고 할 실력이 아니었다. 1934, 1938 월드컵을 우승하며 사상 첫 2연속 월드컵 우승을 거둔 이탈리아였지만 1949년 그야말로 국대 1진급이 다 모였다고 할 선수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수페르가의 비극을 당하고 20년이 지난 1970년에서야 월드컵 결승에 올랐던 만큼, 이탈리아는 우승후보로 보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래도 당시 이탈리아로선 최약체인 북한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에 이탈리아 관중들은 공항에서 돌아오는 자국 선수들에게 달걀과 토마토를 던지며 더 분노했다.
그리고 8강전에서 만난 포르투갈에 3-0까지 앞서기까지 했다. 물론 경기는 에우제비오가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에우제비오는 연달아 4골을 폭발시켜서 북한 선수들에게 헬게이트가 뭔지 가르쳐줬다. 경기결과는 3-5로 포르투갈에게 패했다. 특히 3-0으로 앞서다가 순식간에 5골을 연달아 얻어맞은 당시의 북한 선수들은 패배한 굴욕감보다도 아연실색이 앞섰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 전날 단체로 사창가에 갔다가(...) 패배를 당하고 이후 수용소에 끌려가고 말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사창가 갔다는 얘기는 강철환의《수용소의 노래》(200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강철환의 이 책에서 곁가지로 다루는, 일종의 카더라이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정보는 아닌듯 하다.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에 의하면 사창가가 이유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당시 갑산파를 둘러싼 숙청에 애꿎은 축구선수들이 휘말렸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들 북한 대표팀이 수용소에 끌려간 것도 월드컵 몇 달 후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피파 회장이 '''공격에는 에우제비오, 수비에는 신영규, 골키퍼에는 레프 야신'''이라고 극찬한 신영규 선수는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 성분[4]이 발각되어 월드컵 이후 행보를 일절 알 수 없다고 한다고 하는데, 검색해보면 이후 행보가 조금 나와 있다. 신영규는 숙청당해서 지방의 도자기 공장 노동자로 쫓겨났는데, 유명 축구선수 출신이다 보니 해당 도자기 공장 소속 축구팀에서 감독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70년대 말에 복권되어 평양에서 유소년 축구팀 관련 일에 종사했고, 말년에는 외국에 나가 산 건지 96년에 벨라루스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즉 숙청당하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당시 북한 대표팀 선수단 중에 확실하게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은 이탈리아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박두익이다. 박두익은 1970년대 북한 대표팀 감독으로 맹활약하면서 대한민국과도 여려차례 대결했고, 이후에도 북한 축구계의 대표로 여러차례 모습을 보였다.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北선수들 탄광행?' 그래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차범근이 국가대표였던 당시 박두익과 맞붙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영국의 다니엘 고든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천리마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을 보면 당시의 선수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도 나오고, 그들 중 박두익을 포함한 몇몇은 꽤나 고위층으로 출세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 영화에 출연한 인물은 당시 북한 대표팀 감독이었던 명려현, 골키퍼 리찬명, 수비수 림중선, 미드필더였던 림승휘, 한봉진, 박승진과 공격수 박두익, 량성국 등 8명이다. 그들이 인민복이나 정장을 입고 나온 장면에서 옷에 훈장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꽤나 고위층으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리마축구단 영화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인터뷰가 나온다. <천리마축구단>은 영국에서 2002년 개봉했고, 국내에선 2005년도에 상영되었다.
다니엘 고든 감독은 이 후에도 북한 정부의 협조하에 평양시의 두 여학생을 다룬 <어떤 나라>(2004년), 월북미군을 다룬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년)을 연달아 제작하였다.[5]
이후 북한 축구는 이후에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진출하기 이전에는 월드컵 무대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된다. 계속 본선에 못 나가다가 1998년, 2002년 월드컵에는 아예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엔 본선에 진출했지만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라는 최악의 조 편성을 받아들었고, 조별예선 1차전 브라질전에서는 1-2로 패배치고는 비교적 선전했지만 2차전 상대이자 44년 만에 만난 포르투갈에게 완전히 떡실신당했다. 전반전은 0-1로 잘 버티다가 후반전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6골을 내리 실점하고 말아 '''0-7'''로 졌다. 이에 힘입어 세븐 갤러리가 털리고 말았다.
이는 그 전대회에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아르헨티나에 떡실신을 당했다든지(0-6) 그보다 더 전 대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 떡실신당했다든지(0-8) 하는 경기에 비견되는 양민학살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조 추첨 결과 일본,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6]과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6경기 중 4경기를 치른 결과 타지키스탄 상대로 1승 거둔 거 빼고 일본우즈베키스탄에게 모두 져서 일찌감치 광탈이 확정되는 안습 신세를 겪어야만 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것도 약체 필리핀에 2-3으로 패하는 부진을 보였고 이 패배로 22년만에 역대 2번째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1990년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기록한 욘 안데르센(Jørn Andersen)이다. 다만, 선수 시절에는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마인츠의 분데스리가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것을 제외하면 미미하다. 2015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이러한 원인은 북한대표팀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선수나 감독이나 현대축구의 흐름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당장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자국리그인 최상급축구련맹전 소속에 극소수의 재일 조선인 출신들이 J리그팀에서 뛰고 있다. 이렇다보니 북한도 최근 들어서 선수들을 유럽으로 진출시키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적 문제로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2016년 5월 미켈레 니콜레티 등 이탈리아 하원의원 2명이 북한 선수 최성혁과 세리에 A 팀인 피오렌티나간 계약에 관한 조사를 이탈리아 정부에 요구했다. 그 이유는 최성혁에게 지급된 돈이 북한에 흘러들어 가면 유엔의 대북 제재 조치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점과 최성혁의 활동 자유 등 인권이 보장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것이 부담이 되는지 피오렌티나 측은 최성혁과 계약을 취소했다.
참고로 북한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은 한국(알다시피 1994년 아나톨리 비쇼베츠)보다 1년 더 빨랐는데 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헝가리 출신의 체르너이 팔(Pál Csernai)에게 지휘봉을 맡겼었다. 당시 북한은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 진출했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일본에게 0-3으로 참패하며 6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9 아시안컵 최종예선에서는 레바논에 홈에서 2-2로 비겼으나 원정에서 레바논에 0-5로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2연전을 모두 4-1로 대승하였고, 홍콩과의 최종전을 2-0으로 승리하며 조 2위로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3. 역대 감독




4. 역대 전적



4.1. FIFA 월드컵


  •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58위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승'''
'''무'''
'''패'''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독립 이전
1934 이탈리아 월드컵
1938 프랑스 월드컵
1950 브라질 월드컵
불참(6·25 전쟁)
1954 스위스 월드컵
불참
1958 스웨덴 월드컵
1962 칠레 월드컵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
8위
4
4
1
1
2
5
9
1970 멕시코 월드컵
기권
1974 서독 월드컵
진출 실패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기권
1982 스페인 월드컵
진출 실패
1986 멕시코 월드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
불참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진출 실패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32위
0
3
0
0
3
1
12
2014 브라질 월드컵
진출 실패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
'''합계'''
8강 1회
2/21[7]
4
7
1
1
5
6
21

총성적 '''1승 1무 5패, 승점 4점'''을 기록하여 월드컵 랭킹 '''58위'''에 올라있다. 승점이 같은 나라는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쿠바가 있지만 평균 점수[8]에서 쿠바 1.33(승점 4점 / 3경기), 슬로바키아 1.00(승점 4점 / 4경기), 슬로베니아 0.67(승점 4점 / 6경기), 북한 0.57(승점 4점 / 7경기)를 기록하여 순위가 같은 네 나라 중 순위가 가장 낮다. 따라서 북한은 '''월드컵 2라운드에 진출한 팀들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팀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으며, 굵게 표시된 나라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들이다.
'''이탈리아''': 1승(1966)
'''브라질''': 1패(2010)
러시아: 1패(1966)
포르투갈: 2패(1966, 2010)
칠레: 1무(1966)
코트디부아르: 1패(2010)
대륙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유럽: 1승 3패'''
'''남미: 1무 1패'''
'''아프리카: 1패'''
북한이 월드컵 전적에서 앞서있는 나라는 '''이탈리아''' 한 팀 뿐이고, 호각세인 나라 역시 '''칠레''' 한 팀 뿐이며, '''브라질, 러시아,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에는 전패를 기록하고 있다.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포르투갈전 3:5 패이며, 최다실점 기록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포르투갈전 0:7 패이다.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포르투갈 대표팀을 만나 패했다.
다음 대회는 이스라엘의 참가에 반대하며 불참을 선언, 이후로도 월드컵에 뜨문뜨문 참가하며 세계와의 격차를 벌리며 다시 변방으로 떨어졌다. 1994 최종예선에서는 처참히 발리며 꼴지로 추락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 두 월드컵을 또다시 불참했다. 여기에 북한의 자존심상 참가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개최한 2002 월드컵이 껴있기도 했다.
2006년부터 다시 참여를 재개하여 2010년 사우디와 이란을 누르고 44년만에 본선에 올랐고 또다시 수수께끼의 팀으로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게 했던 팀이다. 조 추첨 직전 이탈리아에선 북한과 다시 붙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할 만큼 관심을 많이 받았던 팀이었고, 실제로 뚜껑이 열리고 브라질을 상대로 1점차로 분투하면서 발목잡이 역할을 하나 싶었는데 다음 포르투갈전에서 후반전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광탈. 실력 자체는 좋은 편이 아니다.

4.2. 올림픽


  • 프로축구선수 참가 금지 시절에는 프로가 없는 공산권 국가들은 올림픽대표=국가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아시아 지역예선 을 겸하는 대회인 AFC U-23 챔피언십에서 조별 리그 3경기 동안 2무 1패를 하였으나 조 2, 3, 4위가 모두 2무 1패로 승점이 2점으로 같아서 다득점을 따져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다.

4.3.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17위'''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홍콩 1956
불참
대한민국 1960
출전금지
이스라엘 1964
불참
이란 1968
불참
태국 1972
불참
이란 1976
예선 통과 후 기권
쿠웨이트 1980
'''4강'''
4위
'''9'''
6
3
0
3
10
12
싱가포르 1984
출전금지
카타르 1988
예선 탈락
일본 1992
조별리그
8위
'''1'''
3
0
1
2
2
5
아랍에미리트 1996
불참
레바논 2000
예선 탈락
중국 2004
예선 탈락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
출전금지
카타르 2011
조별리그
12위
'''1'''
3
0
1
2
0
2
호주 2015
조별리그
13위
'''0'''
3
0
0
3
2
7
아랍에미리트 2019
조별리그
24위
'''0'''
3
0
0
3
1
14
합계
4위(1회)
5/17
'''11'''
18
3
2
13
15
40

4.4. EAFF E-1 풋볼 챔피언십



4.5. 아시안 게임


  • 1974년 4위
  • 1978년 대회 금메달(한국과 0-0으로 비기면서 공동우승. 당시에는 아시안게임 축구에 승부차기 제도가 없었고 결승전은 120분 내에 승부가 안 나면 그냥 공동우승 처리.)
  • 1990년 대회 은메달
  • 2014년 대회 은메달

4.6. 역대 한국전 성적


7승 9무 1패로 한국이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2승 7무를 기록하며 예전처럼 한국이 크게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유일한 패배는 노태우 정권 때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좋아졌던 시절이었던 1990년, 남북친선경기에서 북한 원정에서 1-2로 진 경기이다. 원래는 1-1로 끝나는 경기였는데, '''북한 심판'''이 90분이 끝난 뒤에도 계속 경기를 진행시키다가 98분에(...) 북한에 페널티킥을 주고 이게 성공한 뒤에야 종료 휘슬을 불었다고 한다.
당시 평양과 서울에서 홈 앤드 어웨이를 치렀으며, 서울에서는 황선홍의 결승골로 한국이 1-0 승리. 당시 쌍방은 유니폼에 국기, 협회 휘장 등 팀을 상징하는 어떤 표시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고 유니폼 색깔로만 구분했다(남은 빨강, 북은 하양).

5. 이야깃거리


2000년대 이후부터 한국과 비슷하게 유스 연령대에서 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대회에선 꾸준히 4강 내지 우승까지도 하고, 적어도 토너먼트 라운드까지는 가서 유스 월드컵 진출권도 자주 따간다. 예를들어 17세 이하 대표팀은 2007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에 출전해서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근데 그 외로는 세계무대에서 성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
이렇게 유스팀에서 강한 성적을 보이는 이유는 북한 당국이 유망주를 대거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유학보내기 때문이다. 2017년 현재 30여명의 북한 유망주가 유럽의 축구학교에 유학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이들이 제대로 성장해서 해외리그에 잘 정착한다면 북한 축구의 중흥을 이끌 수도 있다. 이미 한광성이나 최성혁과 같은 1998년생들이 세계 최고의 리그중의 하나인 세리에 A나 그 하부리그인 세리에 B에 진출해 있다.
여담으로 북한이 이 레벨에서 잘 하는 이유가 나이를 조작해서 오버에이지 플레이어를 내보내고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선수들 외모들이 많이 삭아보이기 때문. 실로 예전에 선수 연령을 속여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긴 하다.[9]
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헝가리, 브라질,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3전전패에 1득점 12실점을 기록하며 같이 3전전패 당한 미얀마(2득점 13실점)에 골차이로 밀려 24위 꼴찌를 기록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빗대어 한국 웹상에서는 농담조로 남북한과의 경기에서 북한이 지면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하곤 한다. 다만 실제로 탄광이나 한국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정치범 수용소 같은 곳에 끌려가진 않는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는 아오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재교육을 빙자한 강제노동에 투입된다는 증언도 있는데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 즘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1993년 10월 21일 일본전이나 1993년 10월 28일 한국전으로 추정) 참패한 북한 대표팀이 귀국 즉시 교육농장에 보내져서 감자를 캐는 강제노동을 당했다고 한다.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에서 유리한 대진을 받기 위해 고의적인 패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2018 AFC U-19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를 박탈하였다.
매우 폐쇄적인 국가이다보니 매번 북한의 축구 대표팀에 대한 인적 정보를 찾기가 힘들다. 대회때마다 북한 선수 한두명은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데 이러한 찬사를 외국의 유명 선수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일명 북한의 ㅇㅇㅇ 시리즈. 예를 들자면, 압록바, 레반동무스키, 북제마, 반미스텔루이, 함흥민, 북폰, 저메인 대포동 등등이다. 노르웨이 출신 욘 안데르센 감독이 팀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 대표팀 감독 시절 연봉은 10억 원 이상에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제공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6. 관련 문서



[1] 1964년 올림픽은 본선 진출권은 얻었으나 조선올림픽위원회의 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본선 경기 포기[2] 유니폼 제작 규격에 문구는 집어넣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가끔 집어넣는 팀이 있어도 그건 특정 문구가 아니라 농구나 야구 국가대표팀같이 나라명을 넣을뿐. 그리고 김씨 왕조 초상화를 유니폼에 새겼다가 그 자리에 공이라도 맞으면 바로 아오지행이다. 이란이나 사우디같은 국가도 유니폼에 그런 짓은 못한다.[3] 2010 남아공 월드컵[4] 북한 신분제도상 구 지주 출신은 빼도박도 못하는 적대계층이다.[5] 본래 다니엘 고든 감독이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이유는 '''북한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없을까'''라는 발상에서였다고 한다. 그런 발상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영화에 나오는 가장 큰 문제점이자 한계는 '''북한의 일상'''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평양의 일상'''을 보여준 것이란 점이다. 평양만 봤을 때는 북한이 우리가 익히 알던 대로 막장 국가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저 보통의 국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풍경과 비슷비슷하다. 그러니 북한 정부에서도 승인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평양에 사는 북한 사람들은 대개 특권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이 영화들의 문제점이자 한계점에 대해서도 나름의 할 말은 있다. 북한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활동 반경이 평양 안쪽으로 제한된다. 그리고 항상 뒤에 가이드(라고 쓰고 감시자라 읽는다.)가 따라붙어 다닌다. 그러므로 평양 바깥 쪽 생활상이 어떠한지는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다니엘 고든 감독이 친북 성향이라든지 하는 문제보다도 그가 외국인이고 북한에서는 외국인을 평양 바깥으로 웬만해서는 못 나가게 하는 상황 때문에 이 같은 문제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6] 원래 시리아였는데 시리아가 부정 선수 참가를 이유로 실격당해서 타지키스탄으로 변경.[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8]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9] 다른 종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 초 북한의 체조 요정으로 불렸던 김광숙이 나이를 속인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고 사라진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