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에 야스코

 

이름
近衞甯子
출생
1944년 4월 26일(79세)
가족
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어머니 다카기 유리코
남동생 토모히토
남동생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여동생 센 마사코
남동생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가쿠슈인 대학 영문과
1. 개요
2. 생애
3. 결혼
4. 자녀


1. 개요


일본의 전 황족. 본래 이름은 미카사노미야 야스코 내친왕(三笠宮甯子内親王)이었다. 쇼와 덴노의 조카다. 현 천황인 나루히토 덴노의 당고모가 된다.

2. 생애


다이쇼 덴노의 막내아들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다카기 유리코의 3남 2녀 중 첫째이자 장녀다. 1944년 4월 26일생으로 패전 전에 태어났다. 일본 황족들은 가쿠슈인 학원 소속 학교만 다니는 것이 전통이었기에[1], 야스코 역시 가쿠슈인 초등과, 여자 중등과, 여자 고등과, 가쿠슈인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3. 결혼


1966년 12월 18일, 대학 재학 도중 일본적십자사 직원인 코노에 타다데루(近衛忠煇)와 혼인하고 고노에 야스코(近衞甯子)가 되면서 황적이탈했다. 일반인이 됐다는 얘기. 1960년대만 하더라도 여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혼인하거나, 대학생이던 시절에 혼인하거나, 대학을 중퇴하고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 고노에 타다테루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 내각총리대신의 친동생으로 본명은 호소카와 모리테루(細川護煇)였지만 외삼촌에게 양자로 간다. 외할아버지인 고노에 후미마로는 일본 귀족의 대장, 후지와라 집안 전체의 장손으로 일본 전 총리다. 그런데 타다테루의 외삼촌인 고노에 후미타카(近衛文高)가 패전 때 소련에 잡혀갔다가 시베리아에서 사망하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후미타카의 사후양자 형식으로 고노에 타다테루가 됐다.[2]
고노에는 후지와라의 분파들 중 가장 위세가 강하던 고셋케(섭정 가문) 중에서도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족보명으로는 후지와라노 타다테루(藤原護煇)가 된다.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황족은 황족이나 후지와라하고만 혼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높은 혈통이었던 셈. 고노에 야스코 또한 후지와라노 야스코(藤原甯子)라고도 볼 수 있다.
호소카와 가문은 무려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씨의 분파로, 1467년 오닌의 난을 일으킨 유서깊은 집안이다. 가와치 미나모토 씨라고도 한다. 일본 센코쿠 시대에도 가와치, 사누키 등 오사카 주변을 제패한 유력 다이묘 집안이었다. 무로마치 막부 최후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배다른 형인 호소카와 후지타카를 배출했으며,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때에도 유력 다이묘로서 세력을 유지했다. 에도 막부 때는 긴키 지방에서 구마모토 지방으로 옮겨서 13대 228년을 영주 노릇을 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는 최상위 귀족인 후작 작위를 받은 집안이었다.
둘의 결혼이 형 덕은 아니다. 형이 총리가 된 건 훨씬 훗날로, 당시엔 평범한 신문기자였다.

4. 자녀


1970년 고노에 야스코는 외아들 고노에 타다히로(忠大)를 낳는다.
남편인 코노에 타다테루는 일본 적십자사 사장이 되었다.
고노에 타다히로는 구니 아사다케(久邇朝建)의 장녀 구니 게이코(久邇桂子)와 혼인해서 자녀 3명을 낳는다.[3] 구니 아사다케는 히로히토의 아내인 고준 황후(나가코)의 큰오빠 구니노미야 아사아키라(久邇宮朝融)의 차남으로, 본래는 세습친왕가 구니노미야(久邇宮) 가문이었지만 1947년 대규모 신적강하로 평민 구니 가문이 되었다.

[1] 2008년 쓰구코 공주와세다대학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이 전통은 깨지고 있다.[2] 원래 후미마로 슬하에는 2남 2녀가 있었는 데 왜 차녀의 자녀가 대를 잇게 된 이유는 일단 차남은 관동대지진 이후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 후미마로의 이복동생에게 입양되었으며 장녀는 시마즈 다타히데 공작에게 시집가서 2남 1녀를 낳으나 1945년 노구치라는 정체사와 눈이 맞아 도망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기에 결국 2남을 남기고 1940년 결핵으로 사망한 차녀의 둘째 아들인 타다테루가 선택된 것이다.[3] 일단 슬하에 남자아이가 최소 1명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야스코의 막내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사후에 찍은 사진에서, 구니 게이코가 남자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이 찍혔기 때문. 참고로 2002년경이면 타다히로가 30대 초반이며 구니 게이코 역시도 최소 20대 중후반의 나이대일 것을 감안하면, 안고 있는 남아가 첫째일 가능성도 높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