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구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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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루히토 덴노의 6촌 동생(재종형제).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남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3녀 중 첫째이다.
할아버지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 새로 개정된 황실전범에 의하면 천황의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女王)이라 부른다.[2] 따라서 다카히토 친왕의 손녀들인 아키코, 요코, '''쓰구코''', 노리코, 아야코는 여왕이 되었다.
2. 출생
다카히토 친왕의 3남 2녀 중 막내인 노리히토 친왕은 1살 연상인 톳토리 히사코와 1984년 결혼, '다카마도노미야'라는 미야케#s-3를 창설했다.
2년 후인 1986년, 도쿄 아이쿠(愛育) 병원에서 첫째 쓰구코 공주가 탄생했다. 아이쿠 병원은 쓰구코 공주의 할머니 미카사노미야 유리코 비가 총재를 맡고 있던 사회복지법인 소속의 산부인과&소아과 전문 병원으로, 쓰구코 공주의 두 여동생 노리코 공주와 아야코 공주 및 '41년 만의 왕자'로 화제를 모은 히사히토 친왕 또한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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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쓰구코 공주.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 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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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동생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와 함께.
3. 성장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3자매는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쇼토(松濤) 유치원에 다녔다. 이 유치원은 큰어머니 노부코 비가 결혼 전 영어교사로 근무했던 곳이고, 노부코 비의 두 딸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도 쇼토유치원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도쿄 시부야의 고급 주택가인 쇼토에 있었던 쇼토유치원은 일본 3대 명문 유치원으로 불렸으며, 원비가 비싸기로 순위를 다투는 유치원이었다. 정재계 및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녔으며, 명문 사립초등학교에 원생들을 많이 진학시키기로도 유명했다. 쇼토유치원은 2010년 폐원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는 여느 일본 황족들과 마찬가지로 가쿠슈인에 다녔다.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를 거쳐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로 진학했는데, 고등학생이던 2002년에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공주들은 교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이때 쓰구코 공주는 염색한 머리를 하고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나타나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평소 모습 그대로 아버지를 보내드리게 하고 싶다"는 어머니 히사코 비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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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가쿠슈인 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교[4] 로 유학을 떠났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가쿠슈인 여대를 자퇴하고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했다.
만 20세 생일인 2006년 3월 8일부터 성년이 되어, 성년 황족으로서 각종 행사, 공무, 황실 제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4. 방탕한 사생활과 유학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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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일, 쓰구코 공주는 에든버러 대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그녀의 유학 중단 이유에 대하여 궁내청에서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이 사망한 후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에 주어지는 금액이 줄어들어, 해외유학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쓰구코 공주의 유학 중단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도 거론되었는데, 그녀의 '''품행 문제'''였다. 영국 유학 당시 쓰구코 공주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사생활 및 이성관계'''를 거침없이 노출했고, 이 사실이 한 잡지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5]
덕분에 쓰구코 공주는 일본 황실의 이단아로 주목을 받았으며,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 의해 '''세계의 말썽꾼 젊은 왕족''' 중의 하나로 꼽히기까지 했다.
한편 쓰구코 공주의 작은고모인 센 마사코도 젊은 시절 비슷한 일화가 있다. 마사코 공주는 가쿠슈인 대학 법학과 재학 중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마사코 공주의 방탕한 생활상이 일본에까지 들려오는 바람에, 어머니 유리코 비가 크게 걱정하여 직접 프랑스까지 쫓아가서 꾸짖고 일본으로 도로 데려오려고도 했다는 것이다.
귀국 후 마사코 공주는 유학 시절 배운 외국어를 활용하여 황족으로서의 공무를 하다가, 1983년 다도(茶道)로 유명한 센 가문[6] 의 종손이자 5살 연하남인 센 소시츠(千宗室)와 결혼, 황적을 이탈하여 평민이 되었다. 마사코는 소시츠와의 사이에서 2남 1녀[7] 를 낳았고, 결혼 후로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를 보면, 쓰구코 공주도 시간이 지나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 의외로(?) 얌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귀국 이후
5.1. 첫 탈(脫) 가쿠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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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1일,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하였다.[8]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황족이 가쿠슈인 이외의 학교로 진학한 첫 사례'''였다.[9] 이후 일본 황족들의 '탈(脫) 가쿠슈인' 사례가 줄을 이었다. 쓰구코 공주가 문을 연 셈.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막내 아야코 공주는 죠사이(城西) 국제대학 복지종합학부, 마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 히사히토 친왕은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과 동(同) 대학 부속초등학교로 진학했다.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교육학과[10] 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에 중퇴하고 다시 대학입시를 치러 2015년 4월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입학했다.
학업을 지속하는 한편 가족들과 함께 황족으로서의 공무도 하였는데,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재해지역을 방문하고 위문활동 등을 하기도 했다.
5.2. 졸업
2013년 3월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를 졸업했다. 본래 국제교양학부는 졸업하려면 1년의 해외유학이 필수인데, 쓰구코 공주는 대학 측에서 특별히 봐주어, 해외유학을 하지 않고서도 졸업했다. 와세다대학 입학 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 유학하다 온 경험도 있고, 황족이라서 특별대우를 받은 면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 졸업 직후인 2013년 4월부터 일본유니세프협회 상근촉탁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근무하는 틈틈히 황족으로서의 공무도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바로 아래 여동생인 노리코 공주가, 2018년에는 막내 여동생인 아야코 공주가 결혼하여 황적을 이탈했다. 이로서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에는 어머니 히사코 비와 장녀 쓰구코 공주만이 남게 되었다.
6. 결혼 논의
두 여동생은 할머니 유리코 비와 어머니 히사코 비로부터 인정받은 신랑감과 순조롭게 결혼하여 평민이 되었지만, 정작 장녀인 쓰구코 공주의 결혼은 제일 늦어졌다. 쓰구코 공주는 두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42세), 요코 공주(41세)와 함께 아직 미혼으로 황실에 남아 있다. 아키코 공주에게는 한때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이후 아키코 공주는 "시집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황실에 남아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요코 공주는 언니처럼 독신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혼하지 않고 있다.
쓰구코 공주에게는 2016년 무렵부터 사귀던 남성(이하 A)이 있었다. A는 메가뱅크[11] 가운데 한 곳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쓰구코 공주는 A와 결혼하고 싶어서, 그를 궁저로 데리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소개한 적도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A가 별로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인지 곧바로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쓰구코 공주는 여전히 A와 결혼하기를 원해서 한때는 "2018년 내에 결혼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앞으로 쓰구코 공주가 결혼하게 될지는 아직 불명이나, 만일 황실전범이 바뀌지 않아 여성 미야케#s-3가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구코 공주가 결혼할 경우,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은 사실상 히사코 비가 사망하면 절문된다.
2020년 2월 5일, 문예춘추에 "쓰구코 공주와 A가 밤에 데이트를 했다"는 기사가 떴다. 쓰구코 공주와 A를 몰래 따라가서 도촬하고, 두 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나누는 사적인 대화를 엿듣고[12] , 길에서 다짜고짜 인터뷰를 시도하여 기사를 쓴 것에 대해, 일본인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7. 기타
에든버러 대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한 이후로, 쓰구코 공주는 별다른 문제없이 조용히 유니세프 직원으로 근무하는 동시에 황족으로서의 공무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2019년 12월, 도쿄 모처에서 진행된 일본과 헝가리의 수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쓰구코 공주는 전시회에 참석하여 당시 방일해있던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인사 및 대화를 나누었지만,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다.
8. 관련 문서
[1]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2] 남자의 경우 친왕(親王)/왕(王). 1947년 이전에는 고손(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3]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난 후로, 아이쿠 병원에서 출산하려는 부모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4] 마코 공주도 이 대학에 유학한 바 있다.[5] 쓰구코 공주와는 반대로,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의 여성 황족으로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6] 센 가문이 왜 다도로 유명한가 하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에게 다도를 가르쳐준 스승이자 일본 다도의 기초를 만드는 등의 공헌이 커 지금도 다도의 원조라 불리는 센노 리큐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정작 센노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밉보여 자결하고 말았으나, 후손들은 별 제약없이 계속 다도를 수련해 이러한 다도를 일본 전역으로 퍼트리게 된다.[7] 1984년생(40세) 장남 아키부미(明史), 1987년생(37세) 장녀 마키코(万紀子), 1990년생(34세) 차남 다카부미(敬史)[8] 이 입학에 대해서는 특혜를 받은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아키히토 덴노의 손녀들인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의 대학 입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9] 해외유학 제외.[10] 카코 공주가 입학하던 2013년에 신설된 학과로,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이다.[11] 일본의 3대 은행인 미즈호 은행,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을 통틀어 일컫는 말.[12] 기사에서는 "가게 종업원이 들은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일하느라 바쁠 종업원이 들은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상세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자들이 쓰구코 공주와 A의 가까이에 몰래 앉아 엿들어서 기사를 쓰고는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