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행정
1. 개요
북부 면 지역은 백운산을 필두로한 산악지대라 인구가 적고, 대다수의 인구는 남쪽에 몰려있다. 舊 동광양시 지역은 원래 광양군 골약면이었으나, 제철소 건설이 진행되면서 골약면 중 현 금호동과 태인동 지역이 태금면으로 분리되었고, 이후 골약면과 태금면, 옥곡면(일부)이 1989년에 동광양시로 승격·분리되었다가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되어 광양시가 되었다.
2. 연혁
- 1895.05.26: 23부제 실시로 광양현이 광양군으로 개칭되고 남원부에 소속됨.
- 1896.02.03: 돌산군 신설로 골약면과 옥곡면에 속했던 도서가 돌산군 북면에 편입됨.
- 길도(舊 골약면, 현 중마동)
- 늑도·소늑도·송도·장도(舊 골약면, 현 여수시 율촌면 여동리)
- 금도·금당도·비운도·삼화도·소당도·양도 (舊 옥곡면, 현 금호동)
- 태인도(舊 옥곡면, 현 태인동)
- 1896.08.04: 돌산군 북면이 태인면으로 개칭.
- 1914.03.01
- 순천군 용두면 지봉리의 일부가 광양군 인덕면 덕례리에 편입.
- 순천군 용두면 봉서리·산두리의 각 일부가 광양군 인덕면 세풍리에 편입.
- 광양군 인덕면 동지리의 일부가 순천군 해룡면 복성리에 편입.
- 1914.04.01: 군면대폐합
- 골약면: 2면 37리(골약면의 29리, 돌산군 태인면의 8리)[1] 를 1면 10리로 폐합.
- 광양면: 3면 54리(사곡면의 22리, 우장면의 12리, 칠성면의 5리)를 1면 15리로 폐합.
- 다압면: 17리를 5리로 폐합
- 봉강면: 37리를 7리로 폐합
- 옥곡면: 30리를 9리로 폐합
- 옥룡면: 37리를 8리로 폐합
- 인덕면: 15리를 5리로 폐합
- 진상면: 32리를 7리로 폐합
- 진월면: 2면 33리(월포면의 14리, 진하면의 19리)를 1면 10리로 폐합.
- 1915.01.01: 다압면 도사리 두치진이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면에 편입.
- 1925.04.01: 인덕면이 광양면에 흡수.
- 舊 인덕면 지역: 덕례리·도월리·세풍리·인동리·인서리
- 1949.08.14: 광양면이 읍으로 승격.
- 1966.06.01: 골약면 산하에 금호리·태인리를 관할하는 태인출장소 설치.
- 1973.07.01: 골약면 송장리가 여천군 율촌면에 편입.[2]
- 1983.02.15
- 골약면 태인출장소가 태금면으로 승격.
- 옥룡면 운곡리 계곡(桂谷)마을이 광양읍 우산리에 편입.
- 진월면 진정리 삼정마을이 진상면 청암리에 편입.
- 1986.01.01: 골약면·태금면·옥곡면 광영리에 전라남도 광양지구출장소 설치.
- 1987.01.01
- 옥곡면 광영리와 여천시 묘도동 지진도(쥐섬)가 태금면에 편입.
- 봉강면 지곡리 보운마을과 우두마을(일부)이 광양읍 구산리 신기마을에 편입.
- 승주군 해룡면 복성리 주령마을이 광양읍 덕례리에 편입.
- 1989.01.01: 전라남도 광양지구출장소(골약면·태금면)가 동광양시로 승격, 광양군에서 분리
- 동광양시의 행정동: 광영동·금당동·금호동·성황동·중마동·태인동·황금동
- 1995.01.01: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합병되어 광양시 출범.
- 1998.11.25
- 성황동과 황금동이 골약동으로 통폐합.
- 금당동이 금호동에 흡수.
3. 동 지역
舊 동광양시 지역이다. 이 중에서 골약동·중마동은 舊 골약면, 금호동·태인동은 舊 태금면, 광영동은 舊 옥곡면에 해당한다.
3.1. 골약동
관할 법정동은 도이동·성황동·중군동·황금동·황길동이다. 인구는 '''1,679명'''.[A]
舊 골약면 지역 중 중동과 마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아우르는 행정동이며 골약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동광양시가 처음 생겼을 때는 성황동, 황금동의 두개 행정동이었으나, 98년 동 통폐합 과정에서 2개 동이 하나로 합쳐졌다. 별거 없는 지역이었으나, 광양항이 조성되고 황금지구와 성황도이지구등 배후단지가 건설되면서 거대한 공사판이 되어 있다. 남해고속도로 동광양IC와 경전선 골약역, 또 광양제철소와 광양항의 화물 수송을 위해 건설된 광양제철선/광양항선/신광양항선의 황길역, 광양항역, 신광양항역이 있다.
3.2. 광영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원래는 진흙뻘판이었다. 인구는 '''12,523명'''.[A]
광양제철소 건설 당시 금호도 원주민들의 이주단지로 형성된 지역.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동광양지역의 유흥(!)을 비롯하여 외식, 배달업체, 시장 등등 각종 생활의 중심지였으나, 낙후된 도시기반시설과 산으로 둘러싸여서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지리적 특성상 중마동에게 밀려 몰락하였다. 최근 들어 광영고가 생기고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3.3. 금호동
[image]
광양제철주택단지. 전라남도 광양시 금호동 일대.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인구는 '''12,502명'''.[A]
금호동을 구성하고 있는 섬 이름인 금호도에서 유래하였으며 현지에서는 제철[3] 이라고 불린다.[4] 1985년 포항제철(포스코)이 세운 광양제철소와 그 사원주택단지가 이곳에 있다.[5]
주택단지 조성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공간개념이 도입되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건물의 노후화와 공해가 심한 편이다.[6] 또 특징이라면 아파트 이름으로 꽃 이름이 붙어 있으며[7] , 두 개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주거시설 대부분이 5층 이하이다.
섬 바깥은 고층 건물이 난무하는 것과 사뭇 다른 풍경. 금호대교를 통해 광영동방면, 길호대교를 통해 중마동 남쪽방면, 태인교를 통해 태인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순신대교를 통해 여수시와 연결되어 있다. 광양제철선 태금역이 있는데, 화물역이지만 가끔 관광열차가 운행된다. 광양축구전용구장, CGV 광양도 이곳에 있다.
한때, 조선대학교병원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2000년에 경영난으로 폐쇄되었는데 현재 의료시설과 학원건물로 이용되고 있는 휴먼센터가 "조선대학교부속광양병원"의 건물이었다.
참고로 호남에서 읍면동 단위로 '''국민의힘[8] 지지가 20%를 넘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정당득표로 금호동에서만 23.67%를 득표했다. 이는 광양제철소 직원들의 출신 지역이 경상도를 비롯하여 전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9]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의 득표율 합이 40%를 넘기도 했으며,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도 여기서 28%의 득표율을 보였다.
광양은 전남 내에서 다른 시/군에 비해 유독 보수계 정당 득표율이 높고 민주당계 정당 득표율이 낮은 편인데, 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동네에서 다른 곳보다 월등히 보수 정당표가 많이 나오기 때문. 반대로 TK 지역에서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강한 곳은 역시 포스코 사원 주택단지가 있는 포항 효곡동, 제철동이다. 저 곳에서도 민주당 표가 많으면 30% 가량 나온다.다만 포항의 경우 보수 득표율이 높음에도 불구, 야당 득표율이 어느 정도 나오는 이유는 포스텍에 있는 학생들 영향이 크다.
3.4. 중마동
3.5. 태인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태인동을 구성하고 있는 섬 이름인 태인도에서 유래. 인구는 '''1,831명'''.[A]
섬을 간척하고 다리(태인교, 태인대교, 섬진대교)를 놓아서 사실상 육지가 되었다. 광양제철소 배후산업단지가 가장 처음 조성된 곳이며 얼마 되지 않던 농업지역도 거의 사라져가는 중이다. 광양에서 거주환경이 매우 안좋은 곳이다.[10]
2번 국도 태인교를 통해 금호동과, 59번 국도 섬진대교를 통해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과, 2번 국도 태인대교를 통해 진월면과 연결되어 있다. 태인대교와 섬진대교 사이에 배알도해변공원이 있다.
4. 읍 · 면 지역
舊 광양군에 속했던 지역이다.
4.1. 광양읍
4.2. 다압면
면소재지는 고사리이다. 인구는 '''1,812명'''.[A]
단일 면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남북으로 길다랗게 늘어져 있는 면. 북쪽 끝 남도대교 인근부터 남쪽 끝 섬진교 인근까지 직선거리로 약 16km. 딱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산[11] , 섬진강, 그리고 매화[12] . 2번 국도의 섬진교를 통해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과 연결되어 있다. 광양시내(동광양)나 광양군의 옛 중심지인 광양읍보다는 하동읍내가 훨씬 가깝다.
4.3. 봉강면
면소재지는 봉당리이다. 인구는 '''2,174명'''.[A]
광양시 유일의 군부대(겸 예비군 훈련장)가 있다. 구례까지 연결되는 도로가 개통해 있다. 성불사, 성불사계곡, 백운저수지, 매천 황현 선생 생가 및 사당이 있다. 석사리와 지곡리는 광양읍내와 가깝다. 순천시 황전면과 구례군 간전면과 맞닿아 있다. 광양시에서는 옥룡,다압 지역과 함께 산이 많은 곳이다.
4.4. 옥곡면
면소재지는 신금리이다. 인구는 '''2,832명'''.[A]
광양시에서 옥룡과 더불어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이건 어디까지나 완곡한 표현) 곳. 그러나 면 남단으로는 간척과 더불어 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광영동도 원래 옥곡면에 속해 있었다. 남해고속도로 옥곡IC가 있다. 경전선 옥곡역이 있었으나 경전선 진주~광양 복선개량화 사업이 완료되어 폐역되었다.
4.5. 옥룡면
면소재지는 운평리이다. 도선국사가 말년에 수행했던 절인 옥룡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인구는 '''3,088명'''.[A]
백운산으로 설명이 끝나는 동네이다. 백운산 자락에 옥룡사지. 중흥산성, 중흥사, 운암사, 동곡계곡 등이 있으며, 90년대에 포항제철에서 직원 휴양 시설로 조성한 백운산수련관이 있다. 산 중턱에 대규모 야외수영장과 야영장이 있다.
4.6. 진상면
면소재지는 섬거리이다. 광양군 시절에는 광양 동부지역의 소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인구는 '''2,868명'''.[A]
대한민국 유일의 항만물류분야 마이스터고인 한국항만물류고등학교가 있다. 수어저수지, 어치계곡, 경전선 진상역이 있다.
4.7. 진월면
면소재지는 선소리이다. 섬진강 하류를 끼고 있으며 광양에서 사실상 어업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역. 인구는 '''2,823명'''.[A]
망덕리에서 가을마다 전어축제가 열린다. 남해고속도로 진월IC와 섬진강휴게소가 있으며, 섬진강교를 통해 하동군 하동읍과 연결된다.
[1] 당시 돌산군 태인면 소속의 리는 금도·길도·도촌리·묘도·송도·용지리·장내리 등이다. 묘도는 처음부터 광양에 속한 곳이 아니었으며 돌산군이 폐지되면서 여수군으로 복귀된다.[2] 돌산군 태인면의 부속도서였던 늑도·소늑도·송도·장도를 관할한다. 송장리는 이후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1986년에 여동리로 개칭된다.[A] A B C D E F G H I J 2020년 7월 주민등록인구[3] 근데 제철이라는 이름도 슬슬 없어지기 시작한다.[4] 제철소 건설 전에는 금호도 외에도 자잘한 섬이 몇 개 있었으나 단지 조성과 함께 간척되면서 하나로 통합되었다.[5] 제철소를 만들기 전 후보지로는 광양 외에도 아산, 울진 등이 있었으나 아산은 조수 간만의 차가 너무 크고 울진은 지나치게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유사시 북한군의 기습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 제외되었다. 반면 광양은 해안의 수심이 깊고 조수 간만의 차가 적은 데다가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구하는데 쉬웠으며 지역 균형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는 박태준 당시 회장의 주장이 관철되었다고 한다.[6] 백합아파트는 이제 균열이 시작하여 무너지는 중... 금이 가버렸다. 1989년에 지었다는 머릿돌이 14동 옆 주차장에 위치해 있다. 제철소와 지나치게 가깝고 건물이 갈수록 노후화되다 보니 금호동에 살던 포스코 직원 내지 퇴직자들이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고 있는 중마동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2012년을 기점으로 심심찮게 보이게 되었다.[7] 목련, 장미, 동백, 백합, 매화, 초원, 송죽, 사랑아파트. 이 중 송죽은 포스코 소유가 아니라 한다.[8] 물론 현재의 국민의힘이 아닌, 전의 새누리당 시절 이야기다.[9] 새누리당 득표율이 20%를 넘은 다른 두 곳은 신안군 장산면, 장성군 삼계면이다. 장성군 삼계면은 상무대의 영향으로 역시 전국에서 온 군인 가족들 표심의 영향이며 신안군 장산면은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를 지낸 새누리당 주영순의 고향이다.[10] 최근에는 학습환경 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은 태금중학교가 폐교조치되었는데, 그 이유가 교육열의나 학생 또는 교사의 자질 때문도 아니고 환경이 안좋아서...[11] 북쪽에 백운산, 남쪽에 불암산이 있으며 백운산 자락에 금천계곡이 있다.[12] 도사리에 섬진강 매화마을이 있다.