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투수)

 

윤석민의 수상 경력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2008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




2011 KBO 리그 MVP


2011 KBO 리그 다승왕


2008, 2011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2011 KBO 리그 탈삼진왕


2011 KBO 리그 승률왕


2008 KBO 리그 페어플레이상


윤석민의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fff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오봉옥
(2004)

<colbgcolor=#1e376d> 윤석민
(2005~2009)


조태수
(2010~2012)
홍건희
(2015)

윤석민
(2015~2017)


이윤학
(2018)
{{{#fff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조태수
(2009)

윤석민
(2010)


고우석
(2011~2012)
{{{#fff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
손영민
(2010)

윤석민
(2011~2013)


송은범
(2014)
{{{#fff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유재신
(2017)

윤석민
(2018~2019)


김민식
(2020~)



이름
윤석민
(尹錫珉|Suk-Min Yoon)
생년월일
1986년 7월 24일 (37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가족관계
아내 김수현 (1989년 4월 17일생)
장모 김예령 (1966년 4월 7일생)
출신학교
구리초[1] - 인창중 - 야탑고
신체조건
185cm / 85kg / B형
직업
야구선수골프선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5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 KIA)
소속구단
[image] [image] KIA 타이거즈(2005~2013)
[image] 노폭 타이즈 (2014)
[image] [image] KIA 타이거즈(2015~2019)
응원가
싸이 - '아버지'[가사][듣기]
병역
예술체육요원[2]
종교
개신교
소속사
JDB 엔터테인먼트
SNS

1. 소개
3. 연도별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평가
6. 양현종과의 반비례?
7. 여담
8. 둘러보기
9. 관련 문서

[clearfix]

1. 소개


남들은 나보고 운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KIA 타이거즈 같은 명문팀에서 1선발로 뛰고 있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2007년 암울한 기아 타선과 수비로 최다패를 기록했을 때

KIA 타이거즈 소속의 우완 투수이자 골프선수.
타이거즈가 해태에서 KIA로 바뀐 후 탄생한 첫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이자 팀레전드이다.[3]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의 트리플 A 노폭 타이즈(Norfolk Tides)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지만 2015년 다시 KIA로 복귀하였다.
한때 류윤김으로 불리며 국내 최고의 우완투수였었다. 과거 우완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영수, 박명환, 손민한이 부상으로 차례차례 몰락한 뒤,[4] 프로야구판에 뛰어난 우완 '선발' 은 찾기 힘들게 되었다.[5] 선발 로테이션에 끼어 꾸준히 던져주는 우완 투수들은 대부분 외국인 선수인 상황에서, 송은범과 함께 토종 정통파 우완의 자존심을 세우던 선수였다.[6] 그러나 빅3처럼, 그도 부상으로 인해 몰락한 뒤 2019년 시즌 후 쓸쓸하게 은퇴하게 되었다.
어려 보이는 외모로 '석민 어린이' 등의 별명을 얻었고, 2007년 팀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때 윤석민상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AAA리그에서 수준 이하의 기량을 보여준 2014년에는 노폭전드 내지는 윤졸도[7]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무리로 뛰게 된 2015 시즌 한정 별명은 석센시오. 그리고 17시즌 이후 재활이 더디게 진행되어 복귀가 몇 년간 계속 미뤄지자 '그 먹튀', '그 90억(금액)' 내지는 '그 FA' 등의 별칭도 생겼지만 윤석민의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사이버투수'이다. 기아 경기 댓글등 인터넷에서만 이름이 거론될 뿐 실제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선수라는 뜻.

2. 선수 경력


윤석민의 선수 경력
[ 펼치기 · 접기 ]


3. 연도별 성적


통산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KIA
53
84
3
4
7
0
0.429
4.29
92
8
38
49
47
40
1.48
2006
63
(5위)
94⅔
5
6
19
(5위)
9
0.455
2.28
81
5
31
75
26
24
1.14
2007
28
162
7
18
(1위)
0
0
0.280
3.78
161
10
74
104
76
68
1.36
2008
24
154⅔
14
(2위)
5
0
1
0.737
(5위)
2.33
(1위)
121
10
46
119
(5위)
45
40
1.05
(1위)
2009
27
119⅔
9
4
7
0
0.692
3.46
110
9
52
117
52
46
1.29
2010
23
101
6
3
3
0
0.667
3.83
95
5
39
94
48
43
1.30
2011
27
172⅓
(5위)
17
(1위)
5
1
0
0.773
(1위)
2.45
(1위)
137
10
50
178
(1위)
53
47
1.05
(1위)
2012
28
153
9
8
0
0
0.529
3.12
120
9
41
137
(4위)
60
53
1.00
(1위)
2013
30
87⅔
3
6
7
2
0.333
4.00
91
9
29
76
41
39
1.3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BAL
1군 기록 없음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NOR
23
95⅔
4
8
0
0
0.333
5.74
125
15
31
67
69
61
1.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KIA
51
70
2
6
30
(3위)
0
0.250
2.96
69
4
26
68
23
23
1.33
2016
16
31
2
2
1
6
0.500
3.19
36
1
13
26
14
11
1.42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28
40
0
8
11
0
0.000
6.75
55
9
10
29
32
30
1.63
2019
1군 기록 없음
<color=#373a3c> KBO 통산
(12시즌)
<color=#373a3c> 398
<color=#373a3c> 1270
<color=#373a3c> 77
<color=#373a3c> 75
<color=#373a3c> 86
<color=#373a3c> 18
<color=#373a3c> 0.507
<color=#373a3c> 3.29
<color=#373a3c> 1168
<color=#373a3c> 89
<color=#373a3c> 449
<color=#373a3c> 1072
<color=#373a3c> 517
<color=#373a3c> 464
<color=#373a3c> 1.21
<color=#373a3c> MiLB(AAA#s-5) 통산
(1시즌)
<color=#373a3c> 23
<color=#373a3c> 95⅔
<color=#373a3c> 4
<color=#373a3c> 8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0.333
<color=#373a3c> 5.74
<color=#373a3c> 125
<color=#373a3c> 15
<color=#373a3c> 31
<color=#373a3c> 67
<color=#373a3c> 69
<color=#373a3c> 61
<color=#373a3c> 1.58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5년
0완투
0완봉
2006년
0완투
0완봉
2007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08년
1완투
0완봉
2010년
1완투
0완봉
2011년
3완투
(1위)
3완봉
(1위)
2012년
3완투
(2위)
2완봉
(1위)
2013년
1완투
0완봉
2016년
1완투
(3위)
0완봉
<color=#373a3c> 통산
<color=#373a3c> 12완투
<color=#373a3c> 6완봉

4. 플레이 스타일


[image]
[image]
[image]
폼이 좋을 때 주력 구종은 시속 155km/h 까지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과 복수의 슬라이더이며 간간이 서클 체인지업을 곁들인다. 커브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사용 빈도가 낮다. 높은 아웃 코스에서 주로 사용하여 직구 볼처럼 보이게 하다가 살짝 떨어져서 루킹으로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는데 주로 사용하는 130km 중후반대의 낙폭이 작은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 존에서 뚝 떨어져서 헛스윙을 유도하는 낙폭이 큰 140km/h 대의 고속 슬라이더 두 개를 주로 사용한다.
사실 윤석민의 패스트볼 제구나 구위는 A급은 아니나[8] 워낙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다른 구종을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양준혁 등 일부 전문가들은 윤석민의 서클 체인지업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으며, 실제 2009 WBC 베네수엘라전에서는 오히려 체인지업이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민은 슬라이더'라는 고정관념을 의식한 탓인지 더이상 체인지업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MLB에서의 실패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이도 상당수 있다. 평균적인 구속과 그에 조금 모자라는 제구와 구위의 패스트볼로는 아무리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홈런을 허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 2014시즌 류현진이 자신의 체인지업이 공략당하자 슬라이더와 커브 조합으로 MLB의 타자들을 이겨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노포크 시절의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국내에서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낙폭이 적은 커터성 슬라이더가 되어버렸고 이러한 구종의 무브먼트 감소는 피홈런 증가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여러 가지 구종을 잘 던지는 유형의 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예로 프로야구매니저의 윤석민 카드를 보면 각종 구종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건 일단 본인이 구종을 배우는 데 열심이고 실전에서 한 번씩 사용해보긴 하기 때문. 일례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훈련 중 임태훈에게 포크볼을 전수받기도 했으며, 2011 시즌에는 팀에 영입된 이범호를 통해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 그립을 전해받아서, 자신만의 포크볼 그립을 만들어 활용해 보기도 했다. 또 팜볼도 아주 가끔씩 던지곤 한다.[9] 그 일례로 2009 한국시리즈 당시 6차전에서 이호준에게 팜볼[10]을 던지고 결승 홈런을 허용했는데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또 쳐봐라'라는 심정으로 던졌는데 다 치더라"라고 인터뷰를 해서 한동안 까인 적이 있었다. 각설하고, 다양한 변화구 때문에 야구를 처음 접하는 라이트 팬들 중엔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을 앞세운 피네스 피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위주의 파워 피처다.[11]
물론 변화구 위주로 맞춰잡는 피칭도 가능하긴 하지만, 컨디션이나 구위가 좋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며 피칭 내용도 만족스럽게 나오는 일은 많지 않다. 실제로 던지는 구종이 늘어날 경우 윤석민은 오히려 부진했다. 일례로 잘 나갔던 2008 시즌에는 전체적으로 패스트 볼의 비중을 높게 가져갔으나 부진했던 2009, 2010 시즌에는 변화구 구사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는 본인의 피지컬 변화에 따른 구종 선택의 변경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08 시즌의 윤석민의 투구폼은 어깨상태가 절정인 상체 위주의 부드러운 투구폼에 시속 140km 중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패스트볼 위주의 피칭이었던 반면에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로 하체를 이용한 피칭을 시작하며 강력한 직구와 함께 안정적인 변화구 구사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2011 시즌 초에는 타자들이 아예 패스트 볼은 버리고[12] 변화구에 타격 타이밍을 맞춰서 공략해 들어오곤 했다. 이 시기 구사비율이 높아진 서클 체인지업의 경우 장기인 고속 슬라이더과 패스트 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움직임에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직구처럼 보이게 오다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격 리듬을 변화구 타이밍에 맞추고 있어야 공략이 가능한 공이고, 따라서 패스트 볼 구위가 밑밥으로 깔려있어야 타자가 소위 직구-체인지업의 타이밍 이지선다에 걸려서 속아넘어가게 되는데, 지나치게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지고 패스트 볼 비중이 줄어든 탓에 애초부터 타자들이 변화구에 배팅 타이밍을 맞춘 채 체인지업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족족 얻어맞게 된 것이다. 감독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점을 지적했고 본인도 이를 인식했는지 패스트 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 내용을 바꿨고 커리어 하이를 맞았다.
전성기때 상체가 많이 흔들리는 투구폼으로 김성근이 특별해설위원으로 체력 소모가 많고 롱런이 힘든 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체력 문제로 불펜투수로 2015년에는 중무리로 뛰었다.
신인 시절에 마무리 투수로 뛴 적도 있기에[13] 팀 사정에 따라서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됐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아 철저하게 관리받아야 하는 선수를 혹사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KIA팬들은 양날의 검으로 생각했고, 이것은 커리어 후반에 아주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5. 평가


2012년까지의 평가는 KBO의 국대급 우완투수, 2015년 메이저리그 도전 실패 후 받는 평가는 딱 KBO급 투수, 복귀후의 평가는 완벽한 마쓰자카의 한국 버전. 2014년 마이너리그에서 초반에 대량실점 빈도가 많았고, 중후반 접어들면서 그나마 좀 줄었지만, 10경기 연속 피홈런을 맞는 등 전형적인 홈런공장장으로 전락했다. 슬라이더의 구위 역시 직구의 구속이 KBO에서처럼 150km/h 전후로 나올 때 발휘되는 것인데 130km 후반의 직구와 곁들여지는 슬라이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 이외의 경기 내용도 딱히 훌륭하다고는 말 못한다. 팀에서 정했는지 본인 스스로가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선발로는 경쟁이 없어 불펜으로라도 9월 확장로스터 때 올라오려고 한다는 안습한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마저도 한국 시각으로 2014년 8월 31일에 40인 로스터에서 지명할당되면서 무산됐고, 2015년에는 벅 쇼월터 감독이 아예 윤석민은 전력 구상에 없다는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면서 볼티모어도 아예 윤석민을 부르지 않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류현진과 비견되곤 했지만[14][15] 사실 그에 비견할 만한 성적을 낸 적은 드물다. 잦은 부상[16]과 극심한 기복, 떨어지는 내구성으로 명성에 비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로 보직 전환을 하고도 간간이 클로저로 뛴 것을 감안하더라도 2008 시즌과 2011 시즌을 제외하면 10승 이상을 올린 적이 없고,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도 4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2009년과 2010년 연달아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200이닝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으며, 2011년에 기록한 통산 최다 이닝도 172이닝으로 류현진의 평균치보다 적다.[17] 같은 팀 양현종과 비교하더라도 4년 연속 170+이닝, 평균 193이닝을 3년 연속 찍어준 양현종에 비해 윤석민의 내구성은 극도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011시즌 윤석민의 등판 간격을 보면, 잘 나가던 해에도 4일 휴식 후 등판이 3번 밖에 없고 등판 간격을 길게 조절하며 관리해줘야 했을 정도로 내구성이 취약하다. 잔부상의 원인으로는 서정환 감독 시절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런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지목된다. 하체 힘이 약해지면서 각종 근육계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얘기.[18]
허약한 팀타선 및 윤석민 선발 시 유난히 점수가 나지 않는 불운과, 심심하면 클로저로 투입되는 등 팀 사정 등의 요인이 분명 작용한다. RS가 6.22로 리그 1위였던 2011 시즌을 제외한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윤석민의 통산 RS는 4.14로 봉크라이 봉중근의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RS인 4.40보다 낮다.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구종에서 언급했듯이 윤석민의 정석 투구 패턴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구위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피칭이다.[19] 오히려 변화구 많이 던지면 게임이 더 안 풀리고 보통 잘 풀릴 땐 투피치에 좌타자용 서클 체인지업 정도 추가하는 게 일반적이다.[20] 좋은 구위를 가진 특급 투피치 선발이 한국에서는 충분히 먹힌다는 건 KBO가 문 연 이래 꾸준히 증명되어온 사실이고, 윤석민은 류현진이 워낙 굇수라 그렇지 당연히 제구가 상당히 좋은 투수이다.

특히 좌우 코너웍을 볼카운트에 상관없이 공략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능하다. 특히 투구폼은 가장 이상적이고 유연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인터벌 역시 상당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도루도 쉽게 허용하지 않으며 투구 후 수비로 전환하는 폼 역시 좋다. 무엇보다 탁월한 주자 견제 능력과 더불어 선수 본인이 상당히 영민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참 선배였던 김상훈, 차일목이 포수로 앉아 있어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본인이 구종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2016시즌 후반기에는 윤석민의 야구 IQ를 확인할 수 있는데, 평균 구속 133km 직구로도 코너웍과 구질 선택, 주자 견제와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 등으로 꾸역꾸역 막아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상하게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2010 시즌에 발생했던 몸에 맞는 공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롯데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롯데 타선이 강력했던 2008~2010 시즌동안 61⅔이닝 7승 1패 4세 ERA 2.34를 기록하였고, 홍대갈 트리오가 극강의 위용을 자랑했던 2010 시즌에도 24⅓이닝 3승 1세 ERA 2.59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사구 사건 이후 롯데 타선이 크게 약화된 2012, 2013 시즌까지도 맥을 못췄다. 윤석민상 운운될 정도로 커리어 내내 시련을 겪어오면서 성장한 그이기에 멘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나 對롯데전은 두고두고 멘탈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래도 2015년 대롯데 성적은 5경기 8.2이닝 무실점 7피안타 11삼진으로 무척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극복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민은 토종 우완들 중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같은 시기 뛰거나 뛰었던 외국인 우완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21] 그렇지만 친기아적인 성향의 일부 악질적 기자들과 일부 과도한 팬들의 지나친 띄워주기로 인해 과대평가가 더해져 그에 대한 반발로 깎아내리고 평가절하도 심하게 당했다.[22] 즉, 추켜세우기가 너무나도 지나쳐 그가 KBO 기준으로 훌륭한 투수임이 분명한데도 과대평가를 받은 선수라는 비난이 함께 나오는 것. 현재는 역사에 남을 먹튀짓을 자행하는 바람에 빠와 까 모두 먹튀로 대동단결했다.
윤석민의 데뷔 이후 KIA의 야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대목으로는 불펜 전환이 있는데, 실제로 모든 기아의 감독들은 불펜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윤석민 불펜카드를 만지작거리고 매년 실행되었다. 심지어 리그 MVP를 수상했던 2011시즌에도 불펜으로 등판했었으니 더 이상의 서술은 필요치 않을듯 하다. 물론 KIA라는 팀 자체가 09 시즌 우승 당시 유동훈을 제외하고는 믿을 만한 불펜, 혹은 마무리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첫번째 원인으로 꼽자면 선수 본인이 워낙 다재다능한 탓이다. 어떠한 지도자이건 팀의 성적에 해가 되는 의도로 선수를 기용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윤석민이라는 투수는 일단 불펜으로 등판했을 때 성적이 나쁘지 않고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러닝을 적게 하는 투수 치고는 체력도 있는 편이어서[23] 감독들의 생각에는 관리만 잘 한다면 불펜으로든 선발로서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선수로 인식되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KBO 리그 복귀 후 17시즌까지 종료된 시점에서는 먹튀 확정. 계약 당시엔 윤성환이 80억, 장원준이 84억에 계약한 상황에서 과거 이 둘보다 비교우위였던 윤석민이 90억을 받는 것은 타당한 금액이란 주장이 있었다. 분명 계약 시점에서 1년을 날려먹고 귀국했지만, 그간 쌓은 윤석민의 KBO 커리어는 윤성환, 장원준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었다.[24]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3시즌간 윤성환과 장원준은 선발투수, 그것도 큰 부상없이 꾸준한 이닝 이터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윤석민은 대체로 불펜으로 기용되었으며, 불펜인 것을 감안해도 윤성환, 장원준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아 복귀 후 두번째 시즌인 2016시즌은 부상으로 거의 다 날렸고, 수술로 17시즌도 시즌아웃.[25][26] 결국 17시즌 윤성환의 통산 WAR이 윤석민을 넘어섰다.
윤석민은 구속 하락과 동시에 해외 진출을 했다가 마이너스 시너지를 냈고, 국내 복귀 후 회복을 완전히 하지 못하는 2000년대 정민철의 전철을 밟고 있다. 정민철은 한화가 싸게 잡았다고 재평가된 반면 윤석민은... 물론 윤석민이 수술 후 구속을 다시 회복할 가능성도 있고, 제구력과 변화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투수기에 정민철처럼 기교파로 전향해 부활할 가능성도 있긴 있다. 하지만 80억대의 돈을 받고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투수들과 비교할 때 90억 계약을 맺은 투수에게 기대하는 활약을 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불펜에서 90억을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장원준과 똑같이 84억을 받는 마무리 정우람, 60억 받는 손승락 모두 수준급 활약을 하는데도 먹튀 소리도 종종 들으며 오버페이라는 의견이 많다.[27] 굳이 돈값을 시키려면 중무리로 굴리면 되겠지만 워낙 유리몸이라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일단 2018년도에도 언급되었지만 윤석민이 먹튀라는건 불변의 사실이다. 다만 기아 입장에서 복귀를 기대할 만한 선수인 건 분명하다. 윤석민이 예전과 같은 폼은 절대 아니지만 복귀해서 불펜으로 찍은 WAR 3.87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0년 이후로 불펜으로 WAR 3.8 이상 찍은 선수는 10 정재훈, 11 오승환,정우람, 12 박희수, 15 윤석민, 17 손승락이 끝이다. 기아 불펜진은 참고로 09년도 이후로 단 한 번도 WAR 3을 넘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WAR 2도 못 넘어봤다... 여전히 불펜이 매우 불안하고 5선발이 확정되지 않은 기아가 윤석민의 복귀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비슷한 부상을 당한 선수들이 윤석민에 비해 복귀가 빠른 점, 다른 부위지만 토미존 서저리까지 받은 류현진은 재활기간 2년을 끝내고 3년차 리그 초반에 선발로 복귀함과 동시에 다저스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었다.[28] 그런 와중에도 3년차인 윤석민은 5월에 2군 피칭까지 들어갔지만 1군콜업이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회복속도가 느린거면 어느정도 실드가 가능하지만, 재활중에 골프치러 다니거나 그 유명한 드르렁 사건 등등, 이정도면 1군복귀 의지가 부족한게 아니냔 말까지 나올정도면...게다가 타팀에 비해 올시즌 불펜이 안정적이지 못한데다 이대진 투코가 키워놓은 유망주도 없고 작년의 수호신인 김세현이 폭망하면서 윤석민에 대한 기대가 월등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까이는 비율이 높은 이유다.
당장 윤석민과 동시기에 같은 수술을 받은 안영명은 복귀해서 140초반대의 투심성 직구로 선발진에서 버텨주다 18시즌 불펜에서 다시 140 후반대의 공을 뻥뻥 뿌리며 한화 이글스 불펜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며 18시즌 초반 한화의 상승세를 이끌었다.[29] 또 재활에 1년이 걸리는 토미존 수술에서 복귀한 김광현도 팀에서 철저히 이닝과 투구수를 관리하고 있지만 구속과 구위는 이미 수술 이전, 혹은 그 이상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KIA 팬들은 재활은 안하고 골프나 치고 다닌 게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중. 먹튀도 먹튀지만 1군 선발을 돌 수 있는 구위, 체력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윤석민을 위해서 멀쩡한 투수 보직마저 파괴하는 김기태 때문에 속이 터질 노릇이다.
다만, 스톡킹을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안영명과는 수술 부위가 달랐다고 한다. 안영명과 윤규진의 경우는 위팔뼈 위쪽의 연골 부위였으나 본인은 어깨뼈와 위팔뼈 사이의 안쪽을 긁어내야 했다고. 게다가 국내에는 없는 수술인지라 외국으로 가야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술 부위가 엄연히 다르지만 통역 문제로 인해 동일한 수술인줄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부위였다고 한다. 덕분에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어서 오른팔이 제대로 안올라간다고... 본인 말로는 팔을 들면 어깨랑 같이 올라간다고 하며, 우연히 피칭존에서 공을 던졌는데 구속이 108km/h가 나왔다고 한다. 1년 운동을 체계적으로 안 했다지만 구속이 저 정도밖에 안 나온다는 것은 확실히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6. 양현종과의 반비례?


같은 소속팀이자 현 기아의 에이스인 양현종과의 엇갈리는 행보가 눈에 띈다. 2년 선후배로 거의 같은 동년배에 둘 모두 전성기 때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투수였지만[30] 공교롭게도 둘이 동시에 좋은 성적을 찍은 해가 없다시피하다.
07~08년까지 양현종은 포텐을 터트리지 못한 유망주였지만, 윤석민은 07년은 불운의 에이스, 08년은 평균 자책점 1위를 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09~10년은 양현종이 드디어 터지면서 좋은 성적을 찍었지만, 윤석민은 부진과 불펜기용, 부상등으로 인해 2년 모두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11~12년은 말이 필요없는 양붕괴 시즌. 2년 합쳐 WAR가 0.46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반면 윤석민은 11시즌 투수 4관왕으로 MVP. 12시즌은 전년도보단 못하지만 준수한 1선발 성적을 찍어주며 주가를 올렸다. 덧붙여 이때 양현종은 부진한 자신과 달리 MVP를 찍으며 잘나가는 윤석민을 보고 이미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13시즌은 양현종이 드디어 부활을 시작했다. 단. 그게 전반기라는게 함정. 후반기는 부상으로 거의 못나왔다. 그래도 비율 성적은 좋은 편이어서 충분히 희망을 보여준 시즌. 하지만 윤석민은 부진과 어깨부상으로 불펜으로 보직 변경하였으나 비율성적 또한 좋지 않아 FA직전해로썬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14시즌은 양현종이 완벽히 부활한 시즌. 윤석민은 노폭전드. 미국에서 완벽하게 말아먹고 이듬해 한국으로 복귀했다.
15시즌은 양현종이 무려 WAR 8을 넘게 찍으며 압도적인 리그 투수 1위, 윤석민도 마무리 투수로서 30세이브에 리그 구원투수 WAR 1위를 찍으며 둘 다 성공한 시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윤석민이 본업인 선발투수가 아닌었던게 옥의 티.
16~17시즌은 양현종이 각각 200이닝, 20승을 찍어주며 이제는 KIA의 토종 에이스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했지만, 윤석민은 16시즌은 잠깐 보이더니 17시즌은 통째로 사라졌다.
18시즌은 역시 꾸준한 양현종이 sWAR 리그 5위, 국내 선수중에선 2위를 찍으며 여전히 리그 탑급 에이스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윤석민은 0승8패 11세이브, 40이닝, 평균자책점 6.75 라는 재앙급 성적을 내면서 역시 무너졌다.
19시즌, 양현종은 비록 초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규정 이닝 투수 최하위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미친 페이스로 평균자책점을 2점대로 끌어내리며 결국 리그 평균자책점 1위로 시즌을 마쳤고 WAR도 리그에서 투타 종합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윤석민 이 해 아예 1군 무대를 밟지조차 못 했으며 이젠 팬들 사이에서 관심조차 없을 정도.
두 선수가 선발로 동시에 활약하는 것은 기아팬들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윤석민까지 완벽 부활을 한다면, 기아는 리그 탑급의 국산 원투펀치를 보유 할 수 있다. 다만 이제 윤석민의 부진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면서 거의 포기 상태. 그리고 2019년 12월 13일자로 윤석민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7. 여담


  • 원래 등번호는 20번이었으나 2010년에는 28번을 달았다. 그러나 2010년 성적도 부진했고 안 좋은 일에 휘말려서 28번을 반납하고 21번을 달았다.[31] 국제대회에서는 이승호(작은승호)와 진갑용이 쓰고 있는 번호다 보니 28번을 달았지만 좋은 의미로 남았다. 해외 진출 후 복귀 때에는 다시 20번을 달았다가 2018년부터는 본인과 아내, 아들의 생일 일자와 동일한 24번으로 변경했다.
  • 마구마구를 아주 잘한다고 한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 김현수와 마구마구 대결을 해서 이겼다. 임창용을 가지고 있다고. 기사에 의하면 마구마구에서 닉네임을 실명으로 쓴다고 한다. 자기 소개를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어느 날도 마구마구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니가 윤석민이면 난 이종범이다, 선배한테 인사해야지? 라는 드립을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 꼽은 바 있다. 2009년 8월 18일에는 자기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s.m이라는 마구마구 클럽을 만들어서 가입신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초딩은 제외하고. 참고로 다이어리가 올라온것은 16시. 즉 등판하기 2시간전에도 마구마구 생각을... 마구마구에서는 자기 자신을 선발로 사용하는 타이거즈 올스타 덱을 사용하다가 중후반 쯤에 3엘리트를 비롯 괴악한 카드를 교체하는 잡덱으로 변모한다고 한다. 4월에는 이병규 엘리트를 획득(3이닝 10실점한 그날)하여 엘리트카드를 4장째 보유중. 휴식일에 마구마구에 출몰하여 이벤트성으로 유저들과 플레이한다고 한다. 이 마구마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점으로 인해서 올스타전 시기에 김현수와 함께 켠김에 왕까지출연했다.
  • 광주댐, 석민어린이 등 별명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별명은 석개. 16연패 기간내내 KIA 갤러리에서 윤석민 개새끼 해봐라는 꾸준글이 올라왔고 그것이 별명화돼버렸다. 윤석민 본인도 윤석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트위터에서 밝혀졌다... 본래 뜻을 알고 쓰는건지 아니면 2011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면서 석개가 윤석민 개쩔어로 변형되면서 그 뜻인줄 아는건지는 본인만 알듯... 나중에 나쁜 뜻인줄 알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야구 갤러리 한정으로 타팀 팬들에게는 윤복서,[32] 윤공황[33] 등으로 불린다. 이후 ~개 가문은 '호투하는 KIA 토종 선발'로 용어가 바뀌면서 붕개로 이어지고, 이민우도 잠시 식개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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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 가다 윤섹민이라고도 불린다. 싸이에 올린 위 글 때문에... 덕분에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PC방에서 싸이월드 로그아웃 하지 않은 상태로 나가버렸다가 생긴 해프닝인 듯.
  •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kt wiz , SK 와이번스 , 윤석민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던 사이이다. 타자 윤석민은 85년생으로 투수 윤석민의 동네형이자 선배. 심지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서로가 이름을 몰랐다는 것. 투수 윤석민은 어릴 적 타자 윤석민에 대해 "그 형은 어릴 때부터 덩치가 워낙 크고 힘도 세서 동네 골목대장이었고, 놀다가 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많이 때리기도 해서 같이 놀면서도 우리들끼리는 무서워하던 형이었다. 특히 지금은 내가 키가 좀 더 크지만 아직도 그 형만 보면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무서울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예로 동네에서 같이 야구할 때 내 방망이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슬슬 피한 적도 많다고 한다. 투수 윤석민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나서도 어릴 적 이야기를 주변 선수들에게도 많이 해서 소문이 났는데, 타자 윤석민은 "내가 애들 괴롭히고 그랬다는 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둘 사이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있었지만 투수 윤석민과 타자 윤석민이 서로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같은 해에 리틀야구단에 들어가면서 이름이 호명되어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때 '윤석민'이라는 이름이 두 번 불려서 당황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투수 윤석민은 그 동명이인이 본인이 무서워하던 동네 골목대장 형이었다는 게 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타자 윤석민은 지금의 투수 윤석민을 "어릴 때부터 체격도 작고 말라서 항상 약해보였다."고 기억하며 지금의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이 사항은 구리 리틀야구단 시절에는 타자 윤석민이 투수, 투수 윤석민이 배터리를 맞추던 포수였다고 한다. 사실 중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도 둘의 인연은 있었다. 많이 야탑고등학교 졸업으로 나와있어 둘의 인연이 중학교 때까지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투수 윤석민은 인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투수 윤석민은 야탑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이후 계속 다른 팀에서 활동하여 운명적인 인연(이름+동네+학교+야구)인 것 치고는 절친 급은 아닌 듯 하지만, 모 스포츠 신문 동명이인 특집에서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서로 더 잘 되기를 응원한다고 하는 등 친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사이가 나쁜 건 전혀 아니다.
  •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타자 윤석민윤희상와 함께 어린 시절 동네 야구를 같이 했었다고 한다. 이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3명 다 리틀야구단에 지원을 했고, 200명 중 25명이 뽑혀서 구성됐었는데, 3명 다 리틀야구단에 뽑혔었다고 한다. 구리 리틀야구단의 경우 이 3명의 선수 외에 두산 오재일도 구리 리틀야구단 출신이다.[34]
  • 2011년도의 화려한 성적을 재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야구게임에서 매우 놀라운 성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구마구에선 상급 레어에다가 후에 엘리트 카드가 추가됐으며,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1년에 투타 한장씩만 만든다는 EX 카드로 등장했다. 2014년 미국 진출로 인해 마구마구2014에서는 '박규환' 이라는 가명으로 바뀔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복귀로 최근 업데이트 이후 다시 본명으로 돌아왔다.
  • 2011 시즌 중 트위터를 개설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비교적 트위터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글 올리는 속도가 무섭다. 비시즌 기간에 글이 많이 올라온다.
  • 201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기록한 풀백 윤석영이 윤석민의 6촌지간이다.# 어렸을 때에는 숨바꼭질도 하고 축구도 했던 사이였다고. 또한 SK 와이번스의 윤석주도 투수 윤석민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윤석영와 윤석주도 육촌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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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낙 어린이 이미지도 강하고 강민호, 양준혁 등이 워낙 머리가 큰 것으로 유명해서 묻히는 감도 있지만, 의외로 대두의 소유자. 실제로 덕아웃에 있는 사진이나 다른 선수들과 어울려서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머리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아주 멀리서 줌으로 당긴 화면은 원근법이 사실상 무시되는 것이 맞다. 근데 뒤에 있는 사람이 앞에 있는 사람보다 커질 순 없다. 비교대상자는 김원섭. 윤석민이 말하길 김원섭이 머리가 작아서 유독 그래보였다고.
  • 2016년 신인연기자 김시온과 약혼식을 했다는 뉴스가 떴다. 시즌 후 결혼할 예정이라고. 여담으로 김시온의 모친은 배우 김예령씨다. 12월 24일 아버지가 되었다.
  • 2017년 충남 소재 모 대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정 모씨가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10여년 전 정 씨가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였던 시절 현 KIA 선수인 제자에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던 사실이 밝혀졌다. KIA 선수단에서 야탑고 출신은 윤석민과 박정수 둘 뿐이고, 정 씨가 코치로 있었던 시기를 추론하면 윤석민이 피해자였던 것으로 나온다.
  •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SK의 3라운드 지명을 받은 윤석주 선수의 사촌형이다. 참고로 둘은 같은 야탑고를 졸업했다.
  • 전 대통령 이명박을 닮았다(...). 그래서 별명이 윤명박... 그 외에 손흥민과도 정말 많이 닮았다.
  • 2020년 9월 현재는 광주에서 거주한다고 한다.
  • 은퇴 후는 완전히 골프에 맛들렸고 KPGA 2부 투어 예선에 나간적이 있다고 한다. 실력은 70타대 정도라는 증언이 있는데 이정도면 아마추어는 평정한 레벨. 골프 관련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에 종종 출연하고 있어서 은퇴 이후로는 야구보다 골프계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 2020년 2월 재활 중에 골프를 치고 다녔다는 의혹에 대해 자신은 절대 아픈 채로 골프를 친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반응들은 그다지 좋지 않은게, 스크린골프에 빠졌다는 글이 2017년 해당 골프장 인스타에 올라왔고 당해년도 윤석민은 재활을 한다며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다. 윤석민이 은퇴 이후에도 여론이 좋지 않은 큰 대목이다.
스톡킹 19-1회 영상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말하길, 겨울시즌때 사람들을 몰아서 만나고 오버스로에서 사용하는 어깨근육과 골프스윙자세에서 사용하는 어깨근육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사실 야구하는데에 지장이 있는 부상이지만 골프하는데에는 지장이 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부분에 있어 논란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야구선수들이 시즌을 치루면 개인적 대인관계가 허락되는 기간이 겨울에 한정되기 때문에 이해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윤석민은 시즌 중에 1군도 2군도 제대로 뛰지 않았고 심지어 감독과 코치도 터치하지 않는 말년병장과 같은 포지션에서 고작 겨울에만 골프 쳤다고 하는 핑계가 먹힐리가 없다. 이미 시즌중에 스크린골프장에 자주 드나든다는 썰이 돌 정도였으니...그리고 2020년 12월에 정식 골프 선수가 되었다....
  • 리틀야구 시절 홈런을 27개 쳤었다고 한다. 타자가 아닌 투수로도 괜찮았는데, 당시 키가 작아서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윤석민 본인 피셜 최고 구속이 125km였다고 한다. 다만, 2학년 ~ 3학년 넘어가는 시기 키가 급속도로 성장[35]하여 구속이 15~20km 상승됐었다고 한다. 키가 늦게 커서 프로 이후에도 3cm가 성장했다고..
  • 2011시즌 화려한 성적에 대한 비하인드로 나는 가수다 임재범의 모습을 보고 겸손한 마음에서 거만한 마음으로 마음을 바꿨었다고 한다. 그 뒤로 성적이 좋아졌는데 2011년 승수인 17승 중 5월~9월 사이 기록한 승이 16승에 이룰 정도라고 한다.
  • 2008시즌 10승을 달성한 7월 15일 경기 2회말때 강민호에게 아리랑볼을 던지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윤석민 팜볼 연습 본인 썰에 따르면, 올림픽 최종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결정된 월요일에 소식을 듣고선, 불펜 포수와 함께 다음날 새벽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문제는 그게 선발 등판일인 화요일(...) 6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되는데 6시 7분까지 술에 취해서 뻗어있었다고. 취기가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취해있어서 실실 웃으면서 던졌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날 7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것...... 2020년 10월 스톡킹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로 보완되었는데, 발표가 난 이후 이대진 선수가 먼저 한잔 하자고 했다가 이대진 선수가 던지고 마셔. 라고 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 2020년 10월 스톡킹에서 오랜만에 근황을 알렸다. 갑자기 야구가 하고 싶어져서 공을 한 번 던져봤는데 직구가 108km/h가 나올 정도로 어깨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고 한다. 그가 돈값을 못했다고 비난하던 이들이 많던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 2013시즌 이후 FA 선언을 했었을때 2월 이후까지 계약이 안 되다보니 국내 5개구단이 컨텍을 했었다고 한다. 당시 계약 규모도 100억 이상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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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 교문초에서 다니다가 구리초로 전학.[가사] KIA의 언터처블 윤석민 ~ KIA의 윤석민 윤석민 ~ KIA의 언터처블 윤석민 ~ 윤석민 사랑해요 ~[듣기] #[2]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3] 타자로서 첫 프랜차이즈 스타는 이용규가 있다. 비록 팀레전드의 위상으론 가진 못했지만[4] 배영수는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해 에이스는 아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무난히 합류해 평균자책점은 좀 높지만 10승 이상 책임질 정도는 되었으나 한화 이글스 이적 이후 다시 몰락, 손민한은 부상에 FA먹튀, 횡령 사건으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NC 다이노스에서 마당쇠 노릇을 하다 은퇴. 신인시절부터 혹사에 시달린 박명환은 LG 이적 후 부상과 부진 등으로 FA먹튀 소리를 들으며 몰락, 2014 시즌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으나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조용히 은퇴했다.[5] 유원상 항목에서도 볼 수 있지만, 팬들의 비아냥섞인 별명에서도 드러났듯 2010 시즌의 유원상의 성적이 순수 국내파 선발중에서 손꼽힐 만한 성적이라는 사실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해석은 보는 이에게 맡긴다. 이 시즌 윤석민은 시즌 초 2009 시즌 우승의 주역이었던 유동훈, 손영민, 곽정철 등 불펜요원들이 2경기에 한 번 꼴로 블론질을 일삼는 팀 상황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본인의 선발로서의 부진과 함께 부진한 중간계투를 메꾸기 위해 불펜으로 전환되고 갖가지 사건들과 함께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조.) 결국 장기간 마운드에서 사라졌다.[6] 공교롭게도 두 투수 모두 전천후로 불펜 알바를 자주 뛰었다는 점과 높은 기대치에 비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시즌이 많았다는 공통점이 있다.[7] 별명의 어원은 참조.[8] 당시 A급의 기준은 류현진, 오승환 등 특급투수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9] 은퇴 후에 야신야덕에 나와서 밝히기를 자신은 포크볼을 던질 정도로 검지와 중지가 벌어지질 않아서 유일하게 포크볼만 못던진다며 그 대신에 선택했던게 비슷한 매커니즘의 팜볼이였다고 한다.위의 포크볼 사용 경험과 합쳐보면 포크볼을 이래저래 던져보다가 영 아닌거같아서 선택했던 구질이였단 이야기.실제로 자기 구질을 해당 영상에서 짚어주는데 포크볼은 말하지 않고 던지지도 않았다.[10] 써클 체인지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11] 은퇴 후 나온 야신야덕에서 짚어준 자신의 구종은 포심/고속슬라이더/커브/서클체인지업/팜볼 5종으로 이 중 9분할존을 맞추는 미션에서 사용한 구질은 포심/슬라이더/서클체인지업/팜볼이였다.10구를 던지는 미션에서 변화구를 강제로 섞어서 4구 던지게 한건데 슬라이더 제구가 상당히 잘 되서 패스트볼 던지기 전에 감잡는 용으로 슬라이더를 쓰는 독특한 모습도 보여줬다.그 외 팜볼도 가운데에 찔러넣는 정도의 제구는 가능함도 증명했다.[12] 변화구를 지나치게 많이 던지면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직구 제구에 문제가 생긴다. 변화구 비중이 본격적으로 높았던 2010 시즌 윤석민의 직구 로케이션은 전에 비해 공 두 개 정도 높아졌다.[13] 2006년에 특유의 낙차 큰 슬라이더로 붙은 '광주댐'이라는 별명에서 윤석민이 얼마나 믿음직한 마무리였는지 알 수 있다.[14] 굳이 류현진만이 아니어도 국대 3인방하면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을 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2014시즌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류현진과 다른 둘의 차이는 비교 불가 수준으로 크게 벌어져버렸다는 점.[15] 윤석민은 국대에서 14경기 38.2이닝을 뛰며 평균자책 1.40 5승 1패 1세이브라는 미친 퍼포먼스를 자랑했으며 윤석민이 고평가된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16] 윤복서 사건 같이 본인이 망가뜨린 전력도 있다.[17] 류현진은 200이닝 이상 소화한 시즌이 2번, 올림픽 차출이 있었던 2008년과 부상에 시달려 커리어 로우를 찍은 2011년을 제외하곤 모두 180이닝을 넘겼다.[18] 1년에 2, 3번은 근육통으로 2군에 내려갔다 왔다.[19] 아시다시피, 선동열의 투구패턴과 흡사하다. 중요한 건 그렇게 던진다고 선동열이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난 적이 없다는 것.[20] 정확히 말하자면,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날은 전반적으로 제구가 안 되는 날이다. 윤석민의 경우, 플레이트의 좌우를 이용한 코너웍은 빼어나지만 높낮이 제구가 안 되어 통타당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21] 좌완으로 쳐도 명백히 앞선 류현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김광현 빼면 없었다. 용병쪽은 동시대에 흥했던 좌완이 특별히 없기도 했고.[22] 이건 반 기아 성향이 심한 DC나 네이버에서 두드러진다. 한창 저평가가 심할 때는 송은범과 별 차이도 없는데 팀 잘 만나서 거품만 오지게 낀 선수라는 소리도 들었을 정도.[23] 위에도 윤석민의 이닝 소화력을 지적하는 글이 있지만 매년 불펜 알바로 투입되면서 선발 로테이션이 엉킨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선발 윤석민의 평균 소화이닝은 6.2이닝으로 나쁜 편이 아니다. 적어도 윤석민이 선발등판하는 날에는 7회까지는 편안하게 야구를 시청할 수 있다. 물론 등판일정을 조절해줘야 하지만.[24] 다만 윤석민은 노포크에서 뛰면서 구속 및 구위 저하 논란이 있었기에 이것이 일시적인 하락인지 아니면 노화 혹은 부상으로 인한 기량저하인지에 대한 시각에 따라 오버페이론이 제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리스크가 분명 존재했는데도 기아는 이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25] 승리 기여도로 보면, 최소한 16시즌은 밥값을 못했다고 볼 수 있다. 15년 KIA 복귀 시즌에 30세이브를 달성하며 sWAR 3.87를 찍었지만, 2016년 다시 선발로 뛰다 완투패를 한 뒤, 어깨부상으로 2군을 다녀온 뒤 다시 마무리로 뛰며 부진한 탓에 WAR이 0.88까지 하락했기 때문. 참고로 기여도가 1를 넘지 못하면 평균적 대체선수를 기용하는게 차라리 낫고 0 이하인 경우는 빼도박도 못할 먹튀로 본다.[26] WAR는 누적 스탯이기 때문에 부상으로 시즌을 대부분 날려먹은 상황에서 WAR 0.87 이라고 먹튀라는 건 절대 아니라는 각주가 있었으나 먹튀 맞다. 많이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달라고 그 돈을 주는건데 성적은 괜찮았지만 많이 뛰지 못했으니 그냥 먹튀다. 다만, '부상만 아니었어도....' 같은 약간의 동정어린 시선을 추가적으로 받을 뿐. 괜히 사이버투수, 사이버타자라는 조롱성 표현이 있겠는가.[27] 손승락의 경우 2017시즌에는 팀 역대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워낙 롯데 자이언츠의 전임 마무리 투수들이 처참했던지라 16, 18시즌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팬도 꽤 많았다. 정우람도 4년 내내 꾸준히 리그 최상급 좌완 마무리투수로 군림하여 팬들의 만족도는 괜찮은 편이다. 다만 일단 받은 액수가 워낙 큰지라 오버페이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는 편.[28] 커쇼를 포함한 선발진 부진중에도 류현진의 등판일수에 비해 승수를 잘챙겼었다. 다만 사타구니 부상으로 DL로 내려가며 다져스가 무너지고있다는게 문제지만.[29] 5월 중 감기 몸살에 걸리 뒤 밸런스를 잃어 다시 무너지긴 했다만 아예 부상으로 등판을 못한 것은 아니었고, 추격조로 등판하며 가을야구에서까지 그럭저럭 던졌다.[30] 양현종은 현재진행형.[31] 그리고 팀 후배 손영민은 자신이 달던 배번 21번을 선배에게 빼앗겼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안습.[32] 문에 주먹질하다가 부상당해 팀 16연패의 단초.[33] 공황장애 기사.[34] 다만 오재일은 한 번 리틀 야구단 테스트에 한번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35] 12cm 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