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훈
* 동명이인의 전 공무원은 유동훈(공무원)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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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KIA 타이거즈 소속의 투수, 前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現 LG 트윈스 코치.
현역시절은 언더핸드 투수였으며, 주로 마무리, 계투로 뛰었다. 해태 시절에 입단하여 KIA로 간판이 바뀐 이후로도 오랫동안 타이거즈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V10을 달성한 2009년.
잘 던질 때의 별명은 '''세일러유''', ''' 달의빛유'''[3] . 하지만 2010 시즌 손영민과 함께 블론 1위에 등극하며 세일러유, 달의빛유, 유느님 등의 별명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휘발유동훈''', '''유동골뱅이''', X발유, 유동훈 안돼[4] 등 안 좋은 별명들만이 남았다. 2012년 초반에는 호투해서 드디어 싱커가 꺾였다며 싱꺾유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이후 폭풍 블론으로 그냥 다시 휘발유로 돌아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11년 후반부터 2012년 초, 그리고 2014년 중반까지 현역 KIA 투수진에서는 최고참 선수로 최향남과 함께 마지막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출신 투수였다. 서재응보다도 생일이 더 빠르기도 하고(빠른 77년생),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대진(74년생), 아킬리노 로페즈(75년생)가 2011시즌 끝나고 이적한 후론 KIA 내의 국내 투수들뿐만 아니라 전체 투수진 내에서도 최고참급으로 등극했다.[5]
김상훈과 함께 2014년 팀 내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었던 마지막 멤버였지만, 김상훈이 7월 8일 은퇴를 선었했고, 사흘 뒤 본인도 은퇴선언을 함으로써 타이거즈 소속으로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던 마지막 멤버'''였는데...[6]
언더핸드 투수답게 주 무기는 싱커[7] 와 커브. 땅볼 유도가 매우 좋다. 특히 제구력이 일품이고, 공의 무브먼트가 좋다. 싱커는 물론이고 포심 패스트볼도 공끝이 상당히 더러워서 알면서도 치기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자기는 똑바로 던지려고 해도 못 던진다고... 쳤다 하면 거의 땅볼. 평균 구속은 110~130Km/h 정도. 싱커도 패스트볼과 구속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승계주자실점률(Rel% ; 09시즌은 15.4%)도 매우 낮다! 분식회계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구원투수라고 볼 수 있다. 연투가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면...
언더형 투수, 강심장, 낮은 WHIP, 훌륭한 제구력과 싱커로 높은 땅볼 유도 능력(G/F), 연투가 어려워 관리가 필요하다는 단점까지 SK 와이번스의 정대현과 플레이 스타일이 흡사하다...였으나 2010년 들어 부상당한 정대현도 연투가 되는데 아무런 부상도 없으면서 연투가 안 되며 새가슴에 제구력까지 시망. 때문에 2009년 시즌에 비해 몸에 맞는 공이 늘었으며, 피안타와 홈런도 대폭 증가. 아 망했어요...
해태 타이거즈 시절.
장충고를 졸업하고 1999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첫 시즌은 선발 투수로 나서며 7승에 4.75.. 평범한 기록일 수 있으나 역대급 타고투저로 꼽히는 1999년도의 흐름과 폭망한 팀 마운드 사정상 준수한 성적이었다. 이후 중간계투로 전환했으나, 크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2004년 신용운과 함께 노예로 굴려지며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KIA 타이거즈 팬들이 혹사의 대명사로 일컫는 신용운의 119이닝보다 더 많은 120이닝을 던지게 되는데 당시의 페이스는 9월 유동훈이 병역파동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불펜투수로서는 드물게 규정이닝을 채울수 있는 정도의 이닝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 때 세운 기록이 2004년 현대 유니콘스와의 더블헤더 경기 연속 승리 기록이다(...)[8]
허나 시즌 도중 '''병역비리'''로 인해 구속 수감되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 그 때문에 3년 반을 쉬어야 했던 '''흑역사'''가 있었다.[9] 이후 2008년 그라운드에 복귀해 중간계투로 활약하였다.
09 시즌에는 한기주의 부상과 부진, 윤석민의 선발 복귀에 따라 마무리로 전업, 09년 KIA의 수호신으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전반기를 지나 09년 올스타전 이후의 모든 경기에서 단 1자책점도 허용하지 않는 '''무자책''',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사실 시즌 전, 본인은 20홀드를 하는 게 꿈이고, 한기주가 마무리로 돌아오고 중간 계투로 돌아서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지만 KIA 팬들은 그저 유동훈이 계속 마무리를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만 유동훈은 마무리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연투가 어렵다는 것. 괜히 KIA 프런트에서 한기주를 살려보려고 노력한 게 아니다. 또한 승리조 불펜 요원인 손영민, 그리고 2010년 복귀할 신용운등이 모두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라서[10] 이 점도 문제가 지적되긴 했다. 하지만 유동훈은 이런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KIA의 뒷문을 완벽하게 책임지면서 기아 필승조 퍼즐을 완성시켜 나갔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는 무사 1, 2루에 등판, 김상수, 김창희에게 연속 안타에 최형우에게 몸에 맞는 볼로 2실점을 한 뒤, 평범한 인필드 플라이를 놓치는 몸개그를 선보였다. 다행히 곽정철의 주자 실점이라 자책점은 없지만 8월 들어 KIA 타선이 폭발하면서 세이브 상황이 좀체 오지 않아 (좋은 의미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9월 11일 이대진 선발 등판 경기에서 9회 등판하여 첫 타자에게 안타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병살타, 삼진으로 깔끔하게 처리하며 이대진의 100승을 지켜주었다.
09 시즌은 57경기 출장(67.1이닝)에 6승 2패 22세이브 10홀드 3블론 4자책점 '''평균자책점 0.53'''에 '''WHIP 0.74'''를 기록. 엄청난 비율 스탯을 기록했다. 또한 시즌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자리를 차지했고, 팀 자체가 세이브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굉장한 시즌을 보낸 것만은 분명하다. 단일 시즌 기준으로 20세이브 이상과 0점대 평균 자책점을 동시에 기록한 건 선동열, 정대현, 유동훈, 오승환 단 네 명 뿐이다.[11]
사실 다른 시즌에 비교해서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이해엔 유독 인플레이성 타구가 극도로 억제되었다. 이 때의 패턴이라면 138km 직구 오네 쳐야지 해서 쳤는데 땅볼, 135짜리 싱커 오네 쳐야지 해서 쳤는데 땅볼, 120짜리 커브 오네 쳐야지 해서 쳤는데 땅볼...[12]
그러나 세이버메트릭스 계열에서는 이 때의 성적에 심각한 의구심을 가졌고,[13] '''운명의 2010년'''이 밝았다.
09년 유동훈에 대한 평가를 세이버메트릭스 스탯과 클래식 스탯의 시각차이로 보기도 하지만, 유동훈의 09시즌에 대해서 굳이 세이버스탯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또한 언더핸드 투수들이 FIP에서 손해를 본다거나 BABIP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무관하게 유동훈의 09시즌이 플루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주안점은 플루크의 원인이 무엇이냐인데, 이 부분이 세이버 쪽 시각으로 볼 때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 뿐이다. 유동훈의 BABIP에 유독 주목하는 것은 BABIP을 커리어 통틀어 어느 정도 낮게 유지했던 몇몇 선수들과는 달리 BABIP에서 크게 강점을 보인 적도 없었던 선수가 탈삼진, 피홈런, 볼넷허용, 땅볼유도율 등 다른 세부 스탯들은 여느 때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BABIP만 아주아주 심한 수준으로 낮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09시즌 유동훈의 BABIP 0.181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수준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BABIP 순위를 참고하자면 KBO 역대 단일 시즌 BABIP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이며, 각종 괴물급 이레귤러들이 넘쳐나는 메이저리그 기록을 봐도 1871년부터 2012년까지 단일시즌 50이닝 이상 투구를 기준으로 정렬해서 나온 22637건 중에서 유동훈보다 낮은 BABIP을 기록한 경우는 겨우 9건 뿐이다.
유동훈의 09년 대폭발은 유동훈의 땅볼유도율[14] 같은 요소에서 찾는 것보다는 말도 안 되게 낮게 나온 BABIP에서 찾는 것이 맞고, 이 BABIP의 수치는 언더핸드의 특수성이나, 유동훈의 고유능력 등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엄청나게 좋은 운 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팀타선의 전체적인 침체(...)'''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리드하고 있는 경기는 거의 무조건 나오고, 그러면서 완벽히 틀어막고 세이브를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구원승이 세이브보다 많을 때도.... 다만, 시즌 극초반인데도 불구하고 KIA 타이거즈의 불펜 핵심인 손영민, 곽정철과 함께 너무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있어서 '''혹사''' 논란이 대두되었다. 이후 컨디션이 안 좋은지 공이 자주 가운데로 몰려 5월 초 LG전에서는 세이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좌타가 많은 LG의 특성 때문인지 처음에는 등판하지 않기도 했다. 이후 5월 13일 넥센전에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하며 세이브를 추가하였다.
5월 19일 롯데전에서는 다 이기고 있던 경기에 불을 질렀다... 어부지리로 송승준이 승을 가져가게 되었다...
때문에 KIA구단에선 등판 간격을 조정해줬으나 정작 상태는 더욱 시망. 6월 30일 SK전에 올라왔으나 3점차를 지키지 못하고 로페즈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로페즈는 자신의 승리가 날라가자 의자를 벽에다 내동댕이쳐버렸다.
7월 9일 한화전에 등판하여 모처럼 깔끔하게 막아내며 팀의 16연패를 끊어낸다. 그러나 7월 18일 SK전 안영명에 이어 등판했으나 폭풍 5실점하고 만다. 다만 자책점은 0점. 7월 21일 삼성전에선 무실점으로 막아내나 다음날 안영명에 이어 등판해 1사 만루에서 공 2개 던지고 3실점하고 만다. 역시 자책점은 0점. 초반 혹사 논란이 대두되자 구단에서 관리해주고 있으나 여전히 시망상태라 팬들은 마음 혹사 당했냐며 조롱글을 올리기 일쑤다. 디시인사이드 KIA갤러리에서 나지완, 손영민, 안치홍 등과 함께 가장 비난을 많이 먹으며 대다수의 KIA갤러들은 그와 손영민 중 1명이 넥센의 강정호와 트레이드되어 팀을 떠났으면 할 정도였다. 그리고 7월 27일 롯데전에서 6: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홍성흔에게 사구, 이대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며 또다시 퐈이아. 결국 안영명으로 교체되고 만다.
8월 25일 7:4로 이기고 있던 8회 올라와 무사 만루를 만든다. 그리고 팀은 8:7로 역전당하고 로페즈의 승리는 날라가 버린다. 내년에도 이 꼴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수많은 KIA팬들은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2011년 갸갤에서 가장 비난받은 투수. 연이은 분식회계에 위기상황 때마다 퐈이아. 방출되길 바라는 선수 1순위. 구단이나 팬이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 손영민도 있고 2010년에 가능성을 보인 전우엽도 있는 등 언더핸드 및 투수 유망주는 차고 넘친다. 유동훈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시즌 초 불펜 투수들의 줄부상으로 또 불펜의 핵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틈날 때마다 등판하고 있으며, 거기다 잘 던진다 싶으면 불을 지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8월경 2군을 다녀온 이후 싱커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나 싶었으나... 9월 18일 무릎 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되었다.
시즌 후 FA를 맞이하였지만, 2년 총액 7억5천만 원에 KIA와 재계약하며 잔류.
시즌 초에는 2012년에 좋은 활약을 한 박지훈의 컨디션이 많이 올라오지 못하면서 최향남과 함께 그나마 믿을 만한 불펜이 되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나오는 분식회계는 여전히 문제.
5월 2일 잠실 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⅔이닝 4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6일 트레이드로 송은범, 신승현 등이 오고, 같은 옆구리 투수인 신승현이 기대 이상의 피칭으로 필승조로 자리잡으면서 추격조로 강등(?)되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49경기 52⅓이닝 1승 3패 5홀드 방어율 2.92 56피안타 3피홈런 11사사구 38탈삼진으로 작년보다는 그나마 방어율이 크게 개선이 되었다.
대체로 승리조에 뛸 때는 다른 중간계투가 주자를 쌓아놓은 상황에 나오는 편이었고,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는 제구가 흔들리면서 분식회계를 시전하는 게 있어서 기아 팬들에게 언제나처럼 까였다. 하지만 추격조에서 뛸 때에는 실점이 적은 계투조로 활약했고, 결과적으로 한 시즌을 정리해 본 결과, 기아 주전급 투수들의 팀내 WHIP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15] , 그야말로 멸망 상태의 기아 불펜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사람구실을 해 주었던 시즌이었으며 2009년 이후부터 꾸준히 올라가던 방어율도 끌어내렸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내측부인대 손상으로 인해 재활에 들어간 뒤, 구위 점검차 2군 경기에 등판하였으나 얼마 던지지 못하고 다시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결국 7월 정밀검진 결과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와 은퇴를 선언했다. 아직 구위는 자신이 있지만 구단에 부담을 지우기 싫다면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은퇴 이후 2015년 3군 코치로 김상훈과 같이 2015 시즌부터 합류하게 되었다. 다만 코치 경력 초반이기 때문에 본인이 2014년 12월 미네소타 트윈스로 코치연수를 다녀왔다가 2015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미네소타 트윈스 산하 트리플 A에서 우선 코치연수를 받기로 했다. 코치직에 있으면서 연수를 하면서 차근차근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
이후 조용히 귀국하여 타이거즈 2군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던 중 6월 1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광주 경기에서 김상훈과 함께 은퇴식을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리고 은퇴식 때 시구를 하고 같이 며칠 앞서서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식을 같이 치르는 김상훈이 시포를 했는데, '''신형 K5 앞좌석 창문을 열어놓고 그 사이로 공을 던져넣는 시구를 했다'''. 시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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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모기업인 기아자동차의 광고 모델로 출연했다(...) 참고로 이 영상은 사전계약 홍보영상.
2016년부터 1군 트레이닝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게다가 불펜코치도 겸하게 된다.
2017년부터는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본격적으로 투수 코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8월 7일 현재 퓨처스 팀 평균자책점, WHIP, 피안타율같은 투수 지표가 상무 바로 다음인 리그 2위를 차지하고 있고, 퓨처스리그에서 교정을 받은 한승혁[16] , 박진태. 2군 캠프에 참가해 선발 수업을 받은 정용운, 임기준이 1군에 와서 비교적 괜찮은 투구를 하자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좋은 편. 특히 1군의 처참한 투수진들을 보면서 팬들은 유동훈 코치를 1군 코치로 승격 시키란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2군에서 유동훈 코치에게 교정 받고 1군에 올라와 준수한 활약을 펼쳐주는 투수들을 보며 기아팬들은 이대진을 자르고 1군 메인코치로 승격시키든지[17] 2인 코치 체제로 가든지 하자며 원성중이다.
9월 14일, 팔꿈치 수술을 받고 군 제대 후 첫 시즌이면서[18] , 1군 경험이라곤 전무한 이민우가 선발 등판해서 6이닝 2실점에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데뷔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이민우 또한 2군에서 유동훈 코치에게 선발수업을 받았던 터라 팬들은 '''갓발유'''를 연호하고 있다.
무려 '''한승혁'''을 고쳤다.[19]
뿐만 아니라 현재 팀 필승조로 자리잡은 유승철과 롱릴리프로 쏠쏠한 문경찬 등을 키워냈고, 정말 답이 없어져가던 임기준을 무려 팀 역사상 가장 안정감이 보이는 좌완필승조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황인준 또한 유동훈 코치의 작품. 최근 퓨쳐스리그 경기에서는 강이준을 키워낸 듯한 모습이다. 숙제가 박살내놓은 입스가 와서 정신 못차리던 박정수를 다시 극복시켜서 공을 던지게 하는 중이고 이민우도 시즌 초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이는 중. 죽은 사람을 살리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10월 19일 선수 및 코치진 정리 명단에 올라와 더이상 못 보게 되었다. 당장 불모지같은 2군에서 퓨쳐스 최상위권 투수력으로 팀을 가꿔내고 한승혁, 이민우, 임기준을 사람으로 만든 장본인을 내쫓는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고는 데려온 투수총괄코치는 (...)
LG 트윈스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군에서 보직을 맡을 듯 하다. # LG 팬들은 강상수를 보낸 것에 더해 많은 투수들을 살려낸 유동훈이 온 것을 보고 '''강상수 ↔ 유동훈 트레이드는 LG의 승리'''라면서 풍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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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KIA 타이거즈 소속의 투수, 前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現 LG 트윈스 코치.
현역시절은 언더핸드 투수였으며, 주로 마무리, 계투로 뛰었다. 해태 시절에 입단하여 KIA로 간판이 바뀐 이후로도 오랫동안 타이거즈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V10을 달성한 2009년.
잘 던질 때의 별명은 '''세일러유''', ''' 달의빛유'''[3] . 하지만 2010 시즌 손영민과 함께 블론 1위에 등극하며 세일러유, 달의빛유, 유느님 등의 별명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휘발유동훈''', '''유동골뱅이''', X발유, 유동훈 안돼[4] 등 안 좋은 별명들만이 남았다. 2012년 초반에는 호투해서 드디어 싱커가 꺾였다며 싱꺾유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이후 폭풍 블론으로 그냥 다시 휘발유로 돌아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11년 후반부터 2012년 초, 그리고 2014년 중반까지 현역 KIA 투수진에서는 최고참 선수로 최향남과 함께 마지막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출신 투수였다. 서재응보다도 생일이 더 빠르기도 하고(빠른 77년생),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대진(74년생), 아킬리노 로페즈(75년생)가 2011시즌 끝나고 이적한 후론 KIA 내의 국내 투수들뿐만 아니라 전체 투수진 내에서도 최고참급으로 등극했다.[5]
김상훈과 함께 2014년 팀 내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었던 마지막 멤버였지만, 김상훈이 7월 8일 은퇴를 선었했고, 사흘 뒤 본인도 은퇴선언을 함으로써 타이거즈 소속으로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던 마지막 멤버'''였는데...[6]
2. 플레이 스타일
언더핸드 투수답게 주 무기는 싱커[7] 와 커브. 땅볼 유도가 매우 좋다. 특히 제구력이 일품이고, 공의 무브먼트가 좋다. 싱커는 물론이고 포심 패스트볼도 공끝이 상당히 더러워서 알면서도 치기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자기는 똑바로 던지려고 해도 못 던진다고... 쳤다 하면 거의 땅볼. 평균 구속은 110~130Km/h 정도. 싱커도 패스트볼과 구속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승계주자실점률(Rel% ; 09시즌은 15.4%)도 매우 낮다! 분식회계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구원투수라고 볼 수 있다. 연투가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면...
언더형 투수, 강심장, 낮은 WHIP, 훌륭한 제구력과 싱커로 높은 땅볼 유도 능력(G/F), 연투가 어려워 관리가 필요하다는 단점까지 SK 와이번스의 정대현과 플레이 스타일이 흡사하다...였으나 2010년 들어 부상당한 정대현도 연투가 되는데 아무런 부상도 없으면서 연투가 안 되며 새가슴에 제구력까지 시망. 때문에 2009년 시즌에 비해 몸에 맞는 공이 늘었으며, 피안타와 홈런도 대폭 증가. 아 망했어요...
3. 선수 경력
해태 타이거즈 시절.
장충고를 졸업하고 1999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첫 시즌은 선발 투수로 나서며 7승에 4.75.. 평범한 기록일 수 있으나 역대급 타고투저로 꼽히는 1999년도의 흐름과 폭망한 팀 마운드 사정상 준수한 성적이었다. 이후 중간계투로 전환했으나, 크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2004년 신용운과 함께 노예로 굴려지며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KIA 타이거즈 팬들이 혹사의 대명사로 일컫는 신용운의 119이닝보다 더 많은 120이닝을 던지게 되는데 당시의 페이스는 9월 유동훈이 병역파동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불펜투수로서는 드물게 규정이닝을 채울수 있는 정도의 이닝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 때 세운 기록이 2004년 현대 유니콘스와의 더블헤더 경기 연속 승리 기록이다(...)[8]
허나 시즌 도중 '''병역비리'''로 인해 구속 수감되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 그 때문에 3년 반을 쉬어야 했던 '''흑역사'''가 있었다.[9] 이후 2008년 그라운드에 복귀해 중간계투로 활약하였다.
3.1. 2009 시즌
09 시즌에는 한기주의 부상과 부진, 윤석민의 선발 복귀에 따라 마무리로 전업, 09년 KIA의 수호신으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전반기를 지나 09년 올스타전 이후의 모든 경기에서 단 1자책점도 허용하지 않는 '''무자책''',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사실 시즌 전, 본인은 20홀드를 하는 게 꿈이고, 한기주가 마무리로 돌아오고 중간 계투로 돌아서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지만 KIA 팬들은 그저 유동훈이 계속 마무리를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만 유동훈은 마무리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연투가 어렵다는 것. 괜히 KIA 프런트에서 한기주를 살려보려고 노력한 게 아니다. 또한 승리조 불펜 요원인 손영민, 그리고 2010년 복귀할 신용운등이 모두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라서[10] 이 점도 문제가 지적되긴 했다. 하지만 유동훈은 이런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KIA의 뒷문을 완벽하게 책임지면서 기아 필승조 퍼즐을 완성시켜 나갔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는 무사 1, 2루에 등판, 김상수, 김창희에게 연속 안타에 최형우에게 몸에 맞는 볼로 2실점을 한 뒤, 평범한 인필드 플라이를 놓치는 몸개그를 선보였다. 다행히 곽정철의 주자 실점이라 자책점은 없지만 8월 들어 KIA 타선이 폭발하면서 세이브 상황이 좀체 오지 않아 (좋은 의미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9월 11일 이대진 선발 등판 경기에서 9회 등판하여 첫 타자에게 안타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병살타, 삼진으로 깔끔하게 처리하며 이대진의 100승을 지켜주었다.
09 시즌은 57경기 출장(67.1이닝)에 6승 2패 22세이브 10홀드 3블론 4자책점 '''평균자책점 0.53'''에 '''WHIP 0.74'''를 기록. 엄청난 비율 스탯을 기록했다. 또한 시즌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자리를 차지했고, 팀 자체가 세이브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굉장한 시즌을 보낸 것만은 분명하다. 단일 시즌 기준으로 20세이브 이상과 0점대 평균 자책점을 동시에 기록한 건 선동열, 정대현, 유동훈, 오승환 단 네 명 뿐이다.[11]
사실 다른 시즌에 비교해서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이해엔 유독 인플레이성 타구가 극도로 억제되었다. 이 때의 패턴이라면 138km 직구 오네 쳐야지 해서 쳤는데 땅볼, 135짜리 싱커 오네 쳐야지 해서 쳤는데 땅볼, 120짜리 커브 오네 쳐야지 해서 쳤는데 땅볼...[12]
그러나 세이버메트릭스 계열에서는 이 때의 성적에 심각한 의구심을 가졌고,[13] '''운명의 2010년'''이 밝았다.
3.1.1. 09년 대폭발에 대한 분석
09년 유동훈에 대한 평가를 세이버메트릭스 스탯과 클래식 스탯의 시각차이로 보기도 하지만, 유동훈의 09시즌에 대해서 굳이 세이버스탯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또한 언더핸드 투수들이 FIP에서 손해를 본다거나 BABIP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무관하게 유동훈의 09시즌이 플루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주안점은 플루크의 원인이 무엇이냐인데, 이 부분이 세이버 쪽 시각으로 볼 때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 뿐이다. 유동훈의 BABIP에 유독 주목하는 것은 BABIP을 커리어 통틀어 어느 정도 낮게 유지했던 몇몇 선수들과는 달리 BABIP에서 크게 강점을 보인 적도 없었던 선수가 탈삼진, 피홈런, 볼넷허용, 땅볼유도율 등 다른 세부 스탯들은 여느 때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BABIP만 아주아주 심한 수준으로 낮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09시즌 유동훈의 BABIP 0.181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수준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BABIP 순위를 참고하자면 KBO 역대 단일 시즌 BABIP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이며, 각종 괴물급 이레귤러들이 넘쳐나는 메이저리그 기록을 봐도 1871년부터 2012년까지 단일시즌 50이닝 이상 투구를 기준으로 정렬해서 나온 22637건 중에서 유동훈보다 낮은 BABIP을 기록한 경우는 겨우 9건 뿐이다.
유동훈의 09년 대폭발은 유동훈의 땅볼유도율[14] 같은 요소에서 찾는 것보다는 말도 안 되게 낮게 나온 BABIP에서 찾는 것이 맞고, 이 BABIP의 수치는 언더핸드의 특수성이나, 유동훈의 고유능력 등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엄청나게 좋은 운 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3.2. 2010 시즌
'''팀타선의 전체적인 침체(...)'''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리드하고 있는 경기는 거의 무조건 나오고, 그러면서 완벽히 틀어막고 세이브를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구원승이 세이브보다 많을 때도.... 다만, 시즌 극초반인데도 불구하고 KIA 타이거즈의 불펜 핵심인 손영민, 곽정철과 함께 너무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있어서 '''혹사''' 논란이 대두되었다. 이후 컨디션이 안 좋은지 공이 자주 가운데로 몰려 5월 초 LG전에서는 세이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좌타가 많은 LG의 특성 때문인지 처음에는 등판하지 않기도 했다. 이후 5월 13일 넥센전에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하며 세이브를 추가하였다.
5월 19일 롯데전에서는 다 이기고 있던 경기에 불을 질렀다... 어부지리로 송승준이 승을 가져가게 되었다...
때문에 KIA구단에선 등판 간격을 조정해줬으나 정작 상태는 더욱 시망. 6월 30일 SK전에 올라왔으나 3점차를 지키지 못하고 로페즈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로페즈는 자신의 승리가 날라가자 의자를 벽에다 내동댕이쳐버렸다.
7월 9일 한화전에 등판하여 모처럼 깔끔하게 막아내며 팀의 16연패를 끊어낸다. 그러나 7월 18일 SK전 안영명에 이어 등판했으나 폭풍 5실점하고 만다. 다만 자책점은 0점. 7월 21일 삼성전에선 무실점으로 막아내나 다음날 안영명에 이어 등판해 1사 만루에서 공 2개 던지고 3실점하고 만다. 역시 자책점은 0점. 초반 혹사 논란이 대두되자 구단에서 관리해주고 있으나 여전히 시망상태라 팬들은 마음 혹사 당했냐며 조롱글을 올리기 일쑤다. 디시인사이드 KIA갤러리에서 나지완, 손영민, 안치홍 등과 함께 가장 비난을 많이 먹으며 대다수의 KIA갤러들은 그와 손영민 중 1명이 넥센의 강정호와 트레이드되어 팀을 떠났으면 할 정도였다. 그리고 7월 27일 롯데전에서 6: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홍성흔에게 사구, 이대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며 또다시 퐈이아. 결국 안영명으로 교체되고 만다.
8월 25일 7:4로 이기고 있던 8회 올라와 무사 만루를 만든다. 그리고 팀은 8:7로 역전당하고 로페즈의 승리는 날라가 버린다. 내년에도 이 꼴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수많은 KIA팬들은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3.3. 2011 시즌
2011년 갸갤에서 가장 비난받은 투수. 연이은 분식회계에 위기상황 때마다 퐈이아. 방출되길 바라는 선수 1순위. 구단이나 팬이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 손영민도 있고 2010년에 가능성을 보인 전우엽도 있는 등 언더핸드 및 투수 유망주는 차고 넘친다. 유동훈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3.4. 2012 시즌
시즌 초 불펜 투수들의 줄부상으로 또 불펜의 핵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틈날 때마다 등판하고 있으며, 거기다 잘 던진다 싶으면 불을 지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8월경 2군을 다녀온 이후 싱커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나 싶었으나... 9월 18일 무릎 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되었다.
시즌 후 FA를 맞이하였지만, 2년 총액 7억5천만 원에 KIA와 재계약하며 잔류.
3.5. 2013 시즌
시즌 초에는 2012년에 좋은 활약을 한 박지훈의 컨디션이 많이 올라오지 못하면서 최향남과 함께 그나마 믿을 만한 불펜이 되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나오는 분식회계는 여전히 문제.
5월 2일 잠실 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⅔이닝 4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6일 트레이드로 송은범, 신승현 등이 오고, 같은 옆구리 투수인 신승현이 기대 이상의 피칭으로 필승조로 자리잡으면서 추격조로 강등(?)되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49경기 52⅓이닝 1승 3패 5홀드 방어율 2.92 56피안타 3피홈런 11사사구 38탈삼진으로 작년보다는 그나마 방어율이 크게 개선이 되었다.
대체로 승리조에 뛸 때는 다른 중간계투가 주자를 쌓아놓은 상황에 나오는 편이었고,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는 제구가 흔들리면서 분식회계를 시전하는 게 있어서 기아 팬들에게 언제나처럼 까였다. 하지만 추격조에서 뛸 때에는 실점이 적은 계투조로 활약했고, 결과적으로 한 시즌을 정리해 본 결과, 기아 주전급 투수들의 팀내 WHIP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15] , 그야말로 멸망 상태의 기아 불펜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사람구실을 해 주었던 시즌이었으며 2009년 이후부터 꾸준히 올라가던 방어율도 끌어내렸다.
3.6. 2014 시즌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내측부인대 손상으로 인해 재활에 들어간 뒤, 구위 점검차 2군 경기에 등판하였으나 얼마 던지지 못하고 다시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결국 7월 정밀검진 결과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와 은퇴를 선언했다. 아직 구위는 자신이 있지만 구단에 부담을 지우기 싫다면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4. 은퇴식
은퇴 이후 2015년 3군 코치로 김상훈과 같이 2015 시즌부터 합류하게 되었다. 다만 코치 경력 초반이기 때문에 본인이 2014년 12월 미네소타 트윈스로 코치연수를 다녀왔다가 2015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미네소타 트윈스 산하 트리플 A에서 우선 코치연수를 받기로 했다. 코치직에 있으면서 연수를 하면서 차근차근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
이후 조용히 귀국하여 타이거즈 2군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던 중 6월 1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광주 경기에서 김상훈과 함께 은퇴식을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리고 은퇴식 때 시구를 하고 같이 며칠 앞서서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식을 같이 치르는 김상훈이 시포를 했는데, '''신형 K5 앞좌석 창문을 열어놓고 그 사이로 공을 던져넣는 시구를 했다'''. 시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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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모기업인 기아자동차의 광고 모델로 출연했다(...) 참고로 이 영상은 사전계약 홍보영상.
5. 지도자 경력
2016년부터 1군 트레이닝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게다가 불펜코치도 겸하게 된다.
5.1. 2017년
2017년부터는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본격적으로 투수 코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8월 7일 현재 퓨처스 팀 평균자책점, WHIP, 피안타율같은 투수 지표가 상무 바로 다음인 리그 2위를 차지하고 있고, 퓨처스리그에서 교정을 받은 한승혁[16] , 박진태. 2군 캠프에 참가해 선발 수업을 받은 정용운, 임기준이 1군에 와서 비교적 괜찮은 투구를 하자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좋은 편. 특히 1군의 처참한 투수진들을 보면서 팬들은 유동훈 코치를 1군 코치로 승격 시키란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2군에서 유동훈 코치에게 교정 받고 1군에 올라와 준수한 활약을 펼쳐주는 투수들을 보며 기아팬들은 이대진을 자르고 1군 메인코치로 승격시키든지[17] 2인 코치 체제로 가든지 하자며 원성중이다.
9월 14일, 팔꿈치 수술을 받고 군 제대 후 첫 시즌이면서[18] , 1군 경험이라곤 전무한 이민우가 선발 등판해서 6이닝 2실점에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데뷔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이민우 또한 2군에서 유동훈 코치에게 선발수업을 받았던 터라 팬들은 '''갓발유'''를 연호하고 있다.
5.2. 2018년
무려 '''한승혁'''을 고쳤다.[19]
뿐만 아니라 현재 팀 필승조로 자리잡은 유승철과 롱릴리프로 쏠쏠한 문경찬 등을 키워냈고, 정말 답이 없어져가던 임기준을 무려 팀 역사상 가장 안정감이 보이는 좌완필승조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황인준 또한 유동훈 코치의 작품. 최근 퓨쳐스리그 경기에서는 강이준을 키워낸 듯한 모습이다. 숙제가 박살내놓은 입스가 와서 정신 못차리던 박정수를 다시 극복시켜서 공을 던지게 하는 중이고 이민우도 시즌 초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이는 중. 죽은 사람을 살리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10월 19일 선수 및 코치진 정리 명단에 올라와 더이상 못 보게 되었다. 당장 불모지같은 2군에서 퓨쳐스 최상위권 투수력으로 팀을 가꿔내고 한승혁, 이민우, 임기준을 사람으로 만든 장본인을 내쫓는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고는 데려온 투수총괄코치는 (...)
5.3. 2019년
LG 트윈스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군에서 보직을 맡을 듯 하다. # LG 팬들은 강상수를 보낸 것에 더해 많은 투수들을 살려낸 유동훈이 온 것을 보고 '''강상수 ↔ 유동훈 트레이드는 LG의 승리'''라면서 풍악을 울리고 있다.
6. 여담
- 여담으로, 가득염에게 안타를 맞았던 투수다.
- 한국시리즈를 포함해 2009시즌 단 3개의 피홈런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모두 포수로 진갑용, 조인성, 정상호 이렇게 세 명이다. 그런데 2009년 진갑용은 부상으로 시즌아웃, 조인성은 망했어요. 정상호는 시즌 후 고관절 수술에 신종플루까지 걸렸다.
- 마구마구2014에 09시즌 카드가 엘리트로 존재하는데 V투심이 87이다. 여기까진 좋았지만 R패스트볼 80에다 9볼에다 마무리. 엄청난 비인기와 엄청난 스탯을 갖고있는 엘리트. PC판에서는 초상권 문제로 가명 유상훈으로 등록되어있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1] 체육학과 (1995학번)[2] 트레이닝 코치 겸직[3] 이 두 별명은 ESPN에서 기아 경기 중계방송의 해설을 하던 이순철이 유동훈의 투구자세가 꼭 그날 하늘에 걸려있던 '''초승달'''을 닮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달의빛유는 일본 프로야구의 에이스 중 한 명인 '''다르빗슈'''같은 투구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4] 본래 이 별명은 욕설에 가까운 별명이 아니라 2008년 연투에 연투를 하던 유동훈을 보기 안타까워하던 KIA팬의 절규에서 파생된 별명이다. 하지만 2010년 들어 유동훈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로 변했다... 당시 영상.[5] 2012 시즌 초를 기준으로 KIA 투수진의 나이는 유동훈 - 박준수 - 서재응 순으로 많았다. 넥센에서 넘어온 박준수는 77년 3월생. 그런데 6월 5일 71년생 최향남이 KIA에 입단하면서 최고참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2013 시즌 이후 최향남이 고양 원더스로 갔지만 2014년 3월 최영필이 오면서 다시 최고참 자리가 바뀌었다.[6] 참고로 기아 소속은 아니지만 해태 유니폼을 입었던 현역 선수는 강영식(롯데), 이호준(NC), 김경언(한화)뿐이었지만 2018년 기준으로는 모두 은퇴하거나 방출되었다. 독립구단까지 포함하면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는 최향남이 있다. 하지만 해태 유니폼을 입었고 거기에 '''우승까지 두 차례나 맛보았던''' 임창용이 2016년 3월 KIA에 입단하면서 타이거즈 소속으로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던 현역 선수가 다시 생겼다. 또한 정성훈이 2018년2018시즌 LG에서 방출된 후 기아에 입단함으로써 2명이 되었다! 참고로 김진우 같이 공식적인 자리긴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실착한 적이 있던 선수는 제외.[7] 근데 유동훈 본인은 투심이라고 한다. 보통 구질을 판단할 때 본인 말을 듣는 걸 감안하면 투심이 맞는 듯.[8] 이 기록을 세운 투수는 역대 5명이며, 현재는 더블헤더를 거의 가지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 기록을 세울 투수는 많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각각 문희수(1988년 전주 롯데전), 김성길(1991년 대구 롯데전), 권준헌(2003년 사직 롯데전), 송진우(2003년 대전 LG전), 그리고 유동훈.[9] 옥중에 있었을 때 사과를 늘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야구공을 감옥에 가져갈 수 없어서 사과로 대신 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어떻게든 감을 놓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 열정 덕이었는지 복귀 후에 성공적으로 활약한 듯. [10] 신용운은 속구를 던질 때는 임창용처럼 쓰리쿼터로 던지기도 한다.[11] 물론 선동열은 0점대에 '''30'''세이브 가량을 기록했고, 선발로 나섰을 때도 0점대에 10승 이상도 했지만. 오승환도 0점대에 '''47'''세이브를 했다.[12] 패스트볼의 경우 리그 최저인 0.152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50타수이상 기준)[13] 언더핸드로서의 특수성을 감안하다고 해도 BABIP가 무려 .181로 지나치게 낮았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교과서적인 사례'''.[14] 유동훈의 그라운드볼/플라이볼 비율 또한 탈삼진, 볼넷허용 등과 마찬가지로 다른 시즌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그라운드볼이 수비수에게 유난히 많이 잡혔다.[15] 옆구리 투수 경쟁자인 신승현은 시즌 결과 whip 1.63을 기록하며 두 이닝당 최소 3명 이상의 주자를 내보내는 방화범이었다.[16]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17] 2군 코치로 내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2군 투수들 망칠 일 있냐면서 반대하는 의견이 대다수다.[18] 시즌 중반에 제대하여 선수단에 합류 했기 때문에 몸이 제대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팔꿈치 수술 뒤, 재활에만 전념해야 했던 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몸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19] 물론 잘던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만년유망주로서 속만 썩이던 한승혁을 1군 레귤러 선발로 쓸 수 있게 만든 점은 큰 성과다. 당장 정성철의 사례를 생각해보자..[20] 이는 2006년 대통령배, 황금사자기 우승 전까지 장충고의 유일한 전국대회 결승 진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