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응

 



'''서재응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8'''

보유 기록
선발 등판 연속 무실점
44이닝(2012년 8월 26일 ~ 9월 30일)[37]



''''''뉴욕 메츠''' 등번호 38번'''
제러드 리간
(2001)

'''서재응
(2002)
'''

팻 스트레인지
(2002~2003)
''''''뉴욕 메츠''' 등번호 40번'''
토니 타라스코
(2002)

'''서재응
(2003)
'''

브레이든 루퍼
(2004~2005)
''''''뉴욕 메츠''' 등번호 26번'''
마르코 스쿠타로
(2002~2003)

'''서재응
(2004~2005)
'''

올랜도 에르난데스
(2006~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6번'''
에이나르 디아즈
(2006)

'''서재응
(2006)
'''

루이스 곤잘레스
(2007)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번호 40번'''
덕 왜처
(2003~2005)

'''서재응
(2006~2007)
'''

트로이 퍼시발
(2008~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40번'''
조동현
(2007)

'''서재응
(2008~2009)
'''

정성철
(2010~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26번'''
장문석
(2007~2009)

'''서재응
(2010~2015)
'''

손영민
(2017)
''''''KIA 타이거즈''' 등번호 98번'''
노수광
(2015.5.7.~2017.4.7.)

'''서재응
(2018~)
'''

현역



<colbgcolor=#EA0029><colcolor=#ffffff> '''KIA 타이거즈 No.98'''
'''서재응
徐在應 / Jae Weong Seo'''
'''생년월일'''
1977년 7월 10일 (46세)[1]
'''출신지'''
[image] 광주광역시
'''신체'''
185cm, 93kg[2]
'''학력'''
광주화정초 - 충장중 - [image] 광주일고 - [image] 인하대(중퇴)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고졸우선지명 (해태)[3]
199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NYM)
'''소속팀'''
'''[image] 뉴욕 메츠 (2002~2005)'''
[image]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6)
[image]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2006~2007)
''' [image] [image] KIA 타이거즈 (2008~2015)'''
'''지도자'''
저니맨 외인구단 투수코치 (2017)
[image]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8)
[image]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8)[4]
[image]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8~2019)[5]
[image]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9~2020)[6]
[image]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21~)
'''해설위원'''
[image]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6~2017)
'''응원가'''
Ray Charles - I can't stop loving you[7]
'''가족'''
아버지 서병관, 어머니 최경자, 형 서재환
'''배우자'''
이주현(1977년생)(2005년 결혼 ~ 현재)
'''자녀'''
딸 서혜린(2005년 7월 25일생)[8]
아들 서태성(2007년 6월 21일생)
아들 서해성(2009년생)
'''병역'''
병역특례
'''종교'''
불교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2009)
1. 개요
3. KBO 리그 시절
3.1. 2008 시즌
3.2. 2009 시즌
3.3. 2010 시즌
3.5. 2012 시즌
3.6. 2013 시즌
3.7. 2014 시즌
3.8. 2015 시즌
3.9. 2016 시즌
4. 해설자 시절
5. 지도자 생활
5.1. 2018 시즌
5.2. 2019 시즌
5.3. 2020 시즌
5.4. 2021 시즌
6. 연도별 성적
7. 플레이 스타일
8. 여담

[clearfix]

1. 개요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자 現 2군 투수코치. 광주일고의 중심 축이었으며 1년 후배로 김병현, 2년 후배로 최희섭이 있다. 원래는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 볼로 윽박지르는 게 주 무기였으나, 팔꿈치 부상 이후엔 정교한 제구력과 변화구로 승부를 보는 타입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2. 메이저리그 시절



2.1. 뉴욕 메츠 시절


[image]
뉴욕 메츠 시절.[9]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96년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학교에 입학했다. 1998년에는 인하대학교를 중퇴하고 뉴욕 메츠와 13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으며 형 서재환[10]과 함께 미국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11] 메츠와 계약을 맺은 후인 1998년 말 방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 합류, 금메달을 따내며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한다.
입단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재활하게 되었고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2002년 9월 뉴욕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처음 콜업되어 1경기에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2003년 선발진에 진입하며 9승 12패 188⅓이닝 3.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팀 타선이 도와 주지 않아 '''10승에는 실패'''했고, 이는 전성기 시절 박찬호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선발 투수로서는 최고의 기록이었으나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이 2013년 8월 2일, 시즌 10승째를 거두면서 기록을 경신하였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며 5승 10패로 전년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다.
2005 시즌에는 시즌 초반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4월 막판 잠시 출전해 호투를 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하다 선발진의 부상을 틈타 8월쯤 메이저로 콜업, 14경기에 등판하여 8승 2패를 거두고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하며 그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이 시절 구대성과 잠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image]
2006년 WBC 국가대표 당시
2005년 뉴욕 메츠에서의 화려한 성적[12]을 기반으로 2006년 1회 WBC 국가대표에 선출되었으며, 14이닝 1실점 2승 무패 ERA 0.64 WHIP 0.71[13]을 기록했다. 국가대표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마무리로 돌릴 수 있게 했으며, 두 메이저리거의 활약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WBC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일본을 이긴 이후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레머니를 했는데, 이것이 이후 WBC의 전통이 되어 다른 국가대표 팀도 자신들의 상징을 마운드에 꽂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image]
LA 다저스 시절.
그러나 WBC가 끝난 후 2006 시즌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트레이드되어[14] 고등학교 후배 최희섭과 아주 잠깐 한솥밥을 먹기도 했으나, 최희섭보스턴 레드삭스트레이드되었고, 자신도 메이저리그 19경기에서 2승만 거두는 부진[15]을 보였다.
다만 이 당시 거둔 2승 중 1승은 '''MLB 사상 최초의 한국인 선발투수 맞대결'''에서 거둔 승리다. 이 당시 서재응은 2006년 5월 2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는데 하필이면 상대팀 선발이 '''광주일고 1년 후배인 김병현'''이었다. 서재응은 7이닝동안 6피안타 1볼넷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고 김병현도 6이닝 6피안타 2볼넷 2탈삼진 3실점으로 나름 호투했다. 경기는 6-1로 다저스가 이겼고 서재응이 승리투수가 됐다.

2.3.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시절


[image]
데블 레이스에서 뛰었던 시절.
결국 한 시즌도 못 채우고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로 또 다시 트레이드됐다. 탬파베이로 이적한 후에는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1승(8패)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종종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다저스 시절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점도 시즌 막바지에는 4점대 후반까지 끌어내렸지만, 마지막 두 경기를 크게 말아먹고 결국 5점대 평균자책점, 게다가 떨어진 구위로 인해 무려 31피홈런을 기록하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어쨌든 2007년에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시즌을 시작했으나 3승 4패 평균자책점 8.13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찍으며 결국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했고,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최희섭, 추신수 모두에게 홈런을 허용한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그 투수다(...) 추신수의 말에 따르면 (홈런 치라고) 서비스급으로 던져준 공이었다 한다.

3. KBO 리그 시절


[image]
2007년 12월 17일 KIA 타이거즈 입단식에서.
2007 시즌 후 탬파베이에서 방출된 서재응은 한때 일본프로야구 진출설도 돌았으나 결국은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16]에 입단하면서 대한민국 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서재응의 부친이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이 완전 깡통을 차게 되자 아들에게 SOS를 청했고, 이게 서재응의 대한민국 복귀에 있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설상가상. 이 사건이 터지기 2년 전만 해도 서재응은 '''뉴욕에 자신의 집을 갖고 있었다.''' 서재응 부친의 이야기로는, 그 일만 없었다면 서재응이 절대 미국에서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니....[17]

3.1. 2008 시즌


선발진에 합류해 초반엔 좋은 제구로 그럭저럭 재미를 봤으나 무릎, 어깨 등 부상에 시달리며 5승에 그쳤다.

3.2. 2009 시즌


2009년 역시 시즌 초반엔 잘 했으나, 사직 롯데전에서 팀의 공격 도중 나지완의 파울볼이 무릎을 강타, 그 이후 다시 잔부상이 겹쳐 장기였던 제구도 말썽을 일으키게 되어, 전년도와 같은 승수에 방어율은 폭등하며 '''응원단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기도 했다.
2009년 시즌 9월 8일 막판 선두 경쟁을 하던 SK와의 경기에서 3회초 정근우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을 입히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사구 후 정근우는 서재응에게 사과를 요청했고 서재응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장면에서 옥근우라는 별명도 탄생. 참고로 정근우는 9회에 사구를 또 맞았다.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걸.'''
그 당시 지펴졌던 불씨는 한국시리즈 3차전 4회말 스코어 0:4로 SK 와이번스가 앞서고 있던 시점에 폭발했는데, 2사 상황에서 정근우KIA 타이거즈의 두 번째 투수 서재응을 상대로 투수 앞 땅볼을 쳤는데, 서재응은 바로 송구하지 않았다. 아웃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달리다가 송구를 하지 않자 빨리 달리다를 반복하던 정근우는 결국 아웃됨과 동시에 서재응을 응시했는데, 후배인 정근우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에 서재응은 '''뭘봐 이 XX놈아'''라는 욕설을 시전, 정근우가 '왜요'라고 응수하면서 그대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image]
다행히도 폭행 사태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와중에 김종국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오바하며 선수단의 동요를 막음과 동시에 개지랄을 하였다(?). 일각에서는 이 신경전 때문에 KIA 타이거즈SK 와이번스와의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고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김종국은 어디 가서 큰소리 한번을 제대로 안 치는 성격으로 널리 유명한지라 KIA-SK 팬 외에도 그를 아는 사람은 전부 그 어색함에 벙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서재응은 벤치 클리어링 이후 평정심을 잃고 5회말 만루 위기에서 정상호최정에게 연속으로 밀어내기 사구를 내주며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다.관련기사 그렇지만 해태 출신이면서 어느정도 타이거즈에 애정이 있는 해설자 이병훈이 이건 서재응의 잘못 이라고 말 할 정도.
이러한 사건으로 서재응은 SK 와이번스를 매우 싫어하는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대놓고 이런말을 했을정도... 당연하지만 SK 팬들도 서재응을 매우 싫어한다. 2011년 4월 28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SK 박진만의 머리를 강타하는 공을 던졌고, 사과는 커녕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리는 바람에 SK 팬덤과는 완벽히 앙숙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16년 3월 21일 SBS스포츠의 주간야구에서 서재응이 참가하면서 다시 회자되었는데, 서재응 본인의 말로는 그 후에 골프도 치고 문자도 주고받는등 잘 지내는 사이라고...

3.3. 2010 시즌


2010 시즌 첫 등판이었던 무등 삼성전에서 5이닝 1실점하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4월 7일 문학 SK전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서재응은 15승이 목표라고 인터뷰했다. 이 때 서재응 VS 정근우 3차 대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2010년 6월 18일 문학 SK전에서 스코어 3:2로 KIA가 힘겹게 앞서고 있었던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마무리로 올라왔으나 조동화에게 초구 끝내기 2루타를 맞았다. 이 날 승이 날아간 윤석민은 분한 마음에 락커룸을 손으로 가격했다가 전치 6주 부상을 입게 되었다.
2010년 6월 20일 선발 투수로 나와 6회 2실점하고 강판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욕하는 것(F word)이 중계방송에 잡히고 말았다.
2010년 8월 4일에는 3일 쉬고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나오는 불펜들마다 불을 질러서.. 무등예수 지못미. 그렇지만 얻어맞은 불펜투수들을 토닥이고 격려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무등예수란 별명을 굳힘과 동시에 까방권을 얻었다.
2010년 8월 17일 넥센전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7승을 수확하였다.
2010년 8월 27일 SK전에서 6이닝 무실점 하고 KIA 타선이 웬일로 김광현한테 2점이나 뽑아 승리투수가 될 듯 했으나 구원투수로 올라온 김희걸이 승을 날렸다. 결국 이 경기는 최희섭 타석에서 고효준의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으로 KIA가 이겼고, 안영명이 어부지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15일 윤석민의 024(⅔이닝 4실점)에 백인호와 신종길, 김선빈이 합작한 뇌주루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따내며 시즌 9승째를 챙겼다.
2010 시즌을 보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즌이 막판까지 가는데도 10승을 못 챙겼을 정도로 불펜진 방화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
결국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140이닝 '''9승''' 7패 ERA 3.34 whip 1.16으로 10승만 못했을 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WAR 또한 2010 시즌 KIA에서 가장 높은 4.32로 16승 투수인 양현종을 제치고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 BB/9 또한 1.86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1위로 화려한 제구력을 뽐낸 시즌이었다.

3.4. 2011 시즌


2011 시즌 항목으로.

3.5. 2012 시즌


불펜진도 불펜진이지만, 선발진에서도 양현종이 부상으로 빠지고 용병으로 데려온 앤서니 르루호라시오 라미레즈의 기량도 의문인[18] 상황에서 윤석민과 함께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꼽혔다. 시즌이 개막하자 실제로 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승수는 그의 투구내용에 걸맞지 않았으니..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왔던 4월 7일 문학 SK 와이번스전에서는 수비진의 실책과 타선의 불발로 인해 SK전 연승이 깨지며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4월 13일 LG 트윈스 전에서는 박용택의 솔로 홈런에 의한 1실점을 제외하면 준수한 투구 내용을 보이며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지만 KIA의 火펜진의 방화(...)로 인해 승리요건이 날아가는 불운을 겪었다. 이 날, 팀은 리즈의 볼질로 8:6 승리를 거두었다.
4월 19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 전에 와서야 겨우 1승을 챙겼다. 하지만 서재응이 7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고도 7회 이전까지 KIA 타선이 홍재호의 솔로홈런으로 인한 1득점만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어떨까 조마조마했던 것이 사실.
6월 26일 잠실 LG 트윈스 전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날 KIA는 공식적인 실책 3개와 기록되지 않은 실책까지 수비가 상당히 불안정했다. 특히 4회가 절정이었는데, 윤완주가 송구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고 김상훈은 이닝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파울 플라이를 놓쳤다. 5회에도 조영훈이 2사에서 실책으로 만루위기를 빚었다. 그러나 서재응은 에러가 나올 때마다 에러한 선수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실책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윤완주를 향해 크게 이름을 부르며 고개 숙이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낸 것은 리더십의 절정으로 찬양받았다. 결국 서재응은 위기를 스스로 돌파하며[19] 에러로 인한 실점을 하지 않고 4승째를 올렸다. #
9월 18일 광주 두산전에서는 7이닝 74투구수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였으나[20] 불펜 투수들[21]이 불을 지르며 8승이 날아가버렸다. 승리가 날아갔음에도 오히려 특유의 아빠 미소(...)로 불펜 투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으로 KIA팬들의 안구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역시 대인배.. 이 날 경기는 2:2로 무승부로 끝났다. 이 날 경기로 그의 평균자책점은 2.83이 되었으며, 순위는 류현진과 공동 3위, 토종 투수들 중에서는 공동 1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류현진도 이날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9월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투구수 110개 3안타 1볼넷으로 프로 통산 첫 완봉승을 올렸다. 이 시점에서 36이닝 연속 무실점, 선발로는 35이닝 연속 무실점중. 선동열의 선발 3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경신이 눈앞에 왔다.
9월 30일 군산 롯데전에서 9이닝 122투구수 30타수 5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으로 '''또''' 완봉승을 거두면서 2경기 연속 완봉승으로 시즌 9승째를 올렸다. 선동열의 3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경신하였고, 기록을 '''44이닝'''으로 늘렸다.[22] 또, 평균자책점 2.57인 셰인 유먼을 제치고 2.49를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2위에 올라섰다.

10월 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회초에 실점하며 연속이닝 기록도 깨지고 8이닝 4실점하며 스코어 4:3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시즌 10승에도 실패하고 평균자책점 순위도 4위까지 떨어지며[23] 결국 '''9승''' 8패로 또 다시 시즌 10승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6 시즌 은퇴식 날에 중계석에서 밝힌 바로는 제일 아쉬웠던 시즌이 바로 이 2012 시즌이었다고 한다.

3.6. 2013 시즌


모처럼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지만, 대한민국타이중 참사를 겪고 예선에서 광탈하는 바람에 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WBC 후유증 때문인지, 시즌 초반에는 다시 서재앙 모드로 돌아오며(…) KIA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특히나 시범경기부터 주전 포수 자리에 오르내리던 이홍구를 갈구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 이닝이 끝난 후 이홍구와 서재응이 덕아웃에 들어가며 볼배합에 대해 설교하는 모습 뿐 아니라 덕아웃에서도 썩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굳은 표정에 열중쉬어 자세를 하며 서재응에게 한 소리 듣던 이홍구의 모습은 압권. 덕분에 자기가 못하는 걸 왜 후배 자책하느냐고 누리꾼들에게 대차게 욕 먹으며 나이스가이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었다. 그만큼 자신이 뿌리는 공에 대해 불안감과 압박감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규 시즌이 시작되는데...
3월 31일 무등 넥센전에서 5⅓이닝 87투구수 6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4탈삼진 6실점(5자책)으로 부진, 5⅔이닝 2실점을 기록한 고교 후배 김병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패했다.
4월 7일 사직 롯데전에서 5이닝 79투구수 5피안타 4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매 이닝마다 주자를 출루시키며 꾸역꾸역 이닝을 막아냈기 때문에, KIA 팬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도 출루한 김문호를 견제로 2번이나 잡아내며 괜찮은 견제 능력을 보여 줬다는 게 다행.
4월 25일 마산 NC전에서 다리 상태가 안 좋은데도 이닝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24]으로 팬들을 걱정하게 하기도 했지만,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시즌 2승을 챙겼다.
5월 1일 잠실 두산전에서 간만에 좋은 피칭 내용을 선보였고, 7이닝 6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3승을 챙겼다.
특히 이 날 선발 출장한 포수 차일목의 리드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5월 18일 잠실 LG전에서는 2회를 제외한 매 이닝마다 안타를 맞으며 득점권에 몰렸으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며 5⅔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필승계투조가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켜 주면서 4승을 챙겼다. 2012년과 비교했을 때 승수를 올리는 페이스가 상당히 빠른 편.
'''그러나....'''
'''자신의 생일'''인 '''5월 24일'''에 열린 무등 NC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생일빵을 제대로 얻어맞으며 완벽하게 박살났다.''' '''4이닝 동안 101구를 던져 9피안타 3사사구 10실점(10자책)'''으로 '''최악투'''를 기록하며 조기 강판당했고, 결국 KIA가 패하며 자신의 생일에 선물 대신 굴욕적인 패전의 멍에를 썼다. 말 그대로 탈탈탈 털리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구속도 안 나왔고, 제구까지 망하면서 완벽히 무너졌다.
재미있게도 원정 경기와 홈 경기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 날 경기 후 기준)
  • 원정 경기 : 27이닝 4승 ERA 1.33 28피안타 10사사구 9탈삼진 4실점 4자책
  • 홈 경기 : 18이닝 3패 ERA 11.00 26피안타 9사사구 7탈삼진 24실점 22자책
10실점하며 제대로 생일빵을 얻어맞고 패전 투수가 된 후 나간 기사에서는 서재응의 별명인 "재앙"을 영어로 한 disaster를 본따서 '''서재스터'''라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재응 외에도 KIA의 유부남 선수들 대부분이 홈 경기에서 심각하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6월에 접어들면서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6월 3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사실상 경기가 거의 다 기울어진 상황에서 나와 배팅볼 투수 수준으로 두들겨 맞는 등 팬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8월 9일 NC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동안 5안타를 내주었으나 1실점(1자책)으로 잘 막았으며, 팀도 승리를 거두게 되어 오랜만에 시즌 5승째를 따냈다.
그러나 이후 8월 15일 두산 베어스와, 8월 2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선발 경기에서 모두 패하면서 시즌 7패째를 떠안았다. 이후 경기에서도 부진한 투구를 보여 9패째를 기록했고, 결국 2013년 9월 9일 1군에서 제외된 후 시즌을 마감했다.
2013 시즌 성적은 1군 19경기 5승 9패 84이닝 5피홈런 116피안타 36탈삼진 33사사구 평균자책점 6.54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천안에 가서 시구를 하면서 타어강을 전염시켰다.

3.7. 2014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는 선발로 나왔지만 이내 더는 선발로 나올 수 없는 상태라고 판명됐는지 불펜으로 전향했다.
4월 2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7:7인 9회초에 등판하여 2이닝 37투구수 2피안타 3사사구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8:7로 지면서 서재응은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10일 넥센전에서는 팀이 1:0으로 지던 8회말에 올라오지만 박병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나서 신나게 털려버려 팀이 9회초 2점을 뽑아냈지만 결국 5:2로 패하는 단초를 제공.

5월 4일 넥센전에서는 팀이 4:2로 지던 9회초에 올라오지만 강정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나서 이성열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신나게 털렸지만 팀이 9회말 이대형의 1타점 적시타, 고영우의 무사만루 희생플라이와 브렛 필쓰라린으로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김주찬의 끝내기 안타로 패전을 면했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는데 2군에서도 신나게 털려서 은퇴가 임박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선발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2군에서도 차도없이 전반기를 보낸 가운데, 후반기 들어 데니스 홀튼의 방출로 급하게 1군으로 콜업되었다.
NC전에서 1년만에 선발로 등판. 왜 2군에만 있었지 싶을 정도로 그럭저럭 5선발급으로 나쁘지 않은 노련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나, 수비실책으로 5이닝 3실점 후 강판. 꽤 아쉬움이 남는 투구였고 이후로는 불펜으로 전환해서 그럭저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의 투구를 보여주며 이닝을 먹어주고 있다. 2013년에 이어 노쇠화가 진행된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이 중평. 더 아쉬운 점은 서재응이 파이어볼러 스타일이 아닌 노쇠화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제구파, 기교파 투수임에도 1~2년만에 처참한 수준으로 성적이 폭락하였다는 것이 더욱 큰 아쉬움이다.
그리고 2014년 노쇠화의 영향으로 불펜으로 전환함에 따라, 서재응의 염원이던 한 시즌 10승은 결국 꿈으로 남게 되어 선수 개인에게도 굉장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 32⅓이닝 무승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6.40으로 그야말로 처참했다. 팬들은 저딴 성적을 2년 연속 내고서도 억대 연봉 쳐먹는다고 깠다.
그리고 시즌 후 넥센 히어로즈의 비활동기간 훈련 금지 규정 위반을 들먹이면서 그 책임을 한화 이글스김성근 감독에게 돌리는 등 온갖 떡밥을 남겼고, 이 떡밥으로 인해 롯데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과 안치홍 임의탈퇴 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면서 훈련 금지 규정만을 들먹이며 억대 연봉 선수만 배불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구단들과 전 구단 팬들까지 모두 서재응과 선수협에게 등을 돌리면서[25] 서재응은 사실상 재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2억 원에서 40%가 삭감돼서 1억 2천만 원을 받게 되어 또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이 결정됐다. 제 몫을 한 김병현의 경우는 오히려 동결될 가능성이 큰 편. 비슷한 성적을 냈고, 나이도 비슷한 타팀의 불펜투수들과 비교해보자면, 넥센의 송신영은 3억 원에서 1억 5천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이정훈 역시 1억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NC를 보면 이혜천은 1억 원에서 9천만 원으로 10%가 깎였으며, 박명환은 5천만 원에서 4천만 원으로 깎였다. 서재응의 삭감폭이 어느 정도 큰편이나, 타 선수들에 비해 여전히 연봉이 비싼 편이었다.
팬들은 형저메조차 연봉이 1억 원에서 7천만 원으로 삭감되었는데, 왜 한 것도 없는 선수에게 1억 2천씩이나 주냐면서 반발하였다.

3.8. 2015 시즌


2군에서 출발하였으나 퓨처스리그에서 17이닝 1자책 ERA 0.53의 빼어난 피칭으로 콜업, 4월 25일 두산전(5⅓이닝 2실점), 5월 2일 SK전(5⅓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두경기 모두 팀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5월 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 1⅔이닝동안 2자책을 기록했다.
잠시 2군에 내려갔다가 복귀한 날인 6월 3일에 두산 베어스를 상대해 7이닝 1실점(1자책)으로 시즌 첫 승을 챙겼다! 무려 662일만의 승리. 7이닝까지 82구로 던져 더 던질수있었지만 김병현에게 '''다음 투수들도 투구감각 익혀야 되니 그만 던져라'''는 말을 듣고 그만 던졌다고 한다. 이 경기에서 던지고 바로 말소되면서 신인투수 박정수와 바턴 교체를 했다.
다만 팀 리빌딩 과정이고 서재응이 오래 던지기에는 나이가 있기 때문에 1군에 자주 있지는 않는다. 선발 등판 시에 1군에 등록되고 그 다음날 말소되는 식. 대신 선수단과 동행을 하면서 플레잉 코치 식으로 선수단을 집결하는 응원단장 역할을 하고 있다. 5선발 체제에서 5번째 선발 자리를 두고 서재응과 다른 선수가 번갈아서 나오는 방식.
6월 18일 LG전에서도 6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쳤으나 물빠따들이 점수를 못 내며 ND로 물러났다. 팀은 패배. 10일 로테이션으로 던지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이번시즌 평균자책점 2.49로 터지지 않는 타선에 승운을 못 챙기고 있을 뿐 매우 우수한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끔찍한 부진으로 은퇴하라는 소리까지 나왔던 지난 2년간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왕년의 에이스의 부활. 등판하지 않을 때에도 팀 케미스트리를 다잡아 주는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4일 NC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5이닝 9피안타 4볼넷 1홈런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날 NC 나성범의 1회초 선제 투런홈런을 더불어 1회에 3실점을 하였고 2회말에는 신종길이 답이 없는 수비를 연달아 보여주었는데 김종호타구를 신종길이 타구판단 미스로 신종길의 키를 넘어가 주자2명이 있던 1,2루 상황에 주자 모두를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이 수비의 실책들은 실책이 아닌 안타로 기록되었다. 5회에 1실점을 추가로 하였고 결국 손민한과의 노장선수 대결은 손민한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7월 5일 kt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4⅓이닝 8피안타 1볼넷 1홈런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부진은 계속되어 7월 11일 SK전에서도 1.1이닝 3실점으로 물러났다. 날이 더워지며 체력이 다한 탓인지, 거듭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자책점은 10점까지 올라갔다. 11일 등판은 서재응이 평소 SK에게 강한 것을 고려해 로테이션을 깬 표적등판이었음에도 크게 깨지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3경기 연속 부진한 투구로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1군 콜업전 등록하고 등판후 말소하는 식이 아닌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한 2군행으로 콜업 일정은 미정. 대신 콜업된 투수는 바로 한기주.
한달만인 8월 16일 선발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폭우로 취소, 다음날 그대로 선발등판한다.
다음날 선발인 8월 17일 경기에서는 3.2이닝 2실점 5피안타 1탈삼진 1볼넷 63투구수 후 조기 강판되었다.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4회 폭투가 나오며 분위기가 안좋아지자 빠른 퀵후크를 통한 교체로 마운드를 김광수에게 내주게 되었다. 김광수가 서재응의 책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아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팀은 이 실점이 결승점이 되며 역전을 하지 못하고 패했다.
그리고 이 경기가 서재응의 2015년 마지막 선발 등판이 되었다.
이후 2군으로 다시 강등, 콜업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9경기 선발등판 40이닝 1승 4패 ERA 4.95. 시즌초 오래간만에 왕년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날이 더워지며 체력과 구위하락을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쉬운 시즌.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KIA 구단에서도 서재응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주고 내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게 해 줄 입장이다. 2015년 12월 11일 5,000만원 삭감된 연봉 7,000만 원에 재계약했고,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3.9. 2016 시즌


2015년 선언한 대로 현역 마지막 해. 만 39세가 되는 해이다. 왕년의 대투수는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라고 생각했으나
스프링 캠프 중인 2016년 1월 28일에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선수협회장 자리도 이호준에게 넘겨주고 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 지었다. 스프링캠프에서의 구위 등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듯. 은퇴 후 계획은 마땅히 정해지지 않았으나, 구단에서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하면 연수도 보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서재응의 입담이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해설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image]
5월 15일 광주 한화전에서 최희섭과 함께 합동은퇴식을 가졌다.

4. 해설자 시절


[image]
2016년 2월 11일, SBS Sports와 계약하면서 해설위원으로서 야구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주간야구에서 윤석민 선발전환에 대한 우려를 표해서 기아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해본 베테랑이 한국 야구에서도 한 철지난 소위 '강한 마무리'론을 설파하는게 말이나 되냐는 것. 다만 맥락을 읽어보면 상위권 팀들과 달리 기아의 타력이 워낙 약하기 때문에 잡아야 할 경기를 확실하게 잡지 못하는 것이 불안하다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 임창용 고향팀 복귀가 알려지면서 임창용 복귀떡밥을 깔기 위한 기아 구단의 전방위 언론플레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되었으나 음모론은 말 그대로 음모론일 뿐...
일단 첫날인 4월 8일은 호된 해설 신고식을 치렀는데 긴장과 경험부족이 드러난 것은 물론 편파해설 논란까지 휘말렸다. 이순철 해설과 호흡을 맞췄는데 하필 기아 vs LG전이라서 이순철 해설의 주관이 폭주했고 서재응은 예스맨이 되면서 LG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다만 이순철 해설이 선수 편파는 몰라도 팀 편파 해설을 하는 인물은 아니고, 서재응 해설이 친분 있는 이순철 해설과 호흡을 맞추라는 SBS의 배려가 역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다. 차라리 최원호-이종열 해설도 실력 없는 해설자들이 절대 아니고 둘 다 공교롭게 LG 출신이라 이들 중 하나와 붙여놨으면 긴장도 좀 덜하고 편파해설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표하는 일부 팬들도 있다.
일단 자신이 잘 아는 기아에 대해 해설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재응 본인은 분명 부분부분 해설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앞으로 다른 팀 해설로 어떤 역량을 보여주냐에 따라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다. 다만 SK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욕을 먹는 중.
그리고 2017년 6월 24일 SK : KT 전 해설 과정에서 '''송진우급'''의 편파해설을 하며 야구 팬들의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
역시 그 다음 날에도 '''가래 끓는 전라도 사투리와 극도의 편파해설'''로 야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SBS 2016 추석특집 내일은 시구왕에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2017년에도 이용철과 더불어 영호남 해설의 양대산맥으로 불릴 정도로 평가가 썩 좋지 않다. 양준혁 이종범을 능가하는 사투리에 부족한 언어전달력과 전형적인 스타 선수 출신 해설자들의 단점으로 지적받는 편파해설 등이 모두 겹친다. 자격미달 해설자들이 많이 퇴출된 2017 시즌 기준으로 상당히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 많은 해설. 특히 지난 시즌 해설 데뷔일부터 그랬지만 이순철 해설위원과 함께 하면 서로 단점이 오히려 증폭되어서, 하필 기아의 1위 질주와 더불어 기아 안티를 불리는 데 본의 아니게 기여하고 있다 카더라.

5. 지도자 생활


2016년 12월부터 새롭게 창단된 저니맨 외인구단의 투수 인스트럭터를 맡았고, 2017년 12월 20일 고향팀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로 선임된다.

5.1. 2018 시즌


2017년 12월 20일, 고향팀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합류한다는 기사가 떴다. #
최종적으로 확정된 보직은 1군에서 이대진 투수코치를 보좌하는 1군 불펜코치의 역할이 되었다. 이대진의 코칭이 아쉬워서 서재응에게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만, 해설자 생활을 하느라 연수도 다녀오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너무 큰 부담은 지우지 않는 것이 좋다.
6월 8일, 이대진이 2군으로 내려감에 따라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2018년 6월 29일 기준으로 서재응 코치의 부임이후 불펜 성적이 상당히 좋아졌다. 전체적으로 불펜이 지키는 경기가 많아졌고 현재 불펜 방어율이 전체 3등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2018년 7월 4일 한화전 이후로 불펜 평균자책점이 전체 2등으로 올라갔다. '''#'''
이대진 코치가 내려가고 서재응 코치가 올라온 것이 효과를 본다며 팬들은 기뻐하는 중.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이대진 코치가 올라오면서 다시 불펜코치 행.

5.2. 2019 시즌


5월 17일, 박흥식 대행 체제에서 메인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벌써부터 좋은 평들이 올라오는 중이다. 작년 6월에 불펜의 대흥행을 이끌었던지라 다들 기대하는 중. 덤으로 기존 이대진 투수코치는 잔류군으로 강등당하자, 얼마 후 전격 사퇴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코칭스탭이 아닌 선수 주도의 전력분석을 지향하는 주의라고 한다.
5월 7연승을 달리면서 선발 투수진들의 각성한 모습에 서재응 코치의 관리 능력이 더 돋보이고 있다.
2019 시즌 기아는 대부분의 성적이 암울했었지만 불펜 리빌딩만큼은 1년만에 완료했는데, 서재응 투수코치가 1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기아는 괜찮은 투수 자원은 많아도 선수마다 제각각 하나 둘씩 문제가 있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가 거의 없었는데, 서재응이 부임한 이후 단점을 메꿔나가며 1군에서 빛을 보게 된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2군에 박혀 살던 고영창에게 투심을 전수하여 선수에게 맞는 구질을 파악해 필승조까진 아니어도 주전선수로 발돋움 시켜주었으며, 2년차 신인 하준영이 기복은 심해도 150km를 던지는 좌완 파이어볼러로 만들며 기대치를 가지게 만들었고, 신인왕 후보까지 성장한 전상현, 부상으로 낙마한 김윤동을 대신하여 뒷문을 책임진 문경찬, 0.86이라는 엄청한 WHIP를 기록한 박준표 등이 있다.
선수 키우는 것도 투수코치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이번시즌 서재응 코치가 보여준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관리다. 팀의 성적상 필승조 등판 경기가 적을수 밖에 없었지만 가장 많이 던진 필승조인 전상현의 올해 소화 이닝이 겨우 60.2이닝이다. 기아보다 성적이 더 떨어지는(필승조의 등판 조건이 더 적은) 팀의 필승조들은 대부분 기아의 필승조보다 투구이닝이 많다. 대표적으로 롯데의 필승조로 활약한 구승민이 8월에 부상당하기 전까지 75이닝이나 출장했다. 이러한 관리는 젊은 선수들이 1년 반짝하고 마는 수많은 선수중의 일부가 아니라 장차 팀의 중간다리를 지탱하는 기둥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작용할 것이다. 비록 공인구 변경으로 인한 투고타저 첫번째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서재응 투수코치의 기여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문제는 원래 잘하던 양현종을 제외한 새로운 선발진들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 외국인 선수 두명은 선수 자체가 못하니 그렇다치지만, 차명진, 김기훈, 임기영, 이민우 등의 젊은 자원들은 부상복귀, 제구불안 등의 각자 문제점으로 풀시즌을 온전히 치른 선수가 없다. 다만 차명진은 부상 복귀 이후 첫 시즌이라 다음 시즌에는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할 만 하고, 김기훈은 이제 고졸 1년차 선수이며, 임기영은 후반기에 우승시즌 전반기에 보여줬던 체인지업의 낙폭이 서서히 살아나면서 그래도 여러가지 희망을 보이게 만들었다.

5.3. 2020 시즌


2020년 신임 맷 윌리엄스 감독 체제에서도 1군 메인 투수 코치로 유임되었고, 플로리다에서 진행되는 2월 스프링캠프에서 투수진들을 지휘한다.
2020년 시즌 초반 5월까지, 필승조 3인방 박전문은 발전하여 더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고, 비시즌 기간동안 고른 5명의 선발진이 7연속 QS를 기록하면서 서재응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작년과 비슷하게 박준표는 WHIP가 낮아 긴급상황에 좌타, 우타 상대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8회 이전 위기상황에 투입하고, 전상현은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8회만 전담, 문경찬은 클로저로써 9회의 경기 마무리만 전담하여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되었다.
시즌 초반 걱정거리라면, 잔루 1위를 기록하는 변비타선을 가진 팀이라 타율에 비해 빡빡한 상황이 많이 나와 필승조 3인방의 투입이 꽤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5월 3째주에는 박준표가 토일-화수-금토라는 다소 무리한 등판이 있기도 했고, 연투에 약한 편인 문경찬이 연속으로 등판하는 등, 체력이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리드하는 경기를 버릴 순 없으니 필승조가 등판하는 것이라, 서재응 코치의 잘못보다는 타선의 문제(...). 그래도 작년에 불펜관리에 능력을 보여준 서재응 코치인 만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분명한건 6월 중반부에 돌입한 2020 시즌 초, KIA 타이거즈를 지탱하는 주축은 서재응 코치다. MLB 경험을 살리며 감독 맷 윌리엄스의 전폭적인 지지와 본인의 투수 육성과 관리에 힘입어 7회부터 이기고있다면 KIA 타이거즈의 승률이 급격히 상승하는 편한안 9시 야구를 실현 중이다. 전임 감독 김기태 감독이 원하던 야구를 사실상 1시즌 정도만에 성공시킨 것은 분명한 성과. 게다가 두산에서 불안한 제구를 선보이던 홍상삼을 박전문 앞인 6회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멘탈관리에도 성공했다. 앞으로 남은 시즌 필승조의 성적 유지, 관리 및 토종 선발진인 이민우, 임기영 등의 성적 향상, 새로운 선발의 발굴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본인의 역량 입증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그리고 8월에 문경찬, 박정수가 장현식, 김태진과의 트레이드로 NC로 가고 전상현이 마무리 투수가 되었는데...

'''이순철''': KIA가 왜 투수교체 타이밍을 꼭 홍상삼 선수를 앞전에 한 번 끼워넣어서 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바로 필승조를 투입, 박준표 선수가 나온다든지 전상현 선수가 나와서 이 상황을 막고 가는 것이 더 현명한 그런 선택 같았었는데...

'''정우영''': 예, 세워놓은 공식을 지금 바꾸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입장인데요. 저희는 잠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광주입니다.

(정해영 등판 직후)

'''정우영''': 지금 중간에 장현식 선수가 어제 나왔던 것을 제외하면 투수교체 순서는 지금 거의 매경기 정확하게 같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홍상삼이 이제 주자 있을 때 처음 나오고 왼손 나오면 이준영 선수 거쳤다가...

'''이순철''': 절대 KIA가 전상현 선수가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는 박준표 선수나 전상현 선수를 리드를 하고 있을 때 잘 활용을 했어야됐는데 그 활용을 하지 못하고 지금 동점을 허용을 했습니다.

2020년 10월 7일 DH1, SBS Sports 중계진[26]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투수진이 눈을 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투구 내용을 보여주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양현종을 제외하면 브룩스[27]와 전상현조차도 흔들리고 있으며, 홍상삼과 장현식은 홈런공장장이 되었다. 불펜이 하락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이민우, 가뇽과 임기영 역시 계속되는 부진으로 불펜진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엄청나게 가중시키고 있다. 팀 평균자책점도 월간 꼴찌를 기록하며 시즌 1위에서 7위로 수직하강 중이다.
투수 교체 역시 팬들에게 질타받는 부분이다. 좌우놀이에 집착하여 좌타 상대 피안타율이 4할이 넘는 김명찬을 원포인트로 넣어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이며, 지는 경기에서도 다음 경기는 생각지 않는 것처럼 투수들을 동원한다. 제구력이 극악인 홍상삼을 지나치게 신뢰하기도 한다. 타이트한 상황에서 요행을 바라며 홍상삼을 냈다가 주자를 쌓고 아웃을 하나도 못 잡으면 그제서야 정해영으로 교체하는 습관이 있다.
9월 16일에 이 부분의 정점을 찍었다. 1이닝 잘 막은 장현식을 7회까지 끌고가다가 위기를 맞고 거기서 이준영과 홍상삼을 내보내 0.1이닝씩 이닝을 쪼개며 간신히 이닝을 마쳤다. 그리고 8회에 홍상삼을 또 내보냈고 쉬고 나오면 제구가 불안한 홍상삼은 여기서 만루를 채웠고 여기서 서재응은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박준표를 올렸고 박준표는 어찌저찌 한 점만 주고 마쳤다. 여기서 9회에 또 박준표를 등판시켰고, 몸상태가 완전치 않은 박준표가 장작을 쌓은 이후 부랴부랴 고졸신인 정해영을 올렸고 결과는 동점 허용에 역전허용이었다. 왜 굳이 이닝쪼개기를 그렇게 자주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냥 장현식 1이닝-홍상삼 1이닝-정해영 1이닝-박준표 1이닝으로 경기를 이끌면 안되는 것인가. 왜 굳이 선수들에게 1이닝 그 이상을 강요하고, 일부 선수들에게는 지나친 똥치우기를 강요하고, 어떤 선수에게는 과도하게 역할을 제한하는가. 물론 전날 투수 소모가 많고 다음날에는 삼성이라는 만만치 않은 팀을 만나기에 투수를 아끼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결국 이날 박준표와 정해영이 많은 투구수를 기록해 다음날 등판이 요원해진 것을 보면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9월 18일, 또 쉬고나오면 제구가 안되는 홍상삼을 쉬게 하고 올렸다가 주자를 쌓고 동점 적시타를 얻어맞으며 학습 능력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9월 20일 한화전에서도 동점인 7회에 좌투수라는 이유만으로 이준영을 올려 1사 3루의 위기를 맞았고, 거기에 또 홍상삼을 올렸다가 이번주에 등판이 잦았던 홍상삼이 제구가 되지 않으며 두 점을 허용해버렸다. 2사 1,2루의 상황에서 좌타자 임종찬을 상대하기 위해 서재응 투수코치는 평균자책점이 높은 김명찬을 좌투수라는 이유만으로 등판시켰다가 김명찬이 승계주자를 싹다 불러들이며 게임을 터트려버렸다. 결국 팀 타율 2할 초반(...)의 최약체 팀에게 3:11로 패배, 그야말로 이번주, 약팀 세 팀을 만나 중요했던 6연전에서 팀의 발목을 잡는 족쇄 역할의 정점을 찍었다. 최소한 선발이 터져나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첫 날을 제외하면 모두 서재응이 투수교체만 잘 했다면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었던,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들을 놓쳐버렸다. 덕분에 기아는 3위 추격은커녕 6위 수성도 버거운 상황이 되어버렸다.[28] 아무래도 서재응의 투수 교체를 도와주거나, 서재응을 도와줄 수 있는 보조 투수코치 영입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9월 23일 키움전, 지는 경기에서는 모든 불펜 투수들에게 1이닝씩을 맡기는 이상적인 투구 운용을 선보였고 불펜진도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24일 KT전에서 장현식은 선발 전환에서 못 나오고, 홍상삼은 직전 이닝 1이닝을 던진 이후 강판되어 나올 투수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정해영이 원아웃 잡고 볼넷을 내주고 좌타자 강백호가 나오자 좌투수 이준영을 올리는 좌우놀이를 또 시전했다. 결과는 강백호의 안타로 1사 1,3루 위기였고, 결국 마무리 박준표에게 5아웃을 맡겨야 했다. 박준표가 잘 막아줘서 망정이지 다시 한번 악몽이 벌어질 뻔 했다.
10월 7일, 더블헤더 1차전에서 7회의 위기에 또 주자가 있는 상황에 홍상삼을 올렸고, 홍상삼은 원아웃을 잡는 동안 제구 불안으로 만루를 채웠고, 다음 타자가 좌타자이자 또 이준영을 부담스러운 상황에 올려 동점을 허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날이 더블헤더이기에 1차전에서 최대한 불펜을 아껴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닝을 쪼개며 한 이닝에만 투수 세 명을 등판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이닝인 8회에는 마무리로 공언한 박준표를 일찍 올리며 더블헤더 1차전 7회에만 불펜 세 명을 소모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이러면서 전날에도 등판한 정해영, 홍상삼, 이준영, 박준표는 다음날에 등판하면 3연투가 되기에 등판할 수 없게 되었다.선발투수들 투구수는 아끼고 후속 투수들은 계속해서 굴리는 운용이다.
10월 8일 선발 이민우가 조기 강판된 뒤 장현식, 이준영, 정해영이 5회 빅이닝을 허용하면서 무너지자 5회 2사에서 남재현을 올렸다. 이것까지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남재현이 구속이 133까지 떨어질 때까지 101구를 던지게 해 4.1이닝을 먹이면서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다. 당장 100패 탈출이 급한 한화 팬들조차 경악했으며 오히려 마지막 아웃을 당한 노수광에게 양팀 팬 모두가 고맙다고 했을 정도로 혹독한 투수 기용이었다.
10월 10일 5이닝 1실점 72구로 호투하던 김기훈을 굳이 내리고 정해영을 올리며 역전을 내주고 말았다. 게다가 정해영이 지친 탓인지 구속이 140아래에서 놀면서 신인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10월 11일, 3연투를 하고 하루를 쉰 정해영과 이준영의 2연투를 감행했다. 그리고 9회에 바로 마무리를 올리면 되는 상황에서 첫 타자가 좌타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준영을 더 등판시켰고 결과는 볼넷이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다음 투수는 어제 하루 쉰 전상현이 아니라 2연투를 했던 박준표가 등판했다. 박준표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안정감이 좋다지만 무려 3연투를 또 감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리고 나발이고 개나 줘버렸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래놓고 막았으면 또 모를까 결국 부담감이 있는 상황에서 지친 박준표가 실점을 허용하며 나지완의 극적인 홈런으로 잡은 리드를 날렸다. 그리고 연장전에 돌입했고, 김재열이 2이닝 무실점을 하며 희망이 보였으나 연장 12회초, 주자 2명을 출루시키면서 무사 주자 1,2루가 되자 투수를 양승철로 교체하고 양승철이 김민준의 번트를 처리하지 못하며 동점이 되고 여기서 또한번의 좌우놀이를 시전해버렸다.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4할이 넘는 김명찬을 올린것이다. 2사 만루 상황에서 김창평을 만났다. 그리고 김명찬은 초구를 그냥 땅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포수 김민식이 블로킹하지 못하고 공을 빠뜨렸고 김민식이 홈으로 송구했지만 김명찬의 글러브가 3루주자 김강민의 머리를 때리면서 그대로 빠져나가버렸다. 이틈을 노린 2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여기서가 끝이 아니었다. 송구가 빠져서 3루쪽으로 가고 3루수 김영환이 더듬으면서 이틈을 노린 1루주자 최지훈은 홈으로 쇄도했지만 아웃되었다. 그러나 판정 번복으로 공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최지훈에게 안전 진루권이 생기면서 최지훈은 세이프가 되었다. 이렇게 돼서 김명찬은 폭투로 무려 3점을 헌납하고 말았다... 서재응의 좌우놀이가 불러온 또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현재 서재응의 투수 교체의 문제점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과도한 좌우놀이와 그에서 파상되는 이닝 쪼개기: 그 선수가 던지는 페이스가 어떻든 좌타자가 들어오면 무조건 좌투수 이준영이나 김명찬을 등판시킨다. 그리고 이들도 만약 우타자가 들어온다면 몇개의 공을 던졌건 상관 없이 바로 강판당한다. 그래서 이준영은 1구만 던지고 내려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2. 홍상삼의 과도한 의존: 홍상삼은 올 시즌 이닝을 마친 후 다음 이닝에 한번 더 등판하면 제구가 잘 안잡히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닝을 쪼개서 홍상삼을 등판시키는 경향이 너무 잦다. 더불어 제구가 불안한 홍상삼임에도 굳이 주자가 가득 들어차 있는 상황에 자주 등판시킨다.
3. 정해영의 등판 상황 문제: 정해영은 항상 홍상삼이나 다른 선수들이 쌓아놓은 장작을 치우러 등판한다. 대부분 주자가 두 명 이상 들어차 있는 상황이다. 고졸 신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부담스러운 환경이다.
요약하자면 투수가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늦게까지 버티다가 결국 주자가 두 명 이상 출루한 이후에야 교체를 하고, 지나치게 우타, 좌타 자체에 집착하는 투수 교체를 보여준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조계현이 을 모조리 팔아치워서 당장 쓸 수 있는 자원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인 데다가 한화가 100패 페이스로 추락하면서 5할 5푼도 탈락할 정도로 승률 인플레가 일어난 탓에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쥐어짜내서 1번이라도 더 승리하려는 마음은 이해를 한다. 그리고 올해 선발진의 안정화와 한때나마 철벽 구원진을 구축하는데 성과를 낸 점 역시 많은 팬들이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선수의 능력에 비해서 과도하게 능력을 제한하거나, 자꾸만 드러나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를 되풀이 하는 투수교체를 반복하는 것은 팬들이 납득하기가 힘들다. 반복되는 실패는 고쳐야 한다. 언젠가는 막겠지, 전에는 괜찮았는데 이런 생각은 모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허상에 불과하다. 현재 그런 방식으로 승리를 지키는 것도 아닌데 그런 문제가 있는 방식을 반복한다면 본인이 만들어낸 성과를 본인이 망치는 것에 불과하다.

5.4. 2021 시즌


정명원 코치가 KT에서 새로이 영입되어 1군 투수코치로 임명되면서 2021 시즌은 퓨처스 투수코치로 시작한다.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NYM
1
1
0
0
0
0
-
0.00
0
0
0
1
0
0
0.00
2003
32
188⅓
9
12
0
0
0.429
3.82
193
18
52
110
94
80
1.27
2004
24
117⅔
5
10
0
0
0.333
4.90
133
17
52
54
67
64
1.56
2005
14
90⅓
8
2
0
0
0.800
2.59
84
9
17
59
26
26
1.11
연도
소속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LAD
19
67
2
4
0
0
0.333
5.78
75
14
26
49
45
43
1.49
연도
소속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TB
17
90
1
8
0
0
0.111
5.00
122
17
34
39
56
50
1.70
2006 시즌 합계[29]
36
157
3
12
0
0
0.200
5.33
197
31
60
88
101
93
1.61
2007
TB
11
52
3
4
0
0
0.429
8.13
84
11
20
28
53
47
1.92
연도
소속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KIA
16
79⅓
5
5
0
0
0.500
4.08
90
7
29
45
37
36
1.45
2009
21
79⅓
5
4
0
0
0.556
6.13
101
12
38
53
56
54
1.65
2010
24
140
9
7
0
0
0.563
'''3.34'''
(5위)
134
10
40
68
53
52
'''1.16'''
(2위)
2011
30
130⅓
8
9
2
2
0.471
4.28
144
7
47
84
68
62
1.38
2012
29
160
9
8
0
0
0.529
'''2.59'''
(4위)
143
7
58
97
51
46
1.21
2013
19
84
5
9
0
0
0.357
6.54
116
5
37
36
69
61
1.77
2014
16
32⅓
0
2
0
2
0.000
6.40
45
6
13
18
25
23
1.70
2015
9
40
1
4
0
0
0.200
4.95
52
5
13
16
23
22
1.50
<color=#373a3c> '''MLB 통산
(6시즌)'''
<color=#373a3c> 118
<color=#373a3c> 606 1/3
<color=#373a3c> 28
<color=#373a3c> 40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412
<color=#373a3c> 4.60
<color=#373a3c> 691
<color=#373a3c> 86
<color=#373a3c> 201
<color=#373a3c> 340
<color=#373a3c> 341
<color=#373a3c> 310
<color=#373a3c> 1.44
<color=#373a3c> '''KBO 통산
(8시즌)'''
<color=#373a3c> 164
<color=#373a3c> 745 1/3
<color=#373a3c> 42
<color=#373a3c> 48
<color=#373a3c> 2
<color=#373a3c> 4
<color=#373a3c> 0.467
<color=#373a3c> 4.30
<color=#373a3c> 825
<color=#373a3c> 59
<color=#373a3c> 275
<color=#373a3c> 417
<color=#373a3c> 382
<color=#373a3c> 356
<color=#373a3c> 1.41
<color=#373a3c> '''개인 통산
(14시즌)'''
<color=#373a3c> 282
<color=#373a3c> 1351 2/3
<color=#373a3c> 70
<color=#373a3c> 88
<color=#373a3c> 2
<color=#373a3c> 5
<color=#373a3c> 0.443
<color=#373a3c> 4.30
<color=#373a3c> 1516
<color=#373a3c> 145
<color=#373a3c> 476
<color=#373a3c> 757
<color=#373a3c> 723
<color=#373a3c> 666
<color=#373a3c> 1.42

7. 플레이 스타일


[image]
아마추어 시절 최고 95마일(153km/h)까지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으나, 마이너 시절 토미 존 수술 이후로 구속이 감소한 탓에 제구력과 변화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스타일을 바꿨다. 메이저리그 통산 BB/9이 2.73일 정도로 제구력만큼은 극찬을 받았다.[30] 주로 투심 패스트볼, 커브와 체인지업을 구사했는데 특유의 제구력과 맞물려 경기가 잘 풀리는 날에는 문자 그대로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손색이 없었다.
상기한 대로 한국 시절을 주로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공 느리고 컨트롤, 변화구 좋은 기교파로 기억되나, 미국 시절 전성기의 서재응은 거기에 구속까지 빠른[31] 그야말로 완전체였다. 뭐 그러니까 메이저리그에 갔지만.
상기한대로 구속이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폭락해 버리는 보통 투수들과는 다르게, 서재응은 노쇠화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온 편이다. 한해 한해 깎여나가는 구속을 매년 새로운 변화구의 추가와 우수한 컨트롤, 베테랑이 되어가며 붙는 경험에 의한 타자와의 수싸움 능력으로 버텨나가는 매우 BQ가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러한 요인들로 2012년에는 나이 30대 중반에 140도 던지기 힘든 구속을 가지고도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제 2의 전성기를 꽃피울 수 있었다. 10승을 못 거둔 게 아쉽긴 하지만 KBO 시절 2010~2012년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3년간 소사, 윤석민 등 1선발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솔리드한 2~3선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양현종, 로페즈, 윤석민, 소사 등 이 3년간 에이스들은 매년 바뀌었지만, 이 선발들의 뒤를 받쳐주는 2~3선발은 항상 변함없이 서재응이었고 이 기간동안 기아는 선발진이 강한 팀이라는 평가를 항상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래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우승 이후 찾아온 혼란기 몇 년간 베테랑으로서 팀의 선발진의 중심을 잡아 준 선수.
최전성기엔 송곳같은 컨트롤로 꽂히는 140중후반대의 직구, 투심과 체인지업의 삼지선다에 커브를 곁들이는 투수였고, 이후 구속이 점점 떨어지며 각종 변화구들로 이를 극복해, KBO리그에서 활동한 커리어 후반에는 당대 KBO 리그에서 구종 다양하기로 손꼽는 수준의 변화구 투수가 되었다. 국내에 온 후 포크, 커터, 슬라이더 등을 연마했으며, 커리어 후반부엔 체인지업보다는 포크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짜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그가 던졌던 커터와 투심은 당시엔 국내에선 보기 드문 구종으로, 구종 보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선수.
커리어가 확 꺾여 버리는 시점이 명확한데, 바로 WBC. 두 번의 WBC 참가 이후 커리어가 크게 꺾였다. 메이저리그에서 8승을 거두었던 2005년에 최전성기를 맞았다가 2006 WBC 이후 크게 부진하며 이듬해 시즌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나야 했고, 12시즌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며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고 참가한 2013 WBC 후에는 신생 팀 NC를 상대로 '''10실점'''이라는 '''생일빵'''을 맞는 등 다시 크게 부진했으며 이게 결국 현역 은퇴로 이어졌다. 시즌 전에 시작해 빨리 몸을 끌어올려야 하는 WBC가 선수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케이스.
그러나 그와 별개로 2006 WBC에는 구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참가했으며, 2013년에는 관리가 필요한 상당한 노장이었음에도 참가하는 등 국가대표를 위해 개인의 불이익이 예상됨에도 이를 무릅쓰고 헌신한 자세는 높이 평가될 만하다.

8. 여담


  • 언론에서 불리는 공식 별명은 나이스 가이지만, 벤치 클리어링과 빈볼 등 경기 내적으로도 구설수가 많아서 이젠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없다(...).[32] 팬들은 보통은 그의 이름을 줄여서 서쟁이라고 부르고, 못해서 깔 땐 서재앙이라고 부른다. 진화(?)하면 서발라마가 된다.(…) 부상으로 로테이션을 거르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2009 시즌에는 서+부서지기 쉬운 물건이라는 배리에이션이 존재했다. 서티로폼, 서프심, 서수깡, 서쿠다스 등등. 서재앙에서 재앙(disaster)를 따서 디재스터 서, 서재스터(서재응+디재스터)라고도 불린다. 또, 한창 부진했을때 작가질을 한다고해서 서익스피어라고 불렸다. 하는 일이 없다고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로 불리우던 시절도 있었다. 뉴욕 메츠 시절이던 2003년 호성적을 거두고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뒤 겨울에 대단한 도전에 출연하는 등 방송활동을 좀 했다가 2004 시즌에 부진하면서 엔터서라는 별명도 얻었었다. 하지만 진짜로 본격적인 엔터질을 했던건 아니어서 몇 년 안가 사장된 별명.[33][34]

하지만 2010 시즌 들어 시즌 극초반 선발 투수들이 이닝을 못 먹고 두드려 맞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에 반해 서재응은 안정된 투구를 연달아 펼쳤던 점으로 인해 디시인사이드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선 잠시동안 무등예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홈런치고 온 타자들을 맞이해주는 특유의 세레모니 포즈 때문에 이 별명을 얻게 된것이다). 하지만 서재응 본인은 불교 신도다. 때문에 무등부처나 서가모니라는 별명을 미는 팬들도 있었으나 갸갤에선 무등예수로 확정.
  • 2004시즌 뉴욕 메츠 시절 북한 출신 선발투수로 소개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2004년 4월 19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전에 선발 출장했는데, 이 경기를 중계한 폭스스포츠TV의 해설 스티브 블라스는 서재응에 대한 조사를 게을리 했는지, 북한 출신 선발투수로 소개했다. 이날 서재응은 4⅓이닝 만에 10안타를 맞고 7실점한 뒤 강판당해서,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해당 기사
  • 한국 투수 올타임 랭킹을 매길 때 서재응이 몇 등인가?는 야구 커뮤니티에서 좋은 키배감 중 하나다. MLB에서나 KBO에서나 딱히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35] 저평가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박찬호 - 류현진 - 김병현을 보통 3톱으로 놓는데 그 다음에 서재응, 오승환, 선동열을 어떤 순서로 놓아야 되는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많이 갈린다. MLB의 높은 수준을 알게 된 야구팬이 많아진 현재는 MLB 커리어에 우위를 둬서 선동열은 뒤로 미는 경우가 많으나 오승환 - 서재응의 순서는 여전히 의견이 정말 많이 갈린다.
  • 자녀를 셋이나 두어 꽤 유명한 정자왕이다. 딸 하나 아들 둘.
  • 신기하게 SK만 만나면 털리는 날이 많았다.
  • 2011 시즌 도중에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김상훈을 대신해 KIA 타이거즈의 주장을 맡았었다.
  • 브렛 필이 입단한 이후에는 브렛 필과 함께 "베이비 페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 2012년 6월 14일 대 히어로즈 전에서 캐스터가 최희섭에게 광주일고 시절을 물어보았는데 서재응의 광주일고 최고참이 되면서 얼차려를 비롯한 모든 가혹행위를 막았다고 증언하였다. 그런데 최희섭은 주장을 맡았을 때 쓸데없이 군기잡고 후임들 갈궈서 서재응과 역으로 비교돼 엄청 까였다. 물론 서재응도 김진우와 함께 애먼 포수 이홍구를 대놓고 야단치는 게 방송에 대놓고 잡혀서 평이 좋지 않다. 다만 인품이 좋다고 알려진 최영필이나 외국인인 소사도 마운드에서 이홍구의 볼배합을 보고 혼내는 장면이 목격된 적이 있어 마냥 서재응에게만 문제삼긴 애매한 듯 하다.
  • 2014 시즌후, 박충식 선수협 사무총장과 더불어 단체훈련금지로 인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규정은 원래 있었던 거긴 하지만 단체훈련을 하다 걸린 넥센이 한화와 김성근 때문에 그랬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36]
  •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있었을 때, 웬 젊은 남자가 그에게 팀에 대해 어떤 거 같냐고 물어보자 말단 직원이라 생각해 "처음에 왔을 때는 기분이 더러웠는데, 막상 와서 지내 보니 나름 괜찮다."라고 대답해 줬다. 이 젊은 남자는 2014년까지 템파베이의 단장 겸 부사장을 맡은 앤드류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서재응보다 1살 많은 젊은 단장이었기에 나온 해프닝.
  • 선발 투수로 오랫동안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시즌도 10승을 달성하지 못했을 정도로 승운이 없기로 유명하다. 전성기였던 2003년 뉴욕 메츠 시절에도 어메이징한 팀타선 덕분에 9승에 그쳤으며 크게 활약한 2005년에도 후반기에 뒤늦게 콜업되는 바람에 8승에 그쳤다. 그후 WBC 휴유증과 잔부상으로 하락세에 빠지며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실질적인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2010년에도 시망한 타선과 불펜의 불질로 인해 9승을 기록하며 또 한 번 10승에 실패한다.(...) 커리어 하이인 2012 시즌에는 2.59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1선발급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불펜의 불질로 또(...) 9승에 그치며 결국 윤석민상을 수상하고 만다. 그후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예년의 모습은 계속 보여주지 못하다 2016년 결국 은퇴하면서 10승의 꿈은 영원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널리 알려진 갸빠 아재다. 은퇴 후에도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고, 방송 인터뷰에서도 굳이 기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두 아들 이름인 성, 성이 해태 타이거즈에서 따왔다는 소문도 있다.
사실은 장난 친 거고 경기 끝난 뒤 제대로 야구공을 줬다고 한다.
  • 싸인을 잘해준다. 그것도 엄청 잘해준다. 이런 이야기를 올렸을 정도. 현역 시절에는 성인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어린이 팬들에게는 팬 서비스가 좋은 편이었다. 경기 전 훈련을 마치고 버스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야구장으로 들어갈 때 어린이 팬이 사인을 요청하면 웃으면서 사인을 해주고 들어갔다. 선수들이 밥 먹으러 야구장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치 않다. 그렇다 보니 성인 팬들의 요청은 어쩔 수 없이 거절할 수밖에 없는데 어린이 팬들에게는 다 해주고 들어갔다. 은퇴 후에도 현역 때 처럼 잘 해준다.
  • 3학년 시절 에이스를 2학년에게 뺐겼다. 그 2학년은 BK 김병현. 심지어 김병현은 빠른년생으로 출생년도로는 2년차이다.

[1] 음력 5월 24일[2] 구단 홈페이지 기준 181cm, 97kg[3] 대한민국 복귀 때 이 지명권으로 KIA에 입단할 수 있었다.[4] 6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5] 5월 16일까지[6] 5월 17일부터[7] '''I can't stop loving you~ 기아의 서재응~ 오오오 오오오~ 기아의 서재응~''' 롯데 자이언츠 시절 김주찬의 응원가와 같았다.[8] 뉴욕에서 출생했고, 서재응의 아버지 서병관씨가 지었다고 한다.#[9] 이 측면 투구 폼은 여러곳에서 서재응의 상징으로 쓰인다. 특히 부가 설명이 제구파 투수라면 100%다.[10] 동생처럼 해태의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선수생활은 금방 접었고, 이후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재직중이다.[11] 여담으로 처음에 계약금 100만 달러를 제시했던 메츠 측에서 서재응의 부상을 알게되자 계약금을 후려쳤다고...그러나 서재응이 타팀으로 가겠다며 배짱을 부리자 135만 달러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12] 90⅓이닝 8승 2패 ERA 2.59 피안타율 0.251 피출루율 0.285 피장타율 0.383[13] 여기서 1실점은 멕시코 대표이자 라쿠텐에서 활약한 루이스 알폰소 가르시아에게 맞은 홈런. 롯데와 한화에서 뛴 적이 있는 카림 가르시아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당시 멕시코 야구 국가대표팀에는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만 무려 3명이 있었다.[14] 이 트레이드는 서재응이 팀의 요청을 무시하고 WBC에 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15] 메츠 시절 마이너와 메이져를 넘나들며 4년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으며 05시즌 후반기의 호투와 WBC 출전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결국 구위 하락과 주무기였던 체인지업의 위력 감소로 이어지게 되었다.[16] 1996년에 그를 지명한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 지명권이 유효한 상태였고, 해외진출 선수가 국내 복귀시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야 하는 조항이 생기기 1년 전인 1998년에 미국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유예 기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한민국 무대에 별 탈 없이 복귀할 수 있었다. 고교졸업 후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은 뒤 고려대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던 동갑내기 김선우도 같은 케이스다.[17] KBS N 스포츠의 "나는 야구선수와 결혼했다" 7회에서 나왔다.[18] 아니나 다를까, 라미레즈는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염증으로 1달간 경기에 나오지 못하였다.[19] 5회에는 이준호의 호수비의 도움을 받았다.[20] 이날 영혼의 배터리인 김상훈이 2타점을 얻어내며 분투하기도 했다.[21] 8회초 손영민이 장작을 쌓고 한승혁이 주자를 불러들이며 1실점, 9회초에 올라온 홍성민은 잘 던지다가 2아웃에서 오재일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맞았다.[22] 노경은도 9월 30일 기준으로 33이닝 무실점으로 이 기록에 도전중이었다. 서재응은 "내가 기록을 못 깨더라도 노경은이 깨줄 것이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던졌다고.[23] 전체 평균자책점 2위를 기록한 노경은이 규정이닝을 채운 토종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24] 투수 땅볼을 1루로 보낼 때 토스를 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로 굴려서 송구를 했을 정도였다. 박재홍 해설위원도 서재응의 이런 투혼을 "가슴으로 던지고 있다"고 평했다.[25] 어느 정도냐 하면 은퇴를 생각했었다는 기사에 하나같이 '왜 실천 안하냐'는 댓글이 달릴 정도...[26] 7회말 홍상삼의 볼넷을 거쳐 나온 2사 만루에서 이준영이용규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한 직후의 상황이다.[27] 단 8월에 LG를 세 번 연속으로 만나서 LG 타자들이 브룩스의 공에 익숙했을 것이라고 한다.[28] 물론 이는 기아가 못해서라기보단 한화의 승률이 너무 처참한 탓에 승률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탓이 크다.[29] 2006년 시즌 중 트레이드[30] 2003년 데뷔후 102타자 연속 무볼넷을 기록했는데 이는 1945년 공식 집계 이래 최고 신기록.[31] KBO 기준이다. 수술 후에도 92~93마일까진 나왔지만 MLB에서는 딱히 빠르다고 하기는 어려운 구속. 그래도 당대 MLB 기준으로도 빠르지는 않아도 그렇게까지 느린 구속은 아니었다. 보통 95마일을 넘기면 이견의 여지없이 파이어볼러라고 부르고 90마일 이하를 느린 공의 기준으로 삼는다.[32] 다만 선수 시절 구설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팬서비스가 매우 좋은편에 속한 선수였던지라 나이스 가이라고 부르는 팬들도 존재하긴 했다. 그리고 나름 준수한 외모를 가져서 나이스 가이라고 불리는 편도 꽤 있었고.[33] 이 시기 야인생활하면서 가끔 인터뷰나 하던 김성근 감독이 젊은 투수 한 명이 괜찮은 성적 올리더니 바람이 잔뜩 들어 방송국이나 들락거린다고 돌려 깠는데 지목만 안했다 뿐이지 서재응을 겨냥한 말이었다. 서재응이 SK와 김성근 감독에게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유가 이 발언을 들어서일 가능성이 있다.[34] GQ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서재응은 100% 안된다고 봤다'라며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참고[35] KBO 투수 WAR 랭킹이 137위(13.72)에 불과하다. 미국 유턴파끼리만 비교해도 봉중근, 송승준 등이 그보다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36] 한화는 선수협에 단체훈련이 가능한지 요청을 했다. 선수협은 규정상 안 된다고 했고 한화는 이를 받아들였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