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일본시리즈
1. 개요
1985년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 해 센트럴리그 우승팀인 한신 타이거스와 퍼시픽 리그 우승팀인 세이부 라이온즈가 맞붙었다.
일본프로야구의 규칙에 따라 홀수해인 1985년은 퍼시픽 리그 팀인 세이부 라이온즈가 홈 어드밴티지를 가졌다.
이 해 일본시리즈에서 요시다 요시오 감독이 이끄는 한신 타이거스는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이 이끄는 세이부 라이온즈와 6차전까지 간 끝에 4승 2패로 승리, '''비원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1]
2. 1~6차전 결과
2.1. 1차전: 10월 26일,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승리투수 : 이케다 치카후사(한신, 1승)
- 패전투수 : 마츠누마 히로히사(세이부, 1패)
이것으로 이케다 치카후사는 사상 6번째의 '''일본시리즈 첫 등판에서 첫 완봉승''' 을 기록했다.
2.2. 2차전: 10월 27일,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승리투수 : 리치 게일(한신, 1승)
- 패전투수 : 타카하시 나오키(세이부, 1패)
- 세이브 : 나카니시 키요유키(한신, 1세이브)
그 뒤 7회 말, 세이부는 1사 1, 3루에 주자를 들이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츠지 하츠히코가 스퀴즈 번트를 시전했으나, 랜디 바스의 호수비로 점수를 내는 데 실패. 결국 한신은 2승으로 먼저 앞서나가며 홈구장인 한신 코시엔 구장으로 기분 좋게 이동할 수 있었다.
2.3. 3차전 : 10월 29일, 한신 코시엔 구장
- 승리투수 : 히가시오 오사무(세이부, 1승)
- 패전투수 : 나카다 요시히로(한신, 1패)
이로써 세이부는 일단 1승으로 만회를 하였다.
2.4. 4차전: 10월 30일, 한신 코시엔 구장
- 승리투수 : 나가이 타모츠(세이부, 1승)
- 패전투수 : 후쿠마 오사무(한신, 1패)
- 세이브 : 히가시오 오사무(세이부, 1승 1세이브)
양측 모두 5회까진 무득점으로 팽팽히 맞섰으나, 6회 초 세이부의 스티브 온디베로스가 2점 홈런으로 선공했고, 곧바로 한신은 6회 말 마유미 아키노부의 솔로 홈런, 8회 말 히로타 스미오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얼마 안 가 9회 초 도중 출장한 니시오카 요시히로가 2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이것이 결승타가 되어 세이부는 승리했다.
이렇게 해서 승부는 한신 2승 - 세이부 2승으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5. 5차전: 10월 31일, 한신 코시엔 구장
- 승리투수 : 후쿠마 오사무(한신, 1승 1패)
- 패전투수 : 오노 카즈유키(세이부, 1패)
이렇게 한신은 1번만 더 이기면 '''비원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 이란 유리한 상황으로 기분 좋게 적진인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으로 또 다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이부는 어떻게든 2승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안 좋은 상황이 되었다.
2.6. 6차전 : 11월 2일,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승리투수 : 리치 게일(한신, 2승)
- 패전투수 : 타카하시 나오키(세이부, 2패)[2]
시작부터 1회 초, 한신이 2사 상황에서 랜디 바스의 사구, 카케후 마사유키의 좌전안타, 오카다 아키노부의 내야안타로 만루를 만들었고, 곧이어 나가사키 케이이치가 타카하시 나오키에게서 '''만루 홈런'''을 빼앗으며 시작부터 4점으로 대선공. 놀란 세이부는 곧바로 1회 말, 이시게 히로미치가 리치 게일에게 솔로 홈런을 빼앗아 1점을 만회했으나, 바로 2회 초, 한신의 마유미 아키노부가 솔로 홈런을 치면서 또 다시 한신이 4점차로 앞서나갔다. 세이부는 4회 말, 스티브 온디베로스의 2루타로 또다시 3점차로 점수차를 줄였지만, 한신은 이후 5회 초 카케후 마사유키의 희생플라이, 7회 초 랜디 바스의 우전적시타, 9회 초 또 다시 카케후 마사유키가 2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세이부를 말 그대로 초토화 시켰다.
세이부는 9회 말, 2사 상황에서 아키야마 코지가 좌전안타로 1점을 겨우 얻어냈지만, 그 뒤 다음 타자였던 이토 츠토무가 투수 쪽 땅볼로 아웃당하면서, 경기는 끝났다.
'''한신 타이거스가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3. 타이틀 시상
- 최고 수훈 선수(MVP) : 랜디 바스(한신 타이거스)
- 감투 선수(감투상) : 이시게 히로미치(세이부 라이온즈)
- 우수 선수(우수선수상) : 마유미 아키노부, 나가사키 케이지, 리처드 게일(한신 타이거스)
4. 여담
- 최초로 지명타자 제도가 적용된 시리즈였다. 이 당시 지명타자 제도는 격년제로 7차전 모두 홈 어드밴티지를 얻는 리그의 규칙을 따라 적용키로 했으나, 수정을 하여 1987년부터 퍼시픽 리그 홈구장에서만 지명타자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2019년 기준으로 유일한 전 경기 지명타자 시리즈가 되었으며, 한신은 2019년까지는 전 경기 지명타자제 시리즈에서 승리한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 그러다 2020년 일본시리즈에서 모든 경기에 지명타자가 적용되며 한신은 유일에서 최초로 칭호가 바뀌었다.
- 이 해 우승으로 간사이 일대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난다. 특히 오사카에선 사람들이 한신 선수들과 닮은 사람들을 도톤보리 강에 입수시키는 일까지 벌였는데, 이때 외국인이던 랜디 바스와 비슷한 사람을 찾지 못하여서.. 어떤 통닭집의 호호 할아버지 인형을 지들 멋대로 강에 입수시켰고 이에 분노하신 할아버지 인형께서는 한신에게 끝없는 저주를 내리신다.
- 양 팀 감독이었던 요시다 요시오와 히로오카 타츠로는 같은 유격수로써 현역 시절 화려한 명수비를 무기로 서로 경쟁하던 사이였다. 일본시리즈에서 패배한 히로오카는 이 해를 끝으로 사임했고 다시는 감독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시리즈 MVP는 랜디 바스였다. 이해 센트럴리그 최초의 외국인 타격 삼관왕에 오르며 리그 MVP까지 수상한 바스는, 일본 시리즈에서도 타율.368(19타수 7안타) 3홈런, 9타점으로 시리즈 3관왕이 되었다. 시리즈 1차전부터 홈런을 뿜어 내며 3경기 연속 홈런. 차원이 다른 용병이었다. 세이부의 히로오카 감독은 시리즈에서 지고 나서 "다시는 저런 괴물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 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이 해 한신 타이거즈 요시다 요시오 감독의 투수운용은 매우 돋보였다. 당시엔 일반적으로 에이스급 선발투수들이 매경기 완투 완봉 하던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풍토였는데, 요시다 감독은 약한 선발진을 보완하기 위해 노무라, 후쿠마, 나카니시, 야마모토 등 계투진을 적극 활용해 게임을 풀어나갔다. 선발투수의 완투를 당연하게 여기고 메인 계투 투수는 팀 당 1,2명에 불과했던 상황에서, 선발들의 퀵 후크와 환상적인 계투운용은 타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한신 투수진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3] 당시 일본 방송에서는 '에이스 없이 이뤄낸 우승'이란 제목으로 특집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을 정도다.
- 16년 후인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가 우승한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별히 강한 선발투수 없이 타선의 힘으로 우승했고,[4] 외국인 강타자가 중심에 있었으며,[5]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공교롭게도 우승을 내준 구단은 같은 라이온즈다. 거기다 둘은 자매구단답게 그담해 시리즈 우승한거까지 같다.
- 이 해 우승은 시즌 도중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中埜 肇)의 영전에 바치는 선물이기도 했다.[6] 참고로 사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한신 선수들이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이동할 때 탔었던 비행기가 사고기였었다고 한다. 해당 사고기[7] 는 당일 사고 몇 시간 전 하네다~후쿠오카 노선에서 비행했었는데,[8] 만약 선수단이 탔을 때 사고가 났다면.. 이 항목에 한신 타이거스라는 말 자체가 적혀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이 해 일본시리즈에선 사자 팀이 준우승 했지만, 바로 옆나라의 리그에선 사자 팀이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으로 그 해 챔피언에 등극한다. 공교롭게도 한신과 삼성 모두 창단 첫 우승이란 공통점이 있다.
- 우승이 결정된 6차전의 승리 투수 리치 게일은 5년 전에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인 1980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패전투수가 되어 필리스의 첫 우승을 허용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필리스와 한신 다 첫 우승이고 6차전에서, 그것도 세번째로 나간 시리즈에서 우승을 결정한 게 너무 절묘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두 시리즈 모두 모두 2승 - 2패 - 다시 2승 테크로 우승했다! 그리고 캔자스도 이해 월드시리즈를 2013년 한국시리즈처럼 우승했다.
- 마지막으로 대형 사철 야구단끼리 맞붙었던 일본시리즈이다. 2020년 현재에도 세리그의 한신 파리그의 세이부만이 대형 사철 산하의 야구단으로 존속하고 있다.
[1] 게다가 이분과 함께 일본 프로야구 유이의 80년대 우승 이후 우승 없는팀이다.[2] 시리즈 역적질때문에 요미우리로 쫓겨나고 거기서 은퇴했다.[3] 물론 당시 11점을 내줘도 12점을 뽑아내던 타선의 힘으로 버텨준 게 컸다.[4] 2001년 두산은 선발투수 중에 10승을 거둔 투수가 없었다.[5] 1985년 한신은 랜디 바스, 2001년 두산은 타이론 우즈. 둘다 그해 시리즈 MVP를 차지한 것도 공통점이다.[6] 나카노 사장은 야구 경험은 전무했으나, 구단 사장이 된 후에는 구단을 아는 것도 임원의 임무라 말하며 응원가가 적힌 종이를 관객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부르자고 말하기도 했으며,사고가 나기 이틀 전까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수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격려 인사를 했었다고. 실제로 나카노 사장의 사고 소식이 전해진 뒤 일주일 뒤까지 한신은 그 기간 동안에 있던 경기에서 모두 져버리면서 6연패에 빠지는 바람에 선수들의 사기가 땅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실제로 6연패 때문에 잠깐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1위를 허용하면서 우승에 실패할 뻔하기도 했다.[7] 심지어 김포-나리타 단거리 국제선에도 뛴적이 있었다.[8] 당시 한신과 주니치가 후쿠오카에서 게임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