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식

 

<white,#191919> [image]
<white,#191919> 고구려 왕조 강이식 장군 영정.
'''주군'''
<white,#191919> 영양왕(嬰陽王)
'''직위'''
<white,#191919>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1] 또는 병마원사(兵馬元師)
'''본관'''
<white,#191919> 진주 강씨
''''''
<white,#191919> 강(姜)
'''이름'''
<white,#191919> 이식(以式)
'''생몰연도'''
<white,#191919> 550년(?) ~ ?
1. 개요
2. 전승
3. 고증 문제
4. 그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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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주 강씨 족보와 <조선상고사> 등 문헌에서 수나라를 물리친 고구려장수이자 진주 강씨의 시조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2. 전승


17세기 이후 작성된 한국의 일부 족보, 문집과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정확히는 거기에 인용된 일부 문헌)에 등장하는 영양왕 재위 시절의 장수. 진주 강씨의 시조다. 고구려-수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수문제가 조공을 바치고 신하국이 되라는 국서를 날리자 '이런 싸가지 없는 놈들에겐 칼로 대화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수 문제의 국서에 열이 뻗힌 고구려가 선빵을 날릴 때 5만 병력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요서 지역과 영주를 공략했고, 나중에 임유관을 공략했다고 한다.

3. 고증 문제


강이식 장군의 무덤이 중국 심양현 봉길선 원수림역(元帥林驛)에 있고, 1930년대에 현지를 방문해 강이식 무덤의 비석을 확인했다는 주장도 존재하고 진주 강씨 종친회에서 제사를 지내러 가는 것이 2002년 KBS 역사스페셜에 방송되기도 했지만 현존하는 역사자료로는 강이식에 대한 전승을 조선시대 이전으로는 소급하기 어렵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정사'라 할 수 있는 사료에는 강이식을 언급한 자료가 없으며 20세기에 신채호가 남긴 저서 <조선상고사>에서는 《서곽잡록(西郭雜錄)》과 《대동운해(大東韻海)》의 기록을 참고했다고 하였으나 둘 다 현존하지 않으므로 알 수 없고 진주 강씨의 족보(17세기 후반 이후 작성), 17세기 진주 강씨 사람 강익(姜翼)이 작성한 짤막한 기록과 야사 등을 통해서 전승되지만 사료로서의 신빙성은 높게 치지 않는다. 또한 역임했다고 나오는 병마원수나 병마도원수는 고구려에 실존하는 관직으로 보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이름인 것도 감점 요소.

4. 그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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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을 할 때 을지문덕이나 고건무[2]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맹장이라며 부하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으나 죄다 털려버렸다.
여기서 강이식의 명대사는 "어허! 이거 어린 아이들을 계속 혼을 내주자니, 참으로 귀찮구나!! 오냐, 날 원망하지 마라!" 참고로 드라마에서 강이식의 나이는 80이 넘었는데, 이때 수나라 선봉 맥철장의 부관인 맹차의 이마를 베고 전사웅이라는 장수는 강이식의 창에 배가 뚫려버렸다. 결국 맥철장이 나가려고 하자 수 양제는 '저것이 어디 늙은 귀신이지 사람이란 말이냐.'며 가지 말라고 하였으나 부장들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일기토 끝에 맥철장은 목이 베인다.
수나라의 간판급 장수인 맥철장마저 목이 떨어지고 말자 수나라 진영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 침통해지는 묘사가 아주 볼만하다.
연기자는 김시원으로, 용의 눈물에서는 배극렴 배역으로도 출연하였으며, 특히 태조 왕건에서 능창(수달) 배역을 열연한 것으로 유명하신 배우이다.
작중 초반 6화에서 영주 총관 겸 영주 성주 위충[3]과 일기토를 벌여 서로 호각을 이루며, 서로의 무예를 칭찬하지만, 한왕 양량이 그걸보고 노인네들끼리의 장난이라면서 조롱하며 군대를 끌고 나가 방해를 하지만, 위충이 양량이 이끈 군대를 막아서 강이식이 도망치게 할 수 있게끔 해주며, 서로 라이벌 플래그를 성립하나 했더니, 위충이 바로 다음 화에서 요택에서의 전투에서 지휘를 하던 도중에 전사해 버리는 바람에 라이벌 플래그 성립이 무산되어 버렸다.[4]
고구려-수 전쟁 때 고구려군이 수시로 써먹은 게 거짓 항복을 통한 화전양면전술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거짓 항복도 고구려의 수치라며 외교관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려는 꼴통으로 묘사했다. 영류왕 시기에는 너무 늙어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군부의 원로로 젊은 장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으며, 주인공 연개소문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대당 평화 정책을 펼치던 영류왕의 계속되는 굴욕 외교에 계속하여 불만을 드러내었다. 이게 당연한게 태제 시절의 굴욕적인 거짓항복을 하려고 하자 막연한 사이이자 고구려의 재상 을지문덕이 반대하다가 결국 분사하였기 때문에 좋게 보일리가 없다. 급기야 영류왕이 전승 기념물인 경관을 허물려고 하자 고령의 나이임에도 단식 투쟁을 하다 기력이 다해 죽었다. 강이식의 죽음으로 군부는 영류왕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고[5], 결국 이는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이어진다.
소설에는 시랑 강철상의 아들로 15세 때는 90척짜리 철퇴를 마상에서 구사하고 진법을 이루었으며, 24세 되던 해(573년)에 동명대회에서 장원했다고 한다. 이를 역산해 보면 출생년은 550년. 이후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서부 총관부에서 벼슬하며 돌궐과 계단(거란), 말갈 등에 여러 차례 사신으로 갔다고 한다.
그 뒤 동명 대회에서 장원한 후 아직 보직을 받지 않은 을지문덕이 592년(고구려 영양왕 3년) 8월 하순 요동성 서부 총관부의 총관 강이식을 찾아와 총관부에서 같이 일하게 되었고,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공으로 병마도원수[6], 을지문덕은 서부 총관으로 각각 승진했다고 한다.
Why? 한국사 시리즈에서 강마루의 선조인 강비의 할아버지 격 인물로 설정되었다.
[1]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서 등장. 정말 병마도원수였는지는 의심스럽다.[2] 영류왕이다.[3] 작중 영주 총관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요서 총관이었다.[4] 비록 빠르게 죽어버렸지만, 연개소문 내에서 고경과 함께 긍정적으로 묘사된 몇 안 되는 수나라 인물이다. 현명하지만 음흉한 양소나 우직하지만 기회주의적인 우문술은 드라마에서 다소 긍정적이라고 묘사됐다고 보기에는 애매하고...[5] 양만춘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물론 양만춘은 영류왕의 부장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류왕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것이지 그 역시 영류왕의 정책에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6] 쉽게 말해 대장군. 지금으로 치면 5성 장군, 원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