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재일교포)

 

김기태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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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 핀토스 등번호 26번
감사용(1985)

김기태(1986)

배경환(198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7번
송진호(1982~1986)

김기태(1987)

김성길(1988~1992)


이름
김기태(金基泰)
가네시로 모토야스(金城基泰)
생년월일
1952년 10월 16일
출신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
국적
[image] 일본
학력
코노하나 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70년 드래프트 5순위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1971~1976)
난카이 호크스(1977~1984)
요미우리 자이언츠(1985)
청보 핀토스(1986)
삼성 라이온즈(1987)
1. 소개
2. 투구폼
3. 선수 생활
3.1. 일본 프로야구 시절
3.2. 한국 프로야구 시절
4. 은퇴 후
5. 연도별 성적
5.1. 일본 시절
5.2. 한국 시절


1. 소개


청보 핀토스 -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투수. 재일 조선인으로 전성기에 일본에서 뛸 때에는 언더핸드임에도 불구하고 150km 에 육박하는 빠른 볼로 유명했다. 일본 이름은 가네시로 모토야스(金城基泰) 이며 "속구의 언더핸드"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불사조"[1], "히로시마의 영웅", "난카이의 수호신" 등. KBO 리그에서 뛴 재일교포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일본 프로야구 성적을 기록했다.
코노하나상고 재학시절, 재일교포팀으로 두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던 선수. 허구연의 불멸의 전설 재일동포야구단 특집 방송에서도 이에 관한 얘기를 하였으며 당시에 한국에 언더핸드 투수가 적어서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공략당했다고 한다. 물론 상술했듯이 일본에서도 드래프트 5위로 뽑히고 다승왕도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고, 잠수함 투수 중에서도 투구폼이 워낙 특이하고 구위가 뛰어났기 때문에 단순히 언더핸드라서 공략하기 어려웠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2. 투구폼


[image]
팔을 안쪽으로 붙여서 던지는 변칙 투구폼이 아니라[2]. 마치 매가 하늘을 나는 우아함이 깃들은 투구폼이라고 일컬어진다. 물론 이 크고 아름다운 투구폼 덕분에 도루 허용이 문제였다고 한다.
팔을 크게 위로 들기 때문에 와타나베 슌스케같은 정통 언더핸드처럼 생각되기 쉬운데 실제로 보면 높은 언더핸드/약간 낮은 사이드암에 가깝다. 구속이 빠른 건 이 덕분인 듯.
마구마구에서는 게임 초창기부터 우완 오버핸드로 구현되어 있다가 2013년 2월 27일 이루어진 패치를 통해 우완 언더핸드로 수정되었다. 이 오류는 제작사가 다른 마구마구 2 카카오에서까지 정확하게 이어지며 2016년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3. 선수 생활



3.1. 일본 프로야구 시절


1971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데뷔했고 히로시마의 간판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1974년 20승 15패 평균자책 3.64 207탈삼진을 기록, 그해 다승왕과 탈삼진왕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히로시마는 리그 꼴찌! 말 그대로 꼴찌팀에서 다승왕이 나온 것으로 한동안 센트럴리그 유일한 기록이었지만 1984년 요코하마의 엔도 가즈히코가 17승 17패로 꼴찌팀 다승왕을 차지하며 깨졌다. 최신 기록은 2013년 야쿠르트의 오가와 야스히로(16승 4패).
그러나 그해 시즌 종료 후 승용차가 버스와 정면추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미세한 유리조각이 각막에 박혀 실명위기에 처하게 된다. 의사는 김기태의 상태를 보고 더 이상의 야구생활은 힘들다는 선고까지한다. 거기다가 병원 치료 중 약물 부작용과 합병증까지 겹치자 이제는 일상생활조차 힘들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로 실명 위기는 벗어났고, 반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1975년 6월 여름에 다시 마운드로 복귀했다. 이후 마무리 투수로 뛰며 활약했고, 이해 10월 15일 카프의 첫 우승이 결정된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선 마무리 투수를 맡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매듭지어 헹가래 투수[3]가 되었다.
그러나 시력이 나빠지는 후유증에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강속구도 잃어버리며 성적이 하락해 1976년 시즌 후 장명부와 맞트레이드 되어 난카이 호크스로 이적했다. 난카이에서는 주로 클로저로 뛰었고, 1979년 16세이브를 기록하여 최우수 구원투수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에도 13세이브로 리그 1위는 아니었지만 역시 최우수 구원투수상을 수상했다. 이후로도 난카이의 구원투수 자리를 지키다가 198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1년간 활약한 뒤 청보의 스카우트를 받고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1980년 10월 2일,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는 공 한 개도 안 던지고 세이브를 기록했다. 당시 9회 2사 후에 등판, "11년 연속 도루왕"에 오른 1루주자 후쿠모토 유타카를 견제구로 잡아내면서 세운 진기록.

3.2. 한국 프로야구 시절


청보에서는 그의 일본시절 활약을 고려해서 장명부, 김일융 같은 성적을 올려주길 기대했지만, 9승 밖에 올리지 못했다. 같은 해 입단한 재일교포 투수 김신부보다 더 못한 성적. 그런데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김근석, 정현발 두 주전급 선수를 내주면서 김기태를 영입했다. 1986 시즌 후 김일융이 계약만료로 일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대체자로 일본에서 거물급 투수였던 김기태를 영입한 것. 그러나 삼성에서는 7승 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2시즌간 59게임, 270⅓이닝을 던져 16승 19패 5세이브, 평균자책 3.73이란 다소 기대치에 모자란 성적을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청보-삼성 시절에 KBO의 리그 수준과 팀에 대해 불만을 여러모로 표시했다고 한다. 특히 연봉협상 시 기록 달성에 대한 옵션계약을 가지고 걸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선수여서 KBO 초창기 프로에 대한 관념이 부족했던 국내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다.

4. 은퇴 후


고향 오사카에서 메밀국수집을 운영 중이라고도 하고 펜스 완충재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도 하고 자세히는 불명. 그래도 최근 1975년 카프의 첫 우승에 대해 다루는 방송에서 인터뷰를 한 모습을 보면 건강히 지내는 듯 하다.
시구식에서 홈런을 맞은 적이 있다. 홈런을 때린 타자는 동시대 히로시마의 주축 선수이자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야마모토 코지.[4]

5. 연도별 성적



5.1. 일본 시절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72
히로시마
27
70⅔
3
3
-
0.500
3.95
60
9
47
62
36
31
1.47
1973
40
131⅓
10
6
-
0.625
2.54
99
12
42
106
42
37
1.02
1974
44
252
20
(1위)
15
0
0.571
3.64
214
34
80
207
(1위)
107
102
1.13
1975
16
27
1
0
4
1.000
2.67
19
2
15
24
8
8
1.19
1976
43
102⅓
2
9
4
0.182
4.84
101
21
55
97
59
55
1.41
<color=#373a3c> 연도
<color=#373a3c> 소속팀
<color=#373a3c> 경기수
<color=#373a3c> 이닝
<color=#373a3c> 승
<color=#373a3c> 패
<color=#373a3c> 세
<color=#373a3c> 승률
<color=#373a3c> ERA
<color=#373a3c> 피안타
<color=#373a3c> 피홈런
<color=#373a3c> 사사구
<color=#373a3c> 탈삼진
<color=#373a3c> 실점
<color=#373a3c> 자책점
<color=#373a3c> WHIP
1977
난카이
31
189⅔
10
11
1
0.476
2.51
149
21
80
123
72
53
1.13
1978
19
30⅓
0
4
3
0.000
4.15
29
4
8
29
16
14
1.15
1979
53
98⅓
4
5
16
(1위)
0.444
3.29
66
14
40
69
36
36
1.03
1980
31
56⅔
6
4
13
0.600
3.65
45
13
21
43
25
23
1.10
1981
23
30
2
0
7
1.000
1.80
19
1
13
35
7
6
0.87
1982
57
(1위)
78⅓
6
9
21
0.400
2.64
61
6
25
65
24
23
0.7
1983
40
54
4
4
15
0.500
3.67
46
11
19
28
22
22
1.19
1984
20
21
0
1
8
0.000
3.86
16
3
13
15
9
9
1.24
<color=#373a3c> 연도
<color=#373a3c> 소속팀
<color=#373a3c> 경기수
<color=#373a3c> 이닝
<color=#373a3c> 승
<color=#373a3c> 패
<color=#373a3c> 세
<color=#373a3c> 승률
<color=#373a3c> ERA
<color=#373a3c> 피안타
<color=#373a3c> 피홈런
<color=#373a3c> 사사구
<color=#373a3c> 탈삼진
<color=#373a3c> 실점
<color=#373a3c> 자책점
<color=#373a3c> WHIP
1985
요미우리
17
20
0
0
0
-
4.87
17
4
14
16
12
11
1.53
<color=#373a3c> NPB 통산
(14시즌)
<color=#373a3c> 461
<color=#373a3c> 1162
<color=#373a3c> 68
<color=#373a3c> 71
<color=#373a3c> 92
<color=#373a3c> 0.489
<color=#373a3c> 3.33
<color=#373a3c> 941
<color=#373a3c> 155
<color=#373a3c> 469
<color=#373a3c> 919
<color=#373a3c> 475
<color=#373a3c> 430
<color=#373a3c> 1.16

5.2. 한국 시절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6
청보
42
(2위)
175⅓
9
14
5
(5위)
0.391
3.18
158
12
83
109
(4위)
73
(4위)
62
(4위)
1.2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7
삼성
17
95
7
5
0
0.538
4.74
89
8
60
46
57
50
1.44
<color=#373a3c> KBO 통산
(2시즌)
<color=#373a3c> 59
<color=#373a3c> 270⅓
<color=#373a3c> 16
<color=#373a3c> 19
<color=#373a3c> 5
<color=#373a3c> 0.457
<color=#373a3c> 3.73
<color=#373a3c> 247
<color=#373a3c> 20
<color=#373a3c>143
<color=#373a3c> 155
<color=#373a3c> 130
<color=#373a3c> 112
<color=#373a3c> 1.34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6년
6완투
1완봉
1987년
5완투
1완봉
<color=#373a3c> KBO 통산
<color=#373a3c> 11완투
<color=#373a3c> 2완봉

[1] 교통사고로 선수 생활이 불투명해졌지만 그를 극복하고 재기하는데 성공했다.[2] 한국에서 예를 들자면 김병현, 임창용.[3] 일본어로는 胴上げ投手,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에서 승리팀의 마지막 투수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4] 1999년 6월 27일 vs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 경기로 추정, 히로시마 카프 구단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많은 홈 경기에서 OB들의 시구식이 있었다. http://members.jcom.home.ne.jp/darakyu/carpshikyushiki.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