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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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A 타이거즈의 2군 투수코치.'''1구 1구 신경쓰다보면 성적은 그림자처럼 따라올 것으로 믿습니다.'''
-2016년 4월 2일, 1792일 만의 세이브를 거두고 MVP 인터뷰에서-
별명은 '''곽시인'''[1] , 곽미남,[2] , 강용석, 곽꾸역, 곽똥, '''똥정철, 곽설사'''[3] , 곽모지리, 곽작가[4] , 곽조연[5] , 곽소심[6] .
2. 선수 경력
2005년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무릎, 어깨, 팔꿈치 등의 연쇄 부상(...)으로 2년간 병원 신세를 지고 2007년이 되어서야 1군 무대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된다.
2008년부터 드문드문 1군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는데, 시즌 막판 목동 히어로즈전에 깜짝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와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2.1. 2009 시즌
2009년 시즌이 시작하자 조범현 감독의 구상대로 6선발 체제에 돌입하게 되어 선발진에 합류했다. 이 해 6월 5일까지 선발로 4승을 거두며 그럭저럭 활약하다가 6월 12일 대전 한화전에서 팀이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넷과 집중타를 허용하며 6실점,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 데 0.1이닝만 남기고 강판되었다. 그 경기 이후 불펜으로 이동, 손영민과 함께 불펜 필승조를 구축하고 손영민 - 유동훈과 함께 SKY라인으로 팀의 페넌트레이스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한일 클럽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현종 이후 두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사 1-2루 상황에서 아베 신노스케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으며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알고보니 '''그날 장염에 걸려 폭풍설사를 참고 던지느라''' 컨디션이 엉망이었다고... 덕분에 곽설사 등의 지저분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2.2. 2010 시즌
2010년 시즌 역시 2009년 시즌과 같이 불펜 필승조로 시즌을 시작했다. 허나 2스트 이후 안타를 계속 맞는 불안한 피칭 내용을 보여주며 기아 팬들의 똥줄을 태우고 있다. 또한 자꾸 승계주자를 들여보내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까이고 있다. 이후 미칠 듯한 탈삼진과 미칠 듯한 볼질(...)을 경기마다 랜덤으로(...) 보여주며 종종 마무리로 나오기도 했다. 그 와중에 구원 투수이면서 탈삼진 랭킹 전체 1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지나면서 그 동안의 과부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구가 전혀 되지 않으며 볼넷과 집중타를 계속 맞아나가는 등 막장 피칭을 보여주었다. 6월 27일 기준으로 평균자책점이 5.62에 육박하기도 했다.
기아 투수진의 연쇄붕괴로 인해 7월 1일 광주 SK전 선발투수로 내정되며 한시적으로 선발로 돌아섰다. 장기적으로 봐도 선발로 키워야 할 선수이긴 하지만...
7월 1일 SK전에서 2이닝 4실점 후 강판당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하루만에 선발투수에서 중간계투로 복귀. 8월 4일에는 7:5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올라와 4실점하며 대차게 말아드셨다. 9월 초순쯤, 어깨에 염증이 생겨 시즌 아웃이라는 말이 돌았으나 9월 17일 삼성전에서 등판해 승리를 챙겼고, 다음날 LG전에서 이택근에게 역전 스리런을 맞고 깨지는 등 롤코 피칭을 계속 선보였다.
2.3. 2011 시즌
4월 2일에 열린 홈 개막전에 윤석민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했다. 그러나 윤석민이 쌓은 주자와 함께 채태인에게 역전 만루홈런을 얻어맞으며 윤석민의 승리를 날려먹었고 결국 개막전에서 윤석민이 패전 투수가 됐다. 맞자마자 친구의 승리를 '''시즌 시작부터''' 날려먹었단 자책 때문이었는지 마운드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KIA 타이거즈 갤러리 에선 정말 신나게 까였다.
4월 3일에서는 6회초 만루상황에서 올라와 2실점. 바로 터진 이범호의 결승홈런으로 양아승리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양소퀴의 3연속 밀어내기 참사때문에 묻혔다.
4월 6일 한화전에서 깃털같은 공으로 난타당했다. 9:6으로 앞선 7회말 무사 1루에 등판하여 잘 막았으나 8회말에 이여상에게 3루타, 9회말 선두타자 고동진에게 2루타를 맞는 등, 결국 2이닝 2피안타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나마 홀드는 기록했다. 조범현 감독은 곽정철이 2009년보다 나아졌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맞긴 맞는건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불안불안하다...
결국 한화전 이후로 행방불명되었다. 4월 9일 두산전에서는 이용규와 김선빈이 막강한 임태훈을 두들겨서 한점차 재역전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이라면 나와야할 곽정철 대신 서재응이 나와야 했던걸 보면 조범현 감독조차도 곽정철을 못 믿는다는 증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중. 2010년에는 김기아 타선 탓을 할수나 있었더라고 해도 2011년은 김기아 타선이 불붙은 타선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더이상 그런 탓도 못할판. 일각에서는 그냥 선발로 전향시키던지 상무로 보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4월 12일 광주 넥센전에서 오랫만에 등판했다. 7:2로 기아가 다섯점 앞서는 상황. 유한준은 잡았으나 이후 알드리지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다시 불을 지르나라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이후 타자들을 범타와 삼진으로 잡아내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박빙상황에서 나올만 할지는 의문.
4월 19일 대구 삼성전에서 1⅓이닝만에 박살난 시구자 양씨를 대신하여 등판해 쓰리런 홈런을 맞으며 양씨의 방어율을 크게 높였다. 그러고 나서 3⅔이닝 동안 유일하게 맞은 안타가 쓰리런 홈런일 정도로 호투하여 1실점 1자책점만을 기록했다.
4월 23일 잠실 LG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답이 없는 제구력과 깃털 직구로 1⅔이닝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고 강판당했다. 이로써 선발로도 중간계투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것이 또 기묘하게 4월 28일 SK전과 4월 29일 롯데전에서는 안타하나도 맞지 않고 막아냈다. 살아나는 기미가 있어보이긴 하지만 롤러코스터 피칭때문에 과연 본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는중.
6월 16일 피로누적으로 2군으로 갔는데, 팔꿈치 검사 결과 뼛조각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이 밝혀져 결국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기로 해 2011년 시즌은 이걸로 끝났다. 그리고 시즌 후 군입대하였다.
2.4. 군 복무
공익근무요원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주민센터에서 복무했었다. 대개 유명한 사람은 큰 기관에서 복무를 하는게 일반적인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것이었다.[7] 심지어는 같은 야구선수인 데다가 같은 광산구청에서 복무한 나주환이 구청 본청에서 복무한 것과 비교하면 안습.
동사무소에서는 민원 서류 담당을 했는데, 방문 한 사람 중에서는 민원 창구에서 그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막장 민원인들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 고생도 많이 했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의 한 공익 갤러에 의해 소양교육 때 우수 교육생으로 뽑힌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광주광산구청(곽정철) 그 전에도 기초 군사훈련 때 사단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2.5. 2014 시즌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2013년 11월 14일에 소집 해제됐다. 코칭스태프 측에선 우완 필승조 역할을 기대하는 듯했다.
근데 또 수술을 한다고 전해졌다(…). KIA 곽정철, 차명진 수술…필승불펜 빨간불 사실 일부 팬들은 재활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된 수순이라고 평했다. 다만 또 수술한다는 점이 팬들에게 안 좋게 보였다.
2.6. 2015 시즌
4월 24일 기준 곽정철은 올해 퓨처스리그 6경기에 나서 7과 3분의 2이닝 5실점(4자책) 평균자책점 4.70으로 1패 1홀드를 기록하고 있는중 실전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연투는 '''불가능한 상태''' 한번 등판한 이후에는 다음 날 팔꿈치 상태를 다시 점검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근황이다.곽정철 한기주는…심사숙고 대상 기사가 올라왔다.
5월 8일까지의 퓨저스리그 성적 15⅔이닝 ERA 6.89로 저조한 성적을 하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09시즌 필승조를 이룩한 곽정철이 그립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저조한 성적으로는 1군에 당분간은 못올라온다는 평가를 이루고있다.
8월 11일 기사에 따르면 재활 피칭을 하던도중 다시 몸에 무리가 왔다고 한다. 이상태라면 올 시즌도 얼굴보기 어려울 듯. #
2.7. 2016 시즌
3월 1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실시된 넥센과의 경기에서 양현종을 이은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하위타선이었지만 삼진을 세개나 잡았으며 143까지 찍히는 포심과 각이 큰 커브는 2016 시즌 곽정철을 기대하게 했다. 그 이후 등판한 3경기에서도 무실점을 기록하며 일부 팬들은 제구력이 불안한 마무리 후보 심동섭,한승혁 대신 곽정철을 마무리로 쓰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4월 2일 nc와의 2차전 8회 2아웃인 상황에서 심동섭이 박석민에게 투런포를 맞자 올라와 9회까지 네타자를 모두 잡아내며 2016시즌 기아의 첫 세이브이자 선수 개인으로서는 1792일만의 세이브를 달성하였다.
4월 5일, LG와의 4:1로 이기던 경기에서 9회에 올라와 뜬공-뜬공-삼진으로 잘 처리해내면서 시즌 2세이브째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5일간 등판이 없었고 4월 10일 기사에 따르면 오른쪽 손가락 혈행장애로 인해 검지와 중지에 피가 통하지 않고 있다고 하고 결국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전날 경기 마무리를 최영필이 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으로 보인다. 팬들은 잇따른 시련에 크게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후 기사에 의하면 본인이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걸 안타깝게 여긴 김기태 감독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엔트리에서 제외켰다고 한다. 광주로 내려가기 전에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죄송하다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고...
5월 13일 한화전에 콜업돼서 7이닝을 던진 양현종의 다음투수로 올라왔다. 0.1이닝 1볼넷 1피안타 2자책으로 부진했다. 아직 상태가 좋지 못한데 너무 무리해서 올린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다. 그 뒤로도 여전히 부진한 투구 내용을 보이고 있는 중.
5월 27일 NC전에서도 1이닝 4피안타 2볼넷 4실점 4자책점으로 부진했다. 손가락 감각의 회복이 덜 된 모습이 역력하다. 뭘 좀 해보려하면 부상이 튀어나오니 여러모로 갑갑한 상황.
아무래도 필승조로 기용하기에는 불안한 감이 있어서, 이후로는 주로 추격조로 등판했다.
2.8. 2017 시즌
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부진이 겹치면서 1군에 한번도 올라오지 못했으며 퓨처스리그에서도 11경기만 등판하였다.
2.9. 2018 시즌, 그리고 은퇴
시즌 전 체력테스트에 정상적으로 참가하였으나 팀의 육성 기조에 따라 1군 스프랭킴프와 2군 스프링캠프에 모두 참가하지 못하였다.
시즌이 시작하고 초반에는 퓨처스리그에 출장하였으나 2018 와일드카드전이 끝난 뒤 10월 19일 재계약 불가를 통보 받았고, 바로 은퇴 후 투수코치로서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품절남이 되었다. #
3. 지도자 시절
2군 소속이기 때문에 팬들의 눈에는 잘 띄지는 않지만, 팬들이 함평을 방문할 때마다 여전한 파이팅과 팬 서비스로 호평이 자자하다. 선수들에게도 무조건 팬 서비스를 잘해주라고 교육하는 편.
21시즌부터는 앤서니 르루 코치가 담당하던 1군 불펜코치를 담당한다.
4. 플레이 스타일
주 무기는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 패스트볼[8] 과 커브.[9] 그러나 제구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빠른 볼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운트를 유리하게 몰고 갔다가 볼넷을 내주는 등 꾸역꾸역 막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여담이지만 2008년 KIA 타이거즈 포수 김상훈이 부상당했을 때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상훈의 부상 이탈로 포수난을 겪게 된 KIA 타이거즈는 포수 자원을 얻고자 SK 와이번스와 협상을 시도했는데, SK 측에서 먼저 투수 카드로 곽정철을 달라고 했던 것. KIA 입장에서는 1차지명 선수라 절대 못 준다는 입장을 고수했고,[10] 결국 전병두가 SK로 가게 되었다. 트레이드 이후 전병두는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반면 곽정철은 포텐에 비해 매우 부진한 성적을 냈기에 아쉬운 대목. 그리고 어느 노장을 만나게 된 전병두는...
중간계투로 부진한 탓에 일각에서는 선발 투수로 전향시키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확실히 선발이 더 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한때 조범현 감독은 곽정철을 미래의 마무리로 생각했지만 일단 수술 후 건강하게 선수로 복귀하는 게 우선이었다.
5. 여담
6. 연도별 주요 성적
[1] 이 기사의 베스트댓글[2] 팬들 사이에서는 보통 美男이라는 의미보다 '미친 남자'의 줄임말로 통하고 있다. 간혹 정신줄을 놓은 듯한 웃음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로 악의 있는 별명은 아니다.[3]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쓰는 대표 별명. 이유는 2009시즌 항목 참조.[4] 작가라 불리는 다른 투수들과 달리 순수한 의미에서의 작가. 중간계투의 비애를 담아 그가 쓴 미니홈피글이 공개됐는데, 웬만한 작가 못지않게 훌륭한 글솜씨를 보여 줘서 붙게 되었다. 제대 후 한 인터뷰에서도 뛰어난 말솜씨가 드러난다. 같은 의미로 곽시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런데 마운드에서도 작가 본능이 뜬금없이 발휘될 때가 있어서(…), KIA팬들은 야구 그만두고 전업 작가하라고 까기도 한다.[5] 자신의 일기에 자신은 조연이라고 써서 붙여졌다. 그가 블론할 때마다 KIA 팬들은 조연의 난, 주연이 되고 싶어 환장한 조연이라며 깐다.[6] 지고 있을 때는 잘 던지다가 크게 이기고 있으면 스스로 자멸해서 붙여진 별명.[7] 하하, 김희철, 김종국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유명한 사람들은 보호 차원에서 큰 기관에서 복무하는게 일반적이다.[8] 무려 157km/h까지 기록했다.[9] 윤석민과 같은 너클커브를 구사한다. 윤석민도 '팀내 최고의 커브는 곽정철'이라며 칭송한 바 있다. 또한 SK 전력분석팀장이었던 김정준도 칭찬했던 구질이다. 실제로 한국시리즈 때 SK 타자들이 곽정철의 이 커브에 많이 당했다고 이야기했다.[10] 곽정철이 아닌 양현종이 트레이드 대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