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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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장
2. 교호
3. 교가
4. 호랑이
5. 크림슨색
6. 막걸리
7. 호상비문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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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장


'''교장 (1958년 제정)'''
'''글로벌 심벌 (2005년 제정)'''
'''111주년 기념 심벌 (2016년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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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민족고대'에서 '세계고대'로 나아가겠다는 비전을 담은 글로벌심벌이 제정되었다.
2016년 제정된 111주년 기념 심벌은 1958년에 제정된 교장과 유사한 형태이며, 이 기념 심벌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의해 제정되었다.
1. 글로벌 심벌 내 영문 서체와 하단에 표기하는 영문 서체가 중복되는 등 몇 가지 디자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2. 개교 100주년 (2005년) 이후 학문적으로는 명성을 쌓는 일에 성공했지만 학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에 소홀했다는 인식이 나왔다.
111주년 기념 심벌은 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교장의 특징과 내용을 승계하되 수기 그림을 그래픽으로 전환해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으며, 상단 책 부분을 정리하고 칸의 크기를 일정하게 맞추는 등 부가가치를 높였다. 또한 방패의 색을 소폭 바꾸었다.

2. 교호


'''입실렌티 체이홉 카시코시코시코[1]

칼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 칼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

해석 : 알렉산드로스 입실란디스, 안톤 체호프,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가 계시는 고려대학

1923년 당시 보성전문학교 교수였던 백상규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2]
입실렌티는 그리스 독립운동가의 이름 알렉산드로스 입실란디스에서 온 것이며, 카시코시 코시코는 폴란드 혁명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에서 따온 것이고, 체이홉은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 안톤 체호프, 칼마시는 역시 칼 마르크스를 말하는 것이며, 케시케시는 저 4명의 위인이 고려대학에 계신다는 뜻.[3][4]

고려대학교 교호의 유래
사실 제대로 좌파적인 내용으로 빨갱이 소리 안 듣는 게 신기하지만, 어쨌든 보성전문학교 때부터 계속 써온, 관록 있는 교호다. 지금과 보전 시절의 차이가 있다면 '고려대학'을 '보전 보전'으로 불렀다는 거. 보전은 보성전문학교의 약칭이다.

3. 교가


조지훈 교수가 작사하고 윤이상이 가락을 만든 고려대학교 교가는 대한민국 대학교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학생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교가로 알려져 있다.

1. 북악산 기슭에 우뚝 솟은 집을 보라

안암의 언덕에 퍼져나는 빛을 보라

겨레의 보람이요 정성이 뭉쳐

드높이 쌓아 올린 공든 탑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후렴)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영원히 빛난다

2. 자유를 위하여 물결 치는 가슴이여

정의를 위하여 굳게 잡은 신념이여

불타는 정성이라 그 뜻을 받아

아득히 우러르는 큰 이상

자유 정의 진리의 한빛이 있다

3. 그윽한 수풀은 우리들의 요람이요

저 넓은 벌판은 우리 힘의 소망이라

드는 이 나가는 이 돌려서 지켜

힘차게 이어가는 이 정신

자유 정의 진리의 큰길이 있다.


고려대학교 교가 (1절~3절)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연주회, 고려대학교 관현악단 연주 버전 (2005년, Pavel Lando 편곡)
'''고려대생들은 대부분 교가를 외운다.''' 심지어 졸업생들도 안 잊어버리고 외운다.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들 가운데 자기가 나온 대학 교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를 줄 아는 이들은 아마 고려대학교 출신들 밖에 없을 거라는 말도 있고 실제 거의 그렇다.[5][6][7] 고대생들의 학교사랑이 워낙 대단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고대 교가 자체가 뭔가 찡한 느낌이 드는 가사[8]와 멜로디로 구성된, 아주 잘 만든 노래라는 데 기인하는 바도 크다. 고대 교가에서 또 하나 훌륭한 점은 걸출한 음악가시인이 지은 가사와 가락이 서로 아주 잘 어울린다는 데에도 있다.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쩍쩍 입에 붙어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고려대학교에는 원래 이광수가 작사한 교가가 있었다.[9] 이 교가 역시 고대생들에 의해 많이 애송되었지만, 마침 그 당시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것도 있고 해서, 1955년 고려대학교 본부는 새로이 교가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때 국문과 교수였던 조지훈 시인은 자신의 시 ‘고풍 의상’에 곡을 붙인 신인 작곡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학교측에 소개했다. 그 신인 작곡가가 바로 훗날 세계적인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는 윤이상이었다. 윤이상은 열심히 두 버젼의 교가를 만들어 왔다. 그 후 음악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고대 교수들이[10] 이맛살 찌푸리며 듣고 너무 힘이 없다는 둥 어떻다는 둥 까탈을 걸었는데, 윤이상은 그 시시콜콜한 트집을 겸손히 듣고 두 번 세 번 수정한 뒤에 지금의 교가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1955년 5월 5일에 발표된 이 교가는 지금도 매일 아침 9시마다 서관(문과대학)의 시계탑 그리고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KUBS의 시보로서 낭낭히 울려 퍼지고 있다.
고려대 교우회(타 대학의 동문회에 해당) 모임은 전 세계 어디서든 교가 제창에 이어 교호를 외치는 것으로 끝난다.
2005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러시아 작곡가 알렉세이 라린이 작곡한 「자유·정의·진리를 위한 교향곡」에 선율이 차용되었다.

4.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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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동물은 호랑이. 이미 보성전문 시절부터 호랑이를 상징으로 삼았고,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을 봐도 현관문을 비롯한 곳곳에 호랑이 장식이 되어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 학교 상징을 호랑이로 내세웠다는 것은 일제에 대한 노골적 저항의 의지를 표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11]
용맹한 반면에 과시적, 허세적, 외향적인 면은 그리 강하지 않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광활한 초원에 자기를 완전히 드러내놓고 사는 사자나 독수리와는 달리 은밀하며, 아무리 굶주려도 풀을 뜯어먹지 않는 우직한 호랑이의 야성은 고려대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부합한다.[12]

5. 크림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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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색(校色)은 크림슨(진홍)색. 밝은 빨강색에 약간의 파랑색이 섞여서 강렬하고도 권위 있는 느낌을 준다. 일찍이 유럽과 미국의 주요 명문대학들을 많이 둘러보고 왔던 유진오 총장이 '가장 좋은 색'이라며 정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교를 비롯한 외국의 많은 명문대학들이 교색으로 채용하고 있는 색깔이기도 하다.[13] 주요행사가 있을 때마다 크림슨색 휘장을 본관 및 교내진입로 등에 걸어두는데 고급지고 위엄 넘치기가 이를 데 없다.
크림슨색은 고상한 느낌을 주지만, 염색하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1940~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염색기술로는 크림슨색을 제대로 구현할 수가 없었다.[14] 그래서 1990년대까지는 고대생들이 학교 인쇄물이나 깃발, 단체의상(과티, 과잠 등)을 제작할 때 크림슨색 대신 빨강색으로 학교색깔을 대충 만들었다고 한다.[15] 6.25 전쟁때 고려대학교 시설이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보전된 이유가 학교 상징이 빨강색처럼 보여서 공산군이 그대로 놔뒀다는 '''카더라''' 설도 있다. 21세기부터는 컴퓨터에서 디지털 RGB로 크림슨 색상을 손쉽게 만들 수가 있게 되어 고대 인쇄물 등에 크림슨색이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6. 막걸리


사실상의 상징주는 막걸리. 고려대의 서민적인 기질을 표상한다. 김상협 총장 시절에는 축제때마다 본관 앞에 커다란 막걸리통을 갖다 놓고 총장부터 시작하여 교수, 학생 모두가 마셨다고 한다. 어윤대 총장 시절 잠시 와인을 밀기도 했지만,[16] 총장이 바뀌면서 다시 막걸리로 돌아갔다. 막걸리에 대해 고대생들이 부르는 막걸리 찬가라는 노래도 있으며 고려대의 막걸리 사발식도 유명하다.[17]

7. 호상비문


호상비문 문서 참조.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던 조지훈 시인이 지은 고려대학교의 상징 시이자 금석문으로, 민족의 아리아의 원 가사이다.

8. 관련 문서


[1] 폴란드의 혁명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2] 양정의숙의 교호(양정고등학교(서울))에서 따온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고려대는 동시대에 출발한 양정의숙의 역사를 흡수통합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정의숙은 1905년 보성전문학교와 같은 해에 전문학교로 설립되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1913년 양정고등보통학교(현 양정중고등학교)로 자진격하하였다. 그때 양정의숙은 전문학교 재학생 전원을 보성전문학교로 전학시켰고, 이때부터 보성전문은 양정의숙의 역사도 함께 계승하게 되었다. 양정의숙의 교호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1920년대 이후 양정고보의 교호 역시 '입실렌티 체이홉...'으로 시작되었다. 단지 뒤의 '양정 양정' 부분만 '보전 보전'과 달랐다고 한다. 현재 목동 양정중고등학교의 교호는 마지막 부분이 '칼마시 케시케시 양정양정 빅토리 야!'이다. 지금도 매년 행해지고 있는 양배전/배양전 럭비전 등에서 들을 수 있다.[3]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고려대학교 교호를 이렇게 패러디했다. "이대에게 채이고 숙대에게 채이고 칼 맞고 비실비실 고려대학, 칼 맞고 비실비실 고려대학."[4] 물론 별로 비슷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5] 참고로 연세대의 경우 교가의 순수한 길이만 해도 고대 교가의 2배가 넘는데다, 곡도 일제 때 창가 풍으로 어렵기 그지없어서 외워 부르기를 포기한 상황이다. (물론 성악과 학생은 다들 외워부른다) 실제 연대생 중에 우리학교 교가가 고대 교가 정도의 길이였으면 나도 외워 불렀을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6] 물론 고대생들도 3절까지 다 외우는 사람은 드물긴 하다. 하지만 애국가도 원래 4절까지 부르는 곳은 군대뿐...[7] 물론 최근들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교가따위 안 외우는 고대생들도 예전보다 많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입학하면 선배들이 교가부터 가르치고 교가를 외우는 학생 비율은 여전히 타 대학에 비해 넘사벽이다.[8] 특히 '마음의 고향'이란 단어와 '공든 탑'이란 단어가 고대 졸업생들의 심금을 울린다고 한다.[9] 보성전문 시절부터 불려진 노래이다. "젊은 가슴 숨은 생명 힘-넘쳐 뛰노나/ 이 힘이여 이 생명을 펼-곳이 어디냐 / 눌린 자들 쳐들기에 굽은 것 펴기에 / 쓰리로다 부리리라 이 힘과 이 생-명 / 고려대학 고려대학 우리모교 고려대학"이 그 가사이다. 의협심과 저항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곡이라서, 보성전문=고려대학교 학생들의 투쟁적 기질을 잘 표현한 노래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일제 당국에게 보성전문이 더욱 찍히는 빌미가 되기도 했고...[10] 고려대에는 음악대학이 없어서 이런 말이 나온듯...[11] 실제로 1917년 이후 일제는 한반도에서 무차별적 호랑이 포획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주민 안전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한민족의 정기를 끊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떡하니 호랑이를 대학 상징동물로 내세우며 개겼으니...[12] 고려대 출신 중에 마광수박진영처럼 자기 속을 완전히 다 까발리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대 출신 중에 연예계 진출자가 유난히 적고 연예계에 진출하더라도 외부활동을 적절히 자제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거기 있다는 말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한국대학 3대 名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기질 비교 참조.[13] 국내에서는 경희대, 서강대, 광운대, 세종대 등이 고려대를 따라 크림슨색을 교색으로 정했다.[14] 1868년 독일의 칼 그래베, 칼 리베르만이 알리자린 크림슨이라는 화학염료를 개발해냈으나, 그 화학염료 제작기술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들어오지는 않았다.[15] 연세대의 상징색인 로얄블루색은 염색하기도 쉽고 서구적이며 세련되어 보이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고대생들은 그 좋은 크림슨색을 도저히 만들 수가 없어 시골 서낭당 천쪼가리색깔 같은 빨강색깔 옷을 입고 고연전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대생들의 파랑색 옷에 비해 고대생들의 빨강색 옷은 매우 촌스럽게 보였다는 아픈 역사가 있다.[16] 레드와인 색깔이 크림슨색이랑 좀 비슷하긴 하네...[17] 일반적으로는 다른 대학생들처럼 소주와 맥주를 주로 마시지만 타 대학교 학생들과는 달리 막걸리를 마시는 경우도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