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용
1. 소개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으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 개봉되면서 영원한 1승 투수로 재조명된 선수.[2]
2. 선수 시절
어릴 적 돌멩이 던지는 걸 좋아했는데 멀리 날아갈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진해 공설운동장을 갔는데 처음으로 야구 구경을 하던 중 야구공이 내 앞으로 굴러 와서 던져줬는데 코치가 소질이 있다고 말을 했다.[3] 그래서 아버지한테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마산고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지만 투구력이 영 시원찮아서 전국 시합 때는 두각을 못 나타냈다. 결국 좋은 대학은 못 가고, 인천체육전문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 무리한 운동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때아닌 부상으로 감사용은 야구를 쉴 수밖에 없어서 군 문제를 해결하며 후일을 도모했다. 정확히는 졸업 후 1년 동안 인천체전의 감독 역할을 했고 그 뒤에 현역으로 입대했다.
병역을 마친 뒤에도 그를 불러 주는 실업야구 팀은 어디에도 없어 삼미종합특수강 창원공장점에 취직하여 구매 관리와 통관 업무를 맡게 된다. 취미삼아 직장 야구를 하던 감사용은 계열사에서 실업 팀이 창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투수로 들어간다. 삼미특수강을 창원 공단 최고의 팀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감사용이 삼미특수강에서 야구 '붐'을 일으킬 무렵. 때마침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삼미가 진해로 동계훈련을 내려왔고, 감사용은 파견 근무 형태로 삼미가 훈련하는 내내 매일 배팅 공을 400개 정도씩 던졌다. 그러다 합숙이 끝나는 시점에 마지막 테스트를 겸한 OB와의 친선 경기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경기가 끝나고 박현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네가 우리 팀에 필요하니 같이 인천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그래서 삼미의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받은 감사용은 곧장 이불이랑 옷만 들고 인천으로 올라갔다.
즉, 모그룹에서 프로야구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할 때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발을 딛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투수로써의 기량은 거의 절망적일 수준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었던 좌완'''이다 보니 출장 기회는 많이 부여받았다.
영화 때문에 패전처리 투수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아니다. 당시 국내 야구계에서는 선발 - 중간 - 마무리의 투수분업 체계가 없던 시절이어서 패전처리 투수라는 개념도 희박했다. 게다가 패전처리 투수는 이미 기울어진 경기에 등판하는만큼 패전이 아니라 노 디시전으로 경기를 마치는게 일반적인 데 통산 전적인 1승 15패 중 14패가 82년 한 시즌에 나왔다. 즉 '''그냥 패가 많은거지''' 패전처리 투수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삼미의 원년 에이스인 인호봉 선수보다 더 많은 이닝과 경기(인호봉 38경기 133 이닝, 감사용 41경기 133 2/3 이닝)를 뛰었다. 1시즌 80경기였던 때에 41경기 나왔으니 2경기 당 1번 꼴로 등판했는데 이 정도면 질 때건 이길 때건 인호봉과 함께 전천후로 등판했다고 봐야 한다.
여담으로 133이닝동안 삼진이 단 23개뿐이다.
입단 후 1승 15패 1세이브라는 처절한 기록을 갖고 있다. 참고로 1승은 롯데전에서 챙겼는데, 구원으로 등판하여 6.1이닝 1실점으로 5:3 승리투수가 되었다.[4] 패전투수이긴 하나 끝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롯데전에서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와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를 거두는 등 그 근성만은 높이 사서, 감사용 선수를 주제로 한 영화인 '슈퍼스타 감사용'이 만들어졌다. 이범수가 감사용 역할을 맡았다. 물론 사실에 근거하긴 했지만, 픽션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1986년 OB 베어스에 이적하여 1시즌 간 활동한 후 은퇴했다.
3. 은퇴 후
1986년에 은퇴한 그는 2006년에 국제디지털대학교 팀의 감독을 맡았지만, 그의 현역 시절처럼 단 1승만 거두고 1년도 채 안 되어 팀이 해체되었다. 이후로는 고향인 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리틀야구단 감독을 맡았다.
2014년 5월 15일, 전국 지도자 대표로 마산에서 고향팀 NC와 KIA전에서의 시구를 맡았다. 여전히 진해리틀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인터뷰
SK 와이번스에서 2004년 문학 홈 개막전 때 장명부를 시구자로 초청하려고 했으나, 장명부의 근황을 알 수 없어서 초청에 실패하고 시구자를 감사용으로 바꿨던 일이 있다.[5]
2020년 경남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4. 여담
- 1982년 6월 2일 대전에서 열린 OB 베어스와 경기에서 14회말 4-4 동점 상황에 1사 만루 2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이홍범에게 희생플라이(우익수 플라이)를 허용하여 최초로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허용한 투수가 되었다.
- 마구마구2 카카오에서는 안세원이라는 가명으로 등장.삼미 릴리프투수가 덜렁 5장인데(..) 이중에는 없다!!. 선발덱에 있어서 정작 삼미덱에서는 활용도가 낮은 편. 다만 청보덱으로 가게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일단 릴리프로 보직변경에 노멀 이상이 없는 릴리프중 85년도 계열 릴리프덱이 컨트롤이 유난히 높게 책정되어 있는데 그 중 체력과 컨트롤이 비교적 뛰어난 편으로 책정되어 있어서 청보덱 유일의 특수폼 불펜인 최창호, 감사용보다 더 높은 컨트롤과 훨씬 낮은(....) 체력이 공존하는 우완 인호봉하고 함께 불펜의 핵으로 사용된다.
- 이사만루2017에서는 추억의 선수 카드로 등장한다. 선정 기준이 이상한 추억의 선수 카드라지만,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낮은 통산 성적을 자랑한다.
-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하니까 감사용하고 가내영이라는 개드립이 있다.
- 2019년 2월 23일 프로동네야구 PDB에 출연했다! 마운드에 등판한지 약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품인 직구와 슬라이더를 보여줬다.
- 슈퍼스타 감사용을 다룬 한 유튜브 리뷰에 그의 조카손자가 인증글을 남겼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6. 관련 문서
[1] 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2] 슈퍼스타 감사용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영화의 주인공은 류승수가 맡은 인호봉 선수였다. 그러나 인호봉 선수의 조언으로 감사용 선수로 방향이 바뀌었다.[3] 돌하르방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제주도 출신 투수 오봉옥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쪽은 수학여행왔다가 생긴 일.[4] 그날 감사용의 뒤를 이어 등판한 김동철이 남은 이닝을 잘 막아내어 세이브를 따냈다. 이는 김동철의 프로 통산 처음이자 마지막 세이브였다.[5] 사실 장명부는 1991년의 마약복용 적발 이후 입국금지자 리스트에 있는 데다가 다른 재일교포 선수들도 그의 근황을 몰랐다고 한다. 2005년 4월, 장명부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었던 와카야마현의 어느 마작 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6] 82' 삼미, 85' 청보 카드. 다른 년도 카드들은 저코에 능력치도 안 좋고 유학도 안 되기에 도저히 써주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