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너 카쉬냅
1. 개요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의 여러 판타지 장/단편 소설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는 어떤 마법사, 혹은 학자의 이름. 언제나 대단히 박식한 자로 등장하며 특히 그 지식이 동시대의 일반 상식이나 학문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안녕하세요. 언젠가 죽을 여러분."'''
2. 알려진 활약상
- 드래곤 라자/퓨처 워커/그림자 자국: 루스 휴레인 전투의 승전, 수상(水上) 보행.
- 폴라리스 랩소디: 핸드건 발명.
- 오버 더 시리즈: 위어울프용 은팔찌 변신 제어구 마법 창안과 전수.
-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 『생각하는 동물들』 저술.
- 에소릴의 드래곤/샹파이의 광부들: 더스번 칼파랑 백작이 소유한 영지 이름의 유래, 『좋은 대화를 위한 실천적 조언들』 저술.
3. 정체에 대한 추측
가이너 카쉬냅의 정체가 명시된 적은 한번도 없다. 이영도 작가에 따르면 가이너 카쉬냅은 네크로맨서 월드에 있어 월리를 찾아라의 주인공 월리 같은 캐릭터라고 한다.
가이너 카쉬냅의 정체에 대한 독자들의 추측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차원이동자설.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여러 세계관들이 서로 별개의 세계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가이너 카쉬냅이 플레인즈워커마냥 차원과 차원을 여행하고 다닌다는 설이다.
- 동명이인설. 서로 다른 세계관의 가이너 카쉬냅들은 모두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이라는 설이다.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이름이 영어권의 존 스미스처럼 네크로맨서 월드에서 흔한 이름이라는 추측도 있다.
- 오너캐설.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설이다.
'언젠가 죽을 여러분'이라고 다른 존재들을 칭하는 것으로 보아 불멸자가 아니냐는 설도 있다. 하지만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사후'라는 언급을 보아 그냥 사람일 수도 있다. 피를 마시는 새에 서술된 것처럼 단순히 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폴라리스 랩소디 세계에서는 죽은 척하는 걸 수도 있지만 작가가 애매모호하게 넘기려 하는 한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4. 각 소설에서의 언급
4.1. 드래곤 라자
a······ '''Kashnep''' inma che dollar eerup?
아아, 낮인데 왜 이렇게 졸린 거지?
― 자이펀어 구절 중
“대저 마법이라 함은 마나의 집합과 이산, 변형과 전이에 작용하는 시전자의 의지의 발현에 지나지 않음이라는 상기의 진술에 대한 가장 비근한 예로 시전자의 순수 의지 이외의 부수적인 요건들, 즉 시약의 적절한 사용과 주문의 영창 등의 제반 사항은 본질적으로 시전자의 의지 발현을 돕는 매개체로서만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이너 카쉬냅'''의 언명을 들어 상기의 진술의 이해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겠으나 '''가이너 카쉬냅'''의 언명이 나름대로 주목할만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언명의 주창에서 파악되는 비본질 매체, 시약과 주문에 대한 파격적인 축소해석이 마법 입문자들에게 있어 무익한 선입견으로서 작용할 수 있음은 재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음이니······.”
4.2. 퓨처 워커
"여덟 별이 다시 일어나! 그덴 산의 거인을 사냥할 겁니다! 록크로스 해변에서는! 전설의 오크들이 달릴 것이고! '''가이너 카쉬냅'''은 다시 한 번! 루스 휴레인 전투에서의 그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겠지요! 멋지지 않습니까, 아프나이델? 예? 멋지지 않느냐고요!"
히든보리 사집관은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기다렸다. 다이앤은 루스 휴레인 전투에서 레베카 휴레인 장군이 '''가이너 카쉬냅'''을 보았을 때 저랬으랴 싶을 정도로 기쁜 얼굴로 히든보리 사집관에게 다가갔다.
"······네 번째 수레바퀴까지는 서로를 돕지."
네리아는 움찔했다. 저것은 '''가이너 카쉬냅'''의 말로서 그 뒤에 생략된 말은 '하지만 다섯 번째 수레바퀴부터는 다른 바퀴들을 괴롭히지.'이다.
이 유명한 경구에서 나오는 다섯 번째 수레바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꿈의 파편, 버리지 못한 동심, 헛된 소망 등을 나타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조직에 필요 없는 일원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그리고 지금 그란이 말하는 다섯 번째 수레바퀴라는 것은 네리아가 버리지 못한 순수성을 질책하는 말이며, 동시에······.
여자는 손에 길다란 글레이브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레이저에게 다가서자마자 그의 앞을 가리며 글레이브를 내밀었다. 마치 레이저를 보호하겠다는 듯한 동작이었지만 쥬블킨과 궤헤른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웃어버릴 뻔했다. 저 깜찍해보이는 아가씨가 저 마법사를 보호한다고? 옛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군. 레베카 휴레인 장군과 '''가이너 카쉬냅'''이 저런 꼴이었을까.
"그건 제가 감당할 문제군요. 그리고 제게는 그 문제들을 처리할 수단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빼고. 저는 '''가이너 카쉬냅'''처럼 물 위를 걸을 수는 없습니다."
"예? 주류반입 금지라니. 그걸 저한테 그렇게 강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테페리의 이름을 걸고! 나 아니라도 술병 들고 찾아갈 도반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맹세하겠습니다. 나는 악기를 준비해갈 생각······ 으윽! 고함지르지 마세요. 글쎄 아무리 술판 같은 것이 벌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강변하신다고 해도······ 아아,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자꾸만 '''가이너 카쉬냅'''의 다섯 번째 바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제가 언제 말을 돌렸다는 겁니까? 어쨌든, 우리 종단으로서는 이게 두번째로군요. 그렇죠? 아, 예. 음. 그럼 프라임 미팅의 목적은 뭐죠?"
4.3. 폴라리스 랩소디
"일찌기 우수한 개인들이 한 모든 일을 보게. 자넨 공화제가 개인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진정 개인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발휘한 자들은 결국 나라를 뛰어넘고 체제를 뛰어넘었지. 그것이 어떤 체제이든, 모든 체제는 그들의 중요성을 인정해주기는커녕 억눌렀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뛰어넘거나 파괴해버릴 수밖에 없었지. 아달탄 대왕, 록소드라, '''가이너 카쉬냅''', 손필 대공, 하이낙스, 그리고······ 키 드레이번."
'''가이너 카쉬냅'''. 눈 좋으신데요. 하하. 물론 D/R의 세계와 P/R의 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설명은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가이너 카쉬냅'''이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시든 패러렐월드를 넘나드는 스타차일드라고 생각하시든 타자의 윌리를 찾아라! 류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든······ 마음대로입니다. by 잡담
음유시인이 되어 대륙을 주유했다는 유명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아달탄 대왕은 상당히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어쩌면 '''가이너 카쉬냅'''의 푸념처럼 자신이 건국한 제국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자신이 지은 노래 한 구절을 더 전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
'평화시에 왕좌에 올랐다간 반란이나 당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건달이지만, 질풍노도의 혼란기엔 능히 제국이라도 건설해 버릴 위인'이라는 '''가이너 카쉬냅'''의 촌평처럼 아달탄 대왕은 노도의 시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며 그 자체가 이미 노도인 인물일 것이다. (······)
핸드건은 강철의 레이디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으로 발전되어 온 대포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핸드건은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대포다. 미술과 건축, 기계설계와 정치학 등 여러 분야의 천재였던 '''가이너 카쉬냅'''은 어느 날 대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칠 년 동안 연구한 끝에 일견 장난감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대포를 제조해 내었다. 주위 사람들은 이 조그마한 대포가 과연 석궁만큼의 파괴력이라도 있을지 의심스러워했다. 하지만 '''가이너 카쉬냅'''은 조롱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핸드건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신 시제품과 설계도 전부를 펠라론에 바쳤다. 그리고 펠라론은 그것을 법황청의 가장 은밀한 장소에 숨겼다. 핸드건이 최초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가이너 카쉬냅''' 사후의 일이었다. 핸드건이 발사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이너 카쉬냅'''이 진정한 천재였음을 알게 되었다. 핸드건은 손으로 들 수 있는 그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야포에 뒤지지 않는 파괴력과, 일반적인 야포보다 월등히 뛰어난 발사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이너 카쉬냅'''이 진정한 천재인 까닭은 다른 천재들과 달리 이 병기가 가져올 재난을 앞서 짐작하고 그것을 펠라론에 바쳤다는 점이다. 이후 핸드건은 고위 성직자와 법황청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만이 소지, 사용을 허가받는 무적의 병기가 되었고 '''가이너 카쉬냅'''은 복자에 서품되었다.
― 양장본 부록 중
4.4. 오버 더 네뷸러
케이토는 오른팔을 들어 자신의 은팔찌가 드러나게 했다.
"아시지요? 이것도 일종의 마법입니다.
나와 이파리 보안관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케이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마법은 까마득한 옛날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마법사가 우리 종족에게 가르쳐준 겁니다. 그리고 우리 종족 이외엔 필요 없는 마법이기에 다른 종족들은 이 마법을 모르고, 그러다가 보니 이것이 마법이라는 생각도 못하게 된 거지요. '위어울프는 은팔찌를 찬다. 그리고 은팔찌를 벗으면 변신한다.' 이게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전부지요. 하지만 위어울프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은팔찌를 차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이것이 본능이나 선천적 능력이 아닌 후천적 기술이라는 점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예, 바로 마법이지요."
4.5. 눈물을 마시는 새
물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나가는 레콘과 같다. 하지만 레콘이 돌멩이보다 나을 것 없는 수영실력 때문에 물을 두려워하는 것에 비해볼 때 나가는 물의 차가움 때문에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손이 부모의 이름을 잇는다는 점에서 나가는 인간과 같다. 하지만 인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고 나가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른다. 죽음의 공포를 물리쳤다는 점에서 나가는 도깨비와 같다. 하지만 도깨비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비해 나가들은 심장을 적출함으로써 놀라운 생명력을 얻은 것에 불과하다. (중략) 영육(靈肉)이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이런 특징 때문에 도깨비가 가장 신에 가까운 종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도깨비들 또한 영과 육이 함께 탄생하며, 비록 육이 죽은 다음에도 영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도깨비들의 육이 가까이 있을 때, 즉 도깨비들의 공동체와 접촉해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어떤 도깨비가 외진 곳에서 홀로 죽었다면 그 도깨비의 영은 불로써 자신을 감싼 다음 살아있는 도깨비들을 찾아 무서운 기세로 날아간다. 간혹 도깨비가 없는 곳에서 도깨비불이 발견되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은 도깨비의 영이다. (중략) 살해할 수 없는 도깨비를 육체적 위협으로 분노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깨비들의 호의적인 성정을 무시하고 그들을 압박하는 실수를 저지를 경우, 그것은 최악의 재난에의 첩경이 될 것이다. 저 무도하고 사악한 페시론 섬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가 바로 그것이다.
― '''가이너 카쉬냅'''의 『생각하는 동물들』 중
케이건 드라카의 본명은······ 바로 '''가이너 카쉬냅'''! 퍼버버버벅! 물론 농담입니다. by 잡담
"어떤 생각이라니오? 당연히 여신을 부르겠다는 생각 아닙니까?"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일 자체는 지금 현재에도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어느 구석에서는 생명의 위험에 처한 누군가가, 혹은 다른 어떤 위기 때문에 두려움과 슬픔, 어쩌면 분노 속에서 신을 부르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단지 신을 부른다는 것뿐이라면 당신과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 중에는 당신보다 훨씬 절실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그런 사람들 앞에 펑! 하고 신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가이너 카쉬냅'''은 그런 태도를 비꼬아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가 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이라는 본명이 부르기 지나치게 번거롭기 때문이다'라고."
"저게 깨지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나설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케이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별 도리 없다는 듯이 말했다.
'''가이너 카쉬냅'''은 신이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기왕 근처에 계신 신을 모른 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소. 아기에게 갑시다."
〈죄송합니다. 저, 수련자 화리트에게 이것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수련자에게 큰 도움이 될 책입니다. 저는 그가 이것을 읽고 내용 요약을 해오길 바랍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여담이지만 화리트는 상당한 학식을 쌓은 고위 수호자들이나 읽을 불신자 '''가이너 카쉬냅'''의 저 악몽 같은 책을 받아들고 죽을 고생을 했다 한다. 보트린은 급한 마음에 들고 나온 책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생의 심오한 의문을 풀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다. 그 희망은, 당연하기에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생에는 의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 어떤 지혜로운 자에 의해 그 의문이 풀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자는 그 때부터 의문 없는 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전제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생이다. 의문 없는 생이 생일까?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설명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우리의 전제가 잘못되었다는것, 혹은 그 지혜로운 자가 사기꾼이라는 것.
― '''가이너 카쉬냅'''의 『생각하는 동물들』 서문
25대 잔혹왕(611-614)
아라짓 왕가에 단 두 명 존재했던 미치광이 중 하나다.(이 표현은 '''가이너 카쉬냅'''의 것이며 또 한 명의 미치광이는, 많은 사람들이 탐미왕이라고 추측하기는 하지만 누군지 정확하지 않다.) 스스로 잔혹왕이라는 왕명을 정한 이 정신병자는······. 잔혹왕을 암살한 자가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가설은 끊임없이 제시되지만, '''가이너 카쉬냅''' 자신의 생몰연도마저 불명확하거니와 다른 확실한 증거도 없다. 이후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든다.
― 고대 아라짓 왕국의 계보 중
4.6. 피를 마시는 새
시간이 춤을 출 장소를 찾았고 그것은 태초가 되었다.
시간은 처음엔 다섯 종족과 춤을 추었지만, 이젠 네 종족과 춤을 춘다.
춤은 이어진다.
네 종족이 세상을 말한다.
세상은 가깝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세상과 맞닿는 표면에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표면은 중심에서 가장 먼 곳, 그러나 외부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이곳의 마지막이자 저곳의 시작인 그곳은 경계다. 그들은 경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소리 없고 자극 없는 따뜻한 중심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중심에서 한가롭게 떠다니며 죽음을 먼 변경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심장을 뽑아낸다. 뽑아낸 심장을 중심에 남겨 놓고 그들은 외부로, 표면으로 나아간다. 그 때문에 그들은 표면의 특권을 누린다. 긁히고 깎이고 상처 입어도 저 먼 중심에 그들의 심장을 보관하는 한 그들은 본질을 파괴당하지 않는다. 표면에 있는 그들은 외부의 불꽃을 아무 장애물 없이 직시할 수 있다. 밤이라는 장막도 그들의 눈을 가리지는 않는다. 표면에 있는 그들은 깊숙한 자아의 모호한 메아리인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직접 상대에게 전달하며 이를 니름이라 한다. 물론 표면에 있는 것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쌀쌀맞다거나 냉혹하다는 평을 듣는 건 둘째 치더라도 이들은 외부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비록 중심에 있는 본질은 안전하지만 표면에 있는 그들은 더위에 끓어오르고 추위에 얼어붙는다.그들은 나가라 한다.
세상은 느리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오래된 원한이라는 말을 낯설어한다. 그들은 짧고 강렬한 웃음으로 폭발시킨 다음 더 이상 구애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더 좋아하고, 심지어 그렇게 되기 어려운 일들도 그렇게 만들려 애쓴다. 그들의 사랑이나 우정 또한 짧고 빠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데, 그것은 다른 이들이 사랑과 우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일으키는 착각이다. 다른 자들은 이삼 년의 짧은 추억으로 평생의 결혼 생활이나 교우 생활을 지탱한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랑과 우정의 이유를 만들어내고 그 표현법을 무수히 창조한다. 그들은 짧은 사랑과 짧은 우정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어 다른 자들에겐 긴 사랑과 긴 우정처럼 보이는 것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들은 짧은 분노와 짧은 원한을 계속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런 일이 소모적이며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자들에게 선량하게 비춰진다. 그들은 세상이 느리게 행하는 일을 훨씬 빠르게 해치울 수 있는 힘인 불을 자유롭게 다룬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무거운 몸을 벗어서 더 가볍다는 듯 죽음에 앞장서 달려간다. 느린 죽음은 그들을 잡기 위해 꽤 오랫동안 그들을 추격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빠를 때는 폭력과 피를 피할 때다. 그것들은 도저히 즐거운 일로 만들 수 없으니까. 그들은 도깨비라고 한다.
세상은 엉성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결합의 대부분을 어렵잖게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라는 퍽 단단한 결합을 흙과 모래로 해체하고 싶다면 이들은 정이나 망치 따위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그래야 할 이유를 요구할 것이다. 그 일을 수행할 도구는 그들에게 이미 갖춰져 있다. 무지막지한 힘과 강철같은 몸,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광적인 집착으로 오해받기 쉬운 집중력을 가진 그들은 바위를 손쉽게 흙과 모래로 분해한다. 생명이라는 결합도 쉽게 해체하여 무생물로 분해한다. 국가라는 결합도 그리 어렵잖게 해체할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엉성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단단한 것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절대로 변하거나 퇴색되지 않는 단단한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그 추구는 실로 맹렬한데, 엉성한 세상은 부서질지언정 단단한 자신은 부서질 리 없다는 꽤나 정당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무관할 것 같은 이 강대한 자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은 존재한다. 어떤 파괴력에도 해체되지 않고 그들의 튼튼한 몸을 가라앉히는 물은 그들의 근원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레콘이라 한다.
늙은 군령자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곰방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이 살아 있을 때 어떤 종족이었을지 추측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일에만 열중했고 자신의 종족적 관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연초를 빨아들이던 그가 말했다.
"그 다음은 인간이 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지.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자네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군. 자네는 군령자가 아니라고 했고, 또 아무리 봐도 두억시니는 아닌 것 같으니 자네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인간이 분명해. 그러니 말해 보게. 자네 생각에 세상은 어떠한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가 본 세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주 ― 이 대목에서 일기의 저자인 학자가 인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기의 저자가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하이스 대학에 보관된 무명 학자의 일기 중
정우의 처지가 유쾌하진 못했기에 틸러는 정우에게 상냥하려고 애썼으며 실제로 그러했지만, 상냥함의 이면에는 간혹 거론키 어려운 오만한 감정이 숨어 있는 법이다. '상냥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깔보는 마을이라고 말했던 것이 '''가이너 카쉬냅'''이었던가, 라수 규리하였던가?' 틸러는 얕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그 경구가 좀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정우를 존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신은 파종자일뿐 정원사가 아니다. 모든 살인 현장에 나타나 자신의 피조물이 입은 피해를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신을 짐은 본 적이 없다. 신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이 아니다. 신에게 아무것도 바랄 수 없다는 '''가이너 카쉬냅'''의 그 말에는 신에게 행동의 기준이나 도덕적 판단도 바라면 안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는가?"
"아예 들여다 보지도 않고 그런 감상 말한 것은 아니다. 수전사. 내 방엔 정말 그의 책이 있어. 다만 초반 열 장을 넘기니까 그 책을 다 읽으면 수명이 십 년은 짧아질 거라는 생각이 덜컥 들더라고. '''가이너 카쉬냅'''이나 라수 규리하 같은 이가 읽을 책인 것 같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번엔 정말 마음 단단히 잡고 읽어야지. 이해를 하든 못하든 말이야."
생의 심오한 의문을 풀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다. 그 희망은, 당연하기에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생에는 의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 어떤 지혜로운 자에 의해 그 의문이 풀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자는 그 때부터 의문 없는 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전제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생이다. 의문 없는 생이 생일까?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설명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우리의 전제가 잘못되었다는것, 혹은 그 지혜로운 자가 사기꾼이라는 것.
우리의 현명함을 포기할 수 없기에 전자를 선택할 수도 없고 우리의 멍청함을 강조할 수 없기에 후자를 선택할 수도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둘 모두를 끌어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전제는 정확하며, 사기꾼은 사기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 '''가이너 카쉬냅'''의 『생각하는 동물들』 서문
"안녕하세요. 언젠가 죽을 여러분."
― '''가이너 카쉬냅'''
"누가 미래를 생각해요? 그들이 생각하는 건 언제나 희망이지 미래가 아니에요.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내일은 지독한 일이 있을 거라는 말과 똑같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미래는 일어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날 날이에요. 미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을 날이지요. 미래는 자신이 죽을 날이에요. '''가이너 카쉬냅'''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을 땐 언젠가 죽을 여러분이라는 말로 인사했죠. 그것은 그 어떤 예언보다도 확실한 예언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사람들은 결코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와 단단히 결부되어 있지 않으니 희망은 언제나 허무하죠. 공상이죠. 고통이죠.
나가의 육성 언어는 언제나 좋은 사색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는 우리의 것과 같고 그 문자가 우리의 말을 기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가들은 니름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성 언어 또한 습득한다. 육성 언어를 습득하지 않으면 문자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가의 육성 언어는 문자 습득을 위한 보조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사고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나가의 경우에도 언어로 사고할까? 전술했듯이 그들에게 언어는 문자 습득의 보조수단이다. 따라서 그들은 굳이 언어로 사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와 우리의 사고 사이에서 현격한 차이를 ― 생태와 문화, 성장 환경의 차이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것 이상의 차이를 발견한 자는 없다. 과연 사고는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 '''가이너 카쉬냅'''의 『생각하는 동물들』 중
4.7. 그림자 자국
'''가이너 카쉬냅'''이 말하길 망막은 배반의 살갗이라지요. 피부의 존재 의미는 자신을 외부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격리지요. 그런데 망막은 외부를 자신 안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요. 그래서 배반의 살갗이라는 겁니다. 해부학적으론 거의 무의미한 말이지만 금언이란 것이 원래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저 말은 상대방을 더 알려고 하면 할 수록 자신도 변화한다, 그런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4.8. 에소릴의 드래곤
"딸을 팔 작정을 한 가난한 아버지와 새 성녀가 필요했던 팔비노 사제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어느날 갑자기 성녀가 된 소녀요. 팔비노 사제들은 계시가 있었느니 별이 떨어졌느니 어쩌니 하지만, '''가이너 카쉬냅'''에 맹세코 그거야 흔해빠진 개수작이지. 덕분에 그 앤 평생 성전에 갇힌 채 할머니들과 살면서 죽은 작자들 이름이나 암송하게 되었소. 자기도 그걸 좋아했다면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 앤 그렇지 않았소. 세상도 보고, 남자도 만나고, 그러고도 여유가 되면 자길 팔아버린 아빠도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했지. 욕지거리 한 번 본때있게 해주려고. 정말 숨 넘어갈 정도로 그러고 싶어 했지."
"나는 레돔과 스미리의 아들 더스번 칼파랑이다. '''카쉬냅'''의 백작이며 지극히 존귀하신 게잘 왕의 기수다. 그리고 여기 있는 숙녀는 미네골 숲에서 온 사란디테 양이다. 귀하는?"
"나 란데셀리암은 '''카쉬냅'''의 백작이자 게젤 왕의 기수 더스번 칼파랑과 미네골에서 온 사란디테의 도전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나를 이기지 않고선 에소릴을 떠날 수 없다!"
4.9. 샹파이의 광부들
"'사절이 누군데? 누가 왔는데?"
"'''카쉬냅''' 백작 더스번 칼파랑이에요. 괜찮아요?"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무슨 책을 보고 계셨습니까?"
경이 들어올린 책은 '''가이너 카쉬냅'''이 쓴 『좋은 대화를 위한 실천적 조언들』이었다. 아른은 잠깐이지만 경이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더스번 경도 자신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난 내 영지명의 유래가 된 이 작자에게 평소 도움을 많이 받아 왔소. 쓸 만한 소리를 적어 둔 책이 많거든. 하지만 '''카쉬냅'''도 이번엔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군. 이 책엔 바실리스크 #s-1.2와 대화할 때의 조언 같은 건 없소."
마지막 과거가 뜯겨나가듯이 그에게서 사라졌다.
미래가, 과거의 그 무엇도 답습하길 거부하는 낯설고 위협적인 미래가 아침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그 미래의 아가리엔 샹파이 난쟁이와 지상 터널, 바실리스크, 제네갈 공작과 '''카쉬냅''' 백작의 암투 따위의 이빨이 돋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머리를 밀어 넣어야 하다니, 실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4.10. 오버 더 초이스
문이라는 것에 대한 이런 해석은 떠올려본 적도 없다. 언젠가 케이토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집을 만드는 건 온 세상을 가둬두기 위해서다. 어디에? 집 바깥에.'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마법사가 한 말이라는데,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덴워드의 말을 들으니 이제 그게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된다.
지데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맞아요, 부인! 식물왕한테 가요. 드래곤? 드래곤이 문제예요? 그러면 드래곤을 죽였던 자를 부활시키면 돼요! 어쩌면 주사이 벨컨이나 만자르, 아니면 '''가이너 카쉬냅'''이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 사람들이 유명한 사람들이에요? 전 아는 것이 없어서."
"드래곤을 죽였거나 퇴치한 옛사람들이에요. 드래곤 슬레이어들이죠."
내가 알기로 그중에 드래곤을 죽였다는 명명백백한 증거를 남긴 자는 없다. 주사이 벨컨의 경우엔 그런 세간의 헛소문에 항의까지 표했던 걸로 안다. 만자르는, 글쎄. 대단한 인물이긴 하지만 선전 책동의 효과를 잘 알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두하인의 정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헛소문 정도는 꾸며냈을 법하다(거짓이라도 놀라운 일이다. 어느 심심한 드래곤이 어떤 놈인지 얼굴 한번 보자면서 찾아올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가이너 카쉬냅'''은 은팔찌 변신 제어구의 발명으로 라이칸스롭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라 나는 케이토와 교류하기 전까진 이름도 몰랐던 자다. 그리고 그런 사실로 보아 드래곤을 죽인다는 엄청난 일을 해냈을 것 같진 않다.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