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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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사고 수습용으로 쓰인 뒤 프리피야트 폐차장에 방치된 Mi-6들.
'''밀 Mi-6 후크(Миль Ми-6)'''
1. 개요
소련의 회전익기 전문가인 미하일 표트르비치 밀(Михаил Леонтьевич Миля : 1909~1970)이 설립한 밀 설계국(ОКБ Миля)에서 개발한 다목적 수송 헬리콥터로, 등장 무렵에 실용화된 회전익기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었으며 후계 기종인 Mi-26이 등장할 때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는 이 거인 헬기에 "후크(Hook)"라는 NATO 코드명을 부여했다.
2. 제원
개발 : 모스크바 밀 헬리콥터 공장(Московский вертолётный завод им. М.Л. Миля)
초도비행 : 1957년 6월 3일
생산 시기 : 1959년~1980년
승무원 : 6명 (기장, 부기장, 항법사, 기관사, 무선수, 기술병)
승객 : 90명 / 공수병력 70명 / 41개의 들것 + 의료 요원 2명
화물 탑재량 : 12톤
전장 : 33.18 m / 전고 : 9.15 m / 익면적 : 35 m2
로터 회전면적 : 962.1 m2
최대이륙중량 : 44톤
동력 : 솔로비예프 D-25V 터보샤프트 엔진(5,500 shp) 2기
최대속도 : 300 km/h
순항속도 : 250 km/h
항속거리 : 1,450 km
상승고도 : 4,500 m (중량 42,500 kg 상태)
상승률 : 3,000 m 까지 9분 42초
호버링 한도 : 2,500 m
무장 : 항법사 좌석에 12.7mm A-12.7(Афанасьев A-12.7) 중기관총 1정 (270발)
생산수 : 926대
3. 수송기를 능가하는 탑재량
Mi-6의 개발은 1954년부터 시작되었다. 중형 헬기인 Mi-4의 발전형으로 1957년에 완성된 프로토타입은 VM-6(ВМ-6)이었다. 이 명칭은 밀 6톤 헬리콥터(вертолет Миля-шеститонный)라는 의미였는데, 나중에 붙여진 제식 명칭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5,000축마력 이상의 고출력 터보샤프트 엔진인 솔로비예프 D-25를 쌍발로 탑재했으며 동체 좌우에는 특이하게도 고정익 항공기와 같은 날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상황에 따라 분리할 수 있다.[1] 생산된 Mi-6 헬리콥터는 260 km/h라는 최대 속도에 12,000 kg의 화물 탑재 능력을 발휘하여 속도와 페이로드, 상승 분야에서 여러 개의 공인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Mi-6의 기내에 마련된 화물실은 길이 12 m에 높이 2 m, 폭은 2.5 m 규모로 당시 소련 공군의 전술 수송기인 안토노프 An-8을 능가해 An-12와 거의 맞먹는 것이었다. 이 헬리콥터는 생산 체재에 들어간 후로도 한동안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었으나, 1965년에 프랑스의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열린 파리 에어쇼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고 시범 비행까지 선보여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4. 강화 및 개량형
1971년에는 최대이륙중량을 44톤까지 끌어올린 개량형인 Mi-6A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 기체는 출력이 5,500마력으로 10% 더 증강된 D-25V 엔진을 장착해 최대 속도는 300 km/h를 넘어서고 있었다. Mi-6A는 2세대의 기본형으로 많은 파생형을 낳게 된다.
- Mi-6(Ми-6) :1957년에 비행을 시작한 기본형
- Mi-6A(Ми-6А) : 1971년에 비행을 시작한 1차 개량형.
- Mi-6TZ(Ми-6ТЗ) : Mi-6을 연료 수송기로 개조한 형식으로 7,400리터의 항공 연료를 공수할 수 있었다. 수요가 늘자 Mi-6TZ-SV(Ми-6 ТЗ-СВ)로 소수가 생산되어 1960년대 말까지 쓰였다.
- Mi-6ATZ(Ми-6АТЗ) : 1971년에 Mi-6A를 Mi-6TZ 사양으로 개조한 형식.
- Mi-6VKP(Ми-6ВКП) : Mi-6를 개수하여 1972년에 첫 비행한 공중 관제기 형식으로 지휘부 요원 40명을 태우고 작전 비행이 가능했다.
- Mi-6M(Ми-6М) : Mi-6의 대잠 헬기 형식이며 1958년에 처음 비행했으나 무장 운용 능력이 없어 양산은 되지 않았다. 1963년에는 PLAT(ПЛАТ) 어뢰 4발이나 콘돌(Кондор) 대함 미사일 4발을 운용할 수 있는 형식이 제작되었다.
- Mi-6PZh(Ми-6ПЖ) : 1967년에 비행을 개시한 소방 헬기 형식이며 기수에 2차대전 폭격기 방어기총처럼 물대포가 장비되어 있고 기외에 매단 바킷으로 12톤의 소화액이나 소방용수를 나를 수 있었다. 남프랑스에서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소화 작전에 투입되었다.
- Mi-6PZh2(Ми-6ПЖ 2) : Mi-6PZh에 소화액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한 개량형으로 1972년에 소개되었다.
- Mi-6PRTBV(Ми-6 ПРТБВ) : 전술 지대지 로켓인 스커드 미사일을 필요한 장소로 실어날라 발사할 수 있는 기동 로켓 기술 헬리콥터(подвижная ракетно-техническая база вертолетного типа)로, 1960년에 처음 비행했지만 냉전이 끝난 후에야 그 존재가 알려진 기밀 병기였다. 스커드 A 미사일(8К11)이나 스카드 B(8К14), 또는 중거리 지대지 로켓 R-9(8К75)[2] 1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 Mi-6RVK(Ми-6 РВК) : 로켓 헬기 콤플렉스(ракетно-вертолетный комплекс)로 1963년에 2대가 제작되어 테스트를 받았으나 양산은 되지 않았다.
- Mi-6PS(Ми-6ПС) : 1966년에 처음 비행한 탐색구난 헬기(Поисково-спасательный вертолет).
- Mi-6APS(Ми-6АПС) : Mi-6A를 Mi-6PS 사양으로 개수한 형식.
- Mi-6AYa(Ми-6АЯ) : Mi-6A를 1973년에 공중지휘기로 개수한 형식이며 40명의 사령부 요원을 태울 수 있었다.
- Mi-22(Ми-22) : 1975년에 실전 배치된 Mi-6AYa의 양산형.
5. 활약과 퇴역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졌을 때, 큰 페이로드를 가졌던 Mi-6는 방사선을 막기 위해 조종실 바닥에 납판을 깔고 붕소와 모래를 원자로 노심에 쏟아붓는 사후 처리 작업에 투입되었다. 작전에 동원된 기체들은 작업을 하는 동안 대량의 방사선에 노출된 탓에 원대 복귀시킬 경우 방사능 피폭의 위험이 있어 원자로 근처에 다른 오염된 장비들과 함께 그대로 버려져 있다.
Mi-6 시리즈는 더 강력한 후계 기종인 Mi-26이 배치된 후 점차 퇴역이 진행되었으나 소련의 붕괴된 후까지 한동안 더 이용되었으며 해외에 수출된 기체들 중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날아다니는 것도 있다.
6. 대중매체에서 등장
도미네이션즈에서 냉전 시대의 전술 헬리콥터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