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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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LG 트윈스 소속 투수, 現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선린상고 시절에는 김선우, 서재응, 박명환과 더불어 투수 최대어로 주목받았고, 1996년 LG에 고졸우선 지명을 받은 후 한양대에 입학. 이후에도 '제2의 박찬호'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특례까지 누린다.
한양대 재학 시절에는 상대팀 타자의 타구에 눈을 맞아 실명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다행히 실명 위기는 넘겼고, 아마추어 야구계는 이 사고 이후 알루미늄 배트에서 나무 배트로의 전환을 꾀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한양대 졸업 후 3억 8천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한다.
데뷔 첫 해부터 선발로 뛰면서 완투승을 거두는 등 무난히 프로에 적응해 나가다가 최향남의 부상으로 인해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게 되는데, 팀이 부진했던 탓에 등판 기회가 거의 없었고 여기에 잦은 부상까지 겹치며 더 성장하지 못했다.
한때 진필중과 신윤호의 부진 때문에 다시 마무리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며, 불펜에서의 불안한 모습 탓에 '''경유헌호'''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다.
2010 시즌에는 부상 등으로 고작 5경기에 출전했는데, 결국 시즌 후 6,300만 원에서 절반이 깎인 3,100만 원에 재계약했다.[3] 연봉이 반토막난 게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컸던 기대에 비해서 대성하지는 못했고 남긴 성적 또한 인상적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땜빵 선발부터 패전조, 롱 릴리프, 마무리까지 닥치는 대로 등판하며 소위 말하는 마당쇠 역할로 궂은 일을 도맡았고, 그렇게 10년동안 아무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역할을 불만 없이 떠맡으며 불펜 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주었던 좋은 B급 선수였다.
결국 2012 시즌 도중 12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다.
4. 지도자 시절
은퇴 이후에도 LG에 남아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2013년 시즌을 앞두고 2군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2군에 있다가 차명석이 입원했을 적에 강상수가 투수코치 대타를 맡게 되자, 아주 잠깐 1군으로 올라와 강상수를 대신해 불펜코치를 맡았다. 이후 2군에 있다가 2015 시즌 중 1군으로 올라왔다. 반대급부로 내려간 코치는 박석진.
2017 시즌 후반기에 은퇴식을 치뤘는데, '''은퇴한 지 무려 5년만에 은퇴식을 치룬 특이한 케이스'''가 되었다.[4] 다만 김광삼 은퇴식에 묻어간 느낌이 크다.
MBC sports+의 유튜브 스톡킹에 출연한 이동현에 따르면 이동현이 마지막 등판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왔더니 불펜코치를 맡고 있던 경헌호가 붉어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영상분에서 이동현은 경헌호에게 여러번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여담으로, 한국프로야구 등록 선수 중 유일한 경씨.
데이터 등 공부하는 지도자로 이름이 나있고 젊은 투수들로부터 신망이 높다고 한다. 2020년 퓨처스 투수코치를 맡으며 2군에서의 좋은 성적을 통해 1군에 여러 투수를 올려보내 좋은 활약을 보여 지도력을 입증했다. 성재헌, 남호, 이정용 등이 2군에서 올라와 좋은 모습을 보인 투수들이다. 물론 류원석이나 이우찬처럼 좋은 2군 성적이 1군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출생 당시 강서구였다.[2] 1996학번[3] 기존 활약은 고려치 않고 순수 해당 시즌에서의 활약으로 연봉을 주는 '신연봉제'에 희생된 대표적인 케이스이기도 하다.[4] 다만 이미 LG에서는 1984 시즌을 끝으로 선수로서는 은퇴한 백인천이 1990년에 감독으로 돌아오자 1990년에 은퇴식을 치룬 선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