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호
1. 개요
前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의 포수.
2. 선수 시절
2.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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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원래는 한화 이글스의 백업포수였으며 1996년에 입단해, 2008년까지 13년 동안 한화 선수로 생활을 했다. 그 뒤 평범하게 1.5군급 선수로 포수진을 지켰으며, 2001~2002시즌은 군복무로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신경현의 백업포수로 자리잡았으며, 2006년에 백업으로서 제 몫을 해주어 준우승을 했다. 1999년에 우승을 하긴 했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없어서 1999년 우승반지는 못꼈다.
부상으로 빠진 백업포수 현재윤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삼성 2군 타격왕 출신인 내야수 이여상과 트레이드되어 정들었던 한화를 떠나고 삼성으로 이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둘다 망했어요.
별명은 '''2호기'''로 한화의 포수 신경현과 이니셜이 같아서 SKH1호기와 2호기로 불리던 것이, 이니셜은 빠지고 그냥 2호기가 되었다. 신경현이 주로 주전포수로 뛰었기 때문에 2호기라 불리지만 사실 입단은 심광호가 더 빠르다. 그저 안습.[6] 신경현은 수비형 포수, 심광호는 공격형 포수로 인식되며 사실 1호기와 2호기가 합체하면 완벽한 포수가 탄생하는 농담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둘의 장점을 합쳐도 A급 선수가 되진 않았다.
일단 타격도 타격이지만 어깨가 매우 약한, 일명 '소녀어깨'로 도루 저지율이 처참하다. 장타율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한화의 붙박이 지명타자 이도형의 존재 때문에 타자로서도 제대로 나서지 못했던 안습한 선수. 그래서 한화팬들조차 삼성이 2군에서 괜찮은 실력을 보인 유망주 이여상과 심광호를 트레이드했을 때 당황해하기도 했다.
삼성은 주전포수 진갑용의 부상이 장기화되고, 백업포수인 현재윤조차 다치자 임시 땜빵으로 급하게 데려간 듯하다.[7] 선동열 감독은 현재윤이 돌아오면 진갑용과 현재윤을 주전으로 겸용하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오승환에게 홈런을 뽑아낸 적도 있지만, 인상적인 기억은 그것 뿐.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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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자마자 바로 이어진 한화의 경기에 출전하는 2호기. 간지나는 눈빛을 시전하며 점퍼를 벗는 모습으로 인해 2호기 출동! 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그러나 간지나는 장면은 저것 하나뿐이었다. 포수로 출전한 경기에서 그동안 진갑용으로 눈이 높아져 있던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며 '''경기를 (여러가지 의미로) 지배하는 포수'''라는 소리를 들으며 현재윤의 컴백을 학수고대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삼성팬들은 '''저런 포수를 보면서 어떻게 견뎠느냐며''' 한화팬들에게 반문하기도 했다.[8]
냉정하게 말하자면, 90년대 후반 주전포수인 김영진의 재림.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윤 컴백 후 2군행. 2009 시즌에는 2군에서도 타격 성적이 2할이 안 되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삼성은 계투진에서 작게나마 도움이 되던 지승민을 두산으로 보내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채상병도 영입했다.
2010년 시즌이 끝나고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서 방출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010시즌 종료 후 11월 LG 트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은 다음 입단했다.
2.3. LG 트윈스 시절
2.3.1. 2011 시즌
LG에 입단하고 조인성의 백업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지난 해에 그렇게 욕먹었던 투수리드면에서는 환골탈태해서 상당히 능동적인 리드를 했다. 최소한 투수리드에서만큼은 조인성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 든든한 백업포수가 되었다.
그러나 송구는 여전히 안습이라 오재원에게 한 경기 4도루를 허용당하기도 했다. 원래 어깨자체가 타고난 선수가 아닌지라 어쩔 수 없지만, 특정 선수에게 도루를 4개나 허용한 점은 아쉬운 점이다.
벤자민 주키치의 전담 포수라 1주일에 한두 경기는 꼬박꼬박 선발로 출장하는데, 늘 1안타씩은 뽑아내서 타격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온갖 궁합 테스트를 해보아도 주키치와의 엄청난 궁합을 자랑했다.######
그러나 2011년 7월 도루저지를 한개도 못해내며 김태군에 밀리며 2군으로 갔다.
8월 조인성의 극심한 부진에 따른 문책성 2군행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왔다. 도루 저지는 여전히 시망이지만 그래도 조인성의 부재로 인한 안방마님 자리를 맡아 괜찮게 수행하였다. 무엇보다 같이 1군에 있는 포수가 당시 아직 성장이 필요한 김태군인 걸 생각한다면...
2011년 8월 26일 경기에서 나름대로 간지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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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1일 SK전에서 기습번트를 실행했다. 3루수가 멀찍이 서있는 것을 보고 코치가 귀뜸을 해줬고, 심광호는 깔끔하게 3루 라인을 타는 기습번트를 했고, 1루에서 세입됐다. 이후 이어진 이대형의 망한 번트가 SK 포수의 삽질로 주자 올세입으로 이어져서 심광호의 번트는 팀이 3:0 으로 귀중한 승리를 얻어내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거기에 기대 이상의 안정된 투수리드로 투수들의 호투에 보이지 않는 역할도 해냈다. 무엇보다 투수들이 실수해도 이 분처럼 레이저를 쏘지 않고 엄마 미소로 안정시키는점이 인상적이었다.
2.3.2. 2012 시즌
주전 포수였던 조인성이 FA로 팀을 떠나버린 2012년 시즌 LG의 주전 안방마님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조윤준, 유강남이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서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유일한 베테랑이어서인지 결국 삼성과의 2연전에 선발로 낙점되었다. 극악의 도루 저지율과 타격으로 우려를 샀지만, 숨은 MVP라 불릴만큼 공격과 수비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다.
또한 4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전경기까지 2자리수 안타를 뻥뻥 때리던 롯데 타선을 김광삼 선발 투수 및 불펜 투수들과 호흡을 맞춰 0점으로 묶었다. 타석에서도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5회말 무사 1루에서 2루타를 쳐 타점을 올린 것이 이날의 결승타가 되었다. 팀은 0:4로 승리.
하지만 4월 13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전에서는 타석때마다 찬스를 계속 날려먹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심광호는 이날 5타수 1안타를 기록했는데, 6회말에는 2사 만루 찬스에서 삼진을 당했고 8회말에는 2사 1, 3루에서 삼진을 당했으며, 특히 10회말 2사 만루에서는 풀카운트에서 스탠딩 삼진을 당하며 LG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고, 11회초에는 리즈와 함께 '''16개 연속 볼'''을 합작하여 팀의 8:6 패전의 원흉이 되면서 LG팬들을 멘붕시켰다.
심광호의 4월 20일 현재까지 타율은 2할 7푼 3리로 테이블 세터인 이대형보다 '''높은 수치이다'''. 게다가 백업포수인 유강남은 적응 탓인지 시범경기 때 잘하던 도루저지조차 하나도 없고 선발 출장 시 승률도 상당히 낮은 상태이다.[10] 노장인 탓인지 좋은 활약에 비해 상당히 평가가 박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적인 송구 능력 때문에 상대팀 주자들은 1루에만 나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루를 시도할 정도라 심광호 출전 경기일 경우 하루에 도루 4번 이상은 기본으로 허용당했다. 4월 28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도 단타를 연이어 2루타로 만들어주셨다. 도루 저지를 모두 실패했다는 말이다. 아예 던질 엄두도 못 낸 거까지 포함하면 더 많았다. 2루송구 한번은 자기딴에는 이악물고 던졌는데 2루까지 2/3밖에 못가서 2루수인 서동욱#s-1이 앞까지 뛰어가서 송구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2007년 이후 5년만에 도루를 성공한 거랑 멋지게 번트 한 번 한 것 때문에 묻혔다. 번트 자체는 실패였지만 2012시즌 들어 번트만큼은 가장 안정적으로 잘 댔다. 네이버 중계창에서도 번트 심광호 선생이라고 할 정도.
7월경 무릎 수술을 받은 후 재활을 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부상이 심한 상태였는지 10월 2일 구단으로부터 계약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고 사실상 방출되었다.
결국 LG는 베테랑 포수가 떠나고, 조윤준, 윤요섭과 같은 경험이 적은 포수밖에 없게되자 삼성에서 노진용, 김태완, 정병곤을 주고서 현재윤을 사왔다.
하지만, 현재윤도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렸기에 심광호를 더 지켜보는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전반기는 윤요섭이 그럭저럭 잘 해줬고, 서동욱을 내주면서 최경철을 트레이드로 영입해 써먹고있다. 시즌 초기 포수문제로 고민을 앓았던거에 비해선 다행인 셈.[11][12]
3. 지도자 시절
그 후 유승안 경찰청 감독에 부름을 받아 경찰청 야구단 배터리 코치로 취임했다. 하지만 1년만에 최승환으로 교체되었다.
4. kt wiz 전력분석원 시절
2014년, 코치를 그만두고서 kt wiz의 전력 분석원으로 활동하고있다.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불어불문학과 학사다. [2] 최근 들어 석사 쪽에 도전 중이라고 한다.[3] 무!적!L!G! 심!광호! 워어어어 워어어어어~(×4) 2011시즌 한정 응원가이며 너무나도 저퀄이라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쥐도새도 모르게 잊혀졌다. 이 응원가는 약간 수정되어 2015시즌 임훈의 응원가로 나오는데 이 마저도 얼마 선보이지 못하고 교체된다. 여러모로 안습의 응원가.[4] 가사는 LG의 심광호~ 오오 워우워어어어~ 안타를 날려버려 무적 LG 안방마님 심광호~오오(반복)[5] LG 트윈스 시절에 쓰던 응원가이며,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허경민과 동일한 응원가를 썼었다.[6] 다만 신경현은 94학번 75년생인데 대졸인지라 1998년에 입단했고, 심광호는 96학번 77년생 고졸로 1996년에 바로 입단한지라 1, 2호기 구분이 잘 됐다.[7] 그리고 이때부터 삼성은 진갑용 이후를 대비한 포수 유망주 수집에 열을 올리게 된다. 매년 신인드래프트와 신고선수로 포수를 뽑더니 결국 2012시즌 이지영을 발굴한다.[8] 2006년 시즌 심광호의 출전 비중은 8개구단 백업포수중 가장 높았다.[9] 사실 저 당시 이대수는 레다메스 리즈의 강속구를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상태였고, 심광호는 그런 이대수를 달래주고 있었던 것. 이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나지 않았다. [10] 4월 21일 현재 심광호 선발 출장 시 '''6승 1패''', 유강남 선발 출장 시 '''1승 3패'''.[11] 비슷한 사례가 2008년에 있었다. 은퇴 후 코치로 있던 김정민이 선수로 복귀하자 최승환이 시즌 도중 포수 이성열과 함께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것. 최승환이 조인성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조인성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고는 해도 그나마 있는 포수를 내보낸 처사는 이해하기 힘들었다.[12] 실제로 2007년 최승환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조인성은 거의 전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2009년 김정민이 무등구장에서 부상당하고 시즌아웃되자 조인성이 미친듯이 혹사당해야했다. 그러자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모두 지친 조인성이 터뜨린게 심논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