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ctric Light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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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lectric Light Orchestra'''일반적인 락 뮤직에 현악 파트, 즉 클래시컬한 사운드를 무리없이 결합시키는 일은 극히 모험적이며,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ELO는 그 불가능하다는 것을 완벽하고 훌륭하게 조화시켰습니다. - ELO의 매니저 "돈 아덴"
1970년~1986년, 1990년~1999년[2] 에 활동한 영국 버밍엄 출신의 락 밴드이다.
약칭으로 '''"ELO"'''라고 많이 불리며, 이 항목에서는 앞으로 'ELO'로 표현한다.
프로그레시브 록[3] 장르에 속하는 밴드로, '''클래식과 락 음악'''의 결합이라는 이질적이고도 독특한 방식으로 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락밴드. [4]
밴드명은 초기 앨범의 커버에서 볼 수 있는 빛나는 전구와 같은 일렉트릭 라이트(Electric Light)와 전자(Electric)악기와 함께라는 가벼운 오케스트라(Light Orchestra)라는 의미를 포함시킨 언어유희이다.[5]
2. 상징
밴드의 이전 로고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사(United Artists Records)에 있던 존 케헤가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로고에서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하였다.
이후, 1976년 존 코시가 디자인한 공식 밴드로고는 1946년 벌리처 주크박스 모델 4008 스피커를 본떠 만들어졌다.1976년 앨범인 'A New World Record'에서 처음 선보였고, 1977년 대표작 'Out Of The Blue"에서는 로고가 마치 커다란 우주정거장 형태처럼 변형되었고, 오랫동안 밴드와 밀접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1979년 'Discovery' 앨범에서는 로고가 작고 빛나는 아티팩트로 나와 보물상자 위에 올려져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드러머 '베브 베반'은 종종 로고를 그의 드럼 킷에 보이도록 놓기도 했다고 한다.
3. 역사
사실상 리더인 '제프 린(Jeff Lynne)'을 필두로, 베이시스트인 '로이 우드(Roy Wood)'[6] , 첼로에 '휴 맥도웰 (Hugh McDowell)', 제프 린의 절친으로 알려진 드러머 '베브 베반 (Bev Bevan)'으로 결성되었으며, 특히 제프 린은 핵심멤버답게 작곡, 편곡, 보컬, 프로듀서, 연주까지 겸하는 만능을 보였다. ELO는 1972년이 되어서 첫 번째 앨범 한 장을 발표했는데, 바로 'No Answer'였다.[7]
이 첫 앨범은 영국에서 미미한 성적과 함께 소수의 팬층만을 확보했지만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허나 그때까지 함께한 베이시스트 '로이 우드'는 그룹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ELO 멤버 구성에 큰 변화가 오는데 또 다른 첼리스트 '멜빈 게일 (Melvyn Gale)', 바이올리니스트 '믹 카민스키 (Mik Kaminski)', 키보드에 '리차드 텐디 (Richard Tandy), 베이스에 '켈리 그로우컷 (Kelly Groucutt)'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사실 상 이 체제로 실질적인 ELO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한 ELO는 리메이크 앨범을 한 장 내게 되는데 바로 'ELO Ⅱ'. 이 앨범은 "Roll Over Beethoven"[8] 을 실으면서 북미지역에서 다시금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7인조 밴드가 흡사 대규모 오케스트라 같은 사운드를 창출해내어 캔자스(Kansas)와 심포닉 락의 양대산맥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사운드를 내기엔 시행착오가 있었다. 기타, 키보드, 드럼 소리에 ELO의 특징인 현악기의 소리가 묻히게 되었고, 제프 린은 이러한 현악기에 앰프를 연결하여 기타 사운드와 맞먹는 음향을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ELO의 특징들은 시간이 지나고 녹음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되는데, 현악기와 더욱 발달된 앰프와의 믹싱을 신들린 듯 조화시킨 제프 린 덕분이었다. 때문에 제프 린은 "멜로디의 신"으로 불리게 된다. 제프 린이 이러한 별명을 얻을 즈음부터 이들의 음악에 대한 인기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1973년 3집 앨범 "On The Third Day"에서 싱글 "Show Down"로 히트하더니, 1974년에는 4집 "Eldorado"가 그들로서는 최초로 미국에서 골드 마크를 획득하고 이어 싱글 "Can Get It Out of My Head"를 레코딩할 즈음엔 30인조 스트링 섹션을 도입해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로 기록될 정도이다. 이후 이들의 앨범은 발매되는 족족 모두 골드 앨범을 기록하여 그들의 인기는 점점 궤도에 올랐다.
1975년 5집 앨범 "Face The Music"부터는 세계적으로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는 독일의 '뮤직랜드'에서 계속된 녹음을 진행했는데, 1976년 첫 골드 싱글 "Living Thing"과 희대의 명작 "Telephone Line"이 담긴 여섯 번째 앨범 "A New World Record"는 5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플래티넘을 획득하였다. 이 앨범은 1년 이상을 앨범 차트에 머물며 그 우수성을 입증했으며, 1977년 7집 "Out of The Blue" 앨범은 이례적으로 스위스의 산 속에서 작업되어 앨범 발표 전 이미 4백만 장 이상이 예약되는 등 출판도 되기 전에 플래티넘을 획득해놓고 있을 정도로 이들의 인기도를 단적으로 증명해주었다. 한편, 앨범 "Out of The Blue"는 그들의 전속 레이블인 CBS에서 "Jet"이란 무디스의 독립 레코드 회사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고, "Turn To Stone", "Sweet Talking Woman", 삼성 스마트 TV 광고에도 삽입된 적 있는 "Mr. Blue Sky" 등의 싱글이 6백만 장 이상이나 전 세계의 시장으로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매니저 돈 아덴이 이끄는 "Jet" 레코드의 스탭진과 제프가 이끄는 ELO 사단의 완벽한 콤비네이션의 전략적 시스템은 이들의 위치를 정상에 고정시켰고, 1978년 이들의 44일 간의 순회공연에서 과학적이고 획기적인 창작품을 올려놓으면서 팬들을 다시금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5톤에 이르는 거대한 모형 우주선이 도착해 멤버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우주선의 받침이 분해되어 강렬한 레이저 조명과 인공 스모크가 관객석으로 뻗어나갔다가 되돌아옴으로 이 스테이지 아이디어는 뮤지션들간의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1979년 초, 두 번째 히트곡 모음집 "ELO's Greatest Hits"가 발매되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히트 넘버들인 "Evil Woman", "Livin' Thing", "Can Get It Out of My Head", "Show Down", "Turn To Stone", "Rockaria", "Sweet Talking Woman", "Ma-Ma-Ma Belle", "Strange Magic" 등 상당한 히트곡들로 구성되어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같은 해 말에 24 트랙의 정밀하고 화려한 엔지니어링으로 제작된 "Discovery" 앨범에서는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은 "Last Train To London" [9] , "Don't Bring Me Down", "Shine A Little Love" "Midnight Blue" [10] 등의 싱글을 크게 히트시키면서 차트 상위권을 장식했는데, 이 앨범 역시 42인조의 뮈니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30인조로 구성된 메일-코러스까지 찬조해 앨범의 가치를 승격시켰다. 80년대 들어서 당시 팝의 여왕이라 불리던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John)과 조인트 형식의 사운드트랙 앨범 "Xanadu"를 내놓아 국내에서도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다.
굉장한 히트를 기록했는데 특히 일본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끌던 밴드이기도 했다. 가이낙스 DAICON 4회 오프닝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Twilight가 삽입된 적이 있을 정도. (그리고 이후 가이낙스에서 떨어져 나온 곤조가 전차남 드라마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DAICON 4의 오프닝을 그대로 오마주하는 것은 물론 "Twilight"도 그대로 다시 삽입한다.)
이후 마지막 앨범인 "Zoom"을 2001년 발표한다.
그리고 2015년, 제프 린은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고 드디어 2016년에 ''Alone in the Universe''를 발매하며 Jeff Lynne's ELO라는 이름으로 15년만에 복귀했다.
여담으로, 제프 린은 프로듀서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특히 비틀즈 멤버들과의 작업이 잘 알려져 있다. 존 레논[11] 을 제외한 비틀즈 멤버 전원의 솔로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하였는데, 조지 해리슨의 1987년작 Cloud Nine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링고 스타와도 'I Call Your Name' 리메이크와 Time Takes Time 앨범의 두 곡을 함께 작업한다. 이후 1995년 발표된 비틀즈 앤솔로지에 포함된 "Free as a Bird", "Real Love"의 제작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비틀즈를 기리는 곡인 Beatles Forever를 만든 적 있다.[12] 앤솔로지 작업 과정에서 폴 매카트니의 눈에도 들어 1997년작 Flaming Pie 앨범의 8곡을 프로듀싱하게 된다.#
4. 디스코그래피
-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영국판) / No Answer (미국판) (1971/1972)
- ELO 2 (영국판) / Electric Light Orchestra II / ELO II (미국판) (1973)
- On the Third Day (1973)
- Eldorado, A Symphony (1974)
- Face the Music (1975)
- A New World Record (1976)
- Out of the Blue (1977)
- Discovery (1979)
- Xanadu (1980)
- Time (1981)
- Secret Messages (1983)
- Balance of Power (1986)
- Zoom (2001)
- Alone in the Universe (2015)
- From Out Of Nowhere (2019)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ELO 2기[3] 사실 프로그레시브 락 치고 곡의 길이가 상당히 짧은 편이다. 그래서 파워 팝이나 팝 락에 분류하는 사람도 많다.[4] New Trolls는 클래식에 바탕을 두고 일렉트릭 악기와 현악기를 통해 실내악곡을 구현했고(이는 Concerto Grosso 연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LO는 락의 베이스 위에 전기악기와 현악의 화학적 결합을 추구했다는 차이가 있다.[5] 1970년 데뷔 당시에는 적은 수의 바이올린과 첼로만이 포함된 작은 밴드였기 때문이다.[6] 더 무브라는 걸출한 사이키델릭 록/팝 밴드를 이끌고 있었으며, 사실상 탈퇴 전에는 리더였다.[7] 이에 대해 골 때리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ELO가 미국 진출을 할 당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에서 앨범을 유통했는데 레코드 측에서 전화를 통해 ELO에게 앨범명을 물어보려 했으나 불통이자 앨범에 'No Answer'(응답 무)라고 써놓았던 것이 실수로 앨범명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8] 척 베리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원곡과 ELO의 버전은 매우 다른 느낌이다. ELO의 버전은 인트로를 비롯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곡들 일부가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9] 국내에서는 이 곡의 인기로 인해 ELO를 "Last Train To London"이란 이름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10] 사실 발라드를 선호하는 한국에선 이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곡이다. 국내 많은 컴필레이션에 수록되는 ELO의 대표곡이 이 곡이다[11] 작업 당시에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12] 앨범 Secret Messages에 들어가려 했으나 더블 앨범에서 싱글 앨범으로 줄여버린 후 트랙 리스트에서 제외시킨 곡으로, 아직까지도 리마스터되거나 모음집 등에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간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