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03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2003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2년 6월 6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3. 2차 지명
2002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롯데호텔 벨뷰룸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42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2]
3.1. 지명방식
전년도까지 12라운드까지 치렀던 것이 9라운드로 줄어들어,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각 라운드마다 전년도 순위의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 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들한테 부탁드립니다.
4. 드래프트 평가
- 박경수 나비효과(?) - 일명 박경수 나비효과의 시초가 된 드래프트였다. 1차 지명에서부터 두산과 LG가 동시에 성남고등학교의 내야수 박경수를 노렸지만, 결국 계약금 싸움에서 LG가 승리했고, 두산은 차선책으로 두었던 성남고 투수 노경은을 대신 지명했다. 그리고 2차 지명에서 쏟아질 준수한 유격수 자원을 노렸지만, 여기에서도 쓸 만한 자원은 다른 팀들이 다 채갔다. 특히 드래프트 순번상 가장 노렸던 강명구를 놓치자 타임을 불렀을 정도. 그런데 정작 두산은 신고선수 손시헌이 대박이 나면서 유격수 공백을 깔끔하게 메웠다. 3년 후 손시헌은 선린인터넷고 동창이자 현대에서 방출된 자기 친구를 데려왔다.
- 두산 베어스: 경희대학교에 진학한, 전체 가장 마지막 픽인 오재원이 4년 뒤에 들어와서 골든글러브 후보, 국대 2루수로까지 성장하면서 로또를 맞았다. 박경수 대신 1차 지명으로 뽑은 노경은은 부상과 수술, 멘탈 문제 등으로 인해 잊혀지는가 싶다가 2012 시즌부터 각성했지만 2016 시즌에 은퇴 선언 후 번복사건을 일으키다 롯데로 트레이드되었다. 사실 드래프트에는 없지만 신고선수로 입단해서 그해 시즌 중 1군에 올라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한 손시헌을 데려온 것이 가장 컸다. 거기에 손시헌은 나중에 친구도 데려와 두산의 중견수와 톱타자 고민을 동시에 해결해줬다. 김승회는 두산에서 5선발과 불펜을 오가다가 롯데에서 마무리로 활약했으나, 성적하락을 겪은 뒤 SK를 거쳐 두산에 돌아온 뒤 필승조로 다시 활약하고있다. 정작 상위 라운드에 지명된 전병두와 나주환은 두산에서는 빛을 못 봤고 SK 와이번스에서 우승반지를 꼈다.
- LG 트윈스: 우규민은 초창기에 방화신기의 일원이 되기도 했으나 이후 선발로 3년 연속 10승을 찍어주는 등 쏠쏠하게 활약하다 FA로 삼성으로 떠났다. 이대형도 4연속 도루왕 등 쏠쏠히 써먹었지만 고질적인 삼단분리 타격폼(...)을 못 고쳤고 , 두산과의 머니 게임 끝에 계약금 더 주고 1차지명으로 데려온 고졸 유격수 최대어 박경수는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가 결국 FA로 LG를 떠났다. 이성열은 거포 유망주로 출전 기회를 줬으나 끝내 터지지 않았고, 결국 타팀 가서 터졌다.
- SK 와이번스: 2012년까지 1차 지명으로 뽑은 송은범이 왕조 시절 전천후 투수로 활약해주며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으나, 결국 2013 시즌 중에 KIA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외 선수 중 양승학만 한화 이글스에서 반짝했을 뿐이다. 무슨 베짱인지 송은범은 14시즌 후 FA를 선언해 한화로 떠났고 3년 연속 6점대 ERA로 화려하게(...) 연소되었다. 대신 두산의 1라운드, 2라운드, 5라운드, 7라운드의 선수들이 SK를 거쳤고, 그중 1, 2라운드 선수들은 SK의 왕조를 이끌었다.
- 삼성 라이온즈: 역시 만만찮은 망픽. 일단 당시 대구-경북 지역 팜이[7] 역대급 흉작이었고, 덕분에 1차 지명으로 뽑은 김형근은 병역비리 사건에도 연루되었다가 재검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008년 소리없이 방출되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선수는 2차 1순위로 지명했던, 대주자 전문 요원인 내야수 강명구가 유일하다. 그래도 강명구는 2014 시즌 후 전력 외 통보를 받고 은퇴할 때까지 승부처에서 상대 배터리를 강하게 흔들어 놓는 대주자로 쏠쏠하게 활약해 주었다.
- 현대 유니콘스: 이 해부터 현대의 연고지 문제로 인해 1차 지명권이 박탈되어 해체할 때까지 1차 지명을 할 수가 없었고, 선수 개별 문서가 대부분 없었을 정도로 망픽이다. 그나마 성공한 선수는 2005년과 2007년에 중간계투로 활약한 좌완투수 노환수밖에 없다. 지석훈은 끝내 포텐을 못 터뜨리고 NC로 트레이드된 데다가, 이 둘이 그나마 1군에서 눈도장 찍은 선수이다. 나머지는 전부 버로우...
- 한화 이글스: 1차 안영명, 2차 2라운드 윤규진을 건졌다. 대학무대에서 파이어볼러로 주목받았던 2차 1라운더 장순천은 프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2군 코칭스탭과 대판 싸우는 등 막장인 멘탈만 보여 준 채 임의탈퇴 공시되고 잊혀졌다. 정민혁은 잠깐 동안 1군 경기에 등판하다 2015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었다.
- KIA 타이거즈: 임준혁 외에는 터뜨린 선수가 별로 없다. 그러나 임준혁마저 고효준을 상대로 맞트레이드되어 SK로 이적했다. 고우석도 별 볼일 없었고, 서동욱은 얼마 안 가 LG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넥센을 거쳐 2016년 KIA로 돌아와 쏠쏠하게 활약해주었다.
- 롯데 자이언츠: 박정준은 1년 반짝 후 넥센으로 트레이드, 이인구는 그저 그랬다.김대우는 고려대에 입학해 군복무 까지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지만 결국 안되자 대만 진출까지 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고 결국 2008년 롯데에 입단해 투수로서 완전히 말아먹으며 결국 2011년 말 타자로 전향했다.그러나 기회는 많이 받았지만 초반에 좀 잘하다가 결국 망했으며 2018년 다시 투수로 전향했고 2020년 직구를 버리고 커터를 장착하며 또다시 기대를 받고 있다. 정형순은 지명후 대학에 입학했으나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제대로 뛰지 못하자 롯데가 지명권을 포기했고 이후 타자로 전향해 고향팀인 한화 이글스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신고선수로 입단한 정보명이 그나마 이름을 알렸다.
5. 이모저모
- 2003 신인지명까지 지명한 선수에 대한 권리가 4년이었다. 그래서인지 각 팀마다 이 해 지명된 선수들 중 반 정도는 대학에 진학했다. 또 이들 중 절반 정도만 지명한 팀에 입단했다.
- 롯데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은 김대우는 롯데와의 계약금 차이로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다. 그러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후 상무 입대에, 제대 후 규정까지 어기며 대만 리그까지 진출했으나 결국 2008년 롯데에 입단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끝에 김대우가 받은 계약금은 1억원. 그래도 나오기는 하니 괜찮은건..가?
- 롯데에 4라운드 지명된 정형순은 경희대로 진학했으나 대학에서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경기에 제대로 출장하지 못하였다. 결국 롯데가 지명권을 포기하여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이 과정에서 타자로 전향했고, 입단 이후 정현석으로 개명했다.
- 현대에 3라운드 지명된 노환수는 계약을 앞두고 어깨 수술을 받으며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 삼성에 4라운드 지명된 김영복과 두산에 7라운드 지명된 허도환은 고교 동기로 둘 다 포지션도 포수로 같다. 고교 시절에 주전 포수는 허도환이었고 김영복은 1루수나 3루수로 출장했지만, 정작 김영복이 포수로 더 빨리 지명되었다.
- SK에 5라운드 지명된 구본원은 고려대학교 야구부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고려대 숙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선배들의 구타에 시달려 결국 입학식을 갖기도 전에 자살하고 말았다. 참고로 안산공고 출신[8] 선수 중 최초로 프로 지명을 받았다.
- 한화에 8라운드 지명된 박대원은 입단한 지 1년만에 방출된 뒤 세계사이버대(2년제)에 진학해 3년 동안 뛰고(1년 유급) 성균관대에 편입해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졸업 후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다음 2013년 고양 원더스에 합류해 1년 동안 몸 담은 뒤 2014년 3월 퇴단했다. 이후 대한야구협회에서는 선수 등록 규정을 개정해 프로 팀에 몸담았던 선수들(상무, 경찰청 복무자 제외)은 대학야구에서 뛸 수 없도록 했다. 뒤에 프로에서 일찌감치 방출된 고졸 선수들의 구제 방안으로 이들을 대학야구에서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이해관계가 엇갈려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 삼성에 8라운드 지명된 김형준은 영남대 2학년 말이었던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3학년으로 복학해 야구를 재개했고 자신을 지명했던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
- 두산에 지명받은 허도환은 결국 계약하지 못하고 단국대학교 야구부로 갔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두산이 지명권을 포기해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07년 5월 1군에 올라오기도 했으나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방출, 공익 복무 이후 넥센 히어로즈에 2011년 신고선수로 입단한다.
- 이 해 드래프트의 가장 핫 이슈는 고졸 유격수 4대 천왕이었다. 공수주 가장 이름을 날리던 박경수, 거포 유격수로 기대되던 서동욱, 빠르고 수비가 좋다는 평을 받던 지석훈, 건실하고 깔끔한 수비를 한다는 평을 받던 나주환이 4명으로, 여기에 대학 최고의 유격수였던 강명구도 상당히 기대받던 유망주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역대급 내야수 드래프트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9] 이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박경수로, 박경수를 영입하기 위해 물밑에서 LG와 두산의 암투가 벌어진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자세한 내용은 박경수 항목 참조.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가장 처진다는 평을 듣던 나주환이 SK에서 우승반지를 세 개나 끼는 등 황금기를 보냈고[10] , 나머지 셋은 드래프트 당시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였다. 이후 유격수 4대천왕으로 유명해진 2009년 드래프트에 비하면 활약이 아쉬운 상황. [11]
[1] 연고지 문제로 이 해부터 2008년 드래프트까지 1차 지명에서 제외되었다.[2]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3] 경희대 진학 후 지명권 포기, 경찰청 전역 후 넥센 히어로즈에 신고선수로 입단. 現 KBO 심판.[4] 대학 중퇴 후 2006년 신고선수 입단.[5] 아래 설명 참조.[6] 경희대로 진학하나 졸업후 2007년 두산 입단[7] 사실 2000년대 들어 대구-경북 지역 팜은 2002년 권혁, 2004년 박석민, 2009년 김상수를 제외하면 프로에서 자리잡는 선수가 거의 드물 정도로 흉작이었다. 그나마 2007년 뽑은 백정현 정도가 데뷔 10년이 다 되어서 조금 가능성을 보이는 중.[8] 엄밀히 말하면 공주고에서 전학한 선수다.[9] 광주일고의 김주호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10] 그나마도 14시즌부터는 2루수로 전향했다.[11] 손시헌은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나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FA로 4년 30억 계약까지 이루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