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6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96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 고졸우선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및 고졸우선 지명
1차 지명은 1995년 10월 25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고졸우선 지명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졸선수 중 3명을 뽑았다.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3. 2차 지명
1995년 10월 30일 서울특별시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실업 팀 및 상무 소속 선수들 609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5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라운드에 제한은 없지만,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4. 드래프트 평가
- 2차 지명에서 609명 중 무려 180명이 지명되어 역대 신인 지명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지명되었다. 1997 신인 지명부터 12라운드로 제한이 되는 탓도 있지만, 현대 피닉스같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실업 팀에서 선수를 데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술수로 볼 수도 있다.[4] 그러나 현대 피닉스의 창단 1년 만에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면서 현대 피닉스에 대한 투자가 자연스레 줄었고, 현대 피닉스처럼 거대 모기업을 둔 실업 팀도 생기지 않아, 프로 구단들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지명된 180명 중 1996년에 바로 입단한 선수는 85명이었고 대학 진학 등으로 입단을 미뤘다가 이후에 지명받은 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35명으로, 예년에 비하면 지명 대비 입단한 선수 비율이 떨어지는 편.
- 롯데 자이언츠 : 고졸우선 지명을 받은 이정훈만 가늘고 길게 1군에서 공을 던졌을 뿐[5] , 나머지는 망했다. 차명주는 롯데에서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최기문을 상대로 1998 시즌 후 트레이드된 뒤 두산-한화에서 노예처럼 굴려지다가 만신창이가 됐다. 2차 3라운드에서 경대 외야수 김대익을 지명한 뒤, 김대익의 포텐이 터질 거라 믿으며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시키고 김대익의 성장을 지켜봤으나, 결과는 망했어요. 다만 어디까지나 전준호에 비하면이지, 김대익도 주전 1번 타자로 2004년 삼성으로 가기 전까지 그럭저럭 평균 정도 해 주었다.
- 쌍방울 레이더스 : 1차 지명을 포함하여 32명을 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는 채종범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SK 와이번스로 지명권이 넘어가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후였다. 투수 신영균은 1996 시즌을 마치고 한대화를 상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된 후 묻혔다. 박주언은 SK에서 2002년까지 선수로 있었고, 현재는 SK 와이번스의 전력분석관. 2차 5라운더였던 김선섭은 광주일고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2차 4라운더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수비코치인 박재현은 쌍방울 대신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지만, 결국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 최정환은 처음 2년 간은 중간계투에서 나름 쏠쏠히 활약하지만, 그 뒤 급속도로 쇠퇴한 모습을 보인다. 1차 지명 선수인 내야수 석수철은 첫 시즌에 100경기 넘게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듬해 고관절 수술을 무려 2차례나 받는 등 갑자기 부상이 악화되어 불과 2년 만에 안타깝게 은퇴했으며, 현재 모교인 군산상고의 감독을 맡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 흑마구의 달인, 국민노예, 강기웅 이후 가장 20-20에 근접했던 2루수, 백업 2루수를 얻었다. 그러나 초반에는 주전 2루수가 된 정경배를 빼면 다들 활약이 미미했던 편. 그리고 박정환은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정석은 상무에서 복무한 후 미국 무대로 진출하지만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에 오르지도 못하고 한국에 복귀하지도 못한 채 은퇴했다. 그리고 1996 드래프트의 숨겨진 화제인 인물은 바로 10여년 후, KBO 리그 심판으로 1판정 8타점 등 각종 오심을 저지르며 팬들의 혈압을 높여 준 분인 박근영이 되겠다.
- 한화 이글스 : 일세를 풍미한 테이블 세터 이영우와 교회 집사님을 얻었다. 그 외에도 임과장, 김수연도 그럭저럭 해 주었다. 하지만 1차 지명자인 홍원기는 두산에서 포텐이 터졌으며, 고졸우선지명으로 데려간 이상열도 현대에서 포텐이 터졌다.
- 해태 타이거즈 : 선수 기량만 본다면 크게 성공한 해였다. 일단 1차 지명으로 2루를 책임지던 한 남자를 얻었고, 고졸우선 지명에서는 이대진을 이을 차기 에이스감, 국가대표 출신의 선발 투수와 그와 영혼의 배터리를 이룬 해태 말기-KIA의 주전 포수를 얻었다. 그러나 김상진은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서재응은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자 미국행을 선택하여 뉴욕 메츠에 입단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에 팀이 인수되고도 7년이나 지난 2008년에야 대한민국 복귀를 선언하고 해당 지명권으로 KIA에 입단했다. 2차 지명에서도 스나이퍼 좌타자와 유격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한 대리님을 건지는 등, 인재들을 많이 데려왔다.
- 현대 유니콘스 : 고졸우선 지명에서 픽한 박진만이 역대급 유격수가 되는 최고의 수확을 올렸다. 그 외에도 1차 지명자인 최원호는 1998년 포텐이 터지긴 했으나 다음 해 부진하고 2000년 심재학을 상대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후, 불펜 요원으로 어느 정도 활약을 펼쳤다. 2차 지명은 상위픽 선수들은 기대만큼 못했으나[6] 중위 픽의 전근표와 강병식이 대타로 그럭저럭 해줬고[7] 박준수는 2006년, 2010년 좋은 마무리와 중간계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8] 그리고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 되는 장정석도 이 해 입단한 선수다.
- LG 트윈스 :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선발진에서 활약하던 2차 1픽 손혁을 제외하면 별 활약을 펼친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2000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특급 유망주였던 경헌호는 프로에서 실패했으며, 특히 1차 지명으로 당시 역대 신인 투수 최고 계약금인 4억 원을 주고 영입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먹튀가 되어 버린 이정길이 압권.
- OB 베어스 : 양배추 투수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다만 김선우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2008년이 돼서야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고, 최기문은 OB 특유의 마르지 않는 포수 자원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포텐이 터졌다. 강봉규와 정원석도 두산을 떠나고서야 각각 삼성과 한화에서 포텐이 터졌다. 윤준호는 선수들과의 마찰 끝에 항명 파동으로 얼룩진 프랜차이즈 윤동균 전 감독의 아들로, 지명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였지만 구단에서 윤 감독과 화해하는 의미로 뽑았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그는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했다.
5. 이모저모
- 그동안 선수 지지리도 안뽑던 해태 타이거즈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무더기로 선수들을 지명했다.
- 현대에 고졸우선 지명된 박진만은 원래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지만, 현대 스카우트 팀은 박진만을 어떻게든 입단시키기 위해 회유하다가 납치까지 했다. 당시 프로 팀과 대학 팀의 치열했던 선수 영입경쟁의 한 일화.[9][10] 여담으로 박진만이 고려대 입학 대신 현대 입단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고려대 선배들의 구타에 못 이겼던 것. 구타도 문제였지만 박진만이 유급했기 때문에, 군기 잡는답시고 구타했던 고려대학교 선배들이 원래는 박진만의 동갑내기들이었다.[11]
- OB에 고졸우선 지명된 휘문고 투수 김선우는 고려대로, 해태에 고졸우선 지명된 광주일고 투수 서재응은 인하대로 진학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각각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와 계약하게 된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2008년이 되어서야 지명권을 갖고 있던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12]
- 고졸우선 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김상진은 데뷔 첫해부터 선발 투수로 뛰고 프로 2년차 때는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기록을 세우며 기대를 받았지만, 위암으로 1999년 6월 10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쌍방울에 10라운드 지명된 박봉수는 원래 오사카 태생의 재일교포 3세다. 일본 이름은 아라이 타카히데(新井峰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8살 때 한국으로 왔고,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기도 했으나 일본 프로팀에 입단하려는 꿈을 갖고 있어서 고려대학교로 진학했다가 중퇴해 1998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이로써 박봉수는 역대 최초로 한일 양국의 신인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가 되었다.[13] 그러나 주니치에서는 1군 기록 없이 방출당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에서 뛰었으나, 1시즌 8경기 6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방출되어 은퇴했다.
- 삼성에 16라운드 지명된 이준은 MBC, 삼성 등에서 활약했던 외야수 이해창의 아들이다. 대학 진학을 선택해, 2000년 신인지명 때는 LG에 지명되었다.
-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에 지명된 권영철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01년에 방출되어 현재 심판을 보고 있으며 같은 삼성의 9라운더 이계성, 18라운더 박근영과 함께 심판으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2013년 경 프로농구 DB의 과 승부조작을 저질렀다.[3] SK에 지명권 승계. 경희대 96학번으로 진학하여 졸업 후 2000년에 입단.[4] 그도 그럴 만한 게, 1995 신인 지명 때는 1차 지명을 포함해 지명된 59명 중 22%인 13명이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 게다가 삼성 라이온즈와 김재걸을 두고 법정 공방까지 벌이기도 했다.[5] 그마저도 2010년 말 넥센의 고원준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롯데를 떠났다.[6] 특히 설종진. 다만 설종진의 경우는 고교 시절 보였던 야구천재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소 로또성으로 택한 경우였다. 설종진은 중앙대학교 진학 후 잔디 소각 작업을 하던 도중 화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화상을 딛고 재기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7] 전근표와 강병식도 안습인 게,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강병식은 덧붙여서 상무 복무 후 입단)하니 외야에 자리가 없어서 2군에서만 있었고 결국은 기량 저하로 이어졌다.[8] 하지만 다른 팀이었다면 무조건 주전을 먹었을,거란 소리를 들은 전근표는 정작 주전이 될 기회가 왔을 때 이를 걷어찼다. 강병식은 2010년을 제외하면 준주전급 이상도 되지 못하였고 수비가 너무 안 돼서 그럴 능력도 없었다. 박준수도 거꾸로 2006년, 2010년을 제외하면 팀에 도움이 된 시즌이 2007년 말고는 딱히 없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픽이다.[9] 당시 박진만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현대 스카우트들을 떼어네겠다고 박진만이 입단 조건으로 3억을 불렀는데 현대 스카우트가 곧바로 자동차 트렁크에서 3억을 꺼내 보여줬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은 박진만을 포함해 김상훈, 김선우 등을 데려간다고 기자회견을 했다.[10] 1990년대 당시에는 대학과 프로 팀 간 선수 스카우트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대학 쪽에서 선수에게 장학금 지원 및 동기들 몇 명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입학 조건을 넣은 뒤 코치 및 선배들을 동원해 지방의 모 여관에 감금(?)시켜 놓으면 이를 프로 팀 스카우터가 뒤를 밟은 뒤 해당 선수를 도로 빼돌려 선수의 부모님에게 연락해 높은 계약금을 제시하든지...[11]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체육특기자 수능 점수 상한선인 40점을 넘지 못해 진학이 좌절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고려대의 똥군기와 구타는 훗날 수감되신 감옥님 양승호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없앴다.[12] 김선우와 서재응의 경우 '프로 구단을 거치지 않고 해외 진출한 선수가 국내로 돌아올 경우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 는 규정이 생긴 1999년 이전에 해외로 건너갔기 때문에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고 덩달아 고교 시절에 지명받은 구단의 지명권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내 복귀 시 별 탈 없이 지명권을 갖고 있던 두산과 KIA에 입단할 수 있었다.[13] 송상훈(야구)도 양국 신인드래프트에 모두 지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