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텍사스 대한파 및 정전 사태
1. 개요
2021년 2월 중순, 미국 텍사스 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전력부족 및 정전 사태.
2. 사태의 원인
1차적인 원인은 2021년 2월 15일(현지 시각)부터 북미 전역에 휘몰아친 21세기 최악의 겨울폭풍이다. 북극권에서 뻗어온 강력한 고기압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이번 겨울 폭풍으로 인해 미국 본토의 75%가 눈에 뒤덮였으며[1] , 선 벨트라 불리는 미국 남부지방의 온도가 '''영하 20도 미만'''까지 떨어져서, 동 시각대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영하 16도보다 더 낮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에서 따뜻한 지방으로 손꼽히는 텍사스가 미국에서 가장 추운 알래스카보다 더 추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겨울이라고 해도 최저기온이 추워야 5~10°C 사이였던게 당연했던 미국의 선 벨트 주들은 일제히 난리가 났다. 선 벨트 주들의 전력사용은 당연히 겨울철보다 여름철에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도록 스케줄이 짜여져 있다. 냉방수요가 많은 여름철에 설비를 풀 가동하고, 냉방수요가 없고 난방수요란 건 생각도 안 하는 겨울철에 발전설비들을 교대로 정비하고 휴식시키는 것이다.[2]
그런데 이런 미국 남부지역에 30년만에 한번 찾아온다는 역대급 폭설과 한파가 닥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겨울철 의복이란 게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건 난방설비뿐이었고, 금새 매장의 온열기들이 동나고 말았다.
당연히 난방 목적의 전력사용이 폭증했는데, 상술했듯 이들 지역의 전력생산은 여름철에 집중되어 있어서 겨울철 전력소비량 폭증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급하게 가동시키려 해도 상당수 발전설비들이 '''상정하지 않은 한파를 이겨내지 못해''' 동파해버리고 얼어붙거나 고장이 나 버렸다. 북부 지방이면 모를까, 남부 지방의 설비들은 규제가 없다면 당연히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한파를 감안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기 마련이었다. 설사 가동이 된다 하더라도, 당장 발전설비를 돌리기 위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쨌든 이번 대한파로 인해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캔자스, 켄터키, 미시시피, 텍사스 그리고 선 벨트는 아니지만 역시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인 오리건까지 총 7개 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런데 왜 이들 중에서 유독 텍사스 주에서만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하단 참조.
3. 논란
3.1. 왜 하필 텍사스에만 전력난이 닥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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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 나와있듯이 텍사스의 전력망은 다른 주들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 텍사스의 민영발전업체들은 국가단위 전력망에 연결될 경우 생길 연방정부의 각종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력망을 텍사스 전력연결망(Texas Interconnection)으로 독립시켰고, '''고의적으로 다른 주들과 전력망을 연결시키지 않았다.'''[3] 또한 1977년에 발족된 관리 감독 기관인 FERC[4] 의 규제나 감독도 받지 않으며, FERC가 관리하는 전력 도매 시장에도 접근할 수 없다.
텍사스가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텍사스에 풍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어서 이를 이용한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기록적인 한파로 모든 것이 얼어붙기 전까지는.'''
이미 텍사스는 2011년 2월에 주 일부에서 기록적인 한파를 겪고 천연가스 설비의 작동이 중단되어 순환 정전과 난방 연료 차단 등의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고, 상술한 FERC가 해당 사태의 원인과 여파를 상세히 분석하여 텍사스 연결망의 운영을 담당하는 ERCOT[5] 에 통보한 적이 있다.[6] 하지만 ERCOT은 FERC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았기에 시정 권고에 응할 의무가 없었고, 해당 권고를 무시했다. 그 결과 10년 뒤 규모만 다를 뿐 완전히 동일한 원인인 천연가스 설비 가동 중단으로 인해 전력 및 연료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다른 선 벨트 주들은 자신들이 속한 동부 전력연결망(Eastern Interconnection)을 통해 멀쩡히 전력이 생산되는 북부 주들로부터 긴급히 전력을 도매로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는 와중에 텍사스만 홀로 다른 주들의 잉여전기를 바라보기만 하는 참상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로 ERCOT 전력망에 속하지 않은 엘패소 같은 카운티들은 당연히 정전 사태가 거의 없었다. #
3.2. 재생에너지 발전이 사태의 원인인가?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보트를 비롯하여 재생에너지로 인해 이런 상황이 온 거 아니냐며 책임을 떠넘기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상술했듯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전제로 작동하는 천연가스 설비가 전력 부족과 한파로 인한 기능 이상 때문에 가동이 중단되어 기저부하를 담당할 기반 전력의 핵심이 날아갔다는 사안이다. ##
게다가 텍사스보다 훨씬 추운 캐나다, 북유럽의 스웨덴,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이미 2015년에 기가와트급 풍력발전을 시행하고 있고 설비를 확장 중이며[7] , 이들 설비는 텍사스가 겪은 한파보다 훨씬 추운 섭씨 영하 30도급 혹한에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재생에너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 절감 목적으로 이상기후에 대응하지 않은 안일한 설비로 인해 혹한에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한(Winterization)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이는 텍사스 내의 화력 발전소나 원전과 같은 다른 에너지 발전소들도 해당되는 문제이며, 실제로 텍사스의 원자력 발전소 중에서는 원전 내부로 공급하는 물이 얼어서 가동이 중단된 경우도 있다. #
노르웨이,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텍사스보다 풍력발전 비율이 훨씬 낮은 편이여서[8] 풍력발전기 문제로 입는 손실이 텍사스만큼 치명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긴 하지만, 텍사스보다 훨씬 추운 노스다코타의 풍력발전 비율은 45%가 넘고 텍사스 바로 위에 있는 오클라호마도 풍력발전 비중이 31.9%에 이르지만 이번 한파에서 정전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 지역의 풍력발전기에 처음 설치 당시부터 방한 대비가 된 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에 책임전가를 하려는 시도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9] .###
4. 여파
한파는 단순히 난방으로 인한 전력 수요를 늘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난방과 발전 용량의 중추를 담당하는 천연가스 설비의 상당부분은 비용 절감을 위해 천연가스 연소가 아닌 전기 모터 압축식으로 교체되었는데, 한파로 인해 이들 설비의 작동이 차질을 빚으면서 천연가스 발전소의 가동이 상당부분 중단되고,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인해 전력이 부족해지면서 작동중인 설비의 작동마저 중단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10]
2021년 2월 15일부터 시작된 텍사스의 전력부족은 17일 500만 가구 이상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피크치를 찍은 후, 18일에는 어떻게든 이 수치를 14만 가구로 줄이는 데 성공했으나 문제는 일부 카운티의 경우에는 '''순환정전을 통해 시간대별로 전력을 제한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는 전력이 완전히 복구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
전력 공급이 약간이나마 복구된 후에도 많은 가정은 수도관이 동파되어 수도 공급이 중단된 상황이다. 급한대로 눈을 녹여서 쓰는 주민도 있었다.
2021년 2월 20일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가 요청한 중대 재난 선포를 승인했다.#
4.1. 전기요금 폭등
텍사스는 2002년에 전력시장 자유화를 한 이후 여러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전력을 제공하고 있는데, 릴라이언트, TXU 에너지 등 고정적인 도매가격을 적용하고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 전력 소매 기업 상당수는 도매 전력 공급가에 따라 킬로와트 당 가격이 수시로 변경되는 variable-rate를 적용하고 있고 이러한 회사의 플랜에 가입한 일부 소비자들은 해당 시기에 수천달러가 넘는 요금 폭탄을 맞았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기 요금이 거의 '''200배''' 가까이 뛰는 일도 벌어졌다. # 가장 사태가 심각했던 2021년 2월 16일에는 평일에 1MWh당 50달러 미만이었던 도매 전력 공급가가 약 200배인 9000달러가 넘게 치솟았다.(아카이브)
실제로 텍사스주 주민들이 전력시장 규제 완화로 16년간 종전보다 280억달러(약 30조9천960억원)의 요금을 더 냈다.#
4.2. 주민들의 생존기
텍사스 사람들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가장 흔한 방법이 자동차. 가장 심플한 방법으로는 가족들이 모두 자동차로 피신한 후 자동차 히터를 풀 가동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자동차 히터에서 집까지 알루미늄 연통을 연결하여 집안으로 난방하는 방법. 어쨌든 전기보다는 기름 공급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어서 가능한 방법이지만, 차고 내에서 엔진을 돌리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폭설로 인해 교통마저 차질이 생기면서 한계가 생기자 이에 차선책으로, 액자, 이웃집 간 경계 표시인 울타리, 정원수 등 장작이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가져다가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조차 안 되니 아예 사람들이 '''직접 도끼를 들고 나무를 하러 가는(...)''' 모습까지 나왔다.[11]
또 다른 방법으로, 자체 발전설비를 지닌 호텔로 피난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주 정부가 호텔을 강제 징발한 것이 아니기에 말이 피난이지 사실상 평소처럼 사람들이 돈을 주고 호텔 객실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호텔업자들이 1박 가격을 1천 달러에 근접해서 받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
4.3. 산업적 여파
텍사스 주 정부는 모든 전력공급의 최우선을 일반 가정으로 돌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주 내에 소재한 대규모 공장들에게 가동 정지를 요청하는 궁여지책까지 짜냈다. 이 명령에 따라 가동정지된 공장 중에는 오스틴의 삼성전자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 인피니온의 차량용 반도체 공장 등 텍사스가 유치한 세계 유수 대기업들의 생산라인이 포함되어 있다.
멕시코도 유탄을 맞았는데, 멕시코는 화력발전의 비중이 높고 화력발전에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절대다수를 미국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그런데 천연가스 수송 설비가 상당부분 가동 중단되고 미국이 당장 자기 발등의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다보니 멕시코에 수출되는 천연가스가 확 줄어버린 것. 이 여파로 멕시코 북부에 위치한 기아자동차 공장 역시 가동정지되었다. #
한편 이 전력부족 사태가 발생할 때는 마침 삼성전자가 대규모 반도체 설비 증설 투자를 거의 확정짓고 투자지를 몰색하는 와중에 텍사스 주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투자를 유치하려고 세일즈를 하던 시기였다. # 그러던 와중에 이번 전력난이 터지고 오스틴의 삼성전자 공장이 셧다운되는 바람에 텍사스 주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유치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여파로 국제 반도체 시장 및 석유, 천연가스 시장이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특히 석유 시장의 경우 텍사스 주의 유전들이 마찬가지로 한파, 정전으로 가동되지 않으면서 공급량 축소가 현실화되어 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 오염물질을 대규모로 배출했다고 전한다.#
5. 기타
- 이 와중에 텍사스주가 지역구인 미국 연방 의회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가족들과 함께 멕시코 칸쿤으로 여행을 갔다가 SNS에 포착되어 큰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급격하게 퍼지자 크루즈는 결국 가족들은 남겨두고 본인만 칸쿤행 하루만에 귀국했다. #
- 텍사스 콜로라도 시티의 팀 보이드 시장은 페이스북에 "이 도시, 카운티와 전력 회사는 당신에 대해 아무 의무도 없다"[12] , "지원금만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신물이 난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멸망할 것"라는 내용의 망언을 올렸다가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결국 욕이란 욕은 죄다 얻어먹은 후 시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
- 텍사스 주민 일부는 눈을 열기에 갖다댔는데도 녹지 않는다며 '정부가 만든 가짜 눈'이라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눈이 녹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열기에다가 눈을 바로 갖다대면 승화되며 바로 기체가 되기 때문. 반면 얼음의 승화에는 g당 2838J이라는 대량의 열이 필요하기 때문에 헤어 드라이기나 라이터 정도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승화되지도 않는다. 또한 눈이 그을린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눈이 플라스틱이라서가 아니라 연료의 불완전 연소로 인한 그을음이 눈에 달라붙는 것일 뿐이다.[13] 음모론을 제기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얼음을 얼려서 라이터로 쉽게 녹일 수 있는지 실험하지 않는 것은 덤. 더군다나 미 정부는 최악의 경제 상황과 재난 보조금 부담 때문에 한가롭게 가짜 눈 같은 것을 만들어서 뿌릴 예산과 시간적 여유도 없다[14] .
- 따듯한 텍사스 날씨에 적응한 바다거북들이 갑자기 추워진 수온때문에 기절하는 일도 발생했다.
- 인프라 마비, 그것도 전기 시설(발전소)의 마비로 사회적 혼란마저 일어났다는 점에서, 결국 도란스 내려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재되고 말았다. 한파 때문에 일어났다는 이유로, 실사판 프로스트 펑크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1] 심지어 뉴욕시조차 2차례의 폭설을 겪은데다 눈이 오는 날이 잦아진 상황이다. 뉴욕 주와는 달리 뉴욕시는 눈이 그다지 많이 오는 곳이라곤 보기 어려운 곳이었었다.[2] ERCOT의 순환정전 관련 통보(pdf)에도 여름철 폭염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한파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3] 전력연결망(Interconnection)끼리는 교류 주파수의 상을 일치시키지 않기 때문에 직접 교류 송전선 연결이 불가능하고, 주파수의 상에 관계없이 송전과 변환, 변압이 가능한 초고압직류망으로만 연결이 가능하다. 물론 텍사스와 다른 주 사이에 이런 대규모 직류 송전을 가능케하는 초고압직류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4]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ttee[5] Electric Reliability Council of Texas[6] Outages and Curtailments During the Southwest Cold Weather Event of February 1-5, 2011, FERC, 2011[7] Wind in Power: 2015 European Statistics, European Wind Energy Association, 2016, p.4[8] 2018년 기준 텍사스 28.8%, 스웨덴 11%, 캐나다 5.2%, 핀란드 6%, 2017년 기준 노르웨이 1.9%.[9] 오히려 '''지구 온난화 허구설을 주장하거나 신봉하는 이들이 역관광 당할 근거'''가 될 사례가 될 수도 있다.[10] FERC, 2011, p.73, 113-124[11] 텍사스의 유튜버 올리버쌤도 땔감을 구해 버티고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12] 당연히 개소리다. 주민들은 각종 세금과 전기료를 내왔기 때문.[13] 라이터보다 화력이 센 프로판 토치를 눈에 직접 쏴도 눈은 그을음만 묻을 뿐 거의 녹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실험 동영상)[14] 게다가 시국이 시국인 만큼 그따위 쓸데없는 장난질을 할 상황도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 감염증 해결을 제 1순위로 삼을 정도로 사활을 걸고있다. 당장 세번째 개인지원금 $1,400이 포함된 재난 보조금 법안을 통과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