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 소개
청룡기, 황금사자기와 더불어 고교야구 초창기 3대 메이저 대회.
1949년부터 대한야구협회와 부산일보 공동주최로 '''쌍룡기''' 명칭으로 열렸으며, 주로 7월에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1974년 대회부터 '화랑대기'로 명명되었다.
원래는 국제신문이 주최했으나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으로 국제신문이 잠정 폐간되어 부산일보가 후원했으며,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생기면서 폐지되었다.
고교야구 초창기인 40~60년대에는 전국대회가 청룡기, 황금사자기, 쌍룡기, 전국체전, 도시대항전밖에 없어 메이저 전국대회의 위상을 지니고 있던 지방대회였으나 1967년 대통령배, 1971년 봉황대기가 신설되어 서울에서 열리게 되면서 부산 쌍룡기의 위상이 메이저에서 지방대회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79년부터 대붕기가 신설되어 화랑대기와 같은 시기에 열림에 따라 그 위상이 더욱 내려갔다.
그러나 청룡기 / 황금사자기에 이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대회였기 때문에 고교야구 주말리그 출범으로 인한 대회 폐지 때 반발이 심하였다. 지방대회의 공통적인 특징인 개최지 소재 고교의 역대 우승/준우승 횟수가 많다.
2. 역대 우승, 준우승팀
3. 역대 우승교별 우승횟수 및 우승년도
4. 이모저모
- 2~4회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으며, 11회와 25회 대회는 운동장 사정으로 개최되지 못하였다.
- 6월의 대구 대붕기와 8월 봉황대기 중간에 개최되는 관계로, 이 기간은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라 우천 순연이 있을 시, 한 팀을 두 개로 쪼개서 출전시킨다거나, 화랑대기 토너먼트에서 쭉쭉 올라갈 때 봉황대기 1회전은 버린다는 각오로 게임을 뛰기도 하였다.[11]
- 두 번의 대회 3연속 제패가 있었다. 22~24회의 경북고, 56~58회의 덕수정보고. 덕수정보고는 4연패를 목표로 59회 대회에 참가했지만 8강전에서 경남고에게 9회말 끝내기 1실점으로 2-3으로 패배하며[12] 4연패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 광주일고와 광주동성고(광주상고 포함)가 이 대회와는 인연이 없다.
- 대회장소(부산)과 대회시기(여름 휴가철)탓에 대회보다 부산에서 휴가를 즐기는 게 주목적이라 카더라
- 1경기가 08:30분에 시작한 적이 있었으며, 선수들은 연신 하품을 참으며 게임을 뛰기도 하였다.
- 영화 '굿바이 홈런'의 시대배경이 되었던 대회가 해당 회차 61회차다.
5. 관련 문서
[1] 이 당시, 박찬호가 3학년[2] 창단 이후 첫 전국대회 우승[3] 결승전은 사직야구장에서 개최되었으며,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KBS가 전국으로 생중계하였다[4]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봉황대기,전국체전 등 4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5] 김응룡 당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전국대상 무차별적 스카우트에 힘입어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했으나, 서울대회 2관왕은 차지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광주 무등기와 부산 화랑대기 2관왕에 그친다.[6] 경남중 포함[7] 부산상고 포함[8] 선린상고 포함[9] 대구상고 포함[10] 동대문상고 포함[11] '09년 화순고는 개성고와의 화랑대기 결승전 바로 다음날에 수원에서 봉황대기 1회전을 뛰어야 했다. 화랑대기 우승도 못하고, 봉황대기 1회전에서도 패배하고 안습이었다.[12] 성영훈과 하준호가 맞대결하여 하준호가 완투승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