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창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3.1. 태조 왕건


1. 개요


能昌
(? - 910)
후삼국시대의 해적이자 호족.

2. 생애


신라 행정구역 기준 무주(武州) 압해군(壓海郡), 고려 행정구역 기준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압해현(壓海縣)의 해적. 후삼국 시대 압해를 비롯한 다도해 일대에는 수천 명의 대병력으로 일본 규슈 지역을 공격할 정도로 군벌이나 다름없는 해적이었던 신라구가 많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능창도 그 해적 집단 중 하나의 우두머리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910년에 궁예의 명을 받은 왕건이 나주(신라 금산군(錦山郡))를 점령하기 위해 무주 서남 지역의 반남현 포구에 이르러 첩자를 보내 적의 동정을 살피게 했는데, 능창은 수전에 능하여 '수달(水獺)'이라 불렸으며[1] 도망친 자들을 불러모으는 한편 갈초도의 소적들과 결탁하여 왕건의 목숨을 노렸으나 되려 왕건의 계략에 속아 붙잡혔다. 이후 궁예가 얼굴에 침을 뱉고는 이내 목 베어졌다고 전해진다.
단순한 해적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견훤 휘하의 해적이었다는 설도 학계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고려사에 능창과 견훤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기사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에 대한 이설이 나뉘고 있다.
먼저 견훤의 수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에서는 견훤이 나주 바로 옆인 무주에서 떡 하니 대놓고 버티고 있는 강한 독립 세력을 눈앞에 두고 왕을 자칭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궁예가 직접 심문하며 침을 뱉었다는 것 역시 견훤의 직속 부하는 아니었더라도 나주 지역의 관할권을 거의 통째로 부여받았던 강력한 세력가였을 것으로 여긴다.
반면 독자적인 세력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당시 서남해는 하나의 세력이 패권을 잡은 상태가 아니라 여러 군소 세력이 난립한 형국이었고 능창의 세력권도 압해현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추정한다. 즉 신라의 9주 중 하나인 무주를 손에 넣은 견훤 입장에서 지방의 군소 해적에 불과한 능창을 강하게 의식했을 리가 없다는 것. 더구나 견훤은 왕건이 나주를 차지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상주나 대야성 방면의 전선에 더 신경을 썼는데, 이는 그가 서남해를 직접 지배하는 대신 군소 세력들과 서로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대치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왕건이 서남해를 공격했을 때도 따로 견훤이 나섰다는 기록은 없고 능창이 포로로 붙잡혔던 전투도 견훤과는 전혀 무관했다. 궁예가 능창에게 침을 뱉었다는 기록 역시, 포로로 잡힌 것을 조롱한 정도이지 강력한 세력가로 보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해주지는 않는 대목이다.
현재의 압해현인 신안군에서 "천년의 바다, 수달 장군"이라는 이름의 마당극을 제작하는 등 대대적으로 띄워주었다. 장보고와 엮을 계획도 있다고 한다.

3. 대중매체에서



3.1. 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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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의 초중반부에서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극 초반에는 본명으로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완전히 익숙해졌을 무렵에는 본명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수달로만 불리기 시작했으며 견훤과 의형제 사이로 각색되었다.
본래 서남해 일대를 장악한 해적 두목이자 호족들의 우두머리였다. 드라마 극초반부는 견훤의 후백제 건국에 중점을 두었으며[4] 능창과 싸울 때는 겨우 수십~수백 명의 병사나 부리던 견훤이 능창이 항복한 이후 수천 명이 넘어가는 대병력을 꾸릴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상 1라운드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신라의 군관으로서 서남해에 파견된 견훤은 지역의 주도권을 가지고 군세를 불리고자 하였는데 당연히 능창은 자신의 세력을 무력화하려는 견훤을 마음에 들어할리가 없었기에 견훤과 대립한다. 능창과 호족들은 중국과의 밀무역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는데 견훤군은 무역품을 수송하던 능창의 부하들을 습격하여 무역품을 빼앗아 백성들과 군사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에 분노한 능창은 술자리를 빙자하여 견훤을 암살하고자 하는데 견훤은 이를 알고도 부장들만 데리고 술자리에 참석한다. 수달의 부하들이 덤벼들었으나 견훤과 능환이 맨 몸으로 이를 모조리 때려잡아 버리고 견훤의 힘에 공포를 느낀 수달이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다가 붙들리다 풀려나는 굴욕을 겪게 된다. 수달 측이 숫자가 많기는 했으나 견훤이 수백 근 청동 향로도 막 들어던지는 괴물이다 보니 당해낼 수가 없었고 밖에 있던 병사들은 추허조김총에게 박살나버린 상태였던 것. 이런 굴욕까지 당한데다 세금까지 내야할 판인지라 마지막으로 병사들을 긁어모아 관청으로 쳐들어가는데 이미 수달이 공격해올 것을 예측한 견훤 측은 일부러 관청을 내어준 다음 자만한 수달이 골짜기까지 쫒아오자 역으로 포위하여 박살내 버린다. 포로로 잡힌 수달은 처형당하기보다는 스스로 죽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견훤은 지금 죽는 것이야말로 승패를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행동이라며 일갈한다.
결국 수달은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해 견훤과 의형제의 연을 맺는다(12회). 자존심이 높은 인물로 설정된 만큼 1~2번 졌다 해서 쉽게 머리를 숙이지는 않는데 견훤에게 여러 번 덤볐지만 모조리 패하다 보니 진정으로 인정하고 수하가 된 것. 드라마에서는 배우들의 실제 나이 순대로 능환과 추허조 다음으로 들어가지만 소설판에서는 추허조나 능환은 물론 견훤보다도 10년 연상이라 둘째가 되었는데 수달이 포로가 되자 견훤이 몸을 아끼지 않고 구하려 하거나[5] 수달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라며 비통하게 한탄하는 등 두 사람의 우정은 깊은 것으로 묘사되었고 수달의 세력을 흡수한 견훤은 서남해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이후 견훤이 2번째로 대야성을 공략하기 위해 출진할 때 후방에 남겨져 금성을 지키게 되었는데 최승우와 견훤이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고려군이 쳐들어올리가 없다며 방심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총례오다련이 고려와 내통할 줄은 더더욱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왕건이 지휘하는 고려군의 침공을 받자 분전했지만 패하여 금성을 잃는다. 이후 몇 번이고 금성을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선봉에 서기를 자청하는 애술신덕을 꾸짖으며 자신이 선봉이 될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견훤이 직접 참전한 전투에서 동남풍을 이용한 화공에 당해 패퇴하고 후퇴하던 중 능산의 기습에 당해 포로로 잡혔다(92화).
이어진 93화의 경우 대부분의 분량이 수달을 회유하는 장면이었으며 같은 화 마지막 대목에 송악으로 끌려가 궁예에게 심문받기 시작한다. 수달을 마음에 들어한 왕건은 어떻게든 회유하고자 했지만 견훤도 여러 번의 싸움 끝에 간신히 마음을 돌릴 정도로 자부심이 높은 수달이 회유에 응할리가 없었고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다면 목을 치고 서남해 쪽으로 묻어달라고 부탁한다.
94화에서 궁예에게 심문받을 때는 "나한테 절하고 살래 아니면 기름 뒤집어쓰고 불 속에 들어가서 죽을래?"라는 질문에 기름을 뒤집어쓰고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 바로 들어가도 되겠소이까?"라고 말해 궁예를 더 격노하게 만들었다. 이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중증에 걸려 있던 궁예는 기록에서처럼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모욕을 가했다.[6] 결국 모든 회유를 거부하고 죽기로 자청한 수달은 끝까지 궁예를 비롯한 마진의 신료들을 비웃었지만 왕건 앞을 지나갈 때에는 자신이 포로로 있을 동안 베풀어 준 호의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 온 몸에 기름을 뒤집어쓴 채 웃으면서 불 속으로 직접 걸어서 들어간다.[7][8]
극 중 무력으로는 최강급인 견훤의 의형제답게 뛰어난 맹장으로 묘사된다. 그야말로 괴물인 견훤이나 극 초반부의 궁예와 양길 정도를 제외한다면 드라마 내에서는 유금필, 추허조와 함께 정상급. 나주에서 왕건의 군대와 싸울 때는 첫 등장 이래로 웬만한 상대는 싱겁게 처리해 온 박술희를 이겼고 홍유를 가볍게 제압했으며 배현경김락이 2:1로 덤볐음에도 간단히 물리쳤다. 홍유는 낙마하고선 말발굽과 언월도를 피해 바닥과 수로를 데굴데굴 굴러야 했고 배현경은 수달이 자신의 투구에 붙었던 뿔 하나를 날려버리자 쫄기까지 했다. 지켜보던 왕건, 유금필, 신숭겸, 환선길 등은 할 말을 잃었으며 그런 괴물을 견훤이 3번이나 물리치고 수하로 들였다는 말을 듣자 경악한다.[9]
수달이 처형되고 추허조가 전사[10]하면서 백제에는 고려의 무장들을 상대할 만한 장수진이 부족해지기 시작하고 이는 견훤이 왕건에게 밀리는 여러 계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후 백제에서 주로 활약하는 무장은 애술과 신덕이지만 신덕은 배현경과 비겼고 애술은 박술희보다 살짝 밀리는 수준이며 유금필과는 몇 합 겨룬 뒤 "저건 괴물이다"를 외치며 도망을 쳤다.
극 중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장면은 승려 출신의 첩자 도우가 파견되는 대목인데 아지태를 처형한 후 궁예는 인간 불신이 더욱 심해졌고 이에 최승우는 태봉을 뒤흔들고자 첩자를 파견했다. 도우는 떠돌이 승려였는데 그의 3형제가 모두 수달의 부장들로 마진의 나주 정복 당시에 전사했고 도우 역시 수달을 존경하고 있었다. 첩자가 된 것도 스스로 자원한 것이었는데 이후 정치적으로 몰린 상태였던 임춘길을 도와주는 척하며 여러 번 왕건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1] 水達이 아니다. 수달은 귀여워 보이지만 민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데, 이런 동물에 비견되었다면 굉장히 용맹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 사진은 나주 공방전에서 왕건의 군대가 기습하자 급하게 군사를 소집하고 방어전에 돌입하는 모습이다.[3] 오프닝에서의 능환, 수달(능창), 추허조.[4] 이때 왕건은 아직 소년이었고 궁예는 기훤 밑에 들어가 의사 노릇이나 하던 상황이었다.[5] 고려군 기병 둘이 끌고 오는 통나무를 붙들어 뺏아 휘두르며 구하려고 했었다. 왕이 그 정도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나설 정도면 그냥 친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긴다는 뜻이다.[6] 더러운 백잔놈이라고 욕하는데 백잔은 백제를 모욕하는 멸칭이다.[7] 불에 타는 모습이 화면에 잠깐 잡히고 비명 소리만 짧게 들리니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실제로 화형은 짧아도 몇 분에서 길면 몇 십 분 동안 극도의 고통을 받게 하는 처형법이다. 심의 때문에 순화하여 연출한 것으로 수달도 "죽이는 방법이 참으로 가혹하시구려"라고 했을 정도였으며 견훤도 "궁예 왕 그 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달이를 그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며 부르짖었다. 다만 오래 태워죽이는 화형은 일부러 고통을 주기 위해 불꽃 위에 처형자를 묶어두고 서서히 태우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수달처럼 기름을 끼얹고 불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경우에는 곧바로 죽게 된다.[8] 작중에서도 너무 끔찍한 처사라며 아량을 베풀라고 간청하는 신하들이 왕건말고도 한둘이 아니었으며 그 중에는 아지태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궁예가 얼마나 끔찍한 처형을 했는지 짐작케 한다.[9] 다만 박술희가 위험에 처하자 왕건이 재빨리 달려나가 수달과 겨루었는데 왕건이 가볍게 승리를 거둔다. 드라마의 군주들은 신라 왕, 기훤, 아자개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들 무력이 대단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10] 추허조는 실제로는 927년에 대야성을 지키다 사로잡혔으나 본작에서는 11년 이른 916년에 전사하는 걸로 각색된다. 견훤을 연기한 서인석과 추허조를 연기한 강재일이 술김에 말다툼을 했는데 똑같이 한 성깔 하다 보니 먼저 폭발한 강재일이 밤에 자고 있던 서인석의 방에 쳐들어가 발길질까지 해버려 조기 하차를 하고 말았으며 강재일은 한동안 방송에 못 나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